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종주. 성삼재에서 유평리까지 그 아름답고도 머나먼 길

 

산행일 : 2005. 5. 3(火)~4(水). 맑음.

 

♥ 첫째 날 (5월 3일)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성삼재 (06:44. 약1,090m)

  ☞ 코재 (07:11~07:13)

  ☞ 노고단 대피소 (07:22)

  ☞ 노고단고개 (07:35~07:40)

  ☞ 돼지평전 (08:02)

  ☞ 피아골 삼거리 (08:42)

  ☞ 임걸령 (08:51~08:59)

  ☞ 노루목 (09:29~09:45)

  ☞ 반야봉 (10:30~10:45. 1,732m)

  ☞ 무덤 삼거리 (11:09)

  ☞ 삼도봉 (11:23~11:29. 약1,500m)

  ☞ 화개재 (11:51~12:17. 1,315m)

  ☞ 토끼봉 (13:11~13:14. 1,533m)

  ☞ 연하천 대피소 (14:55~15:35. 약1,510m)

  음정 내려가는 갈림길 (15:48)

  ☞ 벽소령 대피소 (17:41)

산행시간 : 10 시간 57분 (사진 244장 촬영하느라 거북이 산행)

구간별 거리 :

성삼재→(2.48km)→노고단대피소→(0.36km)→노고단고개→(2.7km)→피아골삼거리→(0.5km)→임걸령→(1.3km)→노루목→(1.0km)→반야봉→(1.0km)→무덤삼거리→(0.64km)→삼도봉→(0.8km)→화개재→(1.2km)→토끼봉→(3.0km)→연하천대피소→(3.6km)→벽소령대피소

산행거리 : 약 18.58 km


 

♥ 둘째 날 (5월 4일)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벽소령 대피소 (05:30)

  ☞ 선비샘 (06:29~06:32. 1,491m)

  ☞ 칠선봉 (07:27~07:33. 1,558m)

  ☞ 영신봉 (08:31. 1,652m)

  ☞ 세석 대피소 (08:45~08:51)

  ☞ 촛대봉 (09:23~09:25. 1,704m)

  ☞ 연하봉 (09:52~09:55. 1,730m)

  ☞ 장터목 (11:12~11:57. 1,653m)

  ☞ 제석봉 (12:22. 1,806m)

  ☞ 통천문 (12:48~12:50)

  ☞ 천왕봉 (13:10~13:20. 1,915m)

  ☞ 중봉 (13:43~13:50. 1,874m)

  ☞ 써리봉 (14:37~14:41. 1,602m)

  ☞ 치밭목 대피소 (15:27~15:37)

  무재치기폭포가는 갈림길 (15:59)

  ☞ 무재치기폭포 하단 (16:02~16:05)

  무재치기폭포 갈림길(16:09)

  ☞ 무재치기교 (16:12)

  ☞ 새재가는 갈림길 (16:22)

  ☞ 유평마을 (18:00)

산행시간 : 12 시간 30분 (사진 268장 촬영하느라 약간 거북이 산행.

  이틀 동안 사진 512컷 촬영. 1M 508컷, 7M 3컷, 동영상 1분)

구간별 거리 :

벽소령대피소→(2.4km)→선비샘→(1.9km)→칠선봉→(1.3km)→영신봉→(0.8km)→세석대피소→(0.7km)→촛대봉→(1.9km)→연하봉→(0.8km)→장터목대피소→(0.6km)→제석봉→(0.7km)→통천문→(0.4km)→천왕봉→(0.9km)→중봉→(1.3km)→써리봉→(1.8km)→치밭목대피소→(1.1km)→무재치기폭포갈림길→(0.1km)→무재치기폭포하단→(0.1km)→무재치기폭포갈림길→(0.7km)→새재 가는 갈림길(4.4km)→유평리

산행거리 : 약 21.9 km

  

총 산행거리 : 약 40.48 km

총 산행시간 : 23 시간 27분 (휴식포함) 

교통수단 : (교통비 43,000원)

  5월3일

집→(택시2,000원)→순천역(무궁화호 05:53발)→(2,800원)→구례구역 06:13착→(택시25,000원)→성삼재

  5월4일

대원사→(버스18:40막차 3,700원)→진주시외버스터미널(19:45착, 순천행 버스 19:50막차, 5,800원)→순천시외버스터미널→(택시3,700원)→집

 

산행기

[첫째날 : 5월3일 (火)]

   황금연휴(3일 개교기념일, 4일 효도방학, 5일 어린이날)를 맞아 지난주부터 지리종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세석대피소를 예약하려하니 이미 정원이 다 차서 할 수 없이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가,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여유 있는 벽소령대피소로 예약을 변경하였다.


