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상황봉~숙승봉

1:25,000지형도=완도

2005년 3월 31일 목요일 맑음(4~17도)   일출몰06:23~18:53

코스:대구리12:00<3.5km>상황봉 (644m)13:30<3.0km>백운봉(600m) 14:30<2.0km>숙승봉15:30<1.5km>불목저수지16:00<1.5km>해신세트(신라방)경유~불목리주차장17:00

[도상11.5km/ 5시간 소요]

지형도    지형도
 

개요: 전라남도 완도군의 상황봉은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상황봉, 쉼봉의 5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쉼봉598m~상황봉644m~백운봉601m~업진봉544m~숙승봉461m) 오봉산의 봉우리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상황봉은 막힘없는 다도해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상록수림이 가득한 임도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즐거움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일출과 일몰은 가위 장관이다.

상황봉 일대는 가시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주종을 이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내륙지방의 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황봉과의 중간지점 망루에서 본 백운봉   상황봉과의 중간지점 망루에서 본 백운봉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BS특별기획드라마 "해신"은 청해진 옛터인 완도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등지에서 촬영되는데 60%이상이 완도에서 촬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 소세포의 "청해진포구마을"엔 선착장, 선박(중·대형 12척), 객관, 저잣거리, 군영 막사, 망루 등 42동의 건물이 들어차 장보고의 활약상이 지금도 촬영되고 있다.

숙승봉에서 본 신라촌    숙승봉에서 본 신라촌
 

한편, 불목리의 "신라촌"에는 본영, 객사, 민가, 중국거리, 설평상단 및 이도형 상단(무역품 거래 및 상인숙소)등 40여동의 기와집과 대규모의 수로시설을 하고, 당나라 시대의 각종 풍물을 재현해서 국내 최고의 오픈세트장으로서 위용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완도군에 설치된 2개의 드라마 오픈세트장은 지금까지도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모래시계의 정동진, 태조왕건의 문경, 올인의 제주도 섭지코지 등과 같이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상 완도군 홈페이지wando.go.kr에서 편집)

신라촌   신라촌
 

가는길: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건너면 섬 북쪽의 13번도와 남쪽의 77번도로 갈라지면서 각자 완도섬을 한 바퀴 휘어도는데, 어디에서 시작하건 해신 세트장을 연계한 산행코스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남쪽의 77번 도로변에 인접한 청해포구마을을 둘러보고 대구마을 표석뒤로 난[상황봉3.5km→]이정표에서 달라붙는 쉼봉 오름길은, 통나무계단길로 잘 가꾸어졌지만 워낙 가파른 된비알의 연속이어서 무척이나 버겁다.

 들머리     들머리
  

쉼봉을 향하여    쉼봉을 향하여
 

반시간 쯤 진행한 주능선에선 출발지점 뒤편의 완도 간척지와 소세포 세트장이 내려다 보이고 진행방행의 쉼봉 암봉이 멋지게 드러난다.

산색은 초반 오름길의 참가시나무정글을 빠져나와 초록에서 잠시 황갈색으로 바뀌지만 섬 전체가 녹색 일변도이고, 울창한 붉가시나무 뒤편으로 연이어지는 쉼봉에서 상황봉까지의 암릉들이 암회색으로 푸른 창공을 가르고 있다.

붉가시나무 뒤편의 쉼봉    붉가시나무 뒤편의 쉼봉
  

내려본 신지도 연육교   내려본 신지도 연육교 
 

다도해상의 신지도로 연결되는 연육교를 내려다보며 암봉을 우회해서 쉼봉 정상에 오르면, 헬기로 공수해다 심어논[해발598m-심봉]정상석이 남성의 심볼처럼 장대하게 위로 향하고 있다.

여기선 다도해상이 적나라하고 진행방향의 상황봉에서 서북쪽으로 휘어지는 능선 뒤편으론 백운봉 고스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쉼봉에서 내려본 초반 오름길    쉼봉에서 내려본 초반 오름길 
 

 쉼봉에서 본 백운봉     쉼봉에서 본 백운봉
 

날등길 따라서 동쪽 대야리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지능선상의 등산로에 있는 선 바위를 바라보며 후박나무 틈새의 바윗길을 에돌아 상황봉에 도착하면, 축대위에다 올려놓은 [상황봉-해발 644m]정상석과 봉수대, 완도군에서 설치한 다도해 국립공원의 그림들이 반긴다.

