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않고는 견딜수없이 가슴설레는 봄꽃산행지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경남 합천에 있는 황매산을 갈려고 산악회에

연락을 하니  아직 철쭉이 만개하지 않았단다.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참꽃이 만개했다는 비슬산으로 정하고 나니

일요일(2005.5.1)은 가끔 비님이 내리신단다.



  
 
봄에 일찍피는 꽃인 진달래는 참꽃이고 참꽃이 지고 난후에 피는 꽃이 이른바 개꽃(철쭉)이다  진달래, 그 이름이

어떻든 간에 진달래라는 이름만 들어도 추억은 아련하게 고향집 뒷동산으로 달려가고 시간은 어느새 후다닥하고

이린 시절로 되돌아 가버리고 만다.


 
 
금년 마지막이 될지모르는 참꽃을 구경하기위해 아침일찍 집에서 06시05분에 나와 서초복지회관에서 승차를 한후

충주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중간 중간에 비님이 내리고 있는 고속도로를 거쳐  현풍휴게소에 잠시 휴식을

취한후 비슬산 산행들머리인 유가사 입구에 도착하니 12시05분이다


 

비슬산은 해발 1,083m의 정상부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와 가창면 정대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심 봉우리와 연속된 산의 덩어리 곧 산괴(山塊)로서 존재한다.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명산이 바로 비슬산과 팔공산이다. 비슬산은 팔공산과 높이나 산세가 비슷하나 팔공산보다

비슬산이 훨씬 작은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비슬산은 1,083.6m인데 비해 팔공산은 1,192.9m이니

두산이 거의 같은 높이의 명산중의 명산이다. 비슬산을 현풍쪽에서 보면 기묘하기 금강산에 비유할 만하고

청도쪽에서 보면 웅장하기가 팔공산처럼 장중해 보인다.


 
비슬산의 유래는 비슬이란 말은 범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것이고 비슬의 한자의 뜻이 포(苞)라고 해서

 일명 포산이라고도 하는데 포산이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을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이란 뜻이라고도 기록되어있다. 다시말하면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이

산을 구경하던 중 비슬이라고 이름지었는데 그네들의 인도식 발음을 그대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가지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서 비슬산(悲瑟山)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일설에 비슬산은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비슬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산행의 초입은 유가사 입구다 막바지인 참꽃을 보러온 차랑과 인파에 밀려 도중하차를 하여 산행을 시작하니

계곡을 따라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어진다  계곡은 날씨가 가문탓인지 가느다란 물줄기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분여를 오르니 유가사주차장이 나오고 유가사에 당도한다.

 

유가사에 있는 수도암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이름 높고,도성암은 경상북도 3대 수도처로 손꼽인다.


유가사에서 흙길을 따라 오르니 말라버린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그나마 산행객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유가사를 출발한지 35분을 지나니 급경사가 이어지고 급경사길을 25분여 오르니

로프가 매어있고 돌무덤길이 이어진다. 돌무덤길에서 5분여를 지나니 암릉이 기다리고 있다. 줄을 잡고

암릉을 오르고 20여분이 지나니 도통바위가 산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오르는 도중 온다는 비님은

소식이 없고 무서위가 기승을 부러 온몸이 땀으로 흠벅젖는다. 봄이 실종되었다, 납치되었다라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일행은 도통바위에 올라 신라흥덕왕때 도선국사가 그위에 앉아 참선하여 도를 통했다고 하니 우리도

잠시 참선을 하면서 세파에 찌들은 마음을 날려보내며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야의 모습에 새록 새록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본다.

산행길에는 수줍은 듯 소박하게 피어난 이름모를 꽃들과 녹색의 어린잎도 고운 자주빛으로 시작을

알리는 봄이 금년에는 빨리 지나가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도통바위에서 15분을 오르니 정상인 대견봉(1,083.6m)이다. 정상부근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한무리로

꽃망울를 활짝 터트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견봉에서의 전망은 아주 평화스러울정도로

광활한 평전이 펼쳐지고 하산길은 부드럽게 이어지고 날씨 또한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한다. . 우리는

기념사진과 식사를 한후 정상주를 한잔하고 하산을 하니 인파로 정체가 되기 시작하며 날씨탓인지

약간의 먼지가 산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정상에서 25여분을 내려가니 약간의 오르막이 나오고 10여분후 옆길로 빠지니 연분홍빛 진달래가 광활한

 평전을 여봐란 듯 흐드러지게 피어 수놓고 있었으나 장관이라 할 수는 없고  차관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몇일만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만 남고...


