舞衣島 虎龍谷山/국사봉 일주 산행기



구간 : 샘꾸미 마을 등산로 입구 - 호룡곡산 - 도로 - 국사봉 - 큰무리 마을/선착장

행정구역 : 인천시 중구 무의도

산행일시 : 2003년 12월 14일/맑음

출발예정 시간 : 2003년 12월 14일 오전 8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 제일은행 앞

산행거리 : 총 7km

산행시간 : 총 3시간 50분(10 : 30 ~ 14 : 20)

산행코스 :
샘꾸미 마을입구 등산로(1.7km) - 호룡곡산(1.4km) - 구름다리/도로(1km) - 국사봉 (2.1km) - 큰무리 마을(0.8km) - 큰무리 선착장(소요시간 3시간)

지형도 :
- 1/2만 5천 三木[1996. 1. 인쇄], 舞衣[1995. 10. 인쇄]
- 1/5만 龍游(유)

회비 : 금 20,000원. 참가 인원 총 43명



산행후기 :


지난 완도 상황봉 산행 이래 실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섬 산행을 하여 좋았다. 모쪼록 이를 추진해 준 문대장 이하 간부진과 리더진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혼탁한 서울의 콘크리트 숲 속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가까운 거리에서 모처럼 아름다운 섬의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그리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으며 적당한 높이와 경사를 가지고 있어서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고 쉽게 올라갈 수 있고, 제법 웅장한 산세와 계곡, 숲이 어우러진 호룡곡산과 국사봉이 있어서 좋았는데, 더구나 등산로 곳곳에 조망대와 쉼터가 있어 더 좋았다. 등산로는 울창한 나무사이로 나 있어 꿩이라도 만날 것 같았으나 그런 행운은 잡지 못하여 아쉬웠다. 발아래 흐르는 계곡물을 밞으며 자연의 신비함을 느끼고 시원하게 트인 바다를 조망하면서 기분좋게 땀을 흘리고 난 뒤 우뚝 솟아 있는 호룡곡산과 국사봉 정상에 서니,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등줄기의 땀이 식으면서 한기까지 들게 하여 좋고, 눈앞에는 넓은 바다 건너 서해의 관문 인천항을 비롯해서 이미 뭍과 다리로 연결된 영종도와 용유도 뿐만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 가슴이 후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팔미도,.자월도,.영흥도 등의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여하튼 이 섬이 펼치는 장관은 길이 뇌리에 간직될 것이다. 등산로는 샘꾸미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호룡곡산을 지나 국사봉을 넘어 큰무리 마을까지 가거나, 그 반대 방향으로 할 수 있으나 우리는 전자를 택하였다. 아무튼 등산로는 약 7km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노약자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고, 특히 연인이나 가족 동반 산행지로 적합할 것 같아 이에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나도 나중에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해돋이나 낙조를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등산을 하고 나서 곧바로 해수욕으로 몸을 식히면 금상첨화일 것 같은데, 마침 때가 겨울철이라 우리는 대신 불타는 조개구이로 이슬이를 비워내며 등산의 피로를 씻었다.

멋진넘과 도치의 장모님과 고모님도 편안하고 즐겁게 산행을 하셨다니 감사할 뿐이다. 산행 속도가 빠르심에도 불구하시고 하산까지 재미있는 말씀과 같이 동무 해주신 이영주 사장님과 눈이 녹아 약한 빙판의 내리막길에서는 친부모를 모시듯 친절하게 손을 잡고 안내를 하던 오승렬 리더, 비록 급조한 지팡이지만 이를 정성껏 만들어 드린 정상덕님 등 여러 회원들의 봉사가 이루어낸 개가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딸과 사위를 대견스럽게 생각하시며 눈을 밟아보신다며 좋아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불현듯, 친아버지와 장인, 장모님을 저 세상으로 하직한 나는 그저 상념에 잠기며 묵묵히 산행을 하였을 뿐이다.

산행 후에도 선착장에 내려와서 불타는 조개와 이슬이 속에서 서로 나누는 술잔은 또한번의 우리들의 결속을 다지게 하였다. 바쁜 중에서도 닭죽을 직접 끓여서 하산 후 회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준비한 김재국, 임영택 리더의 정성은 먹는 줄거움 보다도 그것을 보는 것조차가 한없이 끈끈하고 푸근한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특히 일행과 헤어져 집 가까이 화곡동에서 별도로 이영주 사장님과 한잔을 더 거후르다 보니 그토록 술을 좋아하던 이태백이 읊은 시가 생각나게 한다. 올해도 다 저문 이때 시름에 겨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그 모두를 위하여 한 잔 ! 나도 그것을 핑계로 하여 박주를 마시고 허풍을 쳐 봄직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君愛身後名 그대는 죽은 후의 이름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我愛眼前酒 나는 눈앞에 있는 술을 좋아한다네.
且樂生前一杯酒 살아 생전 한 잔 술 즐길지니
何須身後千載名 죽고 난 후 천년 동안의 이름이면 무엇하겠는가?
굳이 멀리 중국까지 갈 필요도 없이 가까이 우리 한국에서도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가 있지 않던가! 이영주 사장님과의 조개구이 안주도 좋았지만, 나는 살며시 아래에 옮겨 적은 장진주사도 안주로 삼았음을 슬며시 밝혀 둔다. 특히 그 중에서 “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을 꺾어 셈하며 다함 없이 먹세그려”라는 이 구절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겨우 이슬이 한 병을 비웠음에도 전주가 있어서인지 세상이 돈짝만 해보였다. 모처럼 느끼는 희열이었다. 이영주 사장님 내외분의 넉넉한 인품이 좋았고, 고산자 김정호를 앞지르라는 격려의 말씀은 깊이 마음에 각인되었다. 감사드린다.
한 잔(盞) 먹사이다 또 한잔 먹사이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사이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 할꼬.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을 꺾어 셈하며 다함 없이 먹세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졸라 메어 가거나, 좋은 상여에 만 사람이 울며 따라 가거나, 억새와 속새와 떡갈나무와 백양 숲 속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에 회오리바람이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고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들이 휘파람을 불며 놀 때 가서야 뉘우친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종로 3가에서의 뒷풀이에 평소보다도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성황이었다는 후문이 있으나, 나는 올림픽대로 강서구 발산 인터체인지에서 일찍 내리는 바람에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여 다소 궁금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그 넓은 틈을 이영주 사장님 내외분께서 넉넉하게 메워 주셔서 그저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舞衣島는 영종도의 서쪽 끝. 서울에서 2시간, 인천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천혜의 자연미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이다. 마침 겨울철이라서 여름철의 시끌벅적함을 묻어버린 섬은 평온하고 고즈넉하였다. 그 이름은 투구 쓰고 갑옷 입은 장수가 칼춤을 추는 모습이라는 섬의 형태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섬에 안개가 낀 날 밖에서 섬을 보면 말을 탄 장수의 옷깃이 휘날리며 달리는 형상이 나타난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또한 옷자락을 나풀거리는 무희(舞姬) 같다고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舞衣島는 현재 인천시 중구에 속하는 섬으로서, 어미섬 대무의도와 새끼섬 소무의도로 이뤄져 있다. 무의도는 최근 영종도와 함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국제적인 종합해양관광단지 조성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지금의 평온함을 잃기 전에 찾아보려면 서둘러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무의도는 무엇보다도 서쪽에 위치해 있는 길이 약 2km 정도의 하나개 해변에서 가족 또는 연인끼리 함께 맨발로 갯벌을 걸어 보고 동북. 바지락 등의 갖가지 조개도 잡아 보는 갯벌 체험을 쉽게 할 수 있는 섬이다. 하나개 해변에는 썰물이 되면 비교적 넓게 갯벌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갯벌은 조차(潮差)가 심한 해안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만조 때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간조때는 바닷물이 나가는 해안선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갯벌은 개펄로 이루어진 갯벌과 모래밭이 펼쳐지는 모래 갯벌로 구분할 수 있다.
舞衣島 북서쪽의 實尾島를 마주보고 있는 큰무리해변(실미해변)에는 100년 이상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해변을 감싸며 군락을 이루고 있고 모래 사장의 길이가 2km, 깊이가 25-35m나 되는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이채롭다고 한다. 여기서 썰물이 되면 하루에 두번 물이 갈라지면서 드러나는 신비의 바닷길(실미 모세길이라 함) 걸어서 실미도에 들어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갯벌에는 아직도 낙지가 집을 짓고 민챙이와 칠게, 고동이 살아 숨쉬어 먹을 것이 풍부하다고 하는 바, 비록 하나개 해변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기는 하지만 한적하고 평온함을 즐기려는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찾아보기에는 하나개 해변보다 더 좋다고 한다.



