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영취산,신불산,간월산,배내봉)산행기

  

ㅇ 일시 : 2005. 3. 26(토)
ㅇ 코스 : 지산리-영취산(1,092m)-신불산(1,208m)-간월산(1,083m)-배내봉(966m)-배내 고개(약16km, 5시간 20분)
ㅇ 날씨 : 맑음, 가스 조금 낌
ㅇ 찾아간 길 : 안내산악회와 함께 혼자(통토사 I.C-I.C나와 바로 우회전-약 1km 진행후  지산리 고개길에서 산행시작)


    대전을 출발한 차량이 산행출발지에 도착하니 11시 50분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산행길이다. 산행시간이 대략 6시간에서 6시간 30분이 소요될 것을 예상하면 자칫 잘못하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행 초입부터 사람들이 모두 서두른다. 통도사 I.C를 빠져나온 차량이 I.C를 빠져나와 바로 우회전, 조금 가다 좌회전, 조금 가다 바로 우회전하더니 어느 고갯길에서 바로 우리를 내려놓는다. 산은 저 멀리 보이는데 이곳에서부터 벌써 산행기점인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길 좌측으로 리본들이 보인다. 안내 산악회인데 길을 모르겠어! 의구심을 갖는 자신을 나무라며 길을 따라나선다. 그런데 길을 가다보니 들판을 지나고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영 산행대장이 들머리를 찾지 못한다. 간신히 찾은 길은 또 무수한 갈림길로 갈라져 도대체 이 길이 맞는 길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맞겠지! 맞겠지! 하며 처음부터 시작되는 된비알 길을 한참 따라간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이제 좀 산길다운 산길이 나온다. 아마 이 길 말고도 여러 오름길이 있는데 우리는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초입길을 선택한 것 같다.

  

   된비알의 연속이다. 더 심하지도 않고 더 험하지도 않고 딱 오르기 힘든 그 기울기로 계속하여 이어진다. 오늘 산행하는 사람들은 낙동정맥을 종주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에게 떨어지기도 싫고, 사진을 여러 장 찍다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늦어져, 초반 오름길에 시간을 단축해 놓지 않으면 항상 뒤쳐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좀 무리다 싶은 속도로 선두에 서서 된비알을 치고 올라간다.

  

    1시간 20여분 정도를 치고 오르자 처음으로 조망이 가능한 지점이 나오고 간이매점이 보인다. 매점에 들러 뜨끈한 오뎅국물만을 한 컵 얻어먹고 다시 오름질을 시작, 1시간 40여분 만에 영취산의 그 커다란 암봉에 올라선다.

  

    영취산 정상에 올라서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신불산 가는 길의 부드러운 능선과 영취산 정상의 암봉들이다. 능선길은 소백산의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그 부드러우면서도 단순한,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웠던 줄기를 생각나게 한다. 또 능선길의 우측으로 보이는 절개지는 마치 화왕산의 그 절묘한 곡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또한 억새와 철쭉만의 능선길로만 이름난 이 산길에 보기 좋은 암봉들도 이렇게 많습니다 하고 마치 항의라도 하듯 솟아 있는 영취산의 암봉들. 어쩌면 약간은 밋밋할지 모르는 앞으로의 산행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한 모습들이다. 영취산 암봉 위에서 신불산 가는 능선길을 바라보며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바로 신불산 가는 길에 들어선다.

  

   신불산 가는 길의 너른 평원. 가을철이면 수많은 억새들이 무수한 그리움들을 날려보냈을 이곳. 조금 있으면 피 토하듯 철쭉들이 피어날 이곳. 그러나 지금은 질척대는 진흙길과 황량하게 말라버린 억새들의 몸통. 피어나지 않은 철쭉들의 빈 가지만이 아직도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산들의 뼈대와 그 뼈대들의 곡선. 오른쪽 절개지들에 솟아 있는 암봉들과 절개지와 평원이 만나 이루는 선들의 즐거움. 그뿐이다. 그러나 멋지다. 이국적이다. 앞쪽에 펼쳐지는 신불산의 부드러움과 뒤돌아 볼 때마다 다른 곡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영취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능선길. 자꾸만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가벼이 능선길을 걷는다.