상황봉 하산길에서 하느재의 [←백운봉1.0km/상황봉2.0km→/대야리...]이정목을 지나 잘 가꾸어진 [등산로] 따라 오르다가, 최신 설비의 조망 휴게소 옥상에 서면 지나온 방향과 가야할 길을 한 바퀴 휘 둘러볼 수 있다.

가까이서 본 백운봉    가까이서 본 백운봉
 

백운봉 턱밑의 기암-망둥어    백운봉 턱밑의 기암-망둥어
 

가시나무 수종들과 동백나무가 꽉 들어찬 밀림속의 백운봉 오름길은 헬기장 한 곳 지나면서부터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고, 정상 오름길의 오른쪽 전망바위로 나서면 갯뻘밭의 망둥어처럼 생긴 기암 하나 만날 수 있다.

천애 절벽으로 형성된 백운봉 정상 난간에는, 하얀색 네모꼴 자연석에 [해발 601m-백운봉]을 까만 색으로 선명하게 새겨넣어서 이채롭다.

백운봉에서 본 고마도와 사후도    백운봉에서 본 고마도와 사후도
 

백운봉의 여와 남    백운봉의 여와 남
 

백운봉에서의 아슬아슬한 조망은 절로 온 몸이 웅크려지는데, 호기를 부리는 남자와 금방 되돌아서는 모습을 본인들의 양해없이 실었다.

쉼봉도 그렇고 숙승봉도 그렇지만 백운봉 역시 우회를 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데 심약한 사람들은 무사 통과하기 일쑤다.

이정목 한 곳 지나쳐 도착한 업진봉에도 쉼봉의 그것처럼 [해발 544m-업진봉]정상석이 위로 향하고 그 아래론, 다도해상의 작은섬들이 푸른 물결위로 동동 떠다닌다.

북쪽으론 두륜산 도립공원을 비롯한 대둔산~달마산~윤도산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이 아렴풋하게 떠오른다

업진봉에서의 불목리 방면    업진봉에서의 불목리 방면
 

업진봉에서 본 숙승봉    업진봉에서 본 숙승봉
 

개서어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숙승봉가는길에선 임도 한 곳 건너게 되는데 [송전선로22호..19호/ 불목리1.3km]이정표가 있고, 짧은 암릉코스엔 동아줄도 묶여 있다.

숙승봉은 한참을 우회해야 하는데 갈레길은 두군데로 흩어져도, 그것은 오르내리는 이들의 교행시 서로의 편리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한 개의 커다란 암봉으로 형성된 숙승봉에선[해발461m-숙승봉]정상석 아래로 청소년 수련원과 "신라촌"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산지점의 영풍천 개울    하산지점의 영풍천 개울
 

숙승봉에선 절벽 암릉코스를 따르다가 동백꽃 무성한 숲속길로 거침없이 내려가게 된다.

중도의 무덤 한 기 지나치면 이번 코스 유일의 해송지역이 나타나고 불목저수지를 통과하면 영풍천 개울가에서 탁족을 할 수가 있다.

신라촌 가는길은 포장이 잘 되 있고 항상 많은 인파로 붐비는데 간단한 먹거리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신라촌 관람을 마치고 13번도로 나가기전에 대형 주차장이 세 곳이나 있어 행락객들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입구    입구
 

시전    시전
 

 운하     운하
 

산행후기: 20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완도군의 완도섬은, 500년동안이나 사람이 살지 않아 형성된 아열대성 식물의 보고다.

그 당시 해상왕 장보고를 기린다는 뜻의 산이름이 지금껏 전해져 오는 상황봉을 6년만에 다시 찾아든 것은, 순전히 해신세트장 구경을 하기 위해서였다.

....독도문제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한 요즘은 해신 보는 재미로 산다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고...^^**    

복수초    복수초
 

복수초에 내려앉은 박주가리 홑씨    복수초에 내려앉은 박주가리 홑씨
 

기대와는 달리 산악회차량은 소세포세트장을 그냥 지나친다. 섭섭하긴해도 차창밖의 풍경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곁엣 분 들어라고 중얼중얼 했더니 산행이 목표지 관광위주가 아니라고 해, 야코 팍 죽었다.

다행인 것은 하산길에 신라촌을 들른다고 해서 적잖이 위로가 된다. 기왕이면 소세포도...!하는 미련이 있지만 그때 가서 집행부에 한번 청을 넣어봐야겠다.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어쨌든, 요즘 완도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채시라 최수종을 완도대사로 임명하고 금년을 완도방문의 해로 완도군수가 결정했다고 한다.