그저께는 우리 서울산사람들이 주최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일일호프 행사에 참석하여 멋진 이들과 몸살감기 가운데서도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다. 이어 어제는 회사내에서 ‘현장소장 회의’ 행사에 참석한 후 북한산 정릉-보국문 코스 산행을 리더역을 수행하고, 뒷풀이로 정릉의 한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많이 마신 뒤에 집으로 오다가 차마 그냥 올 수 없어 도치님과 멋진넘씨에게 전화를 해서 인사동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이면수 구이를 안주로 하여 3양푼의 술을 비우고 들어왔던 터였다. 토요일 오후 늦은 터이라 재국씨랑, 쩡애씨, 고래님 등은 연락이 안 된다 하여 셋이서 인생사와 삼라만상에 이르기까지의 숱한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었다. 이처럼 몸살감기에 이어지는 술자리로 인하여 오늘 아침도 여느 때처럼 늦장을 부렸다. 출발예정시간이 아침 8시라 하여서 7시 30분보다는 무척 긴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애초부터 글렀던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찍 깨워 주었지만 여유를 부린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다. 그래서 7시 30분이 되어서야 마구 배낭에 쑤셔넣은 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종로 종각역 제일은행 앞에 도착하니 약 7시 50분 정도이다. 많은 분들이 이미 나와 있다.

마침 고래님이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디서 커피를 뽑아 누구에게 주려는지 정성스레 서너 잔을 가져가고 있다. 마침 matroos님 부부께서 오시길래 같이 인사하고 같이 버스에 오른다. 큰 형님, 문대장, 정상덕씨 부부, 정상윤리더와 오승렬 리더 등이 반가이 맞아 준다. 언제나처럼 우측 열 3번째 좌석에 앉는다. 모든 분들이 나에게 배려해 준 고정석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두 좌석을 차지하고 가니 말이다. 그 배려에 대하여는 언젠가는 갚아드리려고 마음먹고 있다.

산행에 온 분들의 면면을 보니 위에 언급한 분 외에도 동순갑씨와 그 동료, 멋진넘과 도치와 장모님과 고모님, 이영주 사장님 부부와 그 조카, 언제나 다정한 친구사이인 약장수님과 늘근소님, 김재중, 복남씨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던 친구, 서연씨. 준호와 그 엄마 그리고 친구, 다람쥐님, 뜸부기님, 도토리님, EY님이 보이고, 지난 추월산 산행 이래 오랜만에 온 쩡애님, 처음 나오신 푸른하늘님이 반갑다. 모두들 무언가 열심히 즐겁게들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아주 평화스럽다. 그러나, 양인호님, 포천의 사장님, 아이비님, 재준이 가족, 박경화님 기타 여러분들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큰형님 및 시커먼스님 쪽에서 찰떡과 초코렛, 순무 등이 자꾸 전달되어 온다. 아침을 먹고 나온 터라 계속 거부하기도 뭐하여 순무와 찰떡을 받아 먹었다. 찰떡은 어찌나 찰이 진지 목에 달라붙어 버릴 듯하여 몹시 불안하였다. 순무는 싸한게 여운이 오래 남는다. 모두 이렇게 남을 위하여 기꺼이 권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좋은 일이고 훈훈한 일인가? 그런데 최근 정상덕님의 건강이 말썽을 부린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 글을 통해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짜총과 정대현 대장 부부가 지각하는 바람에 8시 13분이 되어서야 버스가 출발한다. 아마 그 부부도 뭔가 때문에 늑장을 부린 것인가 보다. 나처럼..... 버스는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이태원에서 올림픽대로를 시원스레 달린다. 정상윤 리더의 산행지도 교부에 이어 문대장의 간단한 산행루트 설명이 이어진다. 자세히 알려주어 많은 도움이 된다. 이어 짜총이 오래만에 총무역활을 하며 회비를 징수한다. 이어 어느덧 버스는 시원스레 뚫려 있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휑하니 달린다.

이윽고, 09시 경이 되어서 영종대교 건너기 전에 영종대교기념관 휴게소에 버스가 정차한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그렇게 멋져 보이던 무의도였지만 실제로 들어와 보지는 않은 곳이라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니 기념관과 간이 편의점이 있다. 기념관은 개관시간이 09 : 30이라서인지 아직 굳게 닫혀 있다. 폐관시간은 동절기가 17시, 하절기가 18시까지란다. 이왕 돌아보았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조각 작품인 “비상”이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고, 그 앞에는 양배추를 닮은 꽃이 얼어죽어 있고 주위에는 서리가 잔뜩 내려있어 계절을 가늠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조각 뒤에는 간이 쉼터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있어 혹자는 이를 이용하여 바다를 감상하는 측도 있었다. 편의점에는 일반 잡화는 물론이고, 커피와 우동, 샌드위치 등도 있어 정상덕씨, 짜총 부부 등이 열심히 아침을 때우고 있었다.

9시 20분이 넘어서 버스 바퀴는 다시 구르기 시작한다. 기념관을 우측으로 돌아나가더니 이내 영종대교를 건넌다. 겨울이라도 바다를 보니 역시 가슴이 확 튀는 듯한 희열감을 느끼게 한다. 참으로 장중한 다리다. 이제 우리 기술진도 이 정도는 거뜬하게 해 낼 수 있다는 게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이러한 자랑거리인 이 다리가 아무튼 부실공사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평소에 유지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이어 영종대교를 건너니 좌측에는 방파제 너머 넓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직진하는데, '화물터미널', '공항신도시'이 적힌 이정표가 나온 뒤 "용유, 무의"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영종대교를 건넌 후 10분가량 된 듯하다. 이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면 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한다. 6차선의 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우측에는 동북아 최대의 인천국제공항(영종도 신공항)이 펼쳐진다. 대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감상하며 6분 가량을 가니 중간 중간 "무의도 4.4㎞", "무의도 1.4㎞"라는 안내판이 나온 뒤 무의도, 잠진도가 적힌 이정표가 나오는데, 여기서 버스가 좌회전한 후 연육도로를 진행하니 잠시 후에 잠진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제 눈앞에는 무의도가 건너편으로 성큼 다가서 있었다. 조금 넓은 마당에는 차가 이미 여러 대 들어서 있고, 잠진도-무의행 여객 터미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우측으로는 조개구이 집과 바지락 칼국수를 파는 음식점들이 별로 깨끗하지는 않지만 자리잡고 있어 허기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이한 것은 잠진도 선착장에는 영화 “실미도”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는 사실이었다. 이 조그만 섬에 웬 영화포스터냐 생각하며 의아했으나, 우리가 오늘 산행하려는 무의도 서쪽에 실제로 실미도가 있어서 그렇단다. 그간 시사회를 통하여 관심을 제고시키고 있는 영화 실미도는 24일 개봉되는데, 제작 시네마서비스, 공동제작 한맥영화, 강우석 감독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고난을 겪던 인찬(설경구)은 조직폭력배 활동으로 체포된다. 사형 집행 직전 그는 극비로 특수부대를 창설하게 된 최재현 준위(안성기)로부터 사면 대가로 부대원이 될 것을 요청받는다. 실미도로 간 인찬은 같은 처지의 다른 대원들과 함께 모진 훈련을 받으며 살인병기가 된다는 내용이란다. 실미도 684 북파 특수부대원들의 실화를 32년 만에 카메라에 담아 스크린서 재현한 것으로서 북파부대원들 비극이 특수효과 의존 안 한 가운데서도 그 거대한 비극이 지닌 서사의 힘을 정공법으로 살려냈다고 하여 흥미를 끈다. 24일 개봉한다니 시간이 되면 82억원을 들인 이 대작을 봐야겠다.

