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人의 미소와 함께한 가야산 종주


 

언제 : 2005.3.27(일) 날씨 : 맑음 기온 : 2~16℃

산행거리 : 18km 산행 시간 : 5시간 50분 산행인원 : 20명


 

산행 경로

 

갱댕이 장승

09:57

가야봉(677.6m)

14:10

마애삼존불상

10:08

석문봉

14:39

산행 시작

10:20

일락산(524.4m)

15:10

수정봉(453m)

11:10

용현계곡 갈림길

15:25

옥양봉(621.4m)

12:10

개심사

15:48

석문봉(653m)

13:05

5시간 50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정(情)

그리운 마음도

보이지 않게 흐릅니다.

-성민 스님의 ‘여유를 알면 삶이 아름답다’에서-

 


 

<봄이 오는 소리>


 

문득 땅에서 쿵쿵대는 소리를 듣는다.

꽃망울 펴지는 아름다운 화원의 길목은 멀어도 대지는 언제인지 모르게 하품을 한다.

여유와 한적함 그리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자연의 숨결이 느껴진다.

하늘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그래서 오감(五感)이 숨을 쉰다.

사람의 정이라는 것도 그리운 마음이라는 것도 모두 보이지 않게 흐른다고 표현하는 성민 스님의 예리한 관찰력이 아니라도 자연에서 느끼는 봄은 분명 오고 있음이다.

너무 긴 겨울이지만 그 동면(冬眠)이 없다면 분명 봄은 가치가 덜하고, 세찬 북풍과 폭설이 계절의 흐름을 더디게 해도 다가오는 절기의 변화는 아름다움이다.

봄!

그 봄을 맞이하려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는 산과 바다 그리고 들녘을 찾아 길을 떠난다.


 

<문화의 보고 가야산 줄기>


 

충남 서산과 태안에는 금북 정맥이 지나고 그 산줄기에 가야산이 있다.

德崇山伽倻山을 잇는 줄기에는 많은 문화 유적이 있어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느끼게 한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백제인의 미소, 개심사의 한가롭고 잘 짜여진 구도 그리고 해미읍성의 애환, 가야산 줄기 따라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

향토색 짙은 고향을 찾아 떠나는 발걸음들이 큰 기대와 함께 버스는 만원이고, 환한 미소로 만나는 인간의 정은 언제나 훈훈하다.

 

용현계곡은 갱댕이 장승 석불이 반기는데 가야산이 빚어 놓은 아름다운 계곡이다. 보원사지와 마애삼존불이 있고 곳곳에 여울에 씻긴 바위들이 즐비하다.

갱댕이 미륵불은 석불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위에 대어 서산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 하며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

 


 

갱댕이 미륵불을 지나면 바로 마애삼존불상으로 건너는 다리를 만난다. 극락세계로 들어  가는 개천을 지남이 묘하다.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은 국보 제 84호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에서 가장 뛰어난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으며,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달라지게 한 백제인의 슬기가 놀랍다.

제작 시기는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로 보이며 가야산 입구에 위치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백제인의 쾌활한 장자풍(長子風)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백제인 특유의 부드러움과 세련된 조각미는 백제인들의 독특한 수법이며 이 유쾌한 미소는 ‘百濟人의 微笑’로 명명 되었다.

중앙에는 본존인 석가여래입상, 우측에 미륵반가사유상, 좌측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고, 석가여래입상의 통견한 옷자락은 U자형으로 넓고 길게 발가락까지 흘러 내렸으며 두광배는 머리 주위의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로 구성되었다.

 

 

특히 전등 불빛 따라 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마애불상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자연광을 받으면 더욱 더 아름다우리라는 관리인의 표현에서 우리 조상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不二門 옆에는 동자석가여래상(童子釋迦如來像)이 있는데 아쉽게도 얼마 전 분실되어 빈자리만이 썰렁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긴 줄기 가야산 능선을 따라>


 

산행은 마애삼존불상 관리소 화장실 뒤편 오르막에서 시작이다. 결코 가파르지는 않으나 모두들 느긋한 백제인의 미소를 보았음인지 걸음이 느리다.

능선에 오르니 묘가 몇 기 있고 주변이 열리며 가야산 자락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된다.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 두었던 가야산 종주는 수정봉과 옥양봉 그리고 석문봉을 따라 달리는 꿈같은 능선의 연속이다.