평일임에도 부산에서 두 팀, 김해에서 한팀이 산악회 회원들을 풀어놓았으니 공휴일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등산객들로 벅적지끌할 것이다.

오늘 우리 차량에만도 복도에 다섯명이나 그 먼거리를 쪼그리고 앉았었고, 좌석이 없어 돌아간 사람도 많다.

진달레, 철쭉도 좋지만 해신세트장 하면, 인기 짱일 것이다. ^^**!

노랑양지꽃    노랑양지꽃
 

노랑양지꽃   노랑양지꽃 
 

각설하고, 산길로 접어들자 푹한 날씨에 상의라도 갈아 입어야겠다. 들머리 찍고, 머리띠 졸라메고, 찹쌀떡 한 개 입에 넣는데 후미대장의 에코가 들린다.

헥헥거리며 그 가파른 계단을 뛰어올라 입장을 밝힌다. 전에도 왔던 산이고, 촬영해가면서 진행할테니 날랑은 신경 꺼 주시면 고맙겠다고...!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숲속을 기웃거려본다. 아니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등산로 전체가 야생화의 천국이다.

새끼노루귀    새끼노루귀
 

새끼노루귀    새끼노루귀
 

가슴이 쿵쾅거린다. 지금껏 산행을 하면서도 처음보는 꽃 산자고! 여름이 되면 땅위의 것은 말라버리는 산자고...! 아마 그래서 낯 선지도 모르겠다.

이리찍고 저리찍고, 어쩌면 여기가 마지막일지도... 하면 저기도, 숲속인가 하면 바위 위에도, 쉼봉 턱 아래까지 산자고의 행렬은 끝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산자고    산자고
 

박새    박새
 

뿐이랴, 강원도 산간지방에나 있을 법한 [꿩의바람꽃]이라든가 [노루귀]도 흔하다.

이미 퇴색해가는 [얼레지]는 흉물스런 모습이고, 뚝뚝 떨어진 동백꽃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일명 춘란으로 불리고 있는 보춘화의 앙징스런 모습이다.

다소곳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주위엔 누군가 채집해 간 흔적이 남아있다.

보춘화    보춘화
 

보춘화    보춘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제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남획이 두려워 공개를 꺼리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자연사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이 있어 공개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현호색     현호색
 

얼레지   얼레지  
 

오래전의 일이긴해도 우리동네 뒷산 약수터에선 희안한 일이 발생했었다.

노인 한 분이 숲속의 돌복숭나무를 캐다가 약수터 마당 한 귀퉁이에 옮겨심었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누가 뽑아갔다.

심은 당사자는 욕을 X 끓듯이 해 댔지만, 정작 누가 캐 갔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심은 자나 캐 간 자나 오십보 백보라고...!

요즘도 그렇다. 산삼을 심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산삼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원추리    원추리
 

고깔제비꽃    고깔제비꽃
 

참가시나무. 붉가시나무. 팽나무. 후박나무. 개서어나무. 동백나무 밀생지역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다섯 개봉우리 암봉들을 오르내리다가 드디어 해신셋트장에 도착했다.

눈꼬리 치켜 올라간 채시라의 표독한 연기와, 두 여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최수종의 순진무구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토막 토막난 씬들이 스쳐 지나간다.

 꿩의비름     꿩의비름
 

쇠별꽃    쇠별꽃
 

그건 그렇고 주인공은 언제 죽을라나. 해신 줄거릴 다 읽어보긴 그렇고 산에 다녀와서 컴 앞에 앉아 네이버 백과사전의 [장보고]를 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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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궁복(弓福)·궁파(弓巴).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君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奴婢)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산자고    산자고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의 군사로 해로의 요충지 청해(淸海:莞島)에 진을 설치하고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아 항만시설을 보수, 전략적 거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자 휘하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산자고   산자고 
 

8 37년(희강왕 3)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祐徵:神武王)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우징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839년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우징을 왕위에 오르게 하여 감의군사(感義軍使)가 되었다.

신무왕이 죽고 문성왕(文聖王)이 즉위하자 진해장군(鎭海將軍)이 되었다.

 산자고       산자고
 

840년(문성왕 2)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매물사 (遣唐賣物使)를 보내어 삼각무역 을 했다.

845년(문성왕 7) 딸을 왕의 차비(次妃)로 보내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846년(문성왕 8)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되었다.

-NAVER백과사전(장보고)

1999년 8월22일의 업진봉    1999년 8월22일의 업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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