잠시 여기서 조선일보 ‘03. 12. 15. B 19면에서 이동진 기자(djlee@chosun.com)의 소개 글을 인용해 둔다.
《<실미도> "누가 이들에게 '올가미'를 씌웠나"
‘실미도’라는 이 영화, 참 촌스럽다. 맘만 먹으면 북한 땅에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시대에 냉전 당시 실화에 눈 돌리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온갖 효과를 낼 수 있는 순간에 몸으로 직접 해결하는 액션을 밀어붙이며, 이미지가 모두를 결정하는 때에 순진하게도 이야기의 힘을 믿다니.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촌스러움이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2시간15분 긴장 끝에 뒤엉켜 몰려오는 슬픔과 분노는 마침내 객석 곳곳에서 감동을 격발한다. 그 촌스러움의 다른 이름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실미도’는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남파됐던 1968년 ‘김신조 사건’의 충격 직후 보복 차원에서 조직됐다가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3년 후 버림받게 된 北派부대 실화를 다뤘다. 강우석 감독은 너무나 극적인 소재를 영화화하면서 거대한 비극이 지닌 서사의 힘을 살려내는 데 전력투구했다. 촬영과 편집에서 연기까지, 비튼 부분 하나 없는 이 정공법의 영화는 스타일의 욕심을 버린 채 기어 한번 바꾸지 않고 파국을 향해 직선주로를 질주한다.
이 영화 여정엔 사실 무리수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극점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스크린 바깥으로까지 흘러넘치는 감상적 정조가 과도한 기름칠을 한다. 대원들이 한마디씩 말을 보태며 분위기를 잡는 몇 차례 장면들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떤 배우들은 클로즈업을 버텨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국 ‘관객의 영화’가 될 것이다. 관객을 몇 발자국 앞서가다 뒤통수를 치는 기교 대신, 어깨를 겯고 우직하게 함께 가는 방식을 택한 이 영화는 부조리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이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끝내 스크린에 새긴다. 부대원들이 섬에서 벌이는 교전 장면과 버스에 몸을 싣고 총격전을 벌이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충무로에서 보기 힘들었던 종류의 액션 완성도를 자랑한다. 뛰어난 코미디 ‘투캅스’ ‘공공의 적’을 만든 감독 작품답게 이 무거운 이야기 속에도 곳곳에 효과 높은 유머를 깔아두었다.
여기엔 영화상을 휩쓸 만큼 특출난 연기는 없다. 그러나 따로 떨어져 빛나기보다는 덩어리가 되어 굴러가며 파괴력을 높이는 이 영화의 배우들은 종종 한 유기체의 지체(肢體)처럼 보인다. 설경구는 이야기에 입체감을 불어넣었고, 안성기는 고함 한번 없이 그가 왜 훌륭한 배우인지 증명했다. 허준호, 정재영, 강신일의 연기도 좋다.
’실미도’를 통해 시대의 아픔이며 분단조국의 희생자였던 북파공작원들을 이해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이 영화는 모든 상황 종료 후 작성된 ‘실미도 난동사건 진상보고서’가 다른 서류들과 함께 캐비닛에 처박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어 세월이 흘러 한번도 열리지 않은 듯한 그 캐비닛이 낡게 된 모습을 비추다가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그런 캐비닛들로 가득찬 방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예외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실미도 사건을 우리 현대사에 산재한 (여전히 먼지와 함께 묻혀 있을) 수많은 비극 전체로 확장하는 지적인 엔딩이 아닐 수 없다. 단연코 ‘올해의 라스트신’이다. 》

이어서 카페에서 인용한 내용도 소개하여 둔다.
<< 북파목적으로 창설 실미도 특수부대의 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라고 한다. 또는 68년 4월에 창설되었다 해서 '684부대' 라고 불렀다. 특수부대 창설은 68년 김신조가 이끄는 북한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1·21사태에서 비롯되는데 이 사건에 분노한 박정희가 그 보복 조치로 실미도 부대를 만들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며 부대 인원도 김신조 특공대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되었고 훈련요원과 동일한 수의 기간요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실미도 특수부대가 창설된지 3년 4개월만에 북파지연과 월급/대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그들은 3년 4개월 동안 체포되면 죽는다는 교육을 하루에도 몇번씩 받았다. 조국 통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북한 침투훈련을 위해 위성사진을 본따 북한 지형의 모형(사판)을 만들어 훈련했다. 독도법 호신술 산악훈련 폭파기술 등을 배웠다. 기간요원과 훈련병 모두 처음에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신조부대를 능가해야 한다는 각오로 산악구보를 하더라도 그들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렸다. 훈련중에 동료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기량은 최고에 달했다. 목숨을 건 훈련 3개월만에 목표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그들의 사격실력은 백발 백중이었다.
훈련요원과 기간요원이 함께 먹고 자면서 똑같이 생활했다. 당초에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면서 상부로부터 보급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실미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전명령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참아온 석달. 그러나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한침투 명령이 떨어졌다가 전격 취소되고 만다. 그 이후 지옥 같은 훈련을 3년이나 견디어 내면서 작전 명령을 기다려 왔지만 그들에게 단 한번도 북파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실미도 난동사건 그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실미도 밖의 상황은 남북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은 684 부대를 만든 장본인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문제는 계속 미루어진다. 국제 분위기의 변화로 남북한 역시 대화노선으로 바뀌며, 이후락은 마침내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고 남북회담으로 이어진다.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한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끔찍한 최후의 날인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
탈출을 위한 훈련병들의 행동개시와 함께 실미도는 삽시간에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특수훈련을 받은 훈련병들이 일당백의 기량으로 기간병을 습격한다. 24명의 기간요원중 교육대장이던 준위등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피하려다 익사하였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경비병 5명과 김방일 소대장등 모두 6명.
그리고 훈련병들은 인근섬 무의도에 들어가 배를 타고 낮 12시 30분경 3년 4개월간 갇혀 있던 실미도를 빠져 나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다. 12시 53분 송도외곽에서 탈취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을 벌인다. 그들이 타고가던 버스의 바퀴가 펑크나자 마주오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한다.
오후 2시 15분경 운전기사가 탈출하자 실미도 훈련병이 직접 차를 몬다. 대방동 로터리 유한양행 앞에서 그들이 몰던 버스가 가로수에 받혀 멈춘다. 그리고는 수류탄 자폭으로 최후를 맞는다.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이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발생 3일후 당시 국방장관이 전격 사표를 냄으로써 이 사건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종결된다. HID 와는 다른부대라고 함...


