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12성문 종주기

 

원효봉,염초봉의 성벽따라 백운대를 오르고~만경대의 성벽따라 용암봉을 넘어~주능선을 지나 문수봉으로~

의상능선 나월봉의 기암절벽과 자연성능을 넘어 의상봉을 지나 대서문까지~ 성곽과 성문을 답사해보았다.

 

 

북한산성(北漢山城)  개요

소재지-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외~ 서울 은평구,성북구,강북구에 걸쳐있음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132년(백제(百濟)개로왕(蓋로王)5)에 이미 나타나고 있고, 신라(新羅)는 이 곳

의 비봉(碑峰)에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603년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25)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하자 왕이 10,000명의 군사로 구원한 기록이 있고, 661년에는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

과 함께 북한산성을 20여일간 공격하자 성주이던 동타천(冬陀川)이 성안의 주민 2,800명으로 필사의 결전으로 물리친 기록

이 있다. 특히 이 전투는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부흥군의 도전을 받고 있던 때이므로 만약 고구려에게 함락 되었다

면 삼국통일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을 것이다. 이 전공으로 동타천은 대사(大舍, 제12관등)에서 대나마(大奈麻,제10관등)로

승급되었다. 11세기초 거란의 침입이 있자 고려 현종은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옮겨오고 증축하였다. 1232년 고종(高宗)

19에는 이곳에서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1387년(우왕(禑王)13)에도 개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의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의 외곽 산성으로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1659년(효종(孝宗)10)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하여

수축하게 하고, 1711년 숙종(肅宗)37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둘레 7,620보의 석성이 완성되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大西門)·동북문(東北門)·북문(北門)등 3개의 성문과 10개의 암문(暗門)이 있고 시단봉(柴丹峰)위에 동

장대(東將臺)· 나한봉(羅漢峰) 동북에 남장대·중성문(中城門) 서북에 북장대가 있었다. 성은 다시 중성(中城)을 만들고 처음

엔 경리청(經理廳)을 두었다가 1747년(영조(英祖)23)에는 총융청(摠戎廳)에 속하여 관리되었다. 이듬해에는 상원봉(上元峰)

아래에 130칸의 행궁과 140칸의 군창(軍倉)을 지은 바 있다. 성내에는 승군(僧軍)을 위한 136칸의 중흥사(重興寺)가 승군 총

섭(總攝)이 있는 곳이었고,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있었다. 성 안에는 8개소의 창고가 있었으며, 99개소의 우물과 26개

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의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성곽

의 여장은 허물어 졌으나, 현재 대서문(大西門)이 남아 있고 장대지(將臺址)·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방어 시설의 일부가

있다. 성벽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참고)

 

현재는 80년대 부터 복원공사를 실시해 성벽은 거의 복원이 되었으나 일부는 정확한 고증없이 축성하여 자연경관을 해치는

이 있으므로 앞으로 복원 공사시에 복원과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동시에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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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2008년 5월4일(일) 흐리고 차차 비

산행인..............山사랑, 셀파, 마이너스

산행코스...........북한산성의 자연성능을 따라 원효능선-염초능선-백운대-만경대능선-산성주능선-의상능선의 암능으로

                        답사, 성문만을 목표로 종주 할 때는 13성문이 되나(수문포함 14성문) 중성문은 산성마을 안에 위치하므

                        로 성곽과 자연성능을 답사하는 취지에 안맞아 배재하였다.(산행,휴식포함 10시간 10분)

  

산행목적.........(원효봉,염초봉,백운대,만경대,의상능선의 암능을 따라 형성된 성곽을 릿지산행으로 답사)

                       북한산이 수십 년 전부터 산성을 복원한다고 능선마다 하얀 화강석으로 줄 쳐 놓은 듯 성벽을 새로 쌓은

                       것이 보기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필자가 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한 70년 초만 하더라도 성문은 대서문

                       만 옛모습으로 지나는 산객들에게 이곳이 북한산성이 있음을 알려주는게 다였고 능선에 있는 모든 성문은

                       지붕이 없는 암문만 남은체로 출입하는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부터 산성을 복원하면서

                       누각공사와 지붕공사를 한다고 북한산성의 모든 성문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성벽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시대별로 복원한 성벽의 모습이 다르고 마치 무대 세트장처

                       럼 보이기도 한다. 산꾼들이 종주코스로 많이 하고있는 13성문 종주 보다는 성벽을 따라 자연성능을 답사

                       하면서 옛 모습이 남아있는 성벽과 개축한 성벽의 문제점을 확인하며 옛 성벽에 깃든 민초들의 땀과 숨결

                       을 느끼고자 산행을 한다. 