  고마운 택시기사 아저씨

 새벽의 한적한 구례구역엔 세 명의 아낙네와 배낭을 맨 등산복차림의 한 남자만이 내린다.

저 만치 앞서가는 아낙들은 지하도로 건너지 않고 익숙한 솜씨로 바로 철길을 건너 주름문을 옆으로 젖히고, 역사 안에 있는 표 넣는 통에 표를 넣고 역사를 빠져나간다. 그 남자도 무작정 따라간다.

 역 앞에는 이미 택시들이 몇 대 줄지어 있었다.

“성삼재가는 버스는 몇 시에 있나요?”

등산복차림의 사내가 택시 기사에게 묻는다.

“6시차는 이미 떠났고, 8시에 있습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있거든요.”

“성삼재까지는 얼마나 합니까?”

“3만원인데, 아줌마들 구례장에 내려주고 가야하니까 2만 5천원만 주십시오.”

 

 여수에서 온 생선장수 아줌마들을 구례장에 내려준 택시기사는 비린내가 난다며 창문 좀 열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아낙들은 빈손이었고, 비린내도 나지 않던데….

성삼재 올라가는 길을 남의 차로 올라가보기는 처음이라서인지 택시는 굉장히 힘겹게 올라간다. 거리도 만만치가 않다. 2만5천원이 전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성삼재에 이르러 택시에서 내리니 친절한 기사님도 덩달아 차에서 내려 좋은 산행하시라고 공손히 인사까지 하고 떠나간다. 고마운 양반.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을 가로질러 지루한 시멘트, 돌길을 올라가니 저 만치에 여대생으로 보이는 두 분의 여자가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코재에서 한숨을 돌리고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노고단고개로 올라가는데, 오른쪽 숲에서 휘파람새가 신나게 휘파람을 불어대고 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녀석의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노고단 대피소

 

 

아름다운 목소리의 휘파람새 (새소리 듣고 싶으시면 http://blog.joins.com/pil6994 를 클릭하십시요.)

 

  노고단고개에서 바라보는 노고단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어 있어서 제법 볼만하다.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내일이면 반대로 저곳에서 여길 바라보겠지.

  돼지평전에서 왕시리봉을 내려다보며 저 길을 언제나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햇볕이 점점 뜨겁게 내리쬔다. 긴소매 집업티를 벗어 배낭에 매달고 반소매차림으로 올라도 무더운 날씨다.

  

노고단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오른쪽으로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아무때나 갈 수 없는 노고단 가는 길

 

노고단 고개를 내려서면서 올려다본 노고단

 

현호색

 

돼지평전에서 바라본 왕시리봉과 운해

 

잔털제비꽃

 

개별꽃

 

노랑제비꽃

 

반야봉을 바라보며

 

반야봉 가다가 바라본 만복대

 

 

  전주 산님

  임걸령샘터엔 세분의 산님들이 산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언제와도 콸콸 쏟아지는 임걸령 샘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바가지가 없어서 바닥에 엎드려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받아먹는다. 옆에서 듣기에 하루 33km 산을 탔다는 올해 춘추가 육십이신 준족의 어르신이 먼저 출발을 한다.  

  

임걸령. 앞쪽에 배낭 매신분이 전주 산님

 

 노루목에 이르러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앉아 김밥 한 줄로 중간급유를 한다.  별 특징 없는 반야봉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시간여유가 있어서 발길을 반야봉으로 돌린다. 보기보단 꽤 가파른 곳도 있어서 반야봉 오르기는 그리 수월하진 않다. 두 번째 올라보는 반야봉. 조망이 참 좋은 곳이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정상석이 너무 초라하다. 사방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이 마구 흘러간다.


