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4. 2(토)
ㅇ 위치: 경남 합천군 가회면(1,108m)
ㅇ 코스 : 덕만주차장-순결바위-모산재-철죽군락지-목장지대-황매산-삼봉-삼거리-탐산-
          연꽃설-박덤-독립가옥-덕만주차장(만보기상 약 13km. 약 5시간 10분)
ㅇ 찾아간 길 : 산청I.C-차황방향-대병면-가회면-만남의 광장-덕만주차장
ㅇ 돌아온길 : 덕만주차장-거창방향-88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


   아름다운 산 모산재, 넓고 푸근한 산 황매산. 그 산을 산악회 정기산행지로 정하고 찾아간다. 대장을 맡은 나는 산행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찾아가는 길, 산행코스 등을 정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오늘은 산악회 정기산행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먼 곳으로 전보를 가게된 동료를 위로해 주기 위한 산행이라 이것저것 신경이 더 쓰인다.

 

    08시 장비의 집 앞에 집결하여 안영I.C를 거쳐 산청I.C로 빠져나오니 10시다. 예정대로 10시 30분 경이면 산행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고속도로 요금소 아가씨에게 황매산 가는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도 안내방향문구가 잘 인쇄된 쪽지를 한 장 준다. 참 친절도 하지 속으로 생각하며 안내문구에 있는 방향대로 찾아가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상법마을 앞에서 갑자기 길이 끊긴다. 어라 어떻게 된 것이지 다시 차를 돌려 온 방향을 거슬러 신촌마을로 가니 등산로 안내표지판이 있는데 처음 계획했던 코스가 나오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감암산에서 황매산 코스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어찌된 일이지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는 분명히 길이 있었는데---잠시 생각을 가다듬으며 안내문구를 자세히 보니 황매산(영화촬영지)이란 문구가 보인다. 아뿔사 이쪽은 모산재에서 오르는 방향이 아니고 영화촬영지로 오르는 코스인 것을 그저 무작정 안내문구만을 따라온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온 길을 다시 돌아 한참을 우회하여 출발예정지인 덕만 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 40분이다.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다. 회원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산은 무슨 산. 그냥 여기서 술이나 한 잔 하다 가잖다.    

 

   그렇게 불만을 배낭 가득 짊어진 회원들을 이끌고 덕만주차장의 좌측으로 나 있는 농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순결바위, 모산재로 오르는 코스다. 그런데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먼 곳으로 전보를 간 동료는 처음부터 뒤쳐지기 시작하더니 그 비탈진 암릉길에서는 아예 얼굴이 노란해진다.  아니 전보 간지 겨우 1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몸이 상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 때는 우리 회원 중에 산을 제일 잘 탄다고 자랑했었는데, 혼자 밥해 먹은 지 겨우 1주일만에 저렇게 몸이 상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동료를 이끌고 약 30여분 오르자 모산재의 멋진 암릉과 넉넉하고 커다란 황매산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장소가 나온다. 야! 멋지다. 이제까지 불만에 가득 찼던 회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모산재. 정말 멋진 풍광이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커다란 절벽의 절경을 간직한 모산재. 모산재만 둘러보자면 약 2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처럼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정말 기암괴석과 멋진 암릉들이 시선을 쏙 빼앗아 간다. 또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넉넉하고 우람하게 서 있는 황매산의 줄기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제 회원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쏙 들어간 채 연신 멋지다 멋지다 소리만 연발하며 산을 오른다.

 

   그런데 산을 오르면서 순결바위 안내판을 분명히 보았는데 어느 것이 순결바위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순결바위 표지판을 잘 보지 못한 것인지, 표지판이 없었던 것인지---사생활이 나쁜 사람은 순결바위 틈을 지나가면 바위가 오므라들어서 통과하지 못한다는데, 만약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우리 회원들중 몇 명은 분명히 ㅎㅎㅎ 어떻게 됐을텐데---아깝다. 순결바위를 꼭 보고 싶었는데---

 

   암릉길을 타고 가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앞쪽에 보이는 돛대바위다. 절벽의 끝에 올라앉아 산 전체를 이끌고 어디론가 떠나갈듯 서 있는 돛대바위. 멋지고 위태롭고 신기해 보인다. 모산재로 오르는 암릉길 내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영암사쪽 길에서 다시 오르며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한없이 들게 한다.

  

   그렇게 암릉길을 얼마나 탔을까? 이제 겨우 산행하기 적당하게 몸이 만들어 졌다싶었는데 회원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예정대로라면 모산재에 올라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회원들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넓고 평평하고 전망 좋은 장소를 골라 점심을 먹는다. 평소에는 컵라면에 찬밥이 주메뉴이었는데 오늘은 족발에다 술도 여러 종류고 푸짐하다. 전보간 동료를 위한 특별 점심이다. 모두들 거하게 점심을 먹고 술도 한잔씩 걸치고, 전보간 동료의 근황을 들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려고 하니 발길이 무겁다.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그런 발길을 멋진 풍광으로 달래며 천천히 모산재에 오른다.

