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3월20일(日)雲晴

쌍향수[双香樹]와 보리밥집이 있는 조계산(曺渓山)(4)  

♠참 고

▲조계산(曺渓山)

전남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주암면(住岩面) 일대의 도립공원.

조계산(884m)을 중심으로 선암사(仙巖寺)·송광사(松廣寺) 등을 포함하며,

1979년 12월 26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노령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에 속하며, 산세가 수려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다.

 

관광의 중심인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하며 가람의 규모도 국내 유수이고,

뛰어난 문화재가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開創)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 도장(道場)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송광사국사전(국보 56),

송광사경패(徑牌:보물 175), 송광사하사당(보물 263), 송광사약사전(보물 302), 송광사영산전 (보물 303)

등의 문화재 외에 곱향나무(천연기념물 88)도 있다. 부근에 송광사의 말사(末寺)인 광원암(廣遠庵)·

감로암(甘露庵)·천자암(天子庵) 등이 있다.

 

조계산의 동쪽 사면, 이사천(伊沙川)의 상류계곡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호남 3암사(岩寺)의 하나로

백제 성왕 때의 아도(阿道)가 개산한 고찰이다.

 

조계산은 영산으로 송광사(松廣寺)와 선암사(仙巖寺)를 동서 양록에 안고, 승주읍·주암면· 송광면

·외서면·낙안면·상사면을 품고 있다.

산맥이 내장산에서 뻗어내려 무등산, 사자산, 벌교의 금화산, 계족산으로 힘차게 이어오다 광양의

백운산에서 불끈 솟아 그 자락을 남해에 드리운 호남정맥(湖南正脈)의 산이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을 끼고 모후산과 마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서쪽 봉우리를 송광산, 동쪽의 장군봉을 청량산이라고 불렀으나 고려 때부터

조계산으로 통칭되었다.

 

조계산 연원(演源)은 중국의 영남(嶺南) 소주부(韶州付:현재 광동성의 곡강현)에 있는 산이다.

육조(六粗)대사가 황매(黃梅)의 법인(法印)을 받았을 때 조후촌(曹喉村)에 사는 조숙량(曹叔良)이

그를 흠모해 보림(寶林)의 옛터인 쌍봉(雙峯) 아래 대계(大溪)벌에 절을 지어주니 육조대사가 그

은혜를 못 잊어 조숙량의 성인 '조'에 쌍봉 대계의 '계'자를 결합하여 조계산이라 이름한 데서

시작되었다.

 

흥양(고흥)과 영암에도 조계산이 있고 그 절 이름을 송광사라고 했다.

현재도 송광사는 전주와 고흥에 있다.

조계산은 원래 송광산과 청량산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고려 때 조계산으로 통칭되었다.

그 연원은 당나라 때 육조대사가 명명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한국불교의 종산(宗山)이 되었다.

(출처 : 순천시사)

 

 

♧산행 코스 (약 9.7km)

10:50 주차장

11:07 송광사

11:40 피아골 갈림길

12:23 송광굴목재

12:43 천자봉

13:05 천자암(회귀13:20)

13:38 갈림길

13:54 삼거리

14:04 중간 대피소(송광사 3.3km 선암사)

14:15 보리밥집(출발14:46)

15:14 선암굴목재

16:10 선암사

16:50 주차장

 

총 6시간

 

 

☞☞☞☞5년 전에 다녀왔든 조계산 쌍향수 산행을 잊을 수가 없어

온전치 못한 몸이지만 1년5개월 만에 배낭을 메고 아침 일찍 지하철을 이용,

시민회관 앞으로 나가 반가운 얼굴들과 손을 마주잡으며 인사를 나눕니다.

 

그동안 왜 안 나왔느냐.

건강은 어떠시냐.

모두 다정한 산벗들입니다.

 

그 사이 부쩍 커버린 정대장의 귀여운 딸 등 낯익은 가족들이

먼저 승차하여 반깁니다.

 

한명이라도 더 태우겠다고 기다리는

타 산악회와 달리 정시에 출발합니다.

 

 

일사천리로 달려 사천휴게소에 들리니 이게 웬일입니까.

여기서도 노사갈등으로 시위가 벌어졌는지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있어 머리가 아픕니다.

 

직장은 한 가정인데 왜 이렇게 서로 불신하여, 으르렁거리며

손님들을 불안하게 하나요?

이런 경우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데...

10시45분 송광사 주차장에 당도합니다.

오랜만에 스카프를 이마에 묶고 산행준비를 하여

송광사 쪽으로 올라갑니다.

 

여기서 잠시 송광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송광사(松広寺)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渓山) 서쪽.

