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과 함께한 4월의 월악영봉(1,097m)

 

 

○ 일  시 : 2005. 4. 3 (일) 04:00 출발

○ 현지날씨 : 눈, 비, 맑음

○ 산행지 : 충북 충주,제천 소재 월악산 영봉

○ 참가자 : 손승기, 박창영, 이상봉

○ 산행코스 : 덕주골→덕주사→마애불→960고지→영봉(정상)→송계삼거리→동창교(6시간)


두어 달 전 칼바람과 함께한 소백산 눈꽃산행을 기점으로 휴행에 들어 간지 달 반(月半)만에 친구로부터 갑작스런 월악산 산행 제의를 받고 보니 반갑기도 하였거니와 한편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그 동안 체력관리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함으로 인하여 국내의 2대 영봉중 하나인 월악 영봉인 악산(岳山)을 종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틈틈이 테니스로 동계훈련을 해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걸고 그 자리에서 친구의 산행 제의에 OK.  약속은 하였지만 산행출발 시간은 불과 3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부랴부랴 훼밀리 마트에 들러 간식을 준비하고 집에 와 배낭을 대충 챙기고 잠자리에 드니 새벽 02:10이다. 04:00에 출발하기로 했으니 눈 붙일 시간은 겨우 두어 시간도 못된다.


자명종에 의지하여 깨어나니 03:45 곧바로 배낭을 걸머지고 현관문을 나서니 깜깜한 밤하늘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인데 차갑진 않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한때 비가 온다고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친구 한명은 벌써와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나머지 한명은 먹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자! 월악영봉으로의 출발이다.(04:00)

갤로퍼의 톤높은 액설레이터 소리와 함께 자동차는 그렇게 천곡동 시내를 벗어나 미로를 지나 태백 심포리의 따바리 고개를 힘겹게 오르고 영월상동으로 접어들어 제천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아직 새벽이 멀었양 어스름 기운이 온 산들을 어둡게 감싸고, 36번 국도에는 오가는 차량이 전혀 없다.

갤로퍼는 우리 3명의 담소를 듣는지 마는지 어둠속을 줄기차게 내달려 어느덧 충주호 주변까지 달려왔다.

큰 강가 주변의 새벽은 언제나 운무로 가려져 그 풍광을 즐길 수 없듯이 우리가 지나가는 충주호 주변 역시 짙은 운무에 가려 이름에 걸맞는 대호수의 주변경치를 만끽 하는 데는 실패했다. 날씨는 계속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우리의 산행에 일조라도 하듯...


 이윽고 새벽이 밝고 해가 떠올라 들머리인 덕주골 입구에 도착(08:05), 덕주골식당에서 아주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순두부찌개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낡은 코펠통 하나를 빌려 챙겨넣고 본격적인 산행길에 나섰다.(08:15)

월악영봉으로 오르는 코스로는 대략 5개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덕주사로 올라 동창교로 하산하는 덕주사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덕주사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고 가자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서기586)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월형산 월악사였으나 신라 경순왕이 천년 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내준 뒤에 경순왕의 첫째 딸인 덕주공주가 이 곳에 들어와 높이 13m의 거암에 마애불(보물406호)을 조성하고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며 일생을 마친 그 뒤로 산 이름을 월악산으로, 절 이름을 덕주사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들머리를 지나 덕주사 까지의 산행 초입은 콘크리트로 잘 포장되어 있고 길양 옆으로는 이름도 다양한 이를테면, 소태, 졸참, 물푸레, 산팽, 느릎, 비목, 고로쇠, 팥배, 작살, 당단풍나무 등등 나무숲의 연속이다. 길가 개울은 맑은 물이 조금씩 흐르고 버들강아지의 꽃망울에서 봄이 우리곁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들머리에서 출발한지 10여분이 지나 우리고장에 있는 학소대와 同名의 학소대(덕주산성 동문)에 도착하니(08:25) ←영봉4.9km  덕주골1km의 나무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덕주사를 지나 경사도가 약한 오름길을 약 30분정도 더 오르니  마애불상이 있는 곳에 닿는다.(09:00)

이 마애불은 폭5.4m, 얼굴길이 3.73m를 포함, 길이가14m이며, 귀의 길이가 1.85m, 발의 길이가 7.5m나 되는 그야말로 거암불상으로 미륵리 석불입상과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덕주공주가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인 경덕왕(통일신라 마지막 왕)을 그리워 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같이 올라가던 우리 일행중 한명이 갑자기 밀어내기(?)해야 한다며, 그룹에서 이탈하고 둘이서 쉼없이 올라 마애불 바로 아래 샘물이 솟는 곳에 도착하니 ←영봉3.3km  마애불0.1km의 나무이정표와 마주친다.