  

   모산재에 오르니 오를 때보다는 전망이 좋지 않다. 그냥 정상석 사진만 몇 컷 찍고 바로 본격적인 황매산 산행길에 들어선다. 모산재에서 바라볼 때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황매산. 몇번의 오르내림과 능선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황매산 바로 앞의 목장지대까지 다다른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능선길은 시선의 거리보다 실제의 길이가 훨씬 가깝다. 그만큼 시간과 힘의 소비도 생각보다 덜 든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도착한 목장지대. 아직 피어나지 않는 철쭉들의 빈 가지들이 지천이다. 너른 평전에는 마른 목초들의 누런 빛깔만이 황량하다. 조금 철이 지나 철쭉철에 오거나 하다못해 저 너른 평전이 초목으로라도 뒤덮여 있다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텐데---약간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회원들의 산행길이 갈린다. 몇몇은 정상적인 코스를 타겠다며 계속하여 초소쪽 능선길로 올라서고 몇몇은 그냥 목장지대를 가로지르는 코스를 택한다. 나는 목장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목장길을 택한다. 한 때는 꽤 많은 소들이 뛰어 놀았을 것 같아 보이는 목장.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된 채 흉하게 잔해들만 남아 있다. 어떤 사내의 꿈이 또 이 목장 위에서 쓸쓸히 무너져 내려야 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마른 목초 위에 아직도 남아 있는 소들의 배설물에도 마음이 아려온다.

  

   목장 지대---소들의 배설물---고향의 냄새를 맡으며 걷고 있자니 생각은 어느새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로 가서  꽂힌다. 아버지. 내 가슴속에 얹혀져 있는 영원한 돌무덤. 그 아픔이 너무 커 그냥 인생을 주저앉고 말았던 못난 불효자식. 세월이 가면 아픔은 희미해지고, 지워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픔은 잠시 묻어두는 것 일뿐. 어느 날 삶의 뒤편을 돌아 다시 그곳에 가면, 아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아니 더 커다랗고 감당할 수 없는 파도가 되어 덮쳐오고 있었다. 파도에 맞으면 가슴은 절벽이 되어서라도 버텨냈어야 했는데, 나의 가슴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 아픔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오늘도 산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숨통을 풀어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도 살고 싶은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오늘도 또 청승맞은 생각에 젖어 산을 오른다. 아무래도 심연의 물줄기는 슬픔의 골짜기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보다. 언제쯤이면 즐거운 산행을 하고, 즐거운 산행기를 쓸 수 있으련지---이제 계단으로 된 가파른 오름길을 지나 황매산 정상에 오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만이다. 꽤 여유 있는 산행이었는데도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다. 회원들의 산행 실력은 아무튼 알아줘야 한다.

  

   정상에 올라서자 멀리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목장지대의 너른 평전이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가야할 능선길을 바라보자 제법 길고 곳곳의 암릉들도 보기 좋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늘 산행지 선택에 만족감을 나타내는 회원들의 듣기 좋은 소리에 힘을 얻으며 능선길로 들어선다.

  

   능선길은 생각보다 힘이 들지 않는다. 시간도 별로 들지 않는다. 조금 걸은 것 같은데 어느새 삼봉이다. 그런데 삼봉을 지난 하산길에서 우리는 중요한 실수를 범한다. 제법 오래된 듯한 표지판에 휴게소 방향과 덕만주차장 방향만 표시되어 있는데 회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냥 표지판대로 덕만주차장 쪽으로 내려가자는 회원들과 분명히 능선을 타는 길이 있음을 보았다는 나의 주장. 이럴 때는 지도를 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데 지도를 보려고 하니 처음 출발할 때 서두르는 관계로 지도를 차에 놓고 내렸다. 앗! 이런 실수를 하다니! 결국 산행대장의 말을 듣지 않고 몇몇은 그냥 삼봉 밑에서 하산길로 들어서고 몇몇은 또 능선길을 타기로 결정한다. 세상에 산행대장의 말을 듣지 않는 산악회도 있다니---처음에 길을  좀 헤매었다고 오늘은 산행대장의 영이 영 서지를 않는다.

  

   먼저 하산하는 회원들을 걱정하며 능선길을 타고 얼마를 진행하다보니 삼거리에서  표지판이 다시 나타난다. 반갑게도 덕만주차장 가는 방향이 보인다. 그럼 그렇지 내가 분명히 보았고 산행기도 읽었다니까! 이쪽 길을 택한 회원들이 이제 안심하고 능선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탄다.

 

    능선길을 타며 돌아보는 황매산의 줄기가 그저 황홀하다. 평전과 황매산이 만나는 지점의 곡선도 멋지다. 눈길을 자꾸만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탑산을 지나고, 어느새 금원산 줄기의 현성산 하산길을 생각나게 하는 가파른 하산길로 들어선다. 약 2시간이 조금 넘는 하산길 끝에 덕만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른 하산길을 택한 회원들이 먼저 와 있다. 그쪽으로의 하산길은 다시 목장지대로 들어서서 지겨운 임도 길을 걸어 내려오는 코스였단다. 어느 길을 택하였던지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좋은 산을 구경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너무 이른 산행이라 황매평전의 철쭉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 너른 들판에 철쭉이 피어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제 내 마음은 4월만 되면 오늘 보지 못한 철쭉꽃 상상에 마음이 항상 들끓어 오를 것 같다. 다시찾고 싶은 모산재, 황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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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름길에 본 모산재 풍경)


 

(오름길에 본 모산재 풍경)


 

(오름길에 본 바위)


 

(오름길에 본 영암사에서 오르는 등산길)


 

(오름길에 본 모산재 풍경)


 

(오름길에 본 닭벼슬바위 풍경)


 

(오르길에 본 바위)


 

(돛대바위)


 

(지나온 순결바위 암릉 풍경)


  

(황매산과 황매평전)


 

(황매산 오름길에 본 황매평전)


  

(황매산 오름길에 본 지나온 길)


 

(황매산 정상)


  

(가야할 능선길)


 

(지나온 풍경)


 

(지나온 능선)


 

(능선길에 본 합천호)


 

(탑산부근에서 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