 

노루목

 

노루목에서 바라본 노고단

 

봄구슬봉이?

 

반야봉. 오른쪽으로 천왕봉이 보인다.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산친구 4가 대신 모델이 되어주었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줌 촬영)

 

반야봉에서 바라본 노고단고개 (줌 촬영)

 

반야봉에서 바라본 성삼재. 주차장에 한 대도 없던 차들이 만차가 되었다. (줌 촬영)

 

호랑버들

 

  무덤 삼거리로 하산을 하여 다시 주능선을 탄다. 엄청난 얼레지 군락이 계속 나타나 발길을 더디게만 한다.

삼도봉에서 삼도를 한 번씩 밟아본다.

화개재는 생태계를 복원하느라 나무로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다. 한쪽 의자에 앉아서 나머지 김밥 한 줄로 또다시 중간급유를 한다.

 

삼도봉 조형물

  

삼도봉에서 바라본 반야봉


 

화개재

 

고개 좀 들어보거라. 땅만 바라보는 얼레지를 들어 보았더니 저렇게 예쁜 모습이다.

 

얼레지 군락지. 얼레지꽃도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이다.

 

고사목

 

  토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토끼봉에 올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가야할 길을 가늠해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얼레지꽃밭을 지나가며 간간이 나타나는 고사목을 올려다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연하천 대피소가 나온다.

언젠가 (십오륙년 전으로 기억된다.)겨울에 이 대피소에서 자면서 추워서 혼이 난 기억이 난다. 취사실에 들어가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일어난다.

  

연하천 대피소


 

연하천 대피소 주변의 동의나물

 

  벽소령 대피소

  산굽이를 돌다보니 멀리 벽소령대피소가 보인다. 전나무와 거대한 바위가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는 사진 찍기에 빠지다가 정신을 차리고 갈길을 서둔다.

드디어 오늘의 종착역 벽소령대피소가 나타난다. 옛날에 대피소가 없었을 땐 커다란 언덕이었었는데 그 한 가운데에 대피소가 들어서있다.

  배정받은 자리에 배낭을 올려놓고 저녁을 지으러 취사장에 들어선다. 요즈음은 취사장이 모두 실내에 있으니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밥을 지어먹을 수가 있어서 좋다. 예전에는 모두 밖에서 해먹어야했으니 그 추운 겨울엔 밥해먹는 것이 엄청난 고역이었다.

 

형제봉의 멋진 바위와 전나무. 왼쪽에 천왕봉이 보인다.

 

 

바위와 고사목

 

벽소령 대피소

 

배정받은 번호(20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친구 4

 

  식수를 구하러 밖에 나와 보니 ‘가물어서 700m아래 계곡으로 내려가야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을 굶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대피소 관리인에게 정말 700m아래에 식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50m만 내려가면 된단다. 그러면 그렇지.

  

  클린턴

  햇반과 국거리가 함께 들어있는 1회용 포장식품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침실로 들어가려는데, 아까 침실 안에서 독서를 하고 있던 서양인이 벤치에 도시락을 놓고 서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 같아 보인다.

언뜻 지나가면서 도시락을 쳐다보니 밥이 보인다.

“어! 밥이잖아?”

“예. 밥~먹~어~요.”

“우리말도 할 줄 아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네?”

“Where are you come from?"

“저 미~국~사~람~이에요.”

“American? Nice to meet you. My name is 히어리.”

“히?”

김, 이, 박...등을 나열하면서 “히”라는 성은 처음 들어본다며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I'm Clinton"

"Really?"

속으로 중얼거린다.

'네가 클린턴이면 난 레이건이다.'

  

  그때부터 미국인은 영어와 서툰 우리말(단어 몇 십 개 정도 알고 있는 수준)을 총 동원하였고, 나도 마찬가지로 서툰 영어(아주 간단한 회화정도)와 우리말을 섞어가면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내가 못 알아들을 때는 아주 천천히 영어로 말을 해주니 웬만한 말은 그래도 알아듣겠더라. 외국인과 이렇게 길게 얘기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클린턴은 서울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어제 대원사에서 올라와 장터목에서 자고 오늘이 2박째이며 내일 화엄사로 내려갈 거란다. 다음주엔 계룡산으로 미국친구인 스님을 만나러 가야한다고 좋아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서로의 디카에 찍힌 야생화 자랑을 하며 서로에게 탄성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방인이지만 참으로 성격 좋은 젊은이이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양손에 V자까지 그려 보이며 좋아라 폼을 잡아준다. 내친김에 네컷이나 찍어버렸다.

