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0일 일요일

 

 

예전부터 사량도엘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무릉객님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올린 한 편의 산행기를 접하고

근 한달동안 바다의 섬처럼 마음이 붕붕 떠다녔다

 

십몇년 전부터 남편은 늘 홍도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박해수 시인)이 들려준 홍도가

그림으로 마음에 박혀 결혼 십주년에 거길 간다고 했다가

여름휴가로 미루다가 신년에 모임에서 단체로 가려다

또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못가고 말았다

 

얘기로, 글로 전해 받는 것도 직접적으로 그 당사자와 바로 일때

가보고 싶은 마음도 훨씬 더한 거겠지

솔직히 난 홍도보다 사량도를 더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

 

2월부터 서서히 사량도 산행기가 눈에 들어오고

자주 들러는 몇 곳 사이트에서 3월 이후로 줄줄이 쏟아진다

모임에 나가 결국 내가 제안하게 되고 4월의 산행지로

낙찰되었다

최근 일요일 마다 비가 왔고

우리가 가기로 한 당일도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예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큰녀석의 컴퓨터 자격증(ITQ) 시험이 있고

그것도 모자라 한달 중 하루 오지게 허리가 아픈 바로 그날이다

내리는 비에, 아이 걱정에, 뼈마디까지 쑤시는 몸에....

그래도 아니 갈 수 없다

빗속에서 미끄러운 바위를 타며 바다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결혼전에 온 산을 누볐던 언니가

두아이 키우고 십년 누운 시어머니 수발에다

산의 산 자도 모르는 형부를 만나 동네 뒷산과

팔공산 몇 번 말고는 그동안 먼 산은 꿈도 못 꾸었던

사람이 무슨 맘을 먹었는지 같이 가자는 제의에

시간이 나서 동행하겠단다

십삼년의 한을 풀 모양인지...

 

통영으로 가는 도로 위에는 두시간 넘게 비가 내리고

하늘은 통... 영... 개일 생각이 없다

연해 흐려지는 창을 닦기도 귀찮아 진다

남으로 가는 길가에 언닌 벚꽃이 만발했다고 하는데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린다

 

빗속에서 만나는 사량도는 다시 그곳을 가기 까지 추억속에

내내 비와 함께 있을테고...   아름다운 그림같은 섬들은

역시 얘기와 글과 사진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가오치 선착장에 도착해 승선자 명단을 쓰고

배가 오길 기다리는데 비는 줄기차게 내린다

섬으로 가는 배에 올라 비바람 속에

언니와 내실에 있지 않고 바깥이 훤히 보이는 윗층에

올랐다   난간을 잡으니 손이 시려온다

물살을 가르는 배 꽁무늬의 거품을 보니 느닷없이

황지우의 싯구가 떠오른다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

 

차차 가랑비로 잦아들고 바람까지 불어 긴 산행도 가능할것 같다

어둡던 섬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배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그럼 그렇지...  오늘이 어떤 날인데...

난 삼중고 속에도 예까지 왔고

언닌 십삼년 만에 왔는데...   하늘이 외면하면 너무하지...^^

(- 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사량도의 봄날은 간다~~)

 

마을 버스를 타고 돈지리에 내려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니

밭둑과 언덕에 등대풀이 부채처럼 환히 펼쳐 피어 반긴다

이제부터 날씨는 오락가락 한다

비가 흩뿌리다 잦아들고 그쳤다가 싶으면 물기를 잔뜩

품은 안개가 휙휙 지난다

짧은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도 바람이 불어 말려 주고

판초의를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만 가랑비가 내린다

 

칼질을 한 듯한 바위 절편들의 날카로운 면은 위험해서

신경이 곤두서기도 하지만  미끄러운 길의 브레이크 구실도 한다

뒤처지던 두사람이 결국 바위길의 험난한 산행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려간다  예까지 와서 함께 하지 못해 서운하지만

책임져야 할 두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혹을 떼 낸거나

마찬가지니 차라리 후련할 것에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다

자욱하던 안개가 서서히 올라오며 아래쪽의 푸른 밭과

알록달록 그림같은 마을의 집들이 어울린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으로 많이 본 그림들이 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니 감동

그 자체다   그 그림에 뽀얀 안개가 더하니 운치는 더 있다

 

사진 몇 컷을 찍기 바쁘게 앞선 일행들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가다 보니 온통 신경이 위험한 발길에 있어 허리가 아픈지

뼈마디가 쑤신지도 잊고 간다

바다 위에 그림 같이 뜬 올망졸망한 섬들을 하늘은 보여주다

감추다  요술을 부린다

한쪽 사면이 까마득한 벼랑의 급경사 칼날능선도

뽀얀 안개가 덮어버려 차라리 걷기가 낫다  그 깊이를 모르니...

친구의 말대로 떨어져도 전혀 아프지 않을것 같고...

 

사량도의 지리산을 향하는데 잠깐 작년 여름의 큰 지리산에

온 착각이 든다   가랑비와 안개가 내리는 날씨도 그렇고...

정상에 오르니 흐린 날씨가 정점에 달했다

우리는 모두 비안개 속에 갇혀

검은 표지석 말고는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리산이 보여 지리망산이라는데...  이 지리건 저 지리건

지리산 정상의 날씨와는 영 인연이 없구나

 

불모산을 향해 가면서 때늦은 올괴불나무를 본다

생강나무처럼 이른 봄 3월 초나 중순쯤에 연홍색 꽃만

피어있을 나무가 잎과 함께 늦둥이 마지막 꽃들을 빗속에서

달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김없이 두송이씩 붙어 피어

인동과라 초롱같은 꽃을 달고 쳐다보고 있다

조금 지치고 바랜 모습으로...