시원한 물로 갈증도 풀고 땀도 식히면서 디카 한번 뽐내고, 수통에 식수 공급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데 뒤에 쳐진 한명은 보이지도 않는다.

전날의 일기예보대로 한때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애불에 다다르자 안개와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진눈깨비가 비로 변할 것을 우려하여 레인코트를 급히 꺼내 입고 배낭에 커버까지 씌우니 소낙비가 퍼부어도 걱정이 없는 듯 하다.


 마애불을 지나 왼쪽 좌측으로 돌아 오르게 되는 등로는 본격적인 오르막의 시작을 알리고, 측면은 온통 암사면으로 이루어져 산행자의 기(氣)를 꺽어 버리기에 충분하며,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벼랑의 연속이고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의 연속이다. 일행중 한명(?)에게는 괜한 고생을 시키는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금 전 내리던 진눈깨비는 완전히 눈송이로 바뀌어 폭설로 이어지고 금새 쌓이면서 앞길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서울에서 왔다는 산객 몇 명이 후미에서부터 뒤따르다 결국 우리를 앞질러 간다. 그 중에는 여자 한분도 끼어 있었는데 걸음걸이로 보아 보통 산꾼이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자세가 나오는 몸매다. 부럽다.

철계단과 작은 암봉 구간을 지나며 비탈길을 약 10분정도 오르자 능선에 닿게 되고 잠시 쉬고 있노라니 밀어내기를 끝낸 일행 한명이 헐레벌떡 오르며 함께 합류하게 된다.(10:10)

긴급구조 안내용 각목에는 960고지라고 표시되어있다. 이곳은 주변이 잡목으로 둘러 처져 있어 전망이 별로인지라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정상의 위치를 관망하고자 고개를 사방으로 둘러보았지만 눈과 많은 운무로 인하여 그 영봉이 있는 정상은 볼 수가 없다.

960고지를 지나 영봉의 아래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약10분정도 지나자 헬기장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10:20) ↑영봉1.5km 마애불↓1.9km 동창교→2.8km의 나무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정상을 오르려면 영봉아래의 오른쪽을 거의 한바퀴 돌아내려가 다시 올라오고 또다시 아래로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야 하는 그것도 철계단으로 이루어진 지옥의 계단을 연상케 되는 구간으로 1시간은 족히 소요되는 구간이다. 눈길을 따라 아래만 보고 걷다 머리를 드니 너무 환상적인 설화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일행 두 명을 모델로 한 컷 박고 뒤따르는 산객에 방해가 될까 싶어 멋진 설화를 뒤로한 채 영봉을 향한다.


 순식간에 내린 눈으로 인하여 산행길은 너무 미끄러워 비상시를 대비하여 준비해간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월악영봉 정복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영봉은 그렇게 호락호락 우리의 정상정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봉과의 싸움을 머릿속에 그리며, 10:35분 975고지에 당도하고 11:05분에 삼거리에 도착하니 ←신륵사삼거리0.5km ↑영봉0.3km 보덕암→3.7km라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보덕암으로 진입하는 등산로는 산불방지 기간으로 인하여 등로를 일시적으로 막아놓은 구간으로 하산하는 산객의 말에 의하면 이 구간으로 오르면 영봉의 지름길이라고 알려준다. 정상을 빨리 밟고싶은 생각에 저지선을 뚫고 싶었지만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 마음속의 양심이 이를 허락지 않는다.


정상코스로 들어서는데 또다시 깍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철계단이 우리의 앞를 가로막는다. 선두에선 한명은 이미 철계단을 통과하여 시야에서 보이질 않고 뒤따르는 한명이 걱정이 되어 괜찮냐?고 물으니 이상 없단다.

안심이다. 근데 나에게 갑자기 대퇴부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진행하는 등로는 온통 흰눈으로 덮여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지고, 머리를 부딪혀 안전사고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부터 영봉정상 까지는 대략 20분정도 소요된다. 우리일행 3명은 다시 합류하여 정상을 향하자 또다시 아찔한 계단이 끝없이 버티고 있다.

영봉은 끝까지 우리에게 정상을 허용하지 않으려는듯 절정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올라선 시간이 11:25분 마침내 월악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1097M 월악산 영봉”이라 표기된 조그만 시멘트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3~4평밖에 되지 않는 암봉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영봉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게 느껴진다.

정상에 올라서자 영봉이 우리의 산행을 축복해 주려는 듯 철지난 눈도 그치고 자욱하게 깔려 있던 운무들도 서서히 걷히면서 영봉아래의 비경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일행중 한명이 영봉에 섰다는 환희에 도취된 듯 야~호 소리를 외쳐댄다.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한마디 조언을 한다. “산꾼들은 정상에서의 외침(야~호 등)을 절대 금기시 한다”라고...