                       특히, 이코스는 염초봉과 만경대 의상능선의 깎아지른 암벽을 이용한 자연성능이 있어 북한산성의 방어개념을 확

                       실히 이해하고 백운대를 경유한 릿지산행이 되므로 산행내내 훌륭한 조망을 볼 수 있는게 특징이다.

                 

진행시간.........효자원슈퍼앞(07:50)-시구문(08:10)-원효봉(08:58)-북문(09:04)-염초3봉(10:00/20분휴식)-백운대(11:17)

                      위문(11:45)-만경대(12:20)-용암봉(1;20/중식)-용암문(2:05)-동장대(2:30)-대동문(2:35)-보국문(2:46)-

                      대성문(3:06)-대남문(3:15)-문수봉,국기봉(3:35)-청수동암문(3:46)-715봉(3:55/10분휴식)-나한봉(4:15)-

                      나월봉(4:23)-부왕동암문(4:32)-증취봉(4:43)-용출봉(5:00)-가사당암문(5:10)-의상봉(5:15)-대서문(5:40)

                      북한산성주차장(6:00) (산행시간 - 식사, 휴식, 성벽조사 ,촬영포함 - 10시간 10분)

 

 

                  북한산성 12성문 진행도

 

  

북한산성 성곽,성문(릿지)을 종주한지 십여년 만에 다시 해본다. 일반적으로 하는 성문종주는 성곽을 빼고 성문만 도장 찍듯이

다니기 때문에 보통 6~8시간이 걸리나 염초봉과 백운대를 경유하여 만경대능선을 넘어 의상능선의 가파른 암능을 우회 안하고

(자일하강필수)자연성능을 넘을때는 최소한 2명 이상의 릿지를 하는 팀으로 이루어 10시간 이상을 잡아야 한다. 오후에 비가 온

다고 하여 하늘은 회색빛으로 흐리다. 효자동에서 셀파님과 마이너스님을 만나 원효봉을 향해 출발을 한다.

 

효자리 들머리인 길옆 농원의 나무사이로  의상봉이 살짝 보인다.

 

슈퍼 옆으로 잘 다듬어진 농원의 나무들 사이를 벗어나 20여분쯤 완만한 진달래능선을 오르면 시구문이 나온다. 

  

 1. 시구문(尸柩門)

 

 

시구문의 본래 이름은 서암문(西暗門)으로 대서문 북쪽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해발 180m 기슭에 위치한다. 성안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라 시구문이라 불리었고 이 이름이 원래 성문이름인 서암문을 대신해 지금도 시구문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시구문을 들어가면 좌측으로 성벽을 따라 원효봉 오르는 등산로가 나오고 원효봉릿지를 할때는 시구

을 통과해 직진하여 오솔길로 들어가 위험표지판을 건너 긴 슬랩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원효봉을 오르며 나오는 성벽들~아래의 성벽은 원형처럼 보이나 오래전, 무너진 성벽을 임시로 복구시키는 과정에서

주변의 돌들로 형식적으로 설치해 놓은 것이 많다.

 

 

 시구문에서 성벽 옆으로 계단길을 따라 15여분 오르면 원효봉 서쪽에 위치한 원효암이 나오고 원효암을 지나 능선을

 타고 조금 오르다 보면 원효봉 직전의 독립된 바위봉우리 전망암이 나온다.

 전망암으로 오르는 회원들~ 전망암에 오르면 서있는 곳에서 사방이 막힘없이 다 보인다.

  

전망암에서 북쪽으로 본 노고산과 오두지맥 능선~~우측으로는 상장능선이 보인다.

 

 

전망암에서 북동쪽으로 본 숨은벽으로 오르는 능선, 그 뒤로 상장능선과 도봉산 일대가 보이고~

 

 

바로 앞으로 원효봉 뒤로 염초봉과 백운대, 우측의 만경대가 보이고~

계속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산성 주능선이 길게 지나가며 문수봉 앞으로 연결되는 의상능선이 건너편에 바짝 서있다.

  

 원효봉 까지는 들머리에서 1시간~1시간20분 소요된다. 원효봉에서 북문은 4분거리에 있으며 이곳에서 염초봉 능선이

시작되므로 릿지에 자신없는 산님들은 여기서 우회를 한다. 상운사나 대동사를 거쳐 위문을 경유해 백운대를 오르게 된다.

