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보다 정겹고 아름다운 강천산◇ 
  
제 2006003002호         2006-01-08(일) 
  
산 행 지: 광덕산-산성산
위 치: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강천산 개요◇ 
강천산은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996번지 일대에 위용을 자랑하고, 광덕산을 비롯하여 산성산은 연대봉, 선녀봉, 장군봉, 왕자봉, 형제봉, 신선봉, 옥호봉, 수령봉, 깃대봉, 천지봉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랑스러운 산이다.
예전에는 용천산이라 불리었는데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용천산을 이어 광덕산을 이루고 강천산의 진산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산성산에서 남록과 북록으로 나누어 두 용이 나란히 수십리를 동으로 달린다.
그야말로 천봉 만학기암괴석이 천태만상이고 거기서 우거진 천연수림은 태고를 자랑하듯이 바람만 물결을 이루고 있다. 두 산록 가운데는 수십리 깊은 계곡이 있다. 이름있는 계곡만 말하여도 저분 제골(선녀계곡), 원등골, 분통골, 지적골, 소목골, 황우제골, 기우제골, 세낭골, 물통골, 우작골, 동막골, 탑상골(금강계곡), 승방골, 변두골 등이다. 골골마다 발원하여 흐르는 맑은 물이 중천으로 합류하여 돌과 돌, 바위와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는 계곡을 울리며 강천호로 흘러간다. 푸른 숲 맑은 물, 아름답고 시원한 계곡, 계절마다 산의 경관이 변하고 그 경관이 한결같이 수려하여 호남의 금강 강천산이라 부른다.
시냇가에 봄이 오면 버들강아지 피어오르고 개나리, 진달래꽃 만발할 때쯤이면 산봉우리마다 산 벚꽃이 한창이다. 시오리가 넘는 계곡 길을 따라 자갈과 자갈 사이를 맑고 깨끗한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너무도 차가워서인지 맑아서인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강천수로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 본다. 유달리 잡목과 단풍나무가 많은 강천산. 일곱 가지나 되는 단풍 속에서 아기단풍과 아기다람쥐가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단풍철의 정취를 더한다. 산세가 가파르거나 위험하지 않는 여러 갈래의 소로 길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즐겨 찾는 강천산이다.
또한 산을 사랑하는 등산객의 산행에는 안성맞춤이다. 백설이 내리는 겨울이면 한 폭의 설화를 화폭에 담으려는 화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강천산의 사계절이 제각기 모습을 달리 하기에 찾는 이의 마음을 새롭게 한다.
 
◇강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887년 (진성여왕1)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그 후 고려 27대 충숙왕 3년(1316년) 에 덕현선사가 오층석탑을 세우고 중창하여 사찰이 크게 번창하였으나 임진왜란(1596년) 때에 사찰건물과 연대암 등 12암자가 소실되었다. 선조 37년(1604년)에 소요대사가 다시 사찰을 재건하였으나 그 뒤 6.25 동란으로 1950년 12월 완전 소실되었으며 현 건물은 1959년 김장엽 스님이 대웅전, 관음전을 복원하였고 1978년 이경모 스님이 선방과 보광전을 건축한 뒤 비구니의 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재 김재덕 스님이 요사채와 객사를 복원하였다.
강천사의 원명은 복천사(福泉寺)라 하였으며 또한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할 형상이라 하여 용천사(龍泉寺)라고도 하였다. 강천사라는 이름은 선조때 학자 귀봉 송익필이 이곳에 유숙하며 "숙 강천사(宿 剛泉寺)"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으며 이때부터 강천사로 불리었다 한다. 1760년(영조 36년) 경진판 옥천군지에 의하면 불전이 3개소, 승방이 12개소이며, 명적암, 용대암, 왕주암, 지적암 등 강천사에 속한 암자가12개가 있었다 하니
그 당시 500여 수도승이 살았다는 대 거찰 이었다고 한다.
 
◇국내최초 군립공원◇ 
1981년 1월 7일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584m)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 그리고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절경 등의 볼거리를 두루 갖추었으며 서로 산성산(603m), 남으로 광덕산(578m)을 포함한다.
 
