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일시 : 2005.4.22일 밤-25일 새벽

2.산행인원 : 직장산악회 90명

 

제1일 옥류동과 구룡폭포 탐방기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금강산 유람을 오늘에 와서야 떠나게 되었다. 책으로 그리고 傳聞으로 익히 들어왔던 금강산 기행이지만 남북분단 60년간 가려져 있었던 신비의 너울을 내 눈으로 직접 벗겨보리라 다짐하면서 길을 떠났다. 한 손에 책(나의 북한문화 유산답사기 : 금강예찬 / 유홍준 )을 들고 등에 배낭 걸머지고.

 

 

많은 신청자들 때문에 입추의 여지없이 그득한 버스안에서 비좁은 좌석에 시달리며 졸며 깨며 가노라니 이윽고 남쪽의 마지막 식사장소인 금강산 콘도에 도달하였다.아직 덜깬 눈을 부비며, 동해의 일출을 감상하고 통일전망대에 인접한 남측 CIQ에 도착했다. 약 10년전에 교회수련회에 따라와 고성 통일전망대에 와본 적이 있었는데, “언제나 북녘에 가볼 수 있을까” 하고 금강산을 그려본 적이 있었다. 세월 무상하고 정세는 급변하여 이렇게 그때 머물렀던 자리를 거쳐 금강통문을 지나니, 군사분계선 한 가운데를 지나고 황량한 북측 풍경이 다가온다.


 

05:00 콘도에서 남쪽에서의 마지막 식사

05:38 금강산 콘도에서 일출

06:30 버스 안에서 관광증 발급, 1차 소지품 검사(핸드폰이나,라디오,카메라)

07: 00 동해선 남측 출입사무소(CIQ, 통일전망대 앞에 있음)로 출발

07: 40 남측 CIQ에서 수속후 출발, 북방한계선 통과후 북측 군인들이 인원점검 및 차량점검(짐칸 등) 검사


 

금강산 가는길 해변 쪽은 모서리가 부드러운 바위돌이 켜켜이 쌓아 올려진 조그마한 바위산이고 육지 쪽은 골프장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민둥산이 연두색 철망과 북으로 뻗어가는 동해북부선 철로를 사이에 두고 줄곧 이어졌다. 아마도 민둥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깃든 듯 하였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였다. 제초제를 뿌린 것이라는 둥, 토질 문제나 해풍의 영향이라는 등, 그러나 남쪽의 푸른 신록의 모습과 대조해 보면 인공적인 조치 때문에 이러한 살풍경한 모습이 빚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귀착하게 된다. 그래도 고지 암봉에는 초소와 해변을 향한 포들이 위장되어있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며, 미개통된 동해선 철로로는 여남은 명의 병사가 철로 옆을 걸어가는 모습이 짠하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붉은 ,혹은 백색 깃발을 들고 부동자세로 근무를 서고 있는 한 두 명의 군인들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들판의 옥수수 밭도, 늘어선 낡은 통나무 또는 팔각형 전봇대의 두세 줄의 전깃줄도 그들의 에너지 사정을 짐작케 해주었다. 철망 건너 쳐다보이는 작은 마을의 문화주택들은 낡아서 수리해야 할 것 같은데 담장 안엔 옥수수가 무성한 것이 자연 속에 파묻힌 모습 같아 묘한 조화가 느껴진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남측 안내조장이 2차 소지품 검사(줌 배율 428mm로서 반입금지 판정, 나중에 수하물꼬리표엔 찐 계란으로 명기됨, 아마도 해금강호텔에 보관하는 듯)와 아울러 일반적인 주의 사항과 북한 생활에 대한 안내가 있었으니, 차량 이동중 손가락질은 ‘손가락총질’로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설명과 더불어 밭이나 정미소 등 일터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은 ‘작업중’을 뜻하며, 과자인 제리는 '단묵', 주차장은 ‘차마당' 이라고 하는 등 한글을 살려쓰기에 애쓰는 모습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08: 30 장전항에 있는 북측 CIQ에 도착하여 입국심사

입국심사는 한마디 질문 없이 의외로 간단하게 끝이 났고, 이 절차는 예전에 쿠바에 입국했을 때보다 더 긴장감을 주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금강이다. 장전항은 사진촬영 제한지역이지만 인터넷엔 금강의 아름다움에 혹해 찍어둔 외금강 모습이 실려있었다. 오른쪽 암봉이 천불산 촛대바위, 좌측으로 보이는 범귀처럼 생긴 암봉에 대해 북측 군관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고  남측 안내 조장에게 물어보라고 손사래치며 미룬다.


 

CIQ 바로 앞에 우리가 묵을 해금강 호텔이 보였지만 일정에 따라 바로 온정각으로 이동하니 온정각 앞에 울퉁불퉁한 바위 봉우리를 보고도 눈앞에 바짝 다가와 서 있는 거대한 금강산의 위용에 묻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적었고, 그 이름을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니 온정각 남쪽 편에 자리잡은 것이 닭알바위 봉우리로 . 구렁이가 달걀(닭알)을 먹으려다가 두 동강이 난 바위의 전설이 있다. 셋 중에 좌측 봉우리에 달걀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봉우리이다.

 

온정각에서 북쪽 편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鷹巖(매바위 봉)이다. 양진리 뒷산에 해당하며 고성 출입국사무소로 가는 방향 좌측에 있는 봉우리다. 매가 앉아서 온정리를 지켜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윽고 고대하던 금강산 탐방이 시작되고, 신계사터에 자리잡은 새 절을 지나쳐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10:00 구룡폭포와 상팔담의 산행기점 도착

10:10 산행시작

10:35 五仙巖: 구룡연(3814m)-온정리(5663m)


 

오선암에 얽힌 조선시대 지방관들의 유람 기사를 읽고 옛사람들의 契會에서 오가던 풍류한담을 떠올리며 “나는 이 곳에 와 어떤 글을 남길 것인가?” 생각하며 발길을 서두른다.

10:37 목란관과 신계다리

10:45 앙지다리(회상다리) 산죽과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피고 노랑제비꽃이 무리지어 피어난 길섶을 본다.

 

10:50 앙지대  앙지대에서 만난 여성 안내원은 내가 본 꽃 이름을 묻자 노루귀꽃 아니냐고 되묻고. 그냥 이것저것 바위이름이나 들으니 여기저기 物形이 널렸다.

 

 

앙지대를 지나니  금강의 미인송은 아니지만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낡아지는 인간이 만든 녹슨 쇠줄과 대조되어  바위위에 자라난 멋있는 조선소나무가 돋보이고,


 

10:55 삼록수 (산삼 +록용이 녹아 흐르는 물)

김일성주석은 생전에 금강산을 3번 다녀갔다고 전한다. 그때 이름 지은 이 물은

처음 들었을 때는 옹달샘인가 싶었지만 맑은 개울물인지라  지나치게 미화된 느낌이었다.


 

10:56 금수다리(아치교)

11:00 만경 다리(문평제련소)

다리를 지날 때마다 우리의 다리마다 새겨진 記銘이 있는지 살펴보니 몇몇 곳에 남아있긴 한데 쇠다리일 경우에만 제련소,조선소 등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이제 시작되는 옥류동 계곡은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지고, 양쪽으로 치솟은 암봉의 모습에서 예전에 다녀온 페루의 우르밤바 계곡을 연상하였다. 이어진 연봉들과 우르밤바강의 탁류와 대조되는 맑은 계류