 

 

 2. 북문(北門)

 

 북한산성 성문 중,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효봉과 영취봉(염초봉)사이 430m 지점에 위치해있다. 4대문중 모두

복원 되었으나 북문만이 누각이 불에타 없어진체 그대로 있다. 정밀하게 짜 맞춘 홍예문의 모습이 세월이 지나도 아름답다

 

 성문 위로 지나다니는 등산객들이 있는데, 문화유적을 보호하는 마음에서 등산로로 다니기 바랍니다.

성 밖으로 밤골계곡 초입과 효자비로 가게되며 안으로는 상운사,대동사를 지나 계곡따라 위문으로 오르며, 성곽따라

원효봉과 우측으로 염초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북문에서 염초봉으로 가는 중간에 나오는 성벽, 마치 너덜지대 같기도한 무너진 돌들과 넓은 성벽

 

 암문이라도 있을법한 곳인데~지나가다 뒤돌아 보고~                 진행방향의 만경대와 노적봉, 성벽 옆으로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이곳의 성벽을 두껍게 쌓여진 이유를 문화재관련자나 아시는분들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염초봉 직벽입구, 이곳을 오르면 직벽이 나오고 이곳부터는 공단 지킴이들이 안전장비 착용여부와 등반자들을 점검한다.

염초봉 절벽뒤로 백운대 서벽과 만경대능선이 보이고 그 아래 중간에는 설인야영장의 넓은 암반이 속살을 드러낸듯 있다.

 

 직벽 앞까지 일반등산객들도 갈 수 있으나 직벽 앞에서 공단지킴이가 안전장비와 함께 염초봉을 갈수있는 등반자인지

검사후 통과시킨다. 직벽앞에서 우측으로 염초봉 바위를 끼고 내려서 조금 가면 전망이 좋은 바위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설인산악회 야영장이라 해서 설인장으로 불리운다, 일반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내려간후, 백운대 서벽 밴드길이나 여우굴

을 경유하여 백운대 정상으로 오를수 있다.

 

 직벽을 지나며 본 원효봉

 

 염초봉 릿지를 하는 사람이라면 직벽을 바로 올라쳐 시작하는데, 확보후에 등반을 해야하며 초보자들이 있을시에

직벽 앞에서 우측의 밴드길을 횡단하여 직벽 상단으로 오르기도 한다.

  

 

 책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 설인장, 사람이 개미만 하게 보이고~

 

책처럼 바위면이 펼쳐졌다 하여 책바위라 부르는...가운데와 좌측,우측으로 다니게 되나 좌,우측은 수십미터 절벽이다.

 

 

책바위를 내려서면 바로 2봉이 나온다. 염초봉에서는 염초봉 내의 큰 바위를 봉으로 부르고있다. 

 

책바위를 내려서 ~ 염초 2봉의 바위, 2봉 뒤로~ 좌측으로 백운대, 우측으로 만경대능선이 보인다.

 

이바위도 여러군데로 가는길이 있다. 상단에서 자일하강을 하여 내려서거나

피아노바위에서 홀드를 잡고 오르내리거나, 피아노바위 상단에서 자일하강으로 내려갈 수 있다.

홀드를 잡고 내려서는데 아래쪽이 수십미터 절벽이므로 상당한 주의가 요한다, 이곳에서는 확보후 홀드로 잡고 내려가거나

안전하게 자일하강을 권한다.

 

피아노치듯 홀드를 잡고 내려가기도 하고 자일하강을 한다.              위에서 본 모습, 릿지 초보자들은 자일하강을 권한다.

 

 

염초3봉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대 서벽과 밴드길이 나무로 띠를 두른듯 있고~

 들머리에서 염초3봉까지 2시간 10분 

 

 

점점 멀어지는 의상능선 뒤로 응봉능선이 보이고~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노적봉으로 연결되는 북장대지(기린봉능선)

 

 

염초봉 정상에서 본 ~ 파랑새능선의 정점인 장군봉, 장군봉 우측으로 백운대로 향한다

 

 

 

염초3봉의 바위구멍들~                                                        염초봉의 성벽들~

염초3봉에서 휴식을 한 자리에서 눈에 띄는 기와파편들~~

그렇다면 이곳도 망루가 있던곳은 아닌지? 다음에는 주변의 암봉 아래를 조사해봐야겠다.

 

  

 바람골을 지나 장군봉 앞에서 뒤돌아 본 염초봉과 쉼바위, 염초봉은 북쪽을 경계하며 산성 내부를 관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다.

 

 

쉼바위 아래의 성벽은 많이 무너져내리고 성벽을 쌓던 돌들이 등산객들의 의자 대용으로 쉼바위 주변에 빙 둘러져있다.