문대장이 단체로 왕복표를 단체로 구입한다. 편도로는 1,000원이나, 단체로는 800원이란다. 먼저 하산한 사람은 ‘서울산사람들’임을 밝히면 그냥 소수라도 건네준다는 약속도 받아내었는데, 회원들의 편의를 위하여 그렇게 한 모양이다. 선착장에서 잠시 바다를 감상하며 느끼며 있노라니 건너편 무의도 선착장에서 배가 건너온다.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 “무룡 2호”라는 선박명이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배의 총톤수는 96톤이고, 승용차 기준 적재가능 차량은 18대이며, 승선가능인원은 130명이라고 한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니 우리는 승선을 하여 2층 객실로 오른다. 승객은 거의 우리 회원들이다. 오늘 이 지역 경제에 많은 보탬을 주는 셈이 된다. 차에 탄 채로 차도 배에 싣는다. 그렇게 배를 타면 운치가 있을 듯하다. 망망대해를 감상하며 상념에 잠기려니 잠깐 사이에 배는 건너편의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이른다. 10시 06분 경이다. 소요시간은 약 8분 내외인 듯하다.

시멘트 시설인 정박장을 지나 한참 진행하여 오르니 넓은 주차장에 이른다. 잠진도- 무의도 여객터미널 매표소가 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산쪽으로 가장자리로는 “불타는 조개구이”, “옛날맛 바지락 손 칼국수”, “자매 1호집 조개구이” 등 음식점이 몇 개 보인다. 입맛을 다시게 하기는 하지만, 고래님이 말한 것처럼, 조개구이는 값에 비하여 실속이 적은 것이라 평소에는 잘 즐기지 않는 것이었는데.... 일단 하산후에 결정하기로 하자고 다짐한다. 바다 건너로는 잠진도와 영종도, 인천시가지 등이 보인다.

이어 무의도의 유일한 도로인 큰무리 선착장에서 샘꾸미 선착장을 잇는 시멘트포장도로를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와 닿는다. 조그마한 게 앙증스럽다. 다행히 나는 앞서 간 관계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회원들은 서서 가는데, 우리 회원들이 다 타니 버스는 콩나무 시루가 되어 버린다. 토토리님에게 앉아서 가서 미안하다고 하니, “괜챦다, 무슨 말이냐?”고 반문한다. 대답을 듣고보니 무척 듬직스럽다. 더 이상 손님을 태울 수도 없으므로 버스는 금방 샘꾸미 선착장으로 출발한다. 외길 도로를 잘도 간다. 좌측으로 제법 넓은 갯벌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큰무리 마을이 보인다. 이어 고개를 오를 때는 사람이 많이 타서 바퀴가
빠지거나 펑크가 나지나 않을까 하여 여간 불안스럽지 않았다. 나 혼자라면 그냥 걸어서 가련만... 좌측 멀리로 인천시가지가 보이기도 한다. 도로 주변에는 숲이 아주 울창한 편이다. 이어 고개를 넘어 내려서니 효령장 민박과 사슴 농장이 눈에 들어온다. 무의보건지소도 있는 개안마을이다. 완만하게 오르다가 고개를 넘어 내려가니 산행기점인 샘꾸미 마을에 이른다. 큰무리에서 약 1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큰무리 선착장에서 샘꾸미 선착장을 향하여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산행할 수도 있으나, 우리 서울산사람들은 역으로 산행하기로 하여 여기를 산행기점으로 한 것이다.

(1) 샘꾸미 마을(1.7km) - 虎龍谷山

샘꾸미 마을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나, 그리 유복해 보이지는 않고 그저 쓸쓸한 정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지붕들은 붉은색과 청색으로 울긋불긋하게 칠해져 있어 거기서만 유채색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개들의 울움소리 조차도 들리지 아니한다. 건너편에는 조그만 소무의도가 있고, 거기에는 떼무리라는 마을이 제법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약장수님의 말에 의하면 소무의도에는 옛날 고기잡이로 치부한 갑부들이 많이 그곳에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우측(남서)으로 보니 광명방파제와 해녀도가 보인다. 이영주 사장님의 조카는 무엇이 궁금한지 바닷가까지 뚸어 내려갔다가 온다. 아마 사진을 찍은 모양이다. 등산로 입구 안내 간판이 서 있으며, 국화가 무수히 심겨져 있는 민박집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나는 메모할 것이 있고 바다를 더 감상하고 싶어 제일 후미로 출발한다. 잔설이 남아 있어 이채롭다.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듯이 산 정상 쪽에서 까치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맞이하고 있었다.

묵밭 같은 것을 지나면서 산림이 시작된다. 이내 호령곡산 안내문과 그 좌측에 산불조심 및 입산통제안내문이 서 있다. 호령곡산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호령곡산은 높이 244m로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서해의 관문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손에 닿을 듯하며, 남으로는 서산반도가 시야에 아물거리며, 북으로는 교동섬 넘어 연백반도와 옹진반도가 수평선 너머로 시야에 들어오는 곳으로 조망과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국사봉과 실미해수욕장, 호랑바위로 이어지는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으며, 등산로 능선과 계곡이 이어지는 등산로는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환상의 길)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산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비경과 절경을 감상하실 수 있다”.
그러나 환상의 길은 이번 등산코스가 아니라서 가보지 못해 또 숙제로 남겨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인파로 인하여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는데, 언제 올 수 있을까는 사실 기약이 없다. 그리고 호룡곡산 해발도 곳곳에 통일되지 않아서 옥의 티라고나 할까..

이어 3거리에 이른다. 좌측 길은 덕점마을로 간다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상의 우측 등산로(호룡곡산)로 오른다. 눈이 길에 남아 있어 겨울다운 맛이 나서 좋았다. 이내 소나무숲이 나온다. 낮은 키의 숲이 울창한데, 잎에는 윤기가 난다. 그 아래 길은 황토로 되어 있어 조화가 잘 되어 있다. 다시 3갈래길에 이른다. 우측은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이를 버리고 좌측 큰 길로 완만하게 오른다. 이내 능선마루에 이르니 여기도 3갈래길이 나 있다. 이정표가 있는데, 좌측은 덕점마을(양식장), 우측은 등산로(호룡곡산), 뒤쪽은 샘꾸미선착장으로 표시되어 있다. 좌측 아래로 광명방파제와 소무의도와 떼무리선착장, 해녀도 등이 보인다. 주변은 소나무숲이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좌측(동남동)으로 극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오른다. 묘 1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넓어서 쉬기에 좋은 곳이다. 표지기들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안산 백두산악회 표지기가 눈길을 끈다. 날씨는 좋고 포근하여서 산행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길은 황토흙이고 돌들도 많이 있다. 낮은 키의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다시 묘가 나온다. 역시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넓어서 쉬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는 우측으로 오른다. 봉우리 직전에서 좌측(남서)으로 트래버스하면서 오른다. 이영주 사장님 부부와 조카가 제일 후미로 오르고 있었다. 조카가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을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신 모습이 퍽이나 인자해 보인다. 이어 마포구청산악회 표지기도 나타난다.