한쪽에서 임걸령 샘터에서 만난 준족의 어르신이 우릴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계신다.

  

미국인 클린턴 (셀프 카메라)
  

  코고는 사람

 침실에 들어와보니 아까부터 엄청난 소리로 코를 골며 자고 있던 바로 옆자리(22번. 사람이 많지 않아 짝수로만 자리를 배정해주었음.)의 젊은이가 여전히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무지 피곤한가보다. 저녁도 먹지 않고 저리 잠만 자다니...

 그 옆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젊은이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코고는 사람의 얼굴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

아들 녀석의 MP3를 꺼내 귀에 꽂고 있는데도 코고는 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린다.

  이층으로 올라가보니 딱 두 분만 누워있기에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침낭과 에어배게만 들고 이층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9시 정각 소등.

 그렇게 첫날밤은 깊어만 가고, 아래층에선 젊은이의 코고는 소리(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치 증기기관차 지나가는 소리 같이 대피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아무도 코고는 사람이 없었고, 그 사람만 코를 곯고 있었다.)에 대부분의 산님들이 잠을 못 이루고 가끔씩 내쉬는 긴 한숨 소리만 간간히 들려온다.

MP3를 안가지고 왔으면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뻔 했다.


 

[둘째 날 : 5월4일 (水)]

 

  벽소령 명월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정신없이 잤는가보다. 한 시간만 더 자고 일어나려고 눈을 감아보지만 정신이 점점 말똥말똥해진다. 잠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조심스럽게 배낭을 꾸려 취사장으로 내려간다.

잠시 후 전주 산님과 연세가 지긋하신 산님이 내려오시고, 벽소령의 명월은 부지런한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니 벽소령 명월을 보는 뜻밖의 행운을 잡는다.

버너에 불을 지펴 물을 올려놓고 햇반을 코헤르에 집어넣은 후 달 사진 찍기에 나선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50여장의 사진을 찍고 나니 그제서야 직성이 풀려 밥이 입에 들어간다.

  

벽소령 명월

 

벽소령의 명월 (줌 촬영)
 

  준족의 어르신(전주 산님)에게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천왕봉 쪽으로 발길을 돌려 길을 재촉한다.

동녘하늘이 붉게 물든 것이 이미 해가 솟아오른 모양이다. 천왕봉 옆으로 올라오는 해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길을 멈추고 자리를 잡아 늦은 해오름사진을 찍어보지만 시원찮다.

 

해오름. 오른쪽 나무사이의 둥그런 봉우리가 천왕봉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요상한 선비샘에서 물을 보충한 후 칠선봉으로 향한다. 이정표 맞은편의 칠선봉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저 자리에서 지나는 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오늘아침 처음으로 마주치는 이가 나처럼 홀로산행중인 아가씨이다. 대단해요. 총각이라면 발길을 돌려 그 아가씨와 동행이 되고 싶다. 총각 때는 왜 그런 용기도 없었는지….

한 참 후에 스님과 마주치고, 또 한참 후에 서양인과 마주친다. 모두가 홀로산행이고 새벽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선비샘

  

선비샘 지나서 어느 봉우리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지능들. 멀리 광양 백운산이 보인다.

 

 

고사목

 

칠선봉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는데 저 아래에서 전주 산님이 올라오신다. 아무리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간다지만 저렇게 빨리 쫓아오시다니 대단하신 분이다. 계단을 다 올라서니 전망 좋은 바위다. 뒤이어 올라오신 전주 산님. 바위에 철퍼덕 주저앉으시더니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신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먼저 일어나 앞서가신다.

