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산행기에서 같이 간 분을 하마라고 했다가

뒷수습하느라고 별로 맘 편하게 지내지 못한 관계로

이번부터는 같이 갔다고 적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쩌다가 보니 갑자기 잡히게 된 야간산행계획이라

회원모집(?)을 할 겨를이 없어서

운동화와 작업복 차림으로 나서긴 했지만

이번 산행 역시 전 번처럼 오붓(?)하게 되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갈 곳도 마땅찮고

(주머니에 그것이 없으니 유흥주점은커녕 대폿집도 못가는 가련한 신세이고 보니....) 

우짜겠노 그냥 또 산에나 가야지...

  

혼자 가면 좀 한적한 곳이지만

이번 역시 그러한 걱정이 전혀없는, 안전(!)한 산행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고속도로에는 뭐가 그리 바쁜지 알 수는 없으나

지나가는 차마다 빠르기가 쏜살 같았고

골짜기 외딴집 작은 창을 살며시 빠져나온 정겨운 불빛이 우리를 따라나섰다.

  

갓바위 뒷길은 암릉이 아기자기하고 경관은 좋으나

밤에는 물론 낮에도 그리 호라호락한 코스가 아니라서

멋모르고 오르기엔 좀 위험하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뻔히 보이는 길에다 

- 등산로 아님 - 이라는 푯말을 달아놓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대나무로 된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전에는 안그랬음.)

야음인지라 우리는 그 울타리를 무시하기로 했다.

정상부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 좀 펑퍼짐하게 너댓면 앉을만한 바위가 나오는데

멀리 바라다 보이는, 그 가슴트이는 정경속에서 잠시 거친 숨을 고르고...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고, 또 영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 돌부처 갓바위에는

사시사철 불공을 드리러 오시는 분들로 말 그대로 문전성시인데

이날따라 웬일인지 사람이 거의 없고

삼천배를 준비하는 어느 아저씨의 비장한(어쩌면 좀 처절한) 모습을 합쳐서

사람 수가 열 손가락을 다 꼽지 못했으니 조용하기가 그야말로 절간 같았다.

 

대구를 품고 있는 팔공산은 볼 때마다 명산이다.

사극 태조왕건이 방영된 후에 새롭게 각광 받고있는 이 팔공산 자락엔

오래된 전설들이 켜켜이 배어있다.

늦은 밤에 내려다 보이는 대구의 야경과 고요한 독경은

사람의 마음을 금새 잔잔한 호수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데 여자스님은 염불을 욀 줄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남자스님의 독경뿐이다.

야등 한 번 안다닌 산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나는 밤산행을 유별나게 좋아한다.

어둠속에 나를 묻고

아주 가까이 보이는 단 몇 미터의 앞길도 가늠하기 어려운 길을 헤매이는 밤 산행은

마치 내 인생과도 같다.

 

갓바위 역시 문명의 혜택을 입어 밤이면 온 산에 전깃불이 휘황하다.

고객(뭔 말인지 아시지요?)에 대한 서비스차원이겠지만

나처럼 밤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겐 결코 고맙지만은 않다. 

도시의 쓰레기통 속에나 있어야 할 그것들이

온 산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다.

 

이런 저런 생각과 가끔은 좀 진한 성담을 주고 받는 사이

어느새 차에서 내렸던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걷던, 그 험하던 길은 잘 정돈된 돌계단하며

비가 오면 신발에 흙 묻지 마라고 긴 산길 대부분이 시멘트로 덧씌워져 있다.

입구에 꽉 들어찬 여러 음식점들은

예전에 무질서하다하여 철거한 그 움막같은 상가들 보다 오히려 운치도 없고

황량한 느낌마져 드는, 자정께의 갓바위 입구 풍경을 뒤로하고

나 역시 고요한 산사에다 시커먼 매연을 잔뜩 뱉어놓고 시내로 돌아왔다.

 

갈 때마다 이상한 것은 요즈음 어디를 가나 사찰입구쯤에 들어서는 모텔이다.

갓바위 앞에도 무인모텔이 있었는데 모텔이면 모텔이지 무인모텔은 또 무엇인가?

목탁소리와 모텔.... 그것도 무인모텔....  

지금의 팔공산은 구석구석 모텔이라

시도 때도 없는 사랑노래가 지나는 이의 사심을 동케하니

아! 진정 21세기로다.

 

- 이천오년 사월(양) 열하룻날 밤 9시에 입산하여 같은날 밤 11시에 하산

- 혼자가기가 무서워서 둘이 갔으나 누군지 말 할 수 없음.

- 달은 밝았는데 다른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못봤음.

- 얇은 옷을 입었는데 전혀 춥지 않았음.

- 밤길이었지만 신호위반 안했음.

소감 : 형언키 아까운 즐거움이 있었음.

특징 : 아무나 마구잡이로 가도 말리는 이 없음

잇점 : 산 꼭대기에서 밥(공양) 주므로 맨몸으로 가도 됨.

 

저는 대구사는 김홍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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