한참 오르니 멋진넘 부부와 장모님, 고모님이 함께 다정스레 오르시고 있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으신지 연신 말씀을 하시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신다. 힘이 드는지 잠시 바위에 쉬시고 계신다. 참 보기 좋다. 두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계셨는데, 그 연유를 물으니 정상덕씨가 친절하게도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사위와 딸과 그 동료들과 함께 하는 오늘 산행이 영원히 두 분의 기억속에 추억으로 자리잡기를 기원해 본다.
이어 둔덕에 이른다. 주변은 소나무숲이고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좌우로는 바다가, 전방으로는 호령곡산이 보이고, 뒤로는 소무의도와 떼무리선착장, 해녀도, 바다 등이 보인다. 뜸부기님을 만난다.

이 둔덕에서 완만히 진행하다가 완만히 오른다. 둔덕을 넘어서 완만히 내려가다가 오른다. 약장수님이 뒤돌아서서 바다에 홀로 떠 있는 해녀섬인지 배 1척인지를 배경으로 열심히 앵글을 맞추고 있다. 이어 봉우리에 이른다. 바위와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주변은 노간주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소나무, 떡갈나무 숲이다. 좌우측으로 계곡과 바다가 보인다. matroos님 부부께서 쉬고 계신다. 이어 완만한 내리막이다. 벌써 건너편 조망대에는 앞서간 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름답다. 이어 이정표가 나온다. 우측은 광명마을 하산로이란다. 우리는 좌측 등산로로 진행한다. 바위지대를 지나 조금 더 오른다. 이어 조망대(쉼터)에 이른다. 암봉으로 되어 있다. 전방으로 호룡곡산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인천시가지와 계곡, 바다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계곡과 바다가 보인다. 서연씨가 귤을 주어서 시원하게 먹었다. 재중씨는 술과 커피를 주고, 토토리님은 오이를 나누어 준다. 모두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러나 도토리님은 산행에 완전히 초보 수준인 것이 금방 드러나 염려스러웠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청바지를 입고 온 것이다. 산행시 청바지는 신축성이 없으므로 사고의 우려가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토리님에게 등산용 바지와 상의를 준비하시기를 간곡히 이 글을 통해 권고드린다.

이어 잠시 내려가다가 오른다. 잡목이 무성한 길이다. 길이 패여 있다. 이어 암봉에 이른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주변은 소나무숲이다. 조망은 조금 전의 봉우리에서와 같이 좋은 편이다. 잠시 내려가다가 오른다. 다시 봉우리에 이른다. 3갈림길이 나 있다. 좌측(남서)으로 소능선이 분기하고 그리로도 길이 있는 것이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주변은 잡목숲이다. 조망은 좋은 편이다. 여기서 우측(북)으로 내려간다. 두산동아등산반 표지기와 서울산사람들 표지기가 있다. 잔설이 남아 있어 운치가 좋았고, 울창한 잡목숲이다. 이내 안부를 지나 오르막이다. 이어 평탄하게 진행하다가 우측(북동)으로 내려간다. 안부에 이르니 참 평탄도 하다. 이정표가 있는데, “소무의도, 호룡곡산 정상 0.2km, 하나개해수욕장 2.3km"라고 적혀 있다. 하나개해수욕장 쪽으로 가는 하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이어 오른다. 황토흙길인데 돌들이 많다. 이어 인천중구청, 산림청이 세운 지정된 등산로 이용 안내문이 서 있다. 이어 평탄한 곳에 올라선다. 전방으로 큰 바위가 있는데, 일명 “마당바위”라고 한다. 수직의 직벽을 이루고 있어 직진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하여야 한다.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오른다. 로프와 말뚝이 잘 설치되어 있다. 별로 난코스도 아닌데 이런 것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 무의도 주민들의 산사랑 정신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좌측 마당바위 위에는 먼저 올라온 서울산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니, 문대장님이 하산한 뒤 큰무리선착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는데, 벌써 여기서 판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수의 의견에 따라 가는 수밖에 없을진저.... 나도 잠시 정상에 갔다가 합류하기로 한다.
우측으로 잠시 오르니 호룡곡산 정상에 이른다.

(2) 虎龍谷山(1.4km) - 구름다리/도로

해발 245.7m.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지적삼각점이 있다. “인천 7”. 2003. 6. 28. 인천광역시장이 훼손하지 말 것을 안내하고 있다. 삼각점 위에는 사각뿔의 철탑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는 십자형의 깃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모양이 특이하다. 이정표가 있는데, “하나개해수욕장 2.5km, 환상의 길 0.6km."라고 되어 있다. 3갈래길이 나 있는데, 좌측(북)으로 하산로가 있다. 우리는 여기 정상에서 우측(동)으로 내려간다. 조망과 경관이 뛰어나다. 즉, 서해의 관문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손에 닿을 듯이 보이며, 남으로는 서산반도가 시야에 아물거리고 있고, 북으로는 영종도/국제공항, 교동섬 넘어 연백반도와 옹진반도가 수평선 너머로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국사봉과 실미해수욕장, 호랑바위로 이어지는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지적삼각점/철탑 뒤에는 국립지리원장이 안내문이 서 있다. 거기에는 ”국립지리원에서는 측량법령에 따라 우리 나라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국가기준점인 삼각점을 설치하여 공공 및 민간 분야에서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용되는 국가중요시설물로서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이러한 삼각점은 누구든지 파손하거나 그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며, 만약 무단으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이 지역의 모든 측량을 실시할 수 없으며 관련자는 측량법령에 따라 벌을 받게 되오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설치된 삼각점(용유 22)의 위치는 표주의 십자선 중심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동경 126.° 25′15″, 북위 37° 22′30″, 높이 245m, 2002. 10..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장 031-210-2651~2 .“ 라고 쓰여 있다.

잠시 마당바위 쪽으로 백하니 넓은 공터가 이어지고 낙서판이 있다. 마음대로 생각을 적는 화이트 보드인데, 더러 글씨들이 개발새발 서 있다. 참 특이한 발상이다. 주변에는 바위들이 많다. 거기 옆에 이영주 사장님 가족이 식사를 하신다. 큰 페트병에 소주를 가지고 오신 사장님은 대뜸 나에게 먼저 술잔을 권한다. 황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한잔을 마시고 나서 다른 분이 술잔을 받으러 가는 사이 얼른 피했다. 또 술잔을 더 권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감기몸살로 인하여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당바위로 내려가는 중에 전망 안내도가 서 있다. 뒤쪽으로 바다 쪽을 조망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나타낸 것인데, 그림이 가리키는 대로 소무의도/떼무리 선착장, 광명방파제, 해녀도, 영흥도, 팔미도(소무의도 너머)를 조망하니 가슴이 다 확 트이는 듯하다.

마당바위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넓어서 식사하거나 휴식하기에 아주 좋았다. 큰형님, 정상덕씨, 짜총부부 등의 한 팀과 matroos님 부부와 나를 위시한 한팀, 준호네를 중심으로 한 한팀. 멋진넘씨 부부를 위시한 한 팀 등으로 둘러앉아 식사를 즐긴다. 모두들 어린 시절 소풍나온 것처럼 즐거운 표정들이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거기서 나는 멋진넘씨가 직접 말았다는 김밥도 얻어먹고, 짜총으로부터 미역국을, 정대현 대장으로부터는 삼지구엽초주를, 큰형님으로부터는 다시마에 싼 안주를 권한다. 맛이 있었으며, 그 정성에 가슴이 뭉클한다. 그 모든 손길에 감사드리고 크나큰 복이 내리기를 기원드린다.

