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4. 17(일)
ㅇ 위치 : 대구광역시 달성군(1083.6m)
ㅇ 코스 : 소재사-대견사지-비슬산-유가사(4시간 40분)
ㅇ 찾아간 길 : 안내산악회(경부고속도로-현풍 I.C-상원사주차장)


   참꽃. 진달래를 이르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참꽃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진달래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경상도 지방에 가보니 아직도 진달래라는 말보다는 참꽃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참꽃. 발음상만으로는 분명히 '창꽃'이라고 들리는 꽃. 내 어릴 적 고향은 신라와 백제가 수많은 싸움을 계속하던 경계지역이라 두 지방의 사투리가 교묘하게 혼재되어 있었는데,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진달래보다는 창꽃으로 가슴 깊이 각인되어 있고, 창꽃의 정확한 이름이 참꽃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진달래. 그 이름이 어떻든 간에 진달래라는 이름만 들어도 추억은 아련하게 고향집 뒷동산으로 달려가고, 시간은 어느새 후다닥하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 버리고 만다. 어린 시절. 뒷동산 가득 피어난 참꽃을 한아름씩 꺾다가 누군가가 문둥이다! 하고 외치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냅다 내달리던 기억. 꽃을 꺾으러 가 꽃은 꺾지 않고 허기진 배만 꽃잎으로 잔뜩 채웠던 기억. 그러다 지치면 꽃수술을 따서 누구 꽃수술이 더 센가 시합하던 기억. 어느 날은 참꽃을 한아름 꺾어와 아버지가 드시던 빈 소주병에 꽂아 놓고는 칙칙하기만 한 시골집이 환해진 느낌에 좋아하던 기억. 그 기억들은, 진달래에 대한 그 기억들은 봄의 시작이었으며, 추억의 시작이었으며, 커 가는 동안 내면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아련함, 애달픔으로 자라나, 사춘기 시절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의 기본 정서로 자리 잡아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정서가 아니었나 싶다. 

  

   진달래. 오늘은 그 꽃을 보러 간다. 그 추억을 보러 간다. 대구 달성의 비슬산으로. 더군다나 그곳에서는 오늘부터 참꽃 축제를 한다지 않는가? 들뜬 마음이 차에 올라 타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사이, 안내 산악회 차량은 어느 새 산행출발지에 도착한다. 대전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 오늘 함께 한 사람들을 살펴보니 전문등산객보다는 상춘객 수준의 사람들이 많이 보여 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지만 부담이 덜 간다. 차에서 내려 간단하게 장비를 점검한 후 사람들을 따라서 천천히 산행길로 접어든다.

  

   산행초입 길. 차량과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빈다. 길 양옆으로는 먹거리를 펼쳐놓은 노점상들이 즐비하고, 잘 포장된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사람들에 치이며 산을 오른다. 오름길 군데군데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가 간혹 보이고, 몇 만년전부터 형성되었다는 암괴류의 바위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 가파르지도 힘들지도 않은 오름길을 아내도 차근차근 잘 따라 올라간다. 무더기로 피어있는 진달래를 본다는 기대에 아내의 다리도 약간은 흥분을 한 것일까?

  

   간간이 휴식을 취하여 약 1시간 40여분의 오름질을 마치자  대견사지에 오른다. 대견사지. 대견사지에 오르자 벼랑 끝에 서 있는 돌탑이 인상적이다. 평평한 절벽의 바위 위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석탑. 뒤쪽의 아기자기 한 바위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비슬산의 한쪽 능선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마음을 쏙 빼앗아간다.  보통의 석탑은  절의 중심부분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이 절을 세웠던 사람은 떠나온 세상에 대한 미련이 무에 그리 많이 남았기에, 저 벼랑끝 위에 석탑을 세워놓고 두고두고 세상 속으로 그리움을 날려보내고 있던 것인지. 잠시 그 마음을 엿보고자 산머루주를 한잔 마시며 석탑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 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석탑을 저 위치에 세워 놓고자 했던 마음이 어떻게 모질게도 세상을 등질 수 있었을까? 그리움과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 사이에서 가슴 아파했을 한 선사의 마음이 애달프게 다가온다. 밤마다 들려오는 바람소리, 새소리, 흐느끼는 달빛의 울음소리에 그 선사는 분명히 수행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하산하였으리라!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산사에 불까지 지른 채 말이다.

  

   대견사지에서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으려는 마음을 일으켜 세워 이제 본격적인 진달래 군락지로 들어선다. 대견사지에서 조그마한 언덕만 넘으면 바로 시작되는 길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을 진달래의 물결을 기대하였는데, 산이 온통 황량하기만 하다. 진달래는 꽃망울도 터트리지 않았다. 텅 빈, 앙상한 진달래 가지들만 능선길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참꽃 축제를 한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래 전부터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개화시기를 정확히 맞추지 못할 때도 있겠지만, 개화가 이 정도로 늦어졌다면 당연히 행사를 연기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지방자치단체의 홍보내용만 믿고 산을 찾아온 이 많은 사람들의 실망의 목소리보다, 관계공무원들의 기안문 한 장이 더 중요하였단 말인가. 산행길 내내 사람에 치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아온 오늘. 사람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피어나지 않은 진달래를 대신하여 붉디도 붉게 타오른다.

  

   진달래꽃을 구경하러 왔다가 진달래꽃을 하나도 보지 못하자 산행할 맛이 나지 않는다. 비슬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이 더디기만 하다. 함께 한 아내와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모두들 힘이 나지 않는지 비슬산 정상을 다 오르기도 전에 점심이나 먹고 가자며 주저앉는다. 그러자 점심이나 먹자. 볼 것도 없는데---

  

   속상한 마음을 이과두주 한 잔씩으로 달랜 후,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른다. 정상에 오르자 참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다 꽃을 보기 위하여 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화가 난다. 달성군청 싸이트에 오늘 일을 분명히 따지리라---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산행을 시작한지 약3시간만에 올라온 정상. 조망이 시원하다. 올망졸망한 단애와 암봉들도 보기가 좋다. 애초에 진달래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고 올랐다면 꽤 좋은 산이었으리라. 그러나 꽃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산에 대한 참모습이 반감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아쉬운 마음을 산 정상에서의 좋은 풍경으로 위로 삼으며 한참동안 시간을 소비하다 천천히 하산길로 접어든다.

  

   유가사쪽으로의 하산길. 산행길이 무척 가파르다. 만약 이쪽으로 오름질을 하였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약 1시간 40여분 동안 여유 있고 차분하게 비탈길을 내려와 유가사에 도착한다. 유가사에 도착하자 아직도 한창인 벚꽃이 그나마 꽃구경에 갈증난 마음을 적셔준다. 유가사와 벚꽃 속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다 계곡과 꽃들이 아름다운 산수정 가든에 들러 동동주 한잔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 앉아 있는 자리 위로, 마주 보는 머리 위로, 마시는 술잔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들. 또다시 봄이구나. 천지사방 미친 듯이 타오르는 봄이구나.  
 
 

(암괴류)


 

(대견사지 바위들)


 

(대견사지 석탑)


 

(대견사지 풍경)


 

(텅빈 진달래 가지들)


 

(능선길에 본 비슬산 )


 

(산버들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정상 오름길에 본 풍경)


 

(정상의 많은 사람들과 황량한 모습)


 

(정상에서 본 풍경)
   


 

(하산길에 본 정상)


 

(유가사와 벚꽃)


 

(유가사와 비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