수정봉에서 보는 가야산 줄기는 어쩌면 대전에서 만인산과 식장산 구간 산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탄탄한 능선을 자랑하며 봉우리 마다 조망과 정맥의 기품을 보여주는 산줄기 이어짐이 일품이다.

 

 

서쪽으로 서산 A, B 지구 간척지로 막힌 호수가 바다처럼 다가온다. 지형을 바꾼 대역사는 서산의 명물로 떠오르고, 석문봉을 지나 가야봉을 향해 달리는 산꾼들에게 암릉의  즐거움과 함께 조망의 아기자기함도 선사한다.

 

문득 기백산과 황석산 종주가 생각나고 멀리 가야봉을 향해 달리는 능선 종주의 묘한 맛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석문봉에 꽂혀 있는 태극기가 유난히도 펄럭이는데 독도의 열풍이 이 곳 가야산 줄기에도 가득하다.
 


 

<너무도 푸근한 소나무 오솔길>

 

가야산 능선을 달린 산꾼들은 석문봉으로 돌아와 일림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나무 향과 오솔길 같은 낭만의 산길을 달린다.

 

 

바로 지척에 많은 저수지가 보이고 목장의 넓은 초지가 주변에 가득하다.

일림사와 개심사가 조망되고 서해고속도로의 쭉 뻗은 직선이 평야 지대와 어울려 조화롭다.

오늘 종주 중에 가장 멋진 일림산과 상왕산 소나무 오솔길은 신나는 삼림욕장 같은 산행이다.

소나무에서 내뿜는 자연의 향기가 오랜 시간 산행에 지친 산객의 피로를 풀고 푹신한 융단 같은 솔가루 오솔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상왕산 내리막에는 적송의 잘 자란 숲길이 인상적이다. 서산 평야를 향해 우뚝 솟아 있는 가야산 자락의 멋진 위용도 느낄 수 있다.

 

 

호젓한 숲길이 끝날 무렵 만나는 개심사 산신각은 정겹다. 산신각 안의 산신령 모습도 해학적이고 무섭지 않아 한참을 바라보며 정성을 빌어 본다.


<너무도 한적하고 아름다운 개심사>

 

산신각을 내려서면 처음에 만나는 명부전(冥府殿)이 인상적이다. 명부전 안에는 사자상이 함께 있는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절의 전각이다. 원래는 대웅전 다음으로 중요시되던 건물이다.

 

 

자연석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었으며,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건립하였다.

맞배지붕이며 측면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널빤지가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그 뒷면으로 불단을 조성하여 철로 만든 지장보살과 10대왕을 안치하였는데 기도의 효과가 크다고 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입문 좌우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사자상을 세워 두었는데 특이한 형태이다.

 

명부전을 지나면 요사의 안락함이 다가온다. 편히 쉬고 싶은 충동을 곧바로 실천에 옮겨 앉으니 마루에서 풍기는 편안함이 너무도 자연 친화적이다.

생긴 모양 그대로의 지주와 석가래 그리고 처마가 아름다움으로 이방인을 반긴다.

 

 

좁은 길을 따라 대웅전에 드니 5층 석탑과 구도가 분명한 절간의 호젓함이 가득하다.

대웅전 통풍창 문틀의 양식과 처마 그리고 지붕의 부드러운 흐름이 양 옆의 건물들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심검당(尋劍堂)은 원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나 지금은 ‘ㄱ'자형의 방을 이어지게 늘려 지어 상당히 큰 요사(療舍)로 남아 있다.

구조는 기단석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에 공포(拱包)를 짜 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다.

지붕의 뒷부분은 홑처마, 앞은 겹처마의 맞배지붕 집이다. 평지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평탄하고 안정되어 산속의 다른 건축물과는 차이를 보인다.


 

 

개심사 대웅전 목조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양루(安養樓)에 걸려 있는 개심사 현판과 상왕산개심사, 안양루 현판 글씨는 너무도 명필이다.

ㅁ자형 대웅전 배치는 안양루 남쪽 문에서 들여다보면 더욱 멋지다. 대웅전과 5층 석탑 그리고 심검당의 조화가 가히 명찰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 양식으로 그 축조기법이 미려하여 건축 예술의 극치를 이르고 있다.

경내의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안양루가 남북으로 배치되었고, 동서로는 무량수각과 심검당이 위치해 있다.

 

 

개심사(開心寺)는 전통 사찰 38호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 143호인 대웅전과 보물 1264호인 영산회괘불탱을 간직하고 있는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이고, 백제시대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7인의 선지식 출현으로 개원사에서 개심사로 개명하였다.