 성벽주변을 등산하는 산객들은 작은돌 하나에도 수백년 전,성벽을 쌓았던 민초들의 땀과 아픔을 느껴야 할 것이다.

12성문이다~14성문이다~성문종주 산행을 한다고 성벽 위를 경주하듯이 달리는 산행은 그 누구라도 자제해야 한다.

특히,1년에 몇차례씩 단체로 성문종주산행대회 하는걸 보게 되는데, 가뜩이나 미어터지는 좁은 산성길에 번호 붙이

고 수십명이 산을 사랑한답시고 뛰어다니는 모습들, 그 주최자들은 반성을 해야한다. 산을 진정하게 아끼는 마음이

있었으면...쉼바위 밑에서는 5~6명의 산객들이 냄새피우며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아직도 산에서 고기굽는 사람이~

 

 파랑새능선의 정상 장군봉, 

 파랑새바위, 또는 장군바위라고도 불리나 염초봉의 바위를 봉으로 부르는데 당연히 봉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날도 장군봉을 오르며 하강하는 바윗꾼들을 많이 본다.   

 

장군봉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오는 숨은벽능선,상장능선, 멀리 도봉산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장군봉을 좌측으로 두고 백운대로 오르면 첫번째 턱진 바위를 오르게되고,이곳을 통과하여 암능을 50여m 진행하면

숨은벽능선이 잘 보이는 V자 골이 있는 절벽이 나오는데, 발디딤이 있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녀 미끄럽고 홀드위치가

초보자들이 오르기는 거리가 멀고 아래가 수십미터 절벽이라 공포심이 생겨 자칫 사고위험이 있는 곳으로 초보자나

자세가 안좋은 사람이 등반시 반드시 확보가 필요한 곳이다. 이 구간을 올라서면 바로 말바위구간이 나온다.

 

  염초봉에서 가장 까다로운 말바위를 지나는 회원들~ 우측으로는 수십미터 절벽이라 ~공포감이 대단한 곳이다.

 말안장 슬랩을 타다 왼쪽의 크랙이 있는곳으로 크랙에 손재밍을 하여 오르는 곳인데 아주 까다롭다. 손재밍을 하여 올라서는

곳인데 자칫 실수하면 그대로 수십미터 절벽으로 추락하게 된다. 크랙이 있는 바위 우측 아래로 내려선후 직벽의 아슬아슬한

30cm 폭의 테라스를 6m가량 지나게되는데 안전을 위해 모두다 확보를 한후 등반하기를 권한다.

 

 

 숨은벽능선과 인수봉 악어능선이 경쟁하듯 우측으로 나란히 달리고~

 

 

키를 재며 달리는 암능 끝에 인수봉과 숨은벽정상이 서있고~ 안부에서 우측으로 백운대로 오르는 호랑이굴이 나온다.

  

  

 

개구멍바위 위, 하강바위에서 본 백운대~

 백운대 직전의 너럭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있는데 나무사이에 꽂아둔 막걸리병이 보인다. 이곳은 릿지를 하는 산꾼만

오는 곳인데 산에 와서 술을 먹고 나무가지에다 꽂아둔 것이다, 저 아래로 집어던지지 않음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까?

산행을 하면서 몇푸대씩 쓰레기를 줍기도 하지만~산을 알만한 사람들이 이러니~모두 다 유산객 투성이라 씁쓰레하다.

 

 하강준비를 하는 회원들~

 

이 바위를 오르지않고 좌측으로 클라이밍다운으로 내려가면 개구멍바위가 있어 그곳을 바짝 엎드려 통과하기도 한다.

자일하강을 하여 곧바로 앞의 바위를 올라 좌측으로 백운대 오르는길에 마지막 슬랩바위를 오르면 백운대 정상이다. 

12성문 자연성능 릿지종주 하면서 백운대에 당도하였으니 3분의1 온것이다. 앞으로 만경대릿지를 넘어 의상능선으로

가야할 일이 아득하다, 하늘은 비가 올려는지 잿빛으로 변해가고 ....

 

 

 백운대정상에서 보이는 뜀바위와 좌측의 만경대, 우측의 보현봉, 의상능선의 암봉들~~

 들머리에서 백운대까지(휴식포함) 3시간20분 소요 

 

 

 

백운대 정상에서 본 만경대~위문에서 장비검사 받고 다시 저곳으로 올라야한다.

 

  

 

비가 온다는 날씨 때문인지 정상으로 오가는 등산객이 많지가 않았다.

