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산행기

 

                                 *산행일자:2005.4.10일
                                 *소재지  :전북 고창
                                 *산높이  :선운산336미터
                                 *산행코스:선운사주차장-도솔암-낙조대-청룡산-사자암-선운사주차장
                                 *산행시간:10시59분-16시14분(5시간15분)

 

어제는 선운산을 오르지 않고 바라다보고만 와, 집에 돌아와서 어느 산의 이름으로 산행기를 써야하나 난감했습니다. 선운산을 목적지로 정하고 산행을 하다가 등정에 실패했다면 "선운산 실패기"라는 제목으로 산행기를 쓰면 될 일입니다만, 과천시산악연맹에서 애초부터 선운산을 등로에서 제쳐놓았기에 "선운산 산행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기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봉우리를 이름해서 산행기를 써 내려가기도 내키지 않았기에 올 안에 반드시 이곳에 다시 와서 제대로 오르겠다는 각오를 다진 후 선운산의 이름을 빌려 산행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아침 7시 10분 경 과천을 출발한 버스가 4시간 가까이 봄을 가르며 숨가쁘게 달려 미당 시문학관과 인촌김성수 생가가 가까이 있는 전북고창의 선운사에 도착했습니다. 고창이 낳은 20세기의 인물인 미당서정주님과 인촌김성수님이 일제치하의 친일행적을 파헤쳐 보겠다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한다니 이 두 분들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59분 선운사주차장을 출발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시간 가량 계곡을 따라 낸 산책로를 걸으며 모처럼 봄을 만끽했습니다. 마침 비가 내린 뒤  끝이어서인지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드세 보였고, 막 목욕을 끝낸 듯 눈에 잡히는 산천이 상큼하게 보였습니다. 계곡 옆에 우 뚝 서있는 커다란 바위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뿌리를 박은 진달래의 연분홍 꽃도 이제 막 그친 봄비를 머금고 있어 더욱 해맑아 보였습니다. 저 바위에 올라 진달래꽃을 꺾어 오라고 졸라댈 사람이 제게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수로부인에 꽃을 꺾어 올린 향가 "헌화가"에 나오는 노인이 새삼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12시 15분 2개의 바위가 마주 보고 있는 낙조대에 올랐습니다.
주차장에서 1시간을 걸어 다다른 도솔암 직전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한지 15분만에 낙조대에 올라서 선운산의 주능선을 조감했습니다. 선운사를 감싸고 있는 주능선의 산세는 암봉과 육봉이 알맞게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었고 봉우리들의 높이가 해발 300미터대로 모두 고만고만해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지 않았기에 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12시59분 청룡산에 올라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낙조대에서 능선 길을 따라 조금 내려섰다 다시 100개의 계단을 걸어 올랐는데 얼굴에 와 닿는 봄바람이 감미로웠습니다. 작은 소나무 숲을 가르고 난 능선 길을 따라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옛날에는 거북이 모양의 이 바위에 큰배를 매어 놓았다는 배맨바위의 전설이 선운산은 지각이 융기해 조성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청령산 산밑에 자리한 저수지와 보리밭의 진 초록색깔이 봄이 완연함을 내보여주었는데 얼마 후 구름이 가시자 봄의 색깔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13시47분 쥐바위에 다다랐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긴 시간의 휴식을 끝내고 남사면이 장대한 암벽으로 되어 있는 부드러운 흙 길의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중 쥐바위 바로 밑에서 제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느라 몸담고 있는 산악회의 회장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로프를 타고 쥐바위에 올라선 과천시 산악연맹 대원들의 땀흘린 모습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내쳐 쉬지않고 회여재로 내달렸습니다.

 

13시58분 338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탔습니다.
원래는 회여재를 지나 구황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탈 계획이었으나 회여재에서 계곡으로 하산했다고 선두로부터 무선연락을 받고 사자암행 능선 길로 코스를 변경했습니다.

 

14시16분 사자암에 올라 바위에 바짝 달라붙어 피어 있는 신기한 풀꽃을 근접촬영했습니다. 공해에 찌든 서울 근교 산들의 바위에서는 자라날 수 없는 이 풀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이 산 속의 청정한 공기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오른 쪽 산밑으로 물을 가득 채운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왼쪽 산 밑으로는 선운사-도솔암의 큰 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자암에서 본격적인 하산 길에 접어들자 무릎이 견실하지 못한 한 여성대원의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여성대원에 정확한 스틱사용법을 전수하기 위한 회장 분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하산 길이 제게는 서두르지 않고 부담 없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두 개의 큰 바위가 맞보고 서있는 투구바위를 우회하자 푸른색의 산 죽들이 널리 퍼져 있어 산 전체가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16시2분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15분 여전 선운사-도솔암 산책로가 시작되는 미륵교를 건넜습니다. 후미의 저희들을 오랜 시간 기다렸을 다른 대원들을 생각해 선운사를 들르지 않고 바로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서기 577년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에서 기거했던 검단선사께서 창건한 선운사도 둘러보지 못하고, 또 선운사 뒤편의 선운산도 오르지 못해 뭔가 허전하고 아쉬웠습니다. 하산 길에 고생을 했던 여성대원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지 길을 쏜 살같이 내달려 뒤에서 따라잡기에 바빴습니다. 선운사에 다 내려와서 계곡에 접한 바위에 붙어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송악을 카메라에 옮겨 담는 것으로 어제 하루 사진 찍기를 끝냈습니다.

 

뒤풀이로 준비된 오뎅국과 쭈구미가 일미였습니다.
이 근처가 고향이라는 남성대원 한 분이 특별히 이곳의 특산물인 쭈꾸미와 복분자 술을 내 봄의 미각을 한껏 돋구어 주어 고마웠습니다.

 

새벽에 비만 뿌리지 않았다면 한차를 가득 채웠을 선운산 행 버스에 30여 명만 탑승하여 빈자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비로 산행을 포기한 그 분들에 육교와 지하도의 차이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지하도는 당장은 내려가느라 편한데 그 다음에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육교는 당장은 올라가야 해 힘들지만 다음에는 내려서게 돼 편한 것이 주 차이점입니다.. 비가 내릴 때 산행을 떠나면 육교처럼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정작 산행을 할 때에는 대체로 비가 그치고 날씨가 좋아져 편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여름에는 집을 나설 때는 날씨가 좋아도 지하도를 건너는 것 같아 막상 산행 중에는 비를 만나기 일쑤입니다. 육교를 건넌다고 생각하면 비가 온다고 계획했던 산행을 접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미당 서정주님의 시정을 전하고 싶어 그의 시 "푸르른 날"을 올리며 선운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