◇삼인대(三印臺) (지방유형문화재 제27호) 
조선조 연산군 12년(1506), 중종 반정이 성공된 후 공신들은 왕비인 신씨를 역적 신수근의 딸이라 하여 폐출하고 장경왕후 윤씨를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지 10년만인 중종 10년(1515)에 서거하였다.
소식이 전전해지자 당시 순창군수 충암 김정(金淨), 담양부사 눌재 박상(朴祥), 무안현감 석헌 유옥(柳沃) 등이 회동, 결의하여 폐출 되었던 단경왕후 신씨 복위상소를 올렸다.
3선생은 관직삭탈(官職削奪)과 죽음을 각오하고 직인(職印)을 소나무 가지에 걸었다. 그 뒤 이곳에 비각을 건립하고 삼인대라 하게 되었다. 그 후 1775년 (영조 51년)에 조정에서는 신비(愼妃)를 복위하였고,
단경왕후(端敬王后)라 추증했다.
삼인대는 지난 1963, 1977, 1987, 1991년에 보수(단청)하고 주변에 철책을 세워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1978년에는 "삼인대 비(碑)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 음각하여 비각옆에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1994년 지역의 향토인과 세 분 선생의 후손들에 의해 삼인 문화 선양회가 구성되어1995년부터 매년 8월 삼인 문화축제를 삼인대에서 개최하고 있다.
 
◇ 주요 구간별 소요시간 ◇ 
07:30=양재역 서초 구민회관 출발
11:03=강천산 주차장 도착
11:09=강천산 주차장 출발(산행시작)
11:18=강천산 매표소 출발
11:52=금강교(구름다리)
12:10=신성봉 전망대 (425m)
12:48=광덕산 (579m)
13:57=시루봉 (526m)
14:01=금성산성(동문)
14:27=산성산 (603m)
14:32=갈림길
15:12=제2강천호수
15:18=구장군폭포
15:46=강천사
16:10=주차장 도착<산행시간 : 5시간 01분(사진 촬영 휴식 널널)>
16:34=주차장 출발
16:47=순창고추장 단지 도착
21:00= 양재역 도착
 