 

 

위문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성벽, 마치 변두리 주택가 시멘트 블럭담 같은~~~ 

산성을 복원한다고 하얀 화강석으로 전부 새로 치장을 하였다. 과거에는 없던 성벽인데 바닥에 기초석 몇개 깔린 흔적이 있

다고 이와같이 좋은 조망을 막아버리고 높게 담을 둘러쳤다. 북한산 주능선에 한것은 다 봐줄만한데 이곳은 성벽이 없는것이

났다. 이곳은 백운대 오르는 스카이라인이 빼어난 구간인데 자연경관을 해치지않는 범위에서 복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수봉을 보며 오르는 조망을 막아버린 성벽

 

경우에 따라서는 훼손되지않고 옛모습 그대로 보존된 성곽을 후손들의 자연경관 감상을 위해 헐어낼 필요가 있을텐데,

사진과 같이 엉성하게 복원 한답시고 세계적인 북한산의 자연경관을 망치고 있는것을 보니 이것이 올바른 방법인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현재의 모습

 

성벽이 있기 전의 모습,(필자가 오랜시간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해봄) 

 나무사이로 인수봉이 보이며 우이동과 멀리 상계동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었었다.

 

산성 복원문제 자세히보기  보신후 컴퓨터 상단의 되돌리기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북한산성 복원 이대로 좋은가? http://blog.daum.net/85876/15300863

  

 

3.위문(衛門)

  

위문의 본래이름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으로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안부에 위치하며 북한산성 성문중 가장 높은곳에

(690m)위치한다, 일제시대때부터 위문으로 불리워 왔다고 한다. 암문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통로로 출입문위에 문루를

세우지 않고 몰래 출입하게 만든 문이다, 성안에 필요한 병기나 식량을 운반하고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하거나 적을 역습

할 때 이 암문을 사용한다고 하며 북한산성에는 7개의 암문이 있다.

  

위문주변의 성곽~

 

백운대서 내려가며 절벽밑까지 쌓은 성벽                                    내려가며 올려본 성벽, 절벽이 있어 여기까지 쌓았다.

 위문에서 보이는 성벽                                                        위문에서 만경대 오르는 입구, 각종표지판도 왜 이리 많은지?

 

위문 우측(성밖)으로 우이동으로 하산하며 좌측으로 산성계곡과 대동사 를 지나 북문으로 가게된다. 성문답사만 하는 산행

에서는 위문구간이 가장 힘들고 지루하다. 백운대를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므로 대부분 생략하고 다닌다.(여우굴코스 권장)

위문에서 만경대 오르는 스타바위 앞에서 공단지킴이들이 안전장비 검사를 한다, 2인 이상의 등반자로 하네스와 안전장비는

물론이고 반드시 헬멧을 착용해야만 통과시키고 있으니  참고바람,

 

 위문 바로 위의 스타바위에서 내려다 본 위문의 성벽~ 

 

스타바위란 말은 위문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쉬면서 수십미터 수직절벽을 아무런 확보도 안한체 침니등반으로 오르는

릿지꾼들이 바위 상단까지 무사히 올라가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면서 나온 말이다. 필자도 젊은 한때, 박수소리 들으며

침니등반으로 올라 숱하게 만경대를 다녔었다.

 

 

스타바위 상단의 바위틈을 메꾸며 쌓은 성벽~ 이 높은곳 까지

 

 수백년전, 짚신을 신고 돌을 날라 쌓았다는게~~양 옆으론 까마득한 절벽, 축성을 하는 장면을 잠시 상상해본다.

    

스타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산성내의 여느 성벽길 같다. 옛 성벽이 있는 나무사이로 조금만 오르다보면

여러명이 모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바위가 나온다. 일명 식당바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백운대 서벽과 염초봉이 잘 보이고 노적봉과 그뒤로 의상능선이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만경대 정상에는 여러명의 공단 지킴이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용암문쪽에서 올라 만경대를 거쳐 위문으로 안가고

족두리바위로 하산하는 팀을 단속한다고 하니 어느코스로 다니든 이제는 철저히 안전장비를 갖추고 산행해야겟다.

 

 

만경대 정상의 식당바위에서~ 함께 종주한 회원들~ 마이너스, 山사랑, 셀파 

 공단지킴이가 찍어준 유일한 기념사진, 마이너스님이 워킹이나 릿지를 모두 잘하여 예정시간대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만경대능선과 좌측의 용암봉 뒤로  산성 주능선과 의상능선이 펼쳐지고~

 

 

 직벽을 내려와 V계곡을 횡단하는 회원들~

  

 

 사나운 맹수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사이로 도봉산이 보이고~

 

 

 노적봉 북면이 발 아래로 보이며~그 뒤로 의상능선이 보인다

 

두팔을 벌려 하늘을 난다,

깍아지른 절벽 위에 기기한 바위들...

