의상능선 예찬 (삼각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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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 : 2005.04.02 (토)

*나홀로

*산행코스 : 산성매표소(09:10)-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비봉-향로봉-불 광매표소(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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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머리 산성입구에서 본 원효봉(좌)과 의상봉(우)


▼ 의상봉에서 바라본 백운대, 만경봉과 노적봉
 

▼ 국녕사 야외 부처님
 

 

▼ 바위에 뿌리내린 끈질긴 생명력 1,2
 
 

 

▼ 의상능선에서 만난 강아지바위
 

 

▼ 피아노바위
 

 

▼ 문수봉 줄기의 기암 1,2
 
 

 

▼ 의상능선의 기암괴석(2005.02.26 촬영)


 

 금년 들어 세 번째 삼각산 의상능선을 오른다. 전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산성행 버스를 타고 5분여 쯤 지나 산성매표소에 다다른다. 버스 차창 가에 비친 의상봉이 우뚝 솟아 남성의 힘찬 기상을 느끼게 한다. 계곡 왼 쪽으론 원만한 모습의 원효봉이 알맞은 자리에 조화롭게 좌정하고 있는 산세가 산객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다. 오직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만이 바로 그 주인이다. 산 계곡의 시냇물 소리, 산죽이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소리, ‘조잘조잘’ 조잘대는 산새소리 그리고 숲 속을 스치며 지나는 솔바람 소리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천지간에 내는 자연의 소리다. 비 오는 날 숲 속 오솔길에서 나뭇잎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가을 비 소리 또한 같다. 모두가 세속의 탐(貪) 진(瞋) 치(痴), 삼독심(三毒心)을 씻어내는 자연의 소리다. 나는 이 소리들이 듣고파 산을 자주 찾는지도 모른다.


 

 우람한 산세의 위용에 놀라고, 자연이 빚은 기암괴석에 탄성을 지르고 바위성채에 뿌리박고 고고하게 자란 소나무 한그루를 보고 자연에 경외심을 느낀다. 나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보기 위해 즐겨 산을 찾는다. 


 

 술을 마실 때 운치 있는 벗과 어울리면 제 맛이 나듯, 산을 오를 땐 초일(超逸)한 벗과 어울리면 더 좋다. 그러나 가끔은 여러 산우들과 함께 하는 산행보다 나홀로 하는 산행이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자연과 진정으로 벗 할 수 있어 더욱 좋을 때도 있다.


 

 오늘도 의상능선 용출봉에서 용혈봉으로 내려가는 암릉 길에서 수직 바위 틈에 옆으로 몸을 누이고 고고함을 뽐내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의상능선을 타던 중 철제계단 밑에서 뒤에 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다 우연하게 내 눈에 띄었다. 그것도 행운이었다. 그져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철제계단 옆 바위 절벽에 다소곳이 몸을 숨기고 있는 그 모습이 참으로 고고하다. 제 모습을 숨기고 해와 달, 눈과 비 그리고 바람과 벗하며 10여년을 지냈으리라. 어쩌면 토양이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박고 있어 오직 수분 섭취는 눈과 비에 의지 했었을 성 싶다. 그 소나무에서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의 섭리를 본다. 그리고 위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한 존재를 실감한다.


 

 삼각산은 거대한 바위성채다. 의상봉에서 바라 본 원효봉과 염초봉이 그렇고 노적봉도 그렇다. 의상능선을 지나며 조망하는 산세는 좌우 앞뒤 할 것 없이 사방팔방으로 빼어나다. 거기다가 가파른 암릉 길엔 쇠 로프가 곳곳에 많이 설치되어 있어 산행인들에게 체력을 단련시킨다. 요즘은 여성 산님들도 이 코스를 많이 다닌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함께한 산행 때 의상봉 암릉을 오르는 앞서 가는 여성 산님들이 있었다. 남성 산객 못지않게 쇠줄을 끌어당기며 암릉길을 잘도 오른다. 뒤 따르던 동행친구가 하는 말이 “대단하십니다. 우리 체력에도 힘든데 여성분들이 잘도 오르십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말을 건네니 그 중 한 분이 “강남에서 왔습니다”하고 대답한다. 또 다시 그 친구(산 밑 기자촌 거주)가 “강남이면 청계산이 가깝고 좋지 않습니까?”하니 “청계산은 밋밋하고 시시해서요. 의상능선은 발품만 파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운동해야 오르지 않습니까?”하며 말을 받는다. 그만큼 체력도 좋아진다는 얘기 같다. 이처럼 의상능선은 릿지 산행도 즐기고  체력단련도 하고 빼어난 경관도 구경하고 다목적으로 좋은 코스임에 틀림없다.


 

 산행길 내내 구름이 끼어 봄볕은 없으나 살랑대는 춘풍이 삼각산에도 이미 봄기운은 완연하다. 겉옷을 벗어 제치고 산길을 오른다. 그래도 구슬 같은 땀에 등이 촉촉하다. 지난 늦추위에 떨던 나목이 어느새 제법 물이 올라있다. 산 아래 들머리엔 새순이 작설(雀舌)처럼 삐죽이 막 나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을 본다.


 

 멀리 용혈봉  산줄기 작은 봉우리에 얼굴을 빼꼬롬하게 내놓고 이목구비가 수려한 강아지 한 마리가 의상능선을 바라보며 오늘은 누가 왔다가나 쳐다보고 있다. 그 산줄기 아래 단애가 수 천 년의 풍상 속에서 수마된 수석처럼 돌결이 곱게 패였다.


 

 다시 발걸음이 피아노 바위 앞에 서서 ‘의상능선 예찬가’를 서투르나마 조심조심 두드리며 내려선다. 지난주에도 어느 산객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두들기다 악보를 잃어버렸는지 중간에서 멈춰 서서 한참을 멈칫대며 내려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오를 수는 더욱 없기 때문에 진땀 빼는 광경을 목도 한 일이 있어 그걸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안전하게 피아노바위를 우회한다. 그런데 의상능선에 자주 오는 산객들은 이 피아노바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꼭 건반을 두드리는 듯 하다.


 

 증취봉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온 용혈봉과 용출봉을 뒤돌아본다. 착시 현상인가. 증취봉의 해발이 594m로 도토리 키 재기지만 용출봉(571m)과 용혈봉(581m)보다는 높은데도 많이 낮아 보인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어느덧 문수봉 정상에 섰다. 멀리 사모바위와 비봉이 문수봉을 올려다보고 있다. 사방으로 눈을 들어 조망하다가 낯익은 산객 한 분을 만난다. 바로 지난 2월 의상능선 초행길에 동행했던 고마운 산님이었다. 어찌나 반가운지. 우리는 서로 그동안의 안부와 산행담을 주고받으며 대남문으로 우회하지 않고 곧장 문수봉 줄기 암벽을 타고 사모바위를 지나 비봉으로 내려온다. 다시 향로봉 암릉길을 타며 짜릿한 릿지산행을 즐긴다. 향로봉 암벽길을 내려서니 주말 오후에 향로봉을 오르는 산객들로 길이 만원이다. 삼각산 의상능선은 언제 올라도 싫증나지 않는 삼각산 산행의 백미라고 생각하며 날머리 불광매표소를 지난다. (200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