  

   영취산을 출발한지 1시간여 조금 못되게 걷다 보니 신불산 정상에 도착한다. 뒤돌아본 영취산 능선길이 그저 황홀하다. 가야할 간월산 줄기도 또한 활기찬 각도를 뽐내고 있다. 신불산 정상에 있는 매점에서 이 좋은 풍경과 함께 정상주를 한잔 할까하고 망설이다 가야할 길도 멀고 혼자 하는 산행이라 조심도 하여야 하고 하여 그냥 서둘러 간월산 가는 길로 접어든다.

  

   신불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능선길을 얼마동안 걷다보니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앞으로는 간월산이 보기 좋은 곡선을 드러내며 어서 오라고 부르고 있다. 약 30여분 내려오니 간월재. 간월재에서 가야할 간월산을 바라보니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보기 좋게 흩어져 있고, 억새들의 마른 몸통들은 오름길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가을철이면 너무너무 멋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이제는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다리를 보기 좋은 풍경들로 위로하며 신불산을 출발한지 다시 1시간여가 조금 못되게 걸어 간월산 정상에 오른다.

  

   간월산 정상에서 다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신불산의 능선 뒤로 조그마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영취산에서부터 신불산을 거쳐 이곳까지 참 먼길을 걸어서 왔다. 그것도 혼자서, 힘들게--- 왜? 라는 질문이 또다시 인다. 철쭉의 철도 아니고 억새의 철도 아니고 왜 오늘 이곳을 이렇게 힘들게 걷고 있는가?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산행하는 목적이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오늘은 저 억새들의 마른 몸집만큼이나 황량한 나 자신을 만나는 것 같다. 산행길이 스산하고 쓸쓸하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통속적인 희망들 말고, 희망을 걸고, 기대를 갖게 하고, 내 삶이 그 길을 가는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부끄럽고 가슴 절절했던 그 많은 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저 망망한 저 시간의 바다를 한 척의 외로운 거룻배 되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기슭으로 영영 사라져 버리는데---어디로들 갔는가 ? 어디로들 갔는가 그 많던 길들은---

  

    허한 마음이 배내봉 길로 접어든다. 얼마를 내려오자 철쭉의 군락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꽃산행철에 이곳을 다시 찾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배내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에 주변의 조망이 별로 좋지 않다. 보기 좋은 암봉들도 없다. 오직 힘들어하는 자신과 싸우며, 외로워하는 자신과 싸우며 다시 1시간여를 조금 못되게 오르니 배내봉이다. 배내봉에 올라 오늘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참 길게도 늘어져 있는 슬픔이 보인다. 지워버리자 잊어버리자 애써 고개를 흔들며 앞쪽을 보니 능동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줄기가  장엄하다. 다시 또 그 길을 걷고 싶다. 걷고 또 걸어서 만나고 싶다. ---희망을.

  

   배내봉에서 배내고개로 내려오려는데 배내고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없다. 약간 서성이니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좌측으로 희미하게 나 있는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하며 그 쪽으로 길을 잡는다. 그들을 따라서 조금 내려오니 배내고개의 너른 주차장이 맞는 길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약 20여분 하산하니 배내고개. 약간은 서둘렀던 산행. 약간은 때 이른 영남알프스 산행을 신발 가득 묻은 진흙을 털어 내며 마무리한다.


 

(영취산 암봉)

 

(영취산 암봉에서 본 신불산 가는 능선길)

   
 

(영취산에서 본 암봉과 능선)

  
 

(영취산 정상에서 본 신불산)


 

(신불산)


 

(신불산 오름길에 본 영취산)


 

(신불산 정상에서 본 암릉능선)


 

(신불산에서 간월산 가는 길에 본 암봉과 간월산, 뒤쪽으로 배내봉 가는 길이 보인다)


 

(신불산에서 간월산 가는 길에 본 간월산)


 

(간월산 오름길)


 

(간월산에서 본 배내봉 가는길)
 

(배내봉에서 본 지나온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