새가 되어 그 바위를 넘어도 보고 

바위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발 아래로 보이는 암봉들...

저 멀리 봉우리로 인도하는 능선들...

녹음속에 하얀 속살을 비치며 유혹을 한다.

 

 용암봉이 가깝게 다가서고~

 

 

용암봉으로 내려가는길

 이 바위를 내려와 우측에서 식사를 하였다. (1시20분 도착)

남들처럼 먹거리가 좋지는 않아도 김밥에 막걸리 한잔씩 나누어 마시며 우리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슬랩을 타고 내려와 침니길로 내려서게 된다. 좌측으로 노적봉이 보이고

 

 

만경대능선 그 험한 지형에서도 조금 평평한 지대가 나오면 성곽이 있었다. 과거에 무심코 지나치던 성곽들...

 

  만경대능선의 까마득한 절벽 위에도 성벽이 필요한건지? 지나는 산객들은 옛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해 볼 일이다.

 

 

 용암봉의 피아노바위를 통과하며~(사고 많은곳)등 뒤로는 수십미터 절벽이므로 확보를 하고 건너길~~~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듯이 바위를 잡고 발을 옮기며 건너는곳이라 피아노바위라 부른다. 오래전부터 확보없이 즐겨다니던

릿지꾼들이라 해도 이제는 안전을 위해 스스로 확보를 하고 다니는 산행문화가 정착이 되어야 한다.

 

 4. 용암문(龍岩門)

   

본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용암봉에서 성벽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나온다, 해발 580m 지점에 위치하며

옛 북한산장 가는길 중간에 위치하며,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용암문을 나가서 도선사를 경유해 우이동으로 하산할 수 있다.

 

용암문에서 동장대로 가면서 보이는 2단으로 축성된 성벽,

 

  

 

 동장대(東將臺) 북한산성의 3개 대(臺) 동장대,남장대,북장대중 유일하게 있는것

 동장대는 전투시 지휘소로 쓰는곳으로 3개의 대(臺) 중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다. 과거 70년대 이곳을 오르면

둥그스름한 흙산에 성벽은 안보이고 무너진 성벽이 주변에 흩어진체 지금의 동장대가 들어선곳은 풀밭과 마사토로

되어 있었으며 동장대의 기초석만이 여기저기 굴러다녀 흙에 파묻히고 더러는 겉으로 드러나 있어 필자도 쓰러져

뒹구는 기초석에 앉아 김밥 한줄 먹고 잠시 쉬다가 떠나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장대에서 내려가는길~

남산계단길 같이 일률적으로 설치하는 계단은 다리에 무리를 주고 등산객들이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다.

관계자들은 등산로 계단을 자연친화적이면서 등산객들이 기피하지 않게 설치하는 방법을 연구 했으면 좋겠다.

 

5.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성문동쪽을대표하고있는성문으로 우이동진달래능선이끝나는해발540m 지점에위치하고있다.

지금의문은1993년에문루(門樓)갖추는화려하게복원되었다. 넓은 마당이 있어 단체 산객들이 늘 붐빈다.

대성문과 마찬가지로 1993년에 복원 당시 현판의 글씨를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어필을 집자해서 걸었다. 

대동문에서 진달래능선과 소귀천계곡을 지나 우이동으로 하산하며 아카데미하우스와 4-19묘지로 하산하기도 한다.

 

 

 성문 밖에서 본 장면                                                         옛 성벽 위에 다시 쌓은 성벽이 어색하기만...       

 

 

 

6. 보국문(輔國門)

 

정확한본래이름은동암문(東暗門)으로대동문과대성문사이의해발567m 되는지점에위치하고있다..

 아래에 보국사(輔國寺) 있었다고 하여 지금은 보국문(輔國門)이라 불리고 있다.

 보국문은 1993 완전 해체된  복원 되었다..

성문 안쪽 성돌에는 북한산성을 축조  당시인 1711년에 공사책임자와 기간 그리고 구간을 표시한 글이 새겨져 있다.

 

 

 보국문은 정릉에서 올라와 들어서는 암문이며, 이곳에서 다시 산성마을로 내려가 북한산유원지로 갈 수가 있다.

 

 

 대성문으로 오르는 길의 성벽, 성벽의 계단돌이 옛 성벽의 돌이 아닌지?

