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9(토)

서울에서 동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온다.
넓고 푸른 바다.
동해가 그곳에 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중앙고속도로에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서 5번 국도로 가다가,
영주에서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 중인 36번 국도를 이용하여 봉화를 경유하여 달린다.

영동선 철도와 나란히 가다가 법전면에서 31번 국도를 이용하여
일월산을 지나 영양군 수비면으로 접어들면 낙동정맥 한티재를 넘는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낙동정맥을 종주하기 위하여 비 오는 밤에 한치재에 도착 하였지만
땅이 젖어서 비박 장소를 찾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불 꺼진 주유소 옥상에서 판쵸를 뒤집어 쓰고 비박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그 주유소 앞을 지나가니 감회가 새롭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울진군 온정면 백암온천으로 넘어가는
구주령 부근에는 옥녀사당과 고추장승이 있다.

조선시대 영해부사의 딸 옥녀가 이곳에서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넋을 위로 하기 위하여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다.
옥녀의 무덤에 벌초를 하면 득남을 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영양의 특산물인 고추와 묘한 인연을 이루고 있다.










백암온천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고 백암산 산행에 나선다.(14:30)
산자락 밭에 놓인 벌집을 손질하는 농민의 부지런한 손길 위로 “웽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날아 오르는
벌은 봄을 알리고 있지만 과수원의 배꽃도 봉숭아 꽃도 만개하지 아니하여 아직은 봄을 느끼기엔 허전함이 있다.







그러나 개울을 건너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서 초록의 다래 새순과
샛노란 생강나무 꽃을 보노라면 내 마음은 밝아지면서 봄의 향기에 설렘마저 느끼게 하고
한 떨기 진달래의 화사한 연분홍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봄의 향연!




메마른 땅에도 야생화는 핀다.
작지만 색깔이 고운 너의 모습을 사람들이 무슨 꽃이라고 불렀을까?
궁금하다.








발걸음도 가볍게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산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우리나라의 자원 수탈을 악랄하고 철저하게 한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야욕에 희생된
아직도 아물지 아니한 상처를 간직한 소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그 아픈 상처의 깊이만큼 세월이 쌓여
새 살이 돋아 나듯이 초록의 이끼가 생명의 강인함을 말해주고 있지만
보기 흉한 상처는 오늘 새롭게 일제의 추악함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의 땅.
우리의 국토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외로운 섬 독도일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점점 높이 올라 갈수록 눈이 자주 보인다.
햇살이 따뜻한 남쪽 사면에는 눈이 다 녹았지만
북사면에는 아직도 녹지 아니한 눈이 1m이상 쌓였고
눈 속 깊이 각인된 발자국은 석고처럼 단단하게 얼어 붙었다.








세찬 바람이 분다.
얼굴이 얼얼하다.
저만치 백암산 정상이 보인다.




백암산(1004m) 정상에는 표지석과 1등 삼각점이 있다.(16:25)
동쪽으로 멀리 파랗게 하늘과 바다가 하나가 되어 구별이 되지 아니하고
동남쪽으로 칠보산(810.2m)이 우뚝 솟았다.

♫♬… 칠보산 높은 준령 정기를 받아 … ♫♬

남쪽으로 낙동정맥 삼승령 가는 임도에 눈이 쌓여 하얗게 보인다.













남쪽으로 뻗은 가파른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흰바위로 이루어진 벼랑이 나타난다.
저녁 햇살을 받은 회색 바위와 그 사이에 자라는 누런 잡초는 쓸쓸하다.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카~악 카~악”
까마귀 울음소리도 크게 들리고
칼날 능선에 한 발을 내 딛기가 겁이 난다.

주변을 살펴보니 옆 능선에서 내려오는 밧줄이 보인다.
등산로는 이 벼랑 아래에 있다.
되돌아 가기는 싫고 그냥 내려 가려니까 겁이 난다.
한 사람만 더 있어도 쉽게 내려 갈 수 있지만
두려움을 감당 할 수 없어 경사가 완만하고 잡을 곳이 있는 쪽으로
이리 저리 어지럽게 두 손 두 발 아니 온 몸을 사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려 간다.(16:50)








뒤 돌아 본 흰 바위 절벽은 왜 이 산을 백암산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평탄한 능선 길을 따라 동쪽으로 10여분 진행하면 허물어진 백암산성이 나타난다.(17:05)




동쪽 능선으로 진행하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북동쪽으로 산행하면서
계곡으로 떨어지는 급경사를 내려가면 백암폭포에 도착한다.(17:30)
날은 저물고 깊은 산 속의 폭포소리는 오히려 적막감을 더하는 것 같다.

“깨끗하여라
인간의 발이 여기에 머물러 혹 더러움을 탈까
하얀 얼굴을 내밀기가 망설어지는구나”


백암폭포(4.11일 아침에 다시 올라와서 찍은 사진)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보라와 함께 날리는 폭포소리를 뒤로 하면서
계곡을 건너면 평탄하고 완만한 등산로가 나타난다.
18:10분 하산을 완료하고 백암온천에 도착한다.

온 몸을 온천에 담그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사이로 육체적 피로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