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산행기(안성-향적봉-삼공리)

ㅇ 일시 : 2005. 12. 24(토)
ㅇ 코스 : 안성매표소-동엽령-송계삼거리-중봉-향적봉-백련사-삼공리(약17-18km. 7시간소요)
ㅇ 누구와 : 안내산악회 따라 직장동료 2명과 함께

  

   안성매표소에 도착도 하기 전, 세상은 이미 눈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산에, 들에 온통 눈들이 점령한 세상은 무섭도록 고요한 정적과 햇살에 반짝이는 찬란함. 그리고 눈 속에 갇힌 지붕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깊은 한숨과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이었습니다. 대전과 무주가 채 한 시간 거리도 안되는데 세상은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안성매표소에 도착하자 출입이 여의치 않아, 약간 우회하여 산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막상 등산로에 들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눈이 많지 않아 진행이 순조롭습니다. 칠연계곡의 소나무들과 아름다운 눈꽃들을 감상하며 차분히 동업령을 향해 진행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진행하니 본격적인 눈꽃의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건 눈꽃이 아니라 설목(雪木)이라고 하여야 할까. 나무 가지에만 눈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전체가 온통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땅도, 하늘도, 보이는 나무들 모두도, 온통 하얀 색에 뒤덮여 있어 사진을 찍으면 전혀 공간감이 살아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 길을 탄성과 함께 약 한 시간 여를 더 진행합니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마음속이 온통 하얀 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니 마음속으로 아무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느낍니다. 그저 저 백색의 세상에 온통 파묻혀버림을 느낄 뿐입니다. 나중에는 눈(目)마저 부셔오기 시작합니다. 디카를 찍어도 눈이 부셔서 사진 확인이 잘되지 않습니다. 어쩜 하얀 하고 하얀 세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합니다. 약 한 시간 여 만에 다시 본 파란하고 파란 하늘빛이 너무도 선명하고 반갑기마저 합니다.

  

   동엽령에 도착합니다. 안성매표소를 출발한지 두 시간 여 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맑고도 맑아 시야 닿는 곳마다 막히는 곳이 없습니다. 훤히 보이는 지리산 능선을 시작으로 운장산, 대둔산, 적상산. 민주지산, 황학산, 금오산, 가야산, 그리고 저 눈부신 남덕유와 서봉을 시작으로 힘차게 내딛은 덕유산의 줄기가 온통 흰눈을 뒤집어 쓴 채 우리를 반겨줍니다. 참 황홀한 조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엽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바로 능선길로 들어섭니다.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길이지만 오늘은 바람도 적어 산행하기 더없이 좋습니다. 다만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로 나 있는 눈길 위의 등산로를, 마주 오는 사람과 교차하여야 할 경우에는 많이 불편하고 시간이 지체됩니다.

  

   그렇게 어느덧 송계삼거리를 지나고 중봉 앞에 이릅니다. 덕유산에서 바람이 가장 센 곳. 그에 걸맞게 눈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철쭉나무에 피어있는 저 새하얀 눈꽃들. 나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저 설화들을, 저는 어떻게 아름답다고 하여야 할지 표현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슴속에 그 풍경을 새겨두고 새겨둘 뿐입니다.

  

   이제 중봉 오름길로 들어섭니다. 약간 힘이 듭니다. 눈길이라 체력소모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는가봅니다. 한발 한발 마침내 중봉에 올라섭니다. 바람이 무척 거세고 춥습니다. 그렇지만 중봉에 올라 바라보는 덕유의 저 줄기들은 언제 보아도 정말 장쾌하고 멋있습니다. 남덕유에서부터 휘몰아쳐 오는 줄기들이 가슴을 확 뚫어 놓고 지나가는 듯 합니다.

  

   산에 오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저도 저 산줄기들처럼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능선들처럼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일에 부딪힐 때마다 왜이리 옹졸하게 살아 왔는지. 언제쯤이면 저 산의 마음에 반에 반만이라도 닮아 갈 수 있을련지. 중봉에 올라 부족하기 만한 마음을 잠시 칼바람 앞에 세워 봅니다.

  

   이제 향적봉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참 부드럽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곡선을 가진 봉우리, 향적봉입니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설천봉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로 조금 붐비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쌓여 있는 주목 위의 눈꽃들에게 이내 시선을 빼앗기고 맙니다. 작년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다녀갔던 설천봉, 향로봉, 중봉 코스. 크고 깊은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눈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라 다시 걸어보아도 마음을 빼앗기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향로봉 가는 길의 외톨이 주목도 여전히 아름다워 반가웠고, 눈을 가득 이고 있는 향적봉 대피소의 지붕들도 반가웠습니다. 향적봉에 올라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이 엄청난 눈길 속에서 만났던 풍경들이 그저 꿈처럼 아름다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산길에는, 이 눈 속에서 생계를 걱정하여야 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고, 황우석 교수의 옳고 그름이 이 산중에까지 따라와 끊이지 않고 귀를 따갑게 하는데, 그들의 아픔과 함께 하지 못하고, 홀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빠져 있었음이 내내 부끄럽고, 죄스러워, 후회하는 마음이 구천동 계곡을 졸졸졸 흐르기도 하였습니다. 
  

  

(칠연계곡 풍경)

 

 

(동엽령 오름길)

 

 

(동엽령 오름길 눈 속 풍경)

 

 

(동엽령 오름길 눈 속 풍경)

 

 


(동엽령 오름길 눈 속 풍경)

 

 

(동엽령 오름길 눈 속 풍경)

 

 

(동엽령 오름길 눈 속 풍경)

 

 

(동엽령 오름길 눈꽃과 하늘)

 

 

(동엽령)

 

 

(동엽령에서 본 덕유능선)

 

 

(송계삼거리 가는 길에 뒤돌아본 남덕유방향)

 

 

(눈꽃과 덕유능선)

 

 

(가야 할 덕유능선)

 

 

(중봉 아래 풍경)

 

 

(중봉 아래 풍경)

 

 

(중봉 아래 풍경)

 

 

(중봉 풍경)

 

 

(중봉에서 본 남덕유와 능선)

 

 

(중봉에서 본 향적봉)

 

 

(향적봉 가는 길 설경)

 

 

(향적봉 가는 길 설경)

 

 

(향적봉 가는 길 설경)

 

 

(향적봉 가는 길 설경)

 

 

(향적봉 가는 길의 주목)

 

 

(향적봉에서 뒤돌아본 풍경-멀리 지리의 주능선이 한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