 

 

 능선을 넘고 봉우리를 넘어 하얀 띠처럼 설치된 성벽들~~

 

 

7.대성문(大城門)


보현봉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해발 625m 지점에 위치한 성문으로 1992년에 복원되었고 현판의 글씨는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임금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로 걸었다. 대성문은 높이 13척(4m)에 폭 14척(4.5m)으로  대남문과 대서문에

비해 월등히 규모가 큰 성문이다. 그 이유는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는 작은암문 이었으나 성문위치가 산성

내 행궁이 있는곳에서 이곳을 통과하여 형제봉을 경유하여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코스에 위치하여 임금이 다니는 성문

으로 더 크게 개축하여 이름도 대성문으로 바뀌었다 한다.



 

 밖에서 본 장면

 대성문을 나가서 정릉 방향으로 갈수 있으며 형제봉을 지나 국민대학교와 평창동으로 갈수가 있다.

 

대성문의 낙서를 지우는 모습~~ 

2005년 1차 제거모습(위 사진)       山사랑,모니카,단아

 2006년 2차 제거모습 山사랑외 5명.........

 

80년대 올림픽을 치르며 우리나라에 힙합문화가 상륙하면서  스프레이로 어두운 골목이나 담벼락 등에 낙서같이

그림을 그리는 스프레이 아트가 젊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며 급기야 산성내의 옛 성벽에 까지 낙서가 되어

있었으며 공단에서 혐오스런 낙서를 지우다가 회색페인트로 덧발라 놓아 낙서제거 하기가 더욱 힘들었었다.

 대성문 성벽 낙서제거보기

 

 

80년대 들어서며 90년대 까지 성벽 복구를 하면서 이와같이 블럭담 같은 성벽모습이 많이 보인다.

 

 

대남문을 가다가 성밖으로 보이는 보현봉, 이곳에서 일출을 보는것이 장관인데 오랫동안 자연휴식년제로 묶여있다.

 보현봉을 지나 사자능선이나 형제봉능선으로 가면서 수많은 낙서들이 있었으나 필자가 15년 전 부터 지웠으나~

아직도 곳곳에 낙서가 많은것으로 안다. 출입금지 구역으로 인해 발길 끊은지 십수년인데, 어째서 아직 안푸는지?

 

  

8. 대남문(大南門)

 

북한산성 성문중 남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 당시는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리웠던 성문이다

해발 715m 의 보현봉과 해발 727m의 문수봉을 잇는 해발 663m 능선 한가운데 안부에 위치한다. 

 

 대남문은 구기동에서 오르는 주요통로 역할을 한다. 대남문으로 내려가 문수봉 바로 아래에 문수사가 있다.

성 안쪽으로 대성암과 행궁지를 지나 북한산계곡으로 갈 수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 본 비봉능선

 

 

문수봉에서 보는 남장대능선과 뒤로 보이는 삼각산 봉우리들~ 저곳을 모두 거쳐왔는데,

 

   

 9.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문수봉과 나한봉사이 해발 694m에 위치한 성문으로 산성 주능선과 의상능선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 있고 

청수동암문은 1999년에 해체 된 후 보수되었다

 

 715봉에서 바라본 문수봉 정상인 칠성봉,

 

 

 715봉에서 본 남장대지와 그 뒤로 지나쳐온 삼각산의 위용들~

 

 

가야 할 의상능선의 봉우리들~ 우측으로 아침에 올랐던 원효봉과 염초봉 일부가 보이고~

 

  

 나월봉의 기암들~ 그 뒤로 중앙에 지나온 나한봉과 좌측으로 715봉이 보인다

 

나월봉 정상부근은 길이 3곳이 있다. 초보자가 다니는 우회길과 암능을 조금 맛보게 되는 위험도가 적은 릿지길이

있으며 바위를 모두 넘어 자일하강을 하는 길이 있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나한봉을 내려와 나월봉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서야 편안한 길로 가게된다.

 

 

 나월봉에서 본 용출,용혈,증취봉과 우측의 원효봉

 

사진에서 보는 나월봉의 기암을 넘게 되면 끝에 보이는 바위에서 자일하강을 하게된다. 좌측으로 삼천사골이며 수십

미터 절벽으로 자연성벽을 이루고있다. 자일하강을 안할때는 이부분에서 조금 빽한뒤 우측으로 진행할 수 있으나

홀드와 발디딤이 양호한 절벽을 이루고 있으므로 초보자가 있을시에는 보조자일로 확보가 필요하다.