이어 문대장의 명을 받은 정상윤 리더의 함성으로 출발명령이 떨어진다. 모두들 짐을 챙기고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한 뒤 일어선다. 정상으로 다시 올라와서 우측(동)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잡목 및 가지들이 다소 걸리적거린다. 이어 바위가 나오면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이어 좌측 사면길로 트래버스하게 된다.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이어 가파르게 내려간다. 그런데 일찌감치 멋진넘씨 장모님과 고모님은 앞서서 내려가신다. 아무런 다침도 없이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3거리가 나오면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어서 평탄길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있다. “등산로, 약수터”라고 쓰여져 있는데, 약수터가 어디에 있는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어 둔덕을 넘어 내려가니 바위지대이다. 이어 잠시 내리막이다가 오름길이다.

이내 조망대(쉼터)에 이른다. 흰색의 간이집이 있다. 무슨 용도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matroos님이 “우리 별장이다”라고 농을 하여 한바탕 웃고 지나간다. 이어 좌측(북북서)으로 내리막이 이어진다. 여기도 눈과 얼음이 있어 미끄러워 조심하며 지나간다. 조금 앞으로 나서려니 멋진넘씨 장모님과 고모님은 선두에서 내려가시고 계신다. 정상덕씨가 만들어 드린 지팡이를 잊지 않으시고 애지중지 이용하고 계셨고, 오승렬 리더가 위험한 곳에는 아낌없이 손을 잡아 친절하게도 부축하여 드린다. 그분들은 우리들의 도움으로 눈을 밟아보며 산을 올라 운동을 할 수 있었다며 즐거워하신다.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본보기이라 바라다볼수록 흐뭇하다. 오 리더는 복을 많이 받을 것이리라.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하나개해수욕장과 바다가 보인다. 이어 노간주나무가 많이 보이는 길을 진행한다. 둔덕을 넘어선 뒤 내리막이 나오는데,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의외이다. 이 정도의 지형에서도 계단까지 설치하였음은 이 곳 주민의 산을 사랑하는 마음의 어느 정도인가가 가늠이 되는 것이다.

이어 묘 1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여기서 좌측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또 묘 하나가 나온다. 전방으로는 국사봉이 우뚝하다. 우측으로는 포내마을과 무의보건지소가 있는 개안마을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하나개해수욕장이 보인다. 이어 “아낌없는 숲”이라고 쓴 안내문이 나온다. 숲의 효과를 돈으로 환산할 경우 무려 49조 9,510억원이나 된다니 실로 놀랍다. 이런 것을 세운 분들의 노고에 치하드린다. 이를 보는 이들은 숲의 고마움을 절감하고 산림보호론자로 탈바꿈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나라의 산은 점점 좋아질 것이고, 무리한 환경파괴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내려간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지역이다. 이어 계단이 나온다. 벌써 문대장님은 구름다리를 건너서 국사봉을 향햐여 오르고 있다. 눈이 남아 있어 미끄러움에 주의하며 내려서니 이윽고 구름다리에 이른다. 모처럼 나온 쩡애씨가 아주 잘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예쁜 모습으로 간이 휴게소 옆에 먼저 와 앉아 있다.

(3) 구름다리(1km) - 국사봉

이정표가 있는데, “하나개 해수욕장, 큰무리 선착장, 호룡곡산 정상 1.4km, 국사봉.”이라고 적혀 있다. 간이 휴게소가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우측에 간이화장실이 보인다. 그리고 우측 아래 무슨 큰 나무로 거창하게 홍살문처럼 세워 놓았는데, 무언가 궁금하여 가보니 “호룡곡산 산림욕장”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다. 아 그랬었구나... 어쩐지 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길도 잘 나 있고 숲도 울창하더라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런데 여기서 중도포기하는 회원들이 많다. 늘근소님, 멋진넘씨, 쩡애씨, 서연씨. 김병현씨. 큰형님, 멋진넘씨의 장모님/고모님 등이 바로 그들이다. 별로 힘들지 않는 코스가 남아 있는데도 이렇게 중도포기하는 것을 보니 의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사연이 있으리라. 섬 산행이니만큼 이분들은 산행보다는 바닷가 길을 같이 걸으면서 따뜻한 햇볕과 바다 내음을 맡으면서 포근한 겨울날씨를 만끽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육지에서는 절대로 느끼지 못한 행복이니만큼..... 후문에 의하면 큰형님은 알뜰하게도 나물을 뜯으며 모처럼 소녀처럼 즐거워하셨다지 않은가!!!

나는 반원형으로 된 쇠다리 구름다리를 건넌다. 구름다리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었으나 그 초라한 규모에 실망이 크다. 다리 밑에는 차선이 없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이 도로는 좌측으로는 하나개해수욕장으로, 우측으로는 개안마을로 이어진다. 별로 흥미도 없는 규모의 구름다리를 건너니 016 송신탑이 보인다. 가까이에 이정표가 서 있다. “국사봉/실미해수욕장, (좌측) 하나개해수욕장, (우측) 개안마을”라고 쓰여 있다. 입산통제안내문도 보인다.
이어 국사봉안내문도 있는데 그 내용을 옮겨 본다.
“높이 230m로 서해의 알프스라 칭할 만큼 고래바위, 마당바위, 부처바위 등의 괴암절벽의 비경과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아주 오래전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있으며, 등산로 남쪽 약 200m 되는 지점에 절터가 남아 있어 그 유래를 증명해 주고 있다. 1950년대 말, 이곳 정상에서 금동불상을 비롯한 수백점의 토우들이 출토되어 오랜 역사의 산증거가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산이름이 없던 것을 1995년 산이름 찾아주기 동호회에서 정식으로 국사봉이라 명명하여 표지석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어 비포장도로를 건너 오른다. 이정표가 있다. 좌측은 배드민턴장/하나개 해수욕장, 우측은 무의지소, 뒤는 호룡곡산, 전방은 국사봉 방향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거리는 나와 있지 않다. 이어 조그만 밭 사이를 지나니 억새지대가 나온다. 억새가 대단히 무성하고 넓게 자라고 있다. 이어 3갈림길에 이르는데 여기서는 우측으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넓게 무성하게 펼쳐진 억새지대가 보기 좋다. 전방으로 올려다 보이는 국사봉 능선에는 소나무숲에 바위들이 많이 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어 평탄한 안부에 이른다. 좌측에 철사줄이 기둥에 설치되어 있는데, 마치 빨래 건조대를 연상케 하고 있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이어 잡목지대를 오른다. 묘 1기가 나온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완만하다. 녹슬은 오래 묵은 이정표가 서 있다. “등산로” 글자만 보일 뿐이다. 바로 이어 묘 1기를 지난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다. 이어 울창한 소나무숲을 오른다. 길은 아주 양호한 편이다. 호젓하고 좋다. 연인과 함께라면 좋을 것이다. 마침 두 남녀가 구두를 신은 채로 내려오고 있다. 보기에 부럽다. 이윽고 우측(북서)으로 진행한다. 평탄한 곳에 이르니 3갈림길이 나 있다. 우측으로 오른다. 소나무숲이다. 그 잎이 윤기가 난다. 이어 묵묘를 지난다. 길이 조금 패여 있고 돌이 많이 있다. 노간주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이어 우측으로 잠시 오른다.