◇ 산행기◇ 
집을 나서는 새벽 날씨는 겨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달콤한 공기는 마치 봄날처럼 포근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상쾌하다.
응암역에 들어서니 넓은 실내에는 달랑 2사람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어 적막감이 감돈다.
양재역 서초구민회 관에서 버스에 승차하여 열심히 졸고 있는데 차가 우측으로 심하게 기울어 정신을 가다듬고 커튼을 젖히고 차창 밖을 내다보니 벌써 호남고속도로를 벗어나 21번 국도에 접어들어 질주하고 있고 사방은 쌀가루보다
더 흰 눈 천지의 넓은 들판을 달리고 있다.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아이젠과 동절기장비 간식을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하니 산행대장이 목적지가 다와 간다며 산행코스와 예상시간, 원점회기 산행이라고 꼼꼼한 설명이 끝나니 주차장에 안전하게 정차했다.(11:03)
내린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계천다리를 건너 상가 지역을 벗어나니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매표소를 통과하니‘죄진 사람도 병풍바위 밑을 지나오면 깨끗해진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오는 병풍폭포의 얼음폭포는 보석처럼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개울건너에는 나무로 정성들여 닦아둔 오솔길이 백설과 어우러져 매우 서정적이다.
일주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서니 독경소리가 낭랑하다.
속세의 온갖 무거운 번뇌와 시름들을 염불소리에 날려버리니 육신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대웅전에 머리를 조아린다.
삼인대 비앞에 서서 의로운 것이 무엇이며 충절은 어떤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보고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서보니 주위에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너무 많은 시간을 강천사와 삼인대에서 활애 했었나 보다.
이층육각정을 뒤로하고 서둘렀더니 호흡이 거칠어지고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피어나니 구름다리에 이르렀고 출렁거리는 현수교를 건너서 미끄럽고 험한 눈길을 치고 오르니 N산악회 마크를 달고 산행중인 사람들을 제치고 신성봉에 올라서 뒤쪽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계곡은 고느적한 분위기의 강천사와 눈이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아름답기 그지없다.(12:12)
광덕산으로 길을 잡을 때는 어느새 선두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눈밭에 늠름하게 서있는 멋진 소나무를 뒤로하니 특정 없는 평범한 산길이 이어지고 시장기가 들어 생각해보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먹은 것은 커피한잔이 전부였다.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에 걸어가며 감귤과 양갱 과자로 식사를 대신하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가파른 길이 잠시 이어지나 싶더니 전망이 탁 트이고 산성의 형태가 선명하다. 눈을 온몸에 두르고 위용스럽게 전망되는 나뭇가지에
'김정길'님의 전국1,500개산을 순례중인 증표와 정상석이 조화롭다.(12;48)
철 계단과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니 헬기장과 산림도로가 있는 곳에서 잠시 망설이다 지도와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응달이라 많은 눈이 쌓여 미끄러운 오르막을 힘겨운 날갯짓으로 올랐다. 순창군에서 설치한 소나무 번호표숫자를 헤아리며 눈길을 헤치니 눈 속에 형체만 보이는 그림 같은 마을과 철 계단사이로 보여주는 시루봉이 위풍당당하다.
미끄러운 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니 시루봉 앞이다.(13:57)
지형이 높고 기온이 차가워 내린 눈이 거의 그대로 있어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서니
금성산성(동문)이다.(14:01)
담양군에서 설치한 동문보수와 동문 터에 대한 설명문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운대봉으로 향한다.
운대봉에서 송락바위(좌측)로 방향을 잡고 끝이 보이지 않고 이어지는 성벽을 따라가다 지나온 마루 금을 뒤돌아보니 지나온 산마루가 아득하다는 생각을 하며 진행하니 좌측에 바다처럼 푸른 담양호가 조망 되고 성벽 위에 볼록 올라온
곳에 담양군 산성산(603m)라는 표지목이 서있다.(14:27)
이어지는 성벽 위에는 많은 눈이 쌓여있어 미끄럽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경사로를 내려서니 넓은 공터에 먼저 도착한
산객들이 눈 위에서 라면을 끊이고 있어 기다렸다 한입 얻어먹는 산에서의 라면은 각별하게 맛있다.
급한 내리막길의 험로를 조심조심 내려서니 붉은색 철 계단이 이어지고 내리막을 내려서니 송락바위와 강천사 그리고 제2강천호수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니 인공 재방이 기다렸다.(15:12)
호수에는 있어야 할 물은 없고 완전하게 바닥을 드러낸 모래톱위로 소복하게 눈만 쌓여있는 재방위에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로막고선 산행대장이 시간상 예정된 코스를 여기서 접고 하산을 해야 할 것 같다며 표면으로는 동의를 구하고 있었으나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7명은 이미 하산을 하고 있는 분위기 여서 대세를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뚝 방을 내려서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었으나 물통 속은 흙덩이와 얼어붙은 눈과 플라스틱이 어지럽게 널려있어
약수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몇 발자국을 내려서며 내 눈을 의심해야 할 영롱한 대형보석을 발견했다.(15:18)
마치 동굴 속의 종유석이 세상 밖으로 구경나온 냥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을 달리하고 있는 대형 자연 얼음조형 물 구장군폭포의  황홀감은 단축한 산행을 보상해 주고도 남을 기쁨을 선사해주었고 구장군을 상징하는 아홉 개의 돌탑과 오색 태양의 자연조명을 받아 은은한 자태의 팔각정을 덤으로 받는 가슴 뿌듯한 순간에 도취 많은 시간을 즐기고 있다 후미대장의 그만 가자는 재촉을 받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15:30)
날씨가 포근해서 눈이 녹고 있는 형상이 오전 산행시작 때보다 눈에 띠였고 구름다리는 파란하늘에 걸려있는 달님을 머리에 이고 있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15:37)
서둘러 강천사와 일주문을 뒤로하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도중에서 하산한 그룹과 선두를 지켰던 팀들이 어우러져
노상에서 식사중이다.(16:10)
배낭을 버스에 내려놓고 산악회에서 제공해준 밥과 된장국을 배식 받아 허기를 때웠다.
식사를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고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16:34)
정상적으로 서울에 도착한다면 20시 전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산행대장이 마이크로 순창군이  지정한 전통고추장 단지에 들려서 구경도 하고 막걸리도 한잔씩 하고 가자고 안내했고
잠시 뒤에 전통 한옥 집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16:47)
차에서 내려 주변을 서성거리다 풍경을 디카에 담고 빈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기가 지루해 흘러가버린 가정법까지 동원하여 여기서 지체한 시간이면 오늘 예정한 산행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청에서 보증해주는 전통 집들도 장삿속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길게 느끼며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가 서서히 움직인다.
 
◇어필로그◇
금강산보다 아름다운 군립공원 강천산행은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는 2번째 산행이다.
호남지사장 근무의 명(命)받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막내아들 녀석을 두고 근무지로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유치원(지금 중학교 입학예정)을 대동하고 가족들과 잠시 들렸던 은은한 가을빛의 애기단풍과 구름다리를 거처 신선봉으로 가는 동안 쉬 임 없이 조잘대는 소리가 노래처럼 감미롭게 즐기며 함께 올랐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계절이 일곱 번 바뀌고 다시 찾은 강천산은 화려한 단풍에서 백색의 눈옷으로 갈아입고 있었지만 웅장하고 섬세함을 유지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느끼며 부족한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즐겁고 행복했던 산행을 마감하고
양재역에 하차한 시간이 21시였고 전철역에 들어서자 열차가 함께 들어왔고 연신내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귀가한 시간이 22시9분으로 멀리 호남에서 산행과 눈 구경을 실컷 하고도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니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하루였다고 자평하며 긴 여정을 마무리 한다.
 
 
 
~꿈과 희망 그리고 호연지기를 다지며 호남정맥 산성산 능선에 서서~
 
 
2006-01-11 
 
 
계백(올림) 
 
 
PS : 졸작을 끝가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