 

 

10.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나월봉과 증취봉사이 해발 521m에 위치한 암문으로 북한산성의 7개암문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虹霓門)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소남문(小南門),원각사암문 이라 불리어오다 성 동쪽의

부왕사로 내려가는 계곡일대를 일컫는 부왕동(扶旺洞)을 따서 부왕동암문으로 부른것 같다.

성안으로 부왕사지를 지나 중성문과 대서문을 지나게되며 성밖으로 삼천사계곡으로 가게된다.

 

 

 증취봉의 강아지바위

 의상능선을 다니다 보면 늘 변하지않고 반겨주는 강아지

 

 

 용혈봉, 뒤로 보이는 용출봉이 뾰족하게 솟아있다.

 이곳에 오면 벼락사고로 숨진 산님들이 생각난다. 뜻하지않은 사고로 먼저 가신 님들에게 묵념을 하고....

우측으로 진행해야 쉬운 등로가 나오며, 좌측으로 가면 바위굴 통과하여 가거나 절벽사면을 지나는 쉽지않은곳이다.

 

 

11.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 해발 488m에 위치한 성문으로 부근에 국령사(國寧寺)가 있다하여 국령문,국령사암문으로 불리웠다.

성안으로 국령사가 바로 밑에 위치하고 산성마을의 중성문을 경유하여 대서문으로 가게되며, 성 밖으로 백화사로 가게된다.

성문답사 위주의 산행을 할때는 이곳에서 의상봉을 포기하고 국령사 경유하여 중성문과 대서문으로 가게되나 방어개념인

성곽을 암능지대 까지 한바퀴 돌며 성문을 답사하는 산행이므로 우리는 중성문을 포기하고 이번 산행에서 중요한 의상봉을

오르게 된다. 문수봉에서 빗방울이 비치며 용혈봉에 도착해 내리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다. 

 

 맑은날,의상봉서 보이는 삼각산 봉우리들~~

 좌측부터 염초봉,백운대,만경대능선,건너뛰어 용암봉, 산성주능선으로 연결되고

만경대와 용암봉 앞에 노적봉과 바로앞에는 북장대지가 있는 기린봉이 보인다.

 

 

 의상봉의 명물인 토끼바위

  의상봉의 성벽은 정상 아래서 (북쪽)절벽으로 급하게 꺾이게되며 비가 오는 관계로 서쪽능선을 타고 내려가게 된다.

 

 

 12. 대서문(大西門)


의상봉 서북쪽 해발 150m 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의 서쪽을 대표하는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산성안의 북한동에 거주하는 주민들(대개 식당운영)과 사찰을 다니는 차량으로 인해 점점 훼손이 되어가고 있다. 대서문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지금은 없어진 수문지를 확인후 하산하려 했으나 떨어지는 빗줄기로 인해 대서문에서 산행을 마치고 도로를

따라 산성입구로 걸어간 후, 오늘의 산행을 종료한다.

 

 

 대서문 아래의 계곡에 위치한 수문지,양 옆의 큰 바위사이로 성벽이 있었으나 홍수때 무너져 지금은 형체도 없다.

 

 

종주를 마치고......

아침일찍 시구문을 거쳐 원효봉을 올라 맞은편 종주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오를 의상봉을 바라보며 오늘 걸어야 하는

산성의 능선들과 수많은 봉우리를 한바퀴 둘러본다. 가장 난코스인 염초봉을 지나 백운대를 경유하여 만경대능선을

지나는 릿지산행을 겸하며 산성을 한바퀴 도는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옛 성곽과 성문을 답사하며 주변환경을 조사

하고 필요한 사진들을 촬영하고 기록하며 산행을 하는 것도 시간과 힘이 들었지만 산행후에 모든 기록과 느낀점을

정리해 올리는 일도 산행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힘이드는 일이다. 특히 백운대 오르는 구간의 과도하게 복원한 성벽

문제를 이슈화 시키기 위해 틈틈히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하는등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들였던 산행이였다.

십여년만에 해보는 종주산행을 역할분담을 하여 안전산행을 해준 셀파님과 마이너스님에게 이면을 통해 감사드리며

올해, 눈이 내리기 전에 다시한번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리라 생각해본다. 바라건데 12성문 종주하는 산악인들이여!~

의미없이 성문에서 기념촬영이나 하는 산행을 탈피해서~ 역사의 한 현장인 세월의 때가 깃든 성벽과 성문을 아끼고

보존하여야 함으로 성벽 위로 다니는 행동을 삼가하시고 단체산악회등에서 경주하듯이 12성문 종주산행하는 행위를

금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시 답사산행을 할때는 산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더 연구하고 의문이 갔던 성곽 몇곳

을 집중 탐구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