또 조망대(쉼터)에 이른다. 암봉이다. 공터가 있어 쉬거나 사진 촬영에 좋을 듯하다. 주변은 잡목숲이다. 조망은 좋아서 우측으로는 개안마을과 바다, 좌측으로는 하나개 해수욕장이 보이고, 해변 뒤로는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촬영용 별장이 세워져 있어 운치를 더 하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서 계속 남겨 두어 하나개 해변을 대표하는 조형물로 삼을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하나개 해수욕장은 예전에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촬영장소로도 이용됐던 곳이다. 그 옆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전방에는 국사봉 정상이 보이고, 뒤로는 호룡곡산이 보인다. 여기서 도치님, 짜총, matroos님 등이 약장수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필름을 어떻게 하여야 한다며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matroos님도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편인데, 오늘은 가지고 오지 않아 마냥 아쉬워 하는 표정이시다. 자녀가 MT가는데 사진기를 가지고 가 버렸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우리 서울산사람들이 사진을 그만큼 못보게 될 판이어서 서운할 것이리라. 그분들이 모두 하나같이 나보고도 같이 찍자고 하였으나 작품을 버릴 것 같아 그냥 내뺐다.

우측(북동)으로 잠시 내려간다. 돌이 많다. 잠시 후에 안부를 지나 오른다. 이어 평탄한 지대를 지나 오른다. 잠시 완만하더니 이내 가팔라진다. 주변은 잡목숲이고 길은 패여 있으며 돌이 많다. 이어 능선마루에 올라 우측(북동)으로 오른다. 좌측으로 극소능선이 내려가고 있다. 이어 바위지대가 한참 이어지더니 잡목숲이 나온다. 다시 바위지대를 지난다. 좌측 멀리로 실미도가 눈에 들어온다. 실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0 km 떨어진 해발 80m, 2㎢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으로 한때 중앙정보부가 북파 특수부대를 훈련시킬 최적의 장소로 지적했던 섬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북파간첩을 선발, 인간병기로 만들던 곳.. 피와 눈물도 없이 가혹하게 훈련하느라 떠들썩했을 법한 그곳이 지금은 한낱 고요에 쌓인 평범하고 평화로운 섬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어 우측으로 완만히 오른다. 3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은 큰무리마을, 우측은 등산로, 뒤는 호령곡산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말뚝에서 방향표지판이 모두 떨어져 땅에 뒹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고쳐 달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기서 고래와 정상윤씨가 기다리다가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설명해 준다. 즉, 우리는 좌측(북)으로 진행하여야 하나, 여기까지 와서 국사봉 정상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만큼 유서가 있고, 이름도 찾았다는 그 국사봉을 말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잠시 우측으로 오른다. 이내 국사봉 정상에 이른다.

(4) 국사봉(2.1km) - 큰무리 마을

조망이 좋다. 좌측으로는 바다, 잠진도, 영종도와 인천국제공항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도로, 호룡곡산, 하나개해수욕장, 바다가 보인다. 속이 확 트이는 듯 시원하다. 여하튼 이 국사봉은 무의도의 북쪽에 위치한 아담한 산이었다.
삼각점이 있다. 호룡곡산에서와 같이 사각뿔의 철탑 위에 십자형 깃대가 얹혀 있다.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국사봉 230m."라고 쓰여진 오석으로 되어 있다. 그 옆에는 안내문이 있는데 이를 옮겨 놓기로 한다.
“ 이곳은 무의도에서 호룡곡산에 이은 230m의 제2봉으로 예로부터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는 제사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어 국사봉으로 불리고 있다는 설이 있으며, 바로 아래 지금은 나무숲으로 덮여 있으나 절터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1957년 국사봉 정상에서 우연히 발견된 청동불상과 각동 토우들이 출토되어 무의도 긴 역사의 산증거가 되었다. 1994년 가천문화재단 이형석 이사장과 현 인천수협조합장으로 계시는 차석교 향토인이 주축이 되어 전국 산이름 찾아주기 운동의 일환으로 지도상에는 이름이 없던 것을 정식으로 명명하여 정상에 표지석을 세워 산이름을 찾게 되었다. 나라의 안녕과 미래의 번영을 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정상 등정의 감격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1999. 3. 호룡산악회 883-2091, 884-5560. ”
구름다리 지나 입구에 있던 국사봉 안내문과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어 다소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산과 향토를 사랑하는 분들이 정성으로 설치한 것이니 해석하는 입장에서 잘 하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분들의 노고에 찬사를 드린다.
이 안내문과 기타 사항을 메모하는 사이에 많은 회원님들이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사각뿔형 철탑 밑에 앉아 있으니 자동적으로 사진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혹시 사진이 버리지나 않을지.... 쭈그리고 앉아서 쓰는 것이 안스러웠는지 술도 권하고 마실 것도 권했지만 바쁘다고 사양을 정중히 했다. 이영주 사장님이 약간 아니꼬우신지 “그럼 계속 바쁘시오” 하시면서 나를 제외한 일행 중 마지막으로 내려가신다.

나도 메모를 마무리하고 얼른 조금전의 3갈림길로 되돌아온다. 이어 우측(북)으로 내려가다가 오른다. 둔덕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 안부를 지난다. 이어 좌측으로 휘어 오르다가 둔덕에 이른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잡목숲이 빽빽한 게 이채롭다. 안부를 지나 오르다가 완만히 내려간다. 조그만 둔덕에 이르니 삼갈래길이 나 있다. 이정표도 있는데, “큰무리선착장, 등산로(실미해수욕장), 등산로(국사봉).”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좌측 길은 실미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므로 우리는 우측으로 큰무리 선착장 방향으로 내려갔다. 잡목숲이 울창한데, 응달이 져서 눈이 녹지 않고 있어 미끄러운 편이었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산행하는 일단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서로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이어 엄청 큰 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내려간다. 이어 우측(북)으로 진행한다. 전방으로 큰무리마을이 보인다. 길이 가파르다. 눈과 얼음이 있어 미끄러워 속도가 느려진다. 이어서 잠시 평탄지대를 지나 내려간다. 이내 둔덕을 넘어서니 3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이 하산로이다.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완만히 오른다. 돌길이고 잡목숲이다. 이어 봉우리에 이른다. 잡목숲에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좌측으로는 실미도, 큰무리마을, 바다, 영종도가 보이고, 전방으로는 인천국제공항이 보이며, 우측으로는 바다와 인천시가지가 보인다. 그리고 뒤로는 국사봉이 보인다.

여기서 우측(북동)으로 완만히 내려간다. 이어 마지막으로 얕은 능선을 완만히 진행하게 된다. 잡목 및 가지들이 걸리적거린다. ‘산불조심’ 팻말도 보인다. 이어 극히 완만하게 오르다가 아주 완만하게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완만히 오르니 마지막 봉우리에 이른다.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고, 잡목숲이다. 조망은 좋아서 우측으로는 바다, 갯벌, 인천 시가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실미도가 보이며, 전방으로는 영종도와 인천국제공항과 큰무리 선착장과 큰무리 마을, 잠진도 선착장 등이 보인다. 이제 하산만 하면 큰무리 마을에 이르고 해안선 도로를 따라 가면 큰무리 선착장에 이르러 산행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좌측(북서)으로 내려간다. 초입에는 꽤 가파른 편이다. 응달이라서 눈과 얼음이 있어 미끄럽다. 모두들 조심해서 내려간다. 이영주 사장님의 조카는 산행에는 아주 초짜라서 그런지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여기서도 혹시나 넘어질까 봐 벌벌 매고 있어 옛날의 내가 생각났다. 결국은 나보고 길을 비켜준다.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휘어 내려간다. 우측 큰무리 마을 쪽으로 방향이 휘어진다. 암반이 조금 있는 곳에 이르니 개울물이 흐르는데, 졸졸졸 소리를 내는 것이 듣기 좋다. 아마 눈이 녹은 물이 흐르는 것인데, 이렇게 얕은 산에 목을 축일 정도의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였다. 이어 돌많은 잡목 숲길이 나온다. 한참 내려간다. 이윽고 시야가 트이면서 간벌지대가 나온다.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담하고 평화스럽다.