정상에서니 북쪽으로 충주시내와 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송곳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따금씩 운무가 빠른속도로 이동하면서 멋진 경치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우리가 영봉에 섰을 땐 이미 많은 산객이 정상을 밟고 하산중에 있었고 뒤로 줄지어 올라온 산객들로 정상의 좁은 공간은 어느새 도떼기 장터가 된 느낌이다.

頂上酒를 위해 가져간 “산”소주를 목구멍으로 흘러 보내니 짜릿한 그 맛과 기분은 일상 속에서 마시던 그 것과는 한 차원 다른 것이리라.


 우리 일행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을 공감하고 배낭을 열어 각자 준비해간 음식으로 맛나게 점심을 해결하고 기념사진 몇 컷을 월악산 정상 등정의 증명용으로 남기고 잠시 휴식후  12:20분 하산을 시작한다.

휴식과 양분 있는 음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뒤라 하산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정상가는 오름길처럼 하산길 역시 귀가의 목적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척 빨라지기 시작한다.


 오름길에 많이 내린 눈들은 산객들의 발걸음에 녹아버려 등산로는 온통 흙탕으로 변해 사람들의 등산화와 바지가랭이는 모두 진흙으로 달라 붙었고 걸음걸이에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질 않는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950고지에 내려서니 ←영봉1.5km  ↓동창교2.8km  마애불→1.9km의 이정표가 기다린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하산방향을 잡기위해 잠시 의논하고 동창교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오름길을 마애불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일행 중 한명이 약간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여 잠시 쉬다 13:13분에 하산시작, 여기서부터는 흙 비탈길에 나무계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해발685m 까지는 잡석으로 이어진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지고, 해발640m 부터는 비탈길의 지루함은 사라지고 가파른 돌계단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내림 길 중간쯤 양지바른 곳에서는 산객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맛있게 점심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얼만치 하산했을까? 우거진 나무사이로 송계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간간이 맑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일부 산객들은 성급하게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시냇물로 들어가 진흙으로 만신창이가 된 신발과 바지가랭이를 씻느라 염치불구다.

950고지 삼거리에서 출발한지 1시간10여분 만에 기나긴 비탈길을 빠져나와  14:20분에 동창교 매표소에 도착했지만 일행 두 명은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여유 있는 하산이기를 기대해 본다.


 매표소 맞은편 송계 간이휴게소에 배낭을 내리고 낡은 침상에 등을 대고 눈을 뜨니 높은산 뒤로 굽어 내려다 보는 월악영봉의 모습은 마치 인자한 산신령이 연상되기도 하고 늠늠한 장군의 모습 같기도 하다.

휴게소 주변에서 월악영봉, 탐방안내도, 자광사 표지석, 등산안내 표지판들을 디카에 담고 있노라니 휴대폰에 연락이 오고 이어 일행 두 명이 모습을 나타낸다. 예상대로 950고지 하산 길에서부터 한 명이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下山酒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하려 했지만 시간관계상 동해에서 하는 걸로 의견일치를 보고 덕주골에 세워둔 차량을 회수해 오는 일만 남았는데 머뭇거릴 틈도 없이 일행중 한 명인 차주가 나선다.

차량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상 2.1km다. 하지만 이곳에는 택시가 다니지 않는다고 동창교 매표소 여직원이 알려준다.

걸어가면 20분이상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지라 가능하면 매표소를 통과하는 차량에 의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그냥 걸어서 갔다 오겠다고 한다. 미안스럽다. 버스를 이용한 단체산행이 아쉽기 만한 순간이다.


 16:00 차량이 도착하자 우리는 황급히 트렁크에 배낭을 싣고 천천히 송계휴게소를 빠져나와 충주시내로 들어선다.

충주호 주변에 다다르자 월악영봉에서 내려다 보이던 충주호는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확연히 줄어 볼품이 없고 유람선이 느린 속도로 떠가고 강가 어부는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다.

귀가길의 차창 관광도 허기와 피로에 지친 육신으로 더 이상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채 곧바로 잠에 빠져든다. 운전자에게 또 미안한 마음이다.

잠에서 깨니 차량은 벌써 원주 구룡휴게소에 도착하여 운전자도 몹시 졸리는지 아예 차를 정차시키고 곤히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감지하고 차머리를 돌려 동해로 향하며 예상하지도 못했던 4월의 반나절 동안에 만들어낸 눈꽃(?)월악영봉 산행의 정취를 되새기며, 오늘을 마감한다.

안산, 즐산에 함께한 창영, 상봉에게 지면으로 감사드린다.


                                                          2005년  4월  4일  10:35


                                                                                                                                      손 승 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