  

바래봉엔 아직 철쭉이 피질 않았다. (줌 촬영)

 

 

천왕봉과 진달래

 

처녀치마

 

  영신봉과 세석평전의 진달래

  영신봉은 기암괴석이 제법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열심히 찍어보지만 집에 와서 사진을 들여다보니 보기보단 별로다.

세석평전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철쭉이 유명한 곳이 진달래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에 비하면 반도 못 미치지만 그래도 굉장한 군락이다. 저 진달래가 지고나면 철쭉이 피어날 것이다.

  산장옆 식수대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산장 삼거리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산장 쪽에서 아까 앞서가셨던 전주 산님이 올라오신다. 얼마나 지리종주를 많이 하셨으면 산장관리인들을 죄다 알고 계실까.

가물어서인지 세석습지도 바싹 말라있었다.

 

영신봉의 기암들


 

세석평전. 왼쪽에 세석 대피소가 보이고 위로 촛대봉이 보인다.

 

세석평전의 진달래

 

촛대봉의 기암

 

쇠박새

 

  장터목

 촛대봉의 기암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천왕봉이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만 같은 장터목은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질 않는다.

장터목 대피소는 고등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취사장에 들어가 물을 끓여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고 식수를 보충하려고 아래로 내려가 보니 물은 병아리 눈물만큼 나오는데 줄은 길게 늘어서있다.

라면이 불을까봐 줄서는 것을 포기하고 취사장으로 다시 올라간다.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먹으니 든든하다. 이제 목적지인 유평마을까지 먹을 것은 간식(찰떡초코파이 몇 개, 연양갱 한 개, 초코바 한 개, 오이 한 개, 사과 한 개, 칼로리바란스 한 개 등등) 만 남았다. 물만 있으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아 다시 샘터로 내려간다.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1ℓ의 물을 담아 올라간다.

  

장터목 가는 길. 뒤로 제석봉과 천왕봉이 보인다.


 

장터목

 

제석봉의 고사목

 

제석봉 고사목

 

통천문

 

  이별

 배가 불러서인지 제석봉 올라가기가 약간 힘이 든다. 옷을 벗어버려 슬픈 고사목들이 당당하게 제석봉을 지키고, 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지리산 십일경의 하나로 꼽으면 어떨까 싶다.

  제석봉을 넘어 안부 바위밑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천왕봉 쪽에서 전주 산님이 내려오신다.

“어! 대원사로 하산하신다면서, 왜 되돌아오십니까?”

“중봉 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되돌아오네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백무동으로 내려가서 인월로 가려고요. 차가 인월에 있어가지고...”

“네에. 잘 하셨네요.”

2박삼일동안 인월에서 올라 바래봉, 만복대, 노고단(1박), 벽소령(1박), 세석, 천왕봉, 장터목,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70km가 넘는 길을 별로 힘도 안들이시고 해내시는 대단한 어른이시다. 무탈 산행을 기원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분의 사진을 한 장도 찍은 것이 없어서 매우 안타깝다.

  

  아! 천왕봉

 통천문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지막 힘을 내어 천왕봉에 올라선다.

서쪽으로 지나온 길을 쳐다보니 참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편 중봉과 써리봉쪽을 바라보니 갈길이 바쁘게만 느껴진다.

중산리로 내려가면 고생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지루한 대원사 쪽으로 내려가면 고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저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 천왕봉

 

 

천왕봉에서 바라본 지나온길. 참으로 멀고도 아름다운 길이다.

맨 뒤 가운데 제일 높은 봉이 반야봉, 그 왼쪽이 노고단.

 

앞으로 가야할 길. 왼쪽이 지리산 제2봉 중봉

 

  급경사를 한참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산사태로 무너진 중봉 보수 공사하느라 임시로 지은 조립식 건물을 지나 얼마인가를 오르니 중봉이다. 널따란 정상부위가 맘에 든다. 천왕봉에 많은 산님들이 올라있는게 보인다.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린 후 드디어 써리봉에 올라선다.

이미 고인이 되신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님은 써리봉은 웅장하고 험악한 암벽이 펼쳐져 지리산의 천봉만학을 볼 수 있다고 극찬을 하였었다.