이어 묵은 밭을 지나 밭을 지난다. 이어 좌측에 큰 은행나무가 있고, 우측에는 물 웅덩이가 있다. 이어 망가진 동물사육장 시설이 나오고 밭이 나온다. 이어 개울에 이르니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다. 근처에는 “산불조심, 입산통제” 안내문이 있다. 이어 밭을 지나는데 냉이 등 나물이 보인다. 드디어 마을 도로에 이른다.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약 13시 55분 경이다. 오승렬 리더가 기다리면서 등산화에 묻은 흙을 털고 있다. 오승렬 리더가 “물이 빠져서 14시 30분 경이 되어서야 배가 다닐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앞서 간 분들도 대기하고 있다”고 귀띰해 준다. 나는 속으로 아 그러면 큰무리 선착장에 가서 조개구이라도 먹고 갈 수 있겠구나 하고 나름대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진행한다.

(5) 큰무리 마을(0.8km) - 큰무리 선착장

여기서 우측(북)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도로가 양지녘에는 아줌마들이 열심히 굴을 까고 있다. 하루 종일 어렵게 일하더라도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그들의 생이 고달파 보이기도 한다. 어떤 남자와 여자는 우리 보고 싸게 줄테니 굴을 사가라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하였다. 조금 더 진행하다가 얼굴이 마치 에스키모 내지는 숫사자를 닮은 개가 있어 짜총 등 여자분들이 환성을 지른다. 그 놈 개 참 점쟎게도 생겼었다. 이어 해안도로를 진행한다. 아침에는 만원인 마을버스로 가던 길인데 이렇게 걸어가니 색다르다. 바다 내음도 좋고, 넓은 갯벌도 구경하고, 갯벌에 좌초되어 물이 들어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이윽고 큰무리 선착장 주차장에 도착한다. 먼저 온 분들이 “할매 조개구이집”에 들어가 끼리끼리 둘러앉아 조개구이를 시켜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조개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는데, 바닷가에서 접하는 것이라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굴, 참조개, 대합, 가리비, 소라, 우럭조개, 키조개, 홍합, 동죽, 민들조개, 돌조개 등이 보이고, 그 외에 바지락 칼국수, 우렁쉥이가 있다. 철이 되면 개펄산낙지, 해삼도 있다고 한다. 연탄 화덕에 구워 먹는다. 연탄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사람들이 자기들 무리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새로 온 사람들에 대하여는 신경을 쓰는 사람이 드물다. 나는 matroos님 부부와 도치님, 짜총, 복남씨와 그 친구분들과 같은 무리에 합류한다. 나를 끼워 주어 고마워서 나는 멍게 2 접시를 내놓았다. 도치님이 굴에 끝까지 집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끈질기게 하나도 남김없이 살을 발겨 내는 실력을 드러내었다.

맛있게 안주를 먹으면서 술도 어느 정도 되었다. 내가 취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한 것은 바다이고, 나보다 바다가 술에 더 약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의도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바다에 더 가까운가 보다. 우리는 우리들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고 있었으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 것 같았다. 분위기는 활기가 넘쳐 흐르고, 마치 송년회를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자리를 파하고 큰무리 선착장에 내려가 기다렸다. 마침 선착장에는 조그만 배 1척이 숭어를 잡아서 큰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아 두고있었다. 15 : 22가 되어서야 큰무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 : 30 경 잠진도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우측으로 조금 나아가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있다. 이어 일이 있어 뒤늦게 합류한 김재국, 임영택 리더가 반갑게 맞아 준다. 그리고 두 리더는 닭죽을 끓여 산행을 마친 회원들에게 제공하려고 왔던 것이다. 그 정성과 마음씨가 얼마나 고마운가...!!! 버스 뒤 언덕배기에 있는 식당집으로 들어가니 이미 닭죽은 바닥이 다 되어 가고 있어 겨우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맛이 있었다. 감사드린다.


◆ 그 이후


드디어 16: 30에 우리는 잠진도를 출발했다. 나름대로의 상념에 잠기며 풍경을 구경하노라니 버스는 이미 개화동에 이른다. 여기서 멋진넘씨 장모님과 고모님이 하차하신다. 이윽고 발산 인터체인지에서 이영주 사장님 일행이 내리신다고 준비하시길래 나도 따라 내리기로 하였다. 종로까지 가면 멋진 뒤풀이가 있으련만 이를 포기하고 내리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아직 몸살감기가 다 낫지 않아 무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이사장님 일행과 걸어오다가 이 사장님 조카가 집으로 들어가고 난 뒤, 이영주 사장님 부부와 나는 택시를 타고 이영주 사장님이 사시는 화곡동 우신아파트 가까이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조개구이를 이슬이 한 병을 비우고 헤어졌다. 나는 이사장님이 나와 지근거리에 사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앞으로는 자주 안부를 전하여야 하겠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다.


교통 :
무의도로 가기 위해서는 영종도 잠진나루(잠진도)에서 무의도행 배를 이용(차량승선가능). 07:30 ~ 19:30간 30분 간격 운항. ※ 토, 일, 공휴일은 수시운항. 그리고 무의도에서 잠진도로 나올 때는 잠진도에서의 출발시간보다 15분 정도 늦다고 보면 됨. 문의처는 무의도 해운 : 032-751-3355~8.

잠진도까지는 두가지 방법 있음.
① 인천 월미도에서 영종도행 배를 타고 건너가서 영종도 선착장에 내린 후, 승용차로는 우회전 50m 거리에 있는 이정표에서 좌회전하여 해안 고속도로(6차선)로 접어들어 이 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인천국제공항을 지나 '무의도 4.4㎞', '무의도 1.4㎞'라고 적힌 안내판이 나타난 후 무의도, 잠진도가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한 후 연육도로를 건너 잠진도 선착장에 도착함. 대중교통으로는 영종도 선착장에서 직행버스를 타고[버스 시간 : 7시 20분, 9시 20분, 15시 20분, 17시 20분] 잠진도 선착장으로 가면 되는데, 혹시 갯벌위의 연육도로를 건너가면서 중간 중간의 기암괴석과 조개줍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진풍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영종도 선착장에서 덕교선착장까지 가서 내린 후 900m 정도의 거리를 걸어감.
② 육로
올림픽대로에서 김포공항방면으로 가다가 방화대교 즈음에서 인천국제공항이 표시된 이정표가 보인다. 이 이정표를 따라 게속 가다보면 영종 대교에 진입하게 된다(방화대교를 지난후 17분 21㎞ 가량 소요). 영종대교를 건너 계속 직진하다가 '공항신도시', '화물터미널'이 적힌 이정표가 나온 뒤 "용유, 무의"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영종대교 건넌후 10분 10㎞가량 소요). 이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약 6분 후에 중간중간"무의도 4.4㎞", "무의도 1.4㎞"라는 안내판이 나옴. 이어 무의도, 잠진도가 적힌 이정표에서 좌회전한 후 연육도로를 타면 금방 잠진도 선착장이 나옴.
※ 외곽 순환도로에서 노오지 JCT 방면, 남부순환도로에서 김포공항 방면으로 가면 영종대교로 갈 수 있슴.
※ 인천, 동인천역 출발 306번 버스(경유지 : 인천공항)로 을왕리행 버스를 타고 덕교동(거잠포)에서 하차, 10분쯤 도보로 이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