대웅전의 기단이 백제 때의 것이고 현존 건물은 1475년(성종 6년)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1484년(성종 1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명부전을 비롯한 영산회괘불탱, 아미타본존불, 관경변상도, 칠성탱화, 5층 석탑, 22종의 경전 목판 등의 자료가 있다.

유흥준은 개심사를 남한 5대 아름다운 절로 꼽는데 나 역시도 때 묻지 않은 고찰로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을 만큼 애착이 간다.

 

 

<마음의 문을 열고 절간으로>

 

開心寺를 나오려면 연못을 지나는데 긴 나무로 된 다리가 인상적이다. 다른 절에서는 절간으로 들기 위해서 냇물에 세운 다리를 지나는데 여긴 인공적으로 연못을 만들고 건너도록 슬기를 발휘했다.

배수가 어려운지 연못에 괸 물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백일홍 나무와 종루 그리고 개심사 전체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한다.


 

 

開心寺를 내려오며 자연석으로 된 돌계단을 만난다. 부드럽게 휘어진 나선형 계단 모양이 이채롭고 언덕을 오르는 계단의 형상에도 미적 감각을 부여한 조상의 슬기가 멋있다.

노송의 우아함과 돌계단의 조화 그리고 한적한 여유가 느껴진다.

개심사를 들어가는 초입에는 두 개의 자연석이 있는데 ‘세심동(洗心洞)’과 ‘개심사입구(開心寺入口)’라는 서툰 글씨가 너무도 인간적이다. 


 

가야산 줄기에 있는 상왕산은 開心寺를 아우르는 산이다. 상왕산(象王山)은 코끼리를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코끼리를 인도에서 섬기는 동물로 귀하게 여기며 그런 의미에서 산 이름을 정한 듯 하다.


 

<순교의 아픔이 가득한 해미읍성>


 

開心寺를 떠나 해미읍성을 잠시 들른다. 해미읍성은 사적 116호로 태종 18년(1418)부터 세종 2년(1420)에 축조된 평지에 쌓은 석성으로 조선시대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성곽길이 1,800m, 성곽높이 5m, 면적 20만㎡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0개월 동안 이곳에서 군관으로 근무했으며 고종 때(1866~1872)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1,000여명의 신자를 처형했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은 성의 둘레가 1,498m로 북동쪽의 낮은 구릉을 끼고 넓은 평지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성벽의 아래 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문은 동, 서, 남, 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 바깥으로 깊은 해자(도랑)를 팠던 자국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성벽과 해자 사이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여 탱자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성은 본래 왜구를 막기 위하여 당시 德山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옮겨 쌓은 것으로 몇 차례에 걸쳐 수축을 하였는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성곽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근래에는 불멸의 이순신(李舜臣)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천주교인들이 성지 순례지로 유명하다.

해미 읍에는 여숫골 천주교 성지가 있는데 무명신자 묘와 야외 교회 그리고 새로 지은 건물들이 시선을 끈다.


 

<에필로그>


 

너무도 자연과의 만남이 가득했던 가야산 자락과의 산행.

높지 않으나 능선이 확연하고 암릉과 석문봉 문다래미 그리고 물 흐르듯 곡선을 자랑하는 여러 봉우리들.

아름다운 開心寺를 품에 안은 상왕산.

용현계곡에 있는 백제인의 미소 마애삼존불상.

서산 목장의 풍요와 많은 저수지들.

서산 A, B 지구 간척지와 물막이로 생긴 넓은 湖水.

철새와 마검포 실치회.

정이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산과 바다의 情趣.

봄이 오는 길목에 만난 가야산 종주는 푸근하고 정감 있는 소나무향 가득한 폼 나는 산행이었다.

귀로에 들른 마검포항의 실치회와 낙조는 더없는 꿈같은 낭만이었고, 생새우와 함께 마신 13년 된 인삼주는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거나함을 선사했다.

 

 

아름다운 마음과 따뜻한 사랑으로 가야산을 휘돌고 훈훈한 열정이 샘솟았던 봄맞이 路程이었다.

그건 너무도 즐겁고 가슴에 간직될 아름다움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송림과 百濟人들의 미소와 섬세한 손맛이 느껴지는 開心寺를 뒤로 하며 정겨웠던 가야산 자락과 마검포항의 만남이 진하게 아롱져 온다.

언제나 보듬고 품에 안아야할 우리 文化遺産들.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혼과 피가 흐르는 끈끈한 정이 담겨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