종파: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창건시기:신라 말기

창건자:혜린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한국의 삼보(三宝)사찰 가운데 승보(僧宝)사찰로서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広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釈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었다가

세상을 뜨자, 1197년에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国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禅社)

라 칭하고, 도(道)와 선(禅)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때까지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

(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禅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粛宗) 2년 대각국사

(大覚国師) 의천 (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대칭으로 이렇게 부르기도 했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真覚国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혀 왔다.

 

경내에는 이들 16 국사의 진영(真影)을 봉안한 국사전(国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에 관하여는 기록이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応禅)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대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전소되고 삼존불(三尊仏)·지장 보살상

(地蔵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厳経)》 장판(蔵板) 약간만을

건졌다. 이후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1943~1956년에 차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 후 승려 취봉 (翠峯)·

금당(錦堂)의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때 80여 동의 규모였던 대가람이 현재는 50여 동의 건물밖에 없으나 그 면모는 여전하다.

특히 긴 역사와 함께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仏龕:국보 제42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제43호)》,

국사전(国師殿:국보 제56호)을 비롯하여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経疏)》(보물 제90호),

경질(経帙, 보물 134), 경패(経牌, 보물 제175호), 금동요령(金銅揺鈴:보물 179), 《묘법연화경

(妙法蓮華経)》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観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賛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乗阿毘達磨雑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 경찬술(妙法蓮華経讃述:

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経疏開玄褻)》(보물 제207호), 하사당(下舎堂:보물 263),

약사전(薬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

(修禅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禅修行)의 도량으로서 조계총림(曹渓叢林)이 있다.

 

 

도중에 구걸하는 노부부를 발견한 회원들이 적선하고 올라갑니다.

 

이십여 년 전 성철스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미소 짓습니다.

“부처님 앞에 만금을 시주하는 것 보다 가난한 이웃에게 단돈 백원 주는 게 더 났습니다.”

 

 

매표소를 거쳐

 

 

청량각을 지나

 

 

하마비 옆에서 잠시 주변을 살핍니다.

 

좌측 개울의 쪽빛 맑은 물과

그 옛날 고관대작들도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갔다는 번창했든 송광사를...

 

일주문 앞에서 정대장이 인원파악을 하고

오늘 산행일정에 대해 다시 설명합니다.

 

A, B조 함께 송광사를 둘러보고 송광굴목재까지 함께 산행하여 거기서

A조는 연산봉으로 B조는 천자암으로 갈라지는데

B조는 회장님이 도중의 보리밥집에서 보리밥 정식 한턱 쓴다고.

선택은 각자 알아서 하시라며 박수로 출발합니다.

 

 

홍교위의 우화각(羽化閣)이 보입니다.

 

우화(羽化)란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그런 다리 위의 집인데 여기서 신선이란 금선(金仙)이니, 모든 속박을 벗어나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는 해탈의 경지에 노니는 금빛 신선, 즉 부처님을 말합니다.

 

사랑도 훌훌, 미움도 훌훌, 모두다 벗어놓고 높이높이 저 무념과 무욕의 피안으로 날아

올라가는 건널목입니다.

이 피안의 건널목인 우화각이 바로 무지개 돌다리(虹橋)위에 얹혀 있는데 그 이름이

능허교(凌虛橋)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이 반달형의 다리가 개울에 비치면 그대로

하나의 커다란 둥근 원이 되고 그 다리위의 우화각으로 부처님 도량을 드나드는

선남선녀들은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요?

 

그 우화각 난간에 해봉 마스코트 정대장의 꼬마아가씨가 앉아

엄마가 기념촬영하려다 역광으로 포기하려는 걸 그대로 잡아봅니다.

 

 

천왕문을 거쳐

 

대웅보전 마당으로 올라서고

 

 

독실한 불자회원님들은 등산화를 벗고 재배를 올립니다.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되돌아 나와

운치 있는 대나무 숲 사이 길로 올라갑니다.

얼마가지 않아 전에 보지 못한

새로 가설한 다리를 건너고

부녀회원들이 휴식하며 딸기를 먹다가 딸기 통째로 권합니다.

낯선 두 번째 다리를 거쳐

11시40분 피아골, 송광굴목재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빠져 다시 낯선 다리를 건넙니다.

 

그전에는 ‘국토순례코스’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좌로 기댄 바위를 거쳐

서어, 신갈, 굴참, 떡갈, 상수리, 굴피, 나도밤나무등이 명찰을 달고 앙상하게

도열하여 코앞에 다가선 봄을 기다리며 반깁니다.