중봉에서부터 치밭목까지는 주목과 구상나무가 유달리 많은 구간이다. 설경을 감상하려면 이곳이 최고일 것이지만, 대원사에서부터 워낙 먼 길이라 보통 맘 가지고는 설경보기가 힘들 것이다.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줌 촬영)

 

 

하산코스. 왼쪽 능선 중간에 하얀 부분이 치밭목 대피소. 금방 갈것 같아도 한참을 가야한다.

 

줌으로 당겨 본 치밭목 대피소

 

써리봉에서 바라본 천왕봉과 중봉

 

  치밭목대피소에는 몇몇 산님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산장지기인 듯한 사람에게 대원사에서 진주가는 막차가 몇 시냐고 물어보니 7시란다. 서둘러 내려가면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치밭목 대피소
 

  이십오년만의 만남. 무재치기 폭포

  계곡을 건너고, 지루한 숲 속을 내려가니 나무계단끝에 무재치기폭포 이정표가 보인다. 이 코스를 택한 연유가 바로 이 무재치기폭포를 보기 위함이었으니,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00m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올려다본 폭포는 이십오년 전에 보았던 그때의 감동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해 여름엔 제법 수량이 많아서 넋을 놓고 바라보았었다. 그때는 등산로가 계곡 옆으로 나있어서 지나가면서 보았는데, 지금은 한참을 내려가야만 볼 수 있게 등산로가 바뀌어져있다.

  

장엄한 무재치기폭포. 갈수기라 수량이 적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차시간에 쫓기어 내려가야만 한다. 여기서부터는 인내심과의 전쟁이다.

온통 숲으로 뒤덮여 조망도 없고 지루한 길, 이상한 나무계단과 산죽길을 지나니 한참을 올라간다. 내려가도 시원찮은데 올라가다니, 그 오름이 장난이 아니다.


 

   금낭화

  오르막길이 끝나고 경사가 제법 완만한 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앞에 환한 것이 보인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금낭화가 화려한 꽃을 선보이고 있었다. 다른 코스에 있었더라면 몰지각한 사람들의 남획으로 볼 수가 없었을 터인데, 등산로 옆에 저리 곱게 피어있다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심마니가 산삼을 만난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튀어나온다. 몇 걸음 더 나아가니 몇 그루가 또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펼쳐지는 군락.

지리산 산신령과 대자연에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외쳐본다.

이곳이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텐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이곳을 특별구역으로 설정해 탐방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출입을 금지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해본다.

 

금낭화 군락지. 하루빨리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해야할 것으로 본다.

  

아름다운 금낭화


 

노루삼

 

쥐오줌풀

 

  오른쪽으로 계곡을 따라 한 없이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유평마을이 나온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길이었다. 대원사계곡엔 철쭉이 만개하였고, 계곡물은 굉음을 내며 흘러내려간다.

발바닥에서 불이 난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식히니 좀 살 것 같다.

  

산행 날머리인 유평마을. 오른쪽길 아래는 대원사 계곡

 

 아슬아슬

 사진을 찍으면서 대원사계곡을 내려간다. 20분 정도 걸어 내려갔을까 뒤에서 트럭이 한 대 오기에 무작정 손을 들었다.

 아낙을 태운 초로의 노신사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버스타는데까지만 태워달라고 하니 얼른 타란다. 감사합니다 소리와 함께 화물칸에 냉큼 올라탄다.

한참을 가니 대원사가 나오고 또 한참을 가서야 널따란 주차장에 이른다. 그때 시간이 6시 30분. 고마운 아저씨 덕분에 버스를 타게 생겼으니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는지 모른다. 실제로 7시에 있다던 막차는 6시 35분쯤에 도착하더니 40분에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대원사 계곡

 

 

대원사를 지나가면서 트럭 적재함에서 찍은 사진. 꼭 트럭을 타지 않고

옆에서 찍은것 같지만, 실제는 달리는 차 위에 앉아서 팔만 밖으로 내밀고 찍은 것임.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40분. 매표원에게 순천 가는 막차가 몇 시냐고 물어보니 7시 50분 곧 출발한단다. 저녁도 굶고 집에까지 가게 생겼다.

 어둠이 내린 남강의 다리는 화려한 조명으로 아름다운 도시 진주를 진주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진주 (버스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