정상에서 하산한지 1시간만에 대견사지에 도착하여 전망대를 구경한후 다시 하산하여 대견사지에서

 “토르(tor)“인 거북이 바위,물개 바위,부처 바위,말 바위,스님 바위등 대견사터를 둘러싼 돌덩이들을

 한바퀴 빙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횅한 절터를 뒷짐지고 한가로이 거니는 것도 제법 괜찮다.

진달래와 더불어 비슬산이 갖춘 명품은 바위 ‘애추’와 ‘암괴류’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기하기도 하다.

‘애추(talus)'는 절벽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돌무더기를 말하며,’암괴류(block stream)'는

둥그란 돌(암괴)들이 마지막 빙하기에 서서히 흘러가다 멈춰 그대로 화석이 된 지형을 말한다.

돌의 바다라 할 만하다. 경사도(15˚)와 길이(2km)로 보면 세계최대라고 한다. 대견사터에 있는

각종 형상의 거대한 바위는 ‘토르(tor)'라고 한다.


대견사터는 어느날 당나라의 한 황제가 절을 짓기 위해 적당한 터를 찿던중 어느날 세숫물에 좋은 터가

 비치더라는 것. 사람을 시켜 그 터를 찿아 헤매던 끝에 발견한 곳이 대견사터.“대견”이란 글자에는

 “대국에서 바라보는 절”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천하의 당나라에서 시켜 지은 절이니 얼마나 화려했으랴.

하지만 이제 당나라의 흔적은 역사책에나 남아있듯 석탑하나만을 절터 모서리에 남겨두었다.


 
달성비슬산암괴류는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암괴류(岩塊流)란 큰 자갈 또는 바위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사면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비슬산

암괴류는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이루어진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을 뿐아니라,

그 규모가 길이 2km,폭80m,두께 5m에 달하고,암괴들의 직경이 약 1~2m에 이르는 것으로 국내에

분포하는 수 개의 암괴류중 규모가 가장 커 학술적,자연학습적 가치가 매우 높다.



   

비슬산에는 그 품에 여러 사찰을 품고 있다. 동화사의 말사인 용연사와 유가사 그리고 소재사등의 고찰과

대견사지가 있다.,

용연사에서 가장 귀한 것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과 이를 모신

석조계단(石造戒壇,보물 제539호)이다. 적멸은 줄여서 멸(滅)이라고도 하는데 미혹(迷惑)의

세계를 영원히 벗어나 무한한 안락의 경지에 도달한 즐거운 상태를 말한다.열반과 비슷한 뜻이다.

계단은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곳이다. 금강계단이라고도 한다.


소재사 절 근처에는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가 솟아나는데 ,샘의 표면에 금가루 같은 작은

먼지가 떠 있어 금물정(金水井)이라고 부른다.


 
대견사지에서 왼쪽길로 나오다 아래계단으로 내려가면 30여분만에 아주 굉장한 바위군락이 장관을 이루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위군락을 지나 포장길에 들어서니 병꽃나무가 산행객을 반갑게 맞는다. 우리는 자연휴양관에 도착

지하수로 갈증을 달랜후 비슬산 자연휴양림계곡과 유가사를 거쳐 매표소에 도착하니 대견사지에서 출발한지

1시간(16시25분)이 흘렸다


 
  
비슬산은 봄에는 참꽃,여름에는 안개계곡,가을에는 단풍과 억새,겨울에는 얼음동산이 있어 사시사철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산이다. 우리일행은 산행을 마치고 간단한 식사와 함께

돼지껍데기와 삶은고기 안주에 소주를 곁드리며 즐거웠던 산행을 추억속의 한 장으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