개울과 짧은 너덜겅을 거쳐 쉬엄쉬엄 올라가는데

오 부회장님이 좀 전에 부산의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10시50분경에 일본 규슈에 진도7의 강진이 발생하여 부산에도 그 여파로

많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에 한 회원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 하늘의 노염을 사서

천벌을 받아서 그렇다며 고소해 하지만 이미 지진은 우리주변에 가까이 와

있으니 하루빨리 대비책을 강구해야합니다.

좌로 대피소를 지나

된비알의 불규칙한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사이 언 땅이 녹아 진탕비탈길이 이어집니다.

12시23분, 해발720m의 송광굴목재에 올라섭니다.

뒤돌아보니 아들과 함께 가파르게 올라오는 정대장이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직진코스

보리밥집까지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하대장이 회원 4명을 가이드 하여

좌측 연산봉 코스로 올라가고

나머지 20여명은 천자암의 쌍향수를 보기위해 우측 천자봉 코스로 빠집니다.

 

뒤에 안일이지만 회장님은 회원들의 점심식사인 보리밥을 미리 주문하기 위해

직진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정성입니다. 회장님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5년 전에 천자봉으로 올라가는 등로는 키 넘는 산죽과 조리대로 울울하여

마구 밟으며 지나갔는데 지금은 반듯한 등산로로 이어져 있습니다.

 

완만한 오름, 발바닥으로 느끼는 감촉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12시43분, 작은 바위돌이 앉아있는 천자봉에서 뒤돌아보니

민둥 연산봉과 장군봉이 가까이서 손짓하고 있습니다.

12시45분, 천자암쪽으로 내려갑니다.

12시51분, 되돌아 올 때 지름길로 빠질 굴목 갈림길을 지나

헬기장, 조계산 약도 이정표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지고

조계산 약도,  오른편으로 돌아 내려가면 

 

 

 

그리고 오른편 위로 거대한

♠[松広寺-双香樹]가 나타납니다.

 

천연기념물 제88호.

면적 1,983m2. 수량 2그루.

1962년 12월 3일 지정.

추정수령 800년.

지정사유 노거수.

송광사 소유.

 

나무높이 12.5m, 가슴높이 줄기둘레 4m 및 3.24m이다.

가지퍼짐은 남쪽의 것이 동쪽 5m, 서쪽 3.8m, 남쪽 5.8m, 북쪽 3.5m이고,

북쪽의 것은 동쪽 3m, 서쪽 4m, 남쪽 3.8m, 북쪽 3.5m이다.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曹渓山)에 천자암(天子庵)이 있고 그 경내에 2그루의 향나무가

근접한 상태로 자라고 있다.

전하는 말로는 보조국사(普照国師)와 담당국사(湛堂国師)가 중국에서 수도를 끝내고

귀국할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은 것이 이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이 나무들은 줄기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어 특이하다.

이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눈높이 줄기둘레가 각각 3.10m, 3.85m로서 쌍향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느긋한 시간에 천자암과

쌍향수를 여러 각도에서 담습니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이런 거대한 향나무가 어떻게 오래 동안 온전하게 보전되어왔는지

신기하게 여겼는데 오늘은 그 사이 많이 노쇠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부회원들과 단체기념촬영하고 되돌아가다

 

주변 자연과 어울리지 않은

천자암 운반용 곤돌라를 바라봅니다.

13시38분, 천자봉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산허리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갑니다.

13시54분, 송광굴목재 아래 갈림길에 올라

 

 

중간 대피소(송광사←3.3km→선암사)를 거쳐

보리밥집 갈림길에 당도합니다.

 

5년 전에 보이지 않았는데 보리밥집이 성업을 하자 근래 몇 군데 새로 생겼다고 합니다.

 

한 회원이 손님이 마구 밀리자 품질이 떨어지고 홀대를 받았는데 이제 경쟁자가 생겨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쟁은 발전으로 이어지나 봅니다. 

 

하지만 명색이 도립공원인데 이렇게 마구 음식점 허가를 내어 주도 되는 건지 어디

전남도청, 순천시청에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14시15분, 새로 생긴 보리밥집에 당도합니다.

보리밥 정식, 파전, 동동주등이 5천원으로 메뉴판이 걸려있는데

한 회원이 5천원이면 비싸다고 합니다.

세금 내는 부산에 있는 질 좋은 보리밥집은 3500원밖에 안한다며.

그리고 이 시간에 먹는 음식이 돌인들 맛있지 않겠느냐며 비판적입니다.

정대장의 가족이 도란도란 식사를 하고 있는 게 보기 좋아

스냅 촬영했는데, 어뿔싸!

마스코드가 눈을 감았네요.

 

회장님, 그리고 먼저 도착하여 식사를 마친 회원님들이

비벼먹으라며 참기름과 고추장을 통째 갖다 줍니다.