 

야생화 사이트 몇곳을 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꽃...

이른 봄에 피고 그 존재가 미미해 지나치기 쉽상이라는 그 꽃을 

이번 산행에서 이렇게 일찍 실제에서 인연이 될 줄이야...   

늦어서 당연히 지고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앞서가던 언니와 남편이

자잘한 푸른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붙잡고 기다린다

잎이 달린 가지 뒷면으로 다다닥 작은 꽃들이 붙어 있다

닳도록 본 수목도감에서 눈에 익은 사스레피나무다

상록수라 역시 남쪽에 오니 많구나

점심먹는 자리엔 꽃술이 길고 선명해서 예쁜

개별꽃도 한 무더기 있는데 왜 카메라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지...

 

상추와 족발을 준비해 갔는데

언니가 풋고추를 많이 가져왔다

청량고추는 두개 달랑 섞어....

누군가 청량이는 더 없느냐고 묻는데 언니가

갖고 올려다가 이서방이 매운 고추 못 먹는 생각이 나서

도로 놓고 왔다고 하자 그 자리부터 내 신랑은 이정우가 아닌

이서방으로 이름이 바뀐다   오는길 내내...

 

가마봉을 지나니 유격훈련의 진수

오늘의 하이라이트 옥녀봉이 기다리고 있다

내림길의 철사다리는 공포 그 자체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내려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떨려...  온 몸으로 용을 써고 긴장하다 간신히

내려섰다    세상에!...  올려다보니  거의 구십도에 육박하는

경사도다    이렇게 공포스런 철사다리는 난생  처음이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바위 절벽에 굵은 로프가 두 줄

설치돼 있다  우회하려다 일찌감치 들어선 길이라

용기를 내 본다   긴쪽의 로프를 잡고 먼저 내려간 남편이

최대한 잡은 줄에서 구십도를 유지한체 내려오라고 하는데...  

말은 쉽지 긴장한 몸이 어디 듣냐 말이다  

툭 튀어나온 바위에 손과 줄이 부딛혀도 정신을 놓을 순 없다 

그랬다간 바로 죽음이다   다시 천천히 주위를 보지 않고

오직 내 몸과 줄만 생각하며 찬찬히 내려섰다   올려다 보니

몇사람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언니를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   매 맞기를 기다릴때가 더

아픈 법이니....

다 내려온 언니가 좀전의 철사다리보다 낫다고 한다

 

구비구비 바위를 오르고 돌다 바다 건너 하도의 칠현산을

바라보며 내려서니 마지막 까마득한 암봉이 우뚝 버티고

있다   앞서 오르는 한 남자가 한참을 오도가도 못하고

줄에 매달려 있다   하긴... 남자라고 다 바위를 잘 타는

건 아니니...   얼마나 힘들까... 공포스러울까...   그걸보고

일행의 두 사람이  우회길로 돌아선다

남편이 바위에 자신없어 하는 날보며 자꾸 우회하라고 하는데...  

언니와 난 그냥 밀어부치기로 한다    

 

이번엔 언니가 먼저 매를 맞는다

마지막에서 잠깐 멈칫 하는가 싶더니 더디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  장하다  울언니!!)

남편이 지켜보는 중에 먼저 오른다   차라리 오르는 당사자는

순간의 시간을 사느라 한 곳에만 집중해 잘 모른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더 힘들 것이다

욕정에 눈이 먼 옥녀의 아버진 무릅으로 기어서 오르는데

그래도 난 줄타고 오르니 못 오를것도 없다

사실은 오늘 이 사량도에서 가장 어렵고 위험한 구간이다

철사다리보다 공포가 덜 할 뿐이지....

나무와 밧줄로 엮은 유격 사다리를 내려서는 건 그나마 좀 덜하다

아마 이것도 역으로 오르라면 힘들것이다

 

금평항으로 향하는 하산길에서 언니는

아름답고 멋지고 특별한 산행이었지만

당분간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거라 한다

육지로 실어줄 배를 기다리며 일행들은

멍게와 해삼으로 하산주를 나눈다 

위험하고 아슬하고 공포스러움을 내포한 아름다움은

더 오래 각인되고 거억될까?

 

 

산꼭대기 능선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와 섬들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해안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집들은 참 평화로웠다   비온 후라 그 색깔은

더 선명했다 

비안개가 피어오르고 넘나들며 보여주는 산 자락마다

감동이 아닌것이 없었다

끝까지 용기를 내어 우회하지 않고 오르내린 암봉에서의

스릴감은 더 흐뭇하게 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을 언제 다시 한 번 더 올 것인가?

5년 후에?  십년 후에?...   오늘의 이 산행이 내 생에 마지막

사량도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늘 아름다운 곳에서 다음을 기약해도 다시 가지지 않았다

그만큼 세상엔 가보고 싶은 곳이 많고 못 가본 곳이 많다

가랑비와 안개와 바람과 끝무렵에 햇빛으로 맞아준 사량도의

그림을 난 두고두고 꺼내보며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

왠만히 걷는 것엔 자신이 있어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는데  지금 어깨와 팔, 등짝, 허리

여기 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다

조금만 돌리고 움직여도

"으으으!~~"

탄식과 엄살이 절로 나오는구나^^

 

에구!~~  울언닌 몸져 누었나?  소식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