뭐니 뭐니 해도 잊을 수 없는 맛은

불붙는 가마솥에 끓는 식후에 마신

뜨물 숭늉입니다.

14시48분, 옛날 보리밥집을 지나 새로 생긴 다리를 건너

된비알의 침목, 돌계단으로 올라갑니다.

 

 

5년 전에는 모르고 그냥 지나쳤든

좌측으로 바위 돌 사이에 가부좌한 참선목(參禪木)이 앉아 있습니다.

‘여수해양결찰서’의 요산님이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설명판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옛날 이 산에서 도를 닦든 스님이 호랑이를 만났는데 호랑이가 빨리 집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니 노모가 위독, 정성으로 보살펴 병이 나은 뒤, 이 자리에 다시 오니

홍석좌대 (紅石坐臺)를 발견하고 부처님의 계시로 크게 깨닫고 돌아가 노모를 모셨고, 그 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로 인해 뜻을 일우지 못한 스님이 다시 태어나 이 자리에 참선하는

모양의 참선목으로 환생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판을 요소에 설치한

여수해양경찰서의 요산님은 대단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된비알의 계단 길에 올라서니

15시14분, 선암굴목재입니다.

좌측으로 장군봉으로 이어지고 먼저 출발했든 조회장님에게

뒤늦게 보리밥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니

“머어~에~” 쑥스러워하며 겸양합니다.

 

이제 선암사까지 계속 내리막길이라 신경이 쓰여

무릎관절을 생각하여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된비탈의 돌계단과 뿌리가 들어난 나목들이 애처롭습니다.

순천시 당국이나 도립공원에서 어떻게 복토하여 수목들을

보전할 방법이 없는지 안타깝습니다.

정겨운 이름의

굴목이 깔그막을 지나

 

된비탈은 끝나지만

너덜겅의 비탈길은 이어집니다.

오른편으로 숯가마터가 나타나는데

여기도 여수해양경찰서 요산님의 자세한 설명서가 세워져있어

그의 자연사랑과 내고장 문화 사랑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울을 건너 

시원하게 잘 자란 편백림 숲을 거쳐

 

좌로 조성이 중단된 정원수를 바라보며

16시10분, 대각암 입구, 갈림길 선암사 측문으로 들어섭니다.

여기서 잠시 선암사를 살펴봅니다.

 

 

♥선암사(仙巌寺)

전남 순천시 승주읍(昇州邑) 조계산(曹渓山) 동쪽.

종파:대한불교 태고종

창건시기:542년

창건자:아도

소재지:전남 승주군 승주읍 죽학리

내용 출처:두산세계대백과

 

《선암사사적기(仙巌寺寺蹟記)》에 따르면 542년(진흥왕 3)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国師)가 창건하고 신선이 내린 바위라 하여

선암사라고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 (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仏閣) 9동,

요(寮) 25동, 누문(楼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 은 선종(禅宗)·교종(教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広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錬道場)으로 유명하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가 있으며,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명한 선암사 측간 앞을 지나 좌측으로 올라

분재처럼 가꾸는 반송을 담고,

A코스로 안내한 하대장을 만납니다.

봄은 코앞에 다가왔는데 아직 피지 않은

매화 봉오리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풍경소리에

낮에 나온 반달과 풍경을

파란하늘과 함께 조용히 담습니다.

대웅전과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이 외롭게 서있습니다.

 

기념촬영을 부탁하는 부녀회원들을 삼인당[三印塘]앞으로...

 

삼인당[三印塘]은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862년(경문왕 2) 도선(道詵:827~898)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인데,

그 안에 섬이 조성되어 있어 연못 안에 있는 섬은 ‘자이이타(自利利他)’,

밖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 (自覺覺他)’를 의미합니다.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연못의 명칭에서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사상을 나타냅니다.

승선교[昇仙橋]

1963년 9월 2일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암사에 이르기 전 조계산(曹溪山) 계류 건널목에 놓인 돌다리를 말합니다.

다리는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기저부에는 가설(架設)이 없고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용두가 달려있는

홍예(虹朗)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 냇가와의 사이에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윗면은 평평하게 정지하여 통식(通式)의 교량을 이루고 좌·우 측면의 석축에 약간

보수를 가한 흔적이 있을 뿐 홍예는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위의 석축도 난석(亂石) 쌓기로서 시멘트에 의한 보강이 전혀 없어 자연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어

자살을 하려 하자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했는데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승선교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보물위에 올라선 4총사를 기념촬영해 주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16시50분, 매표소 앞 선암사 안내판 앞에서

우리문화 답사 중 설명 듣는 젊은이들을 만남으로써

6시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칩니다.

 

어묵탕과 시원이로 산행뒤풀이를 끝내고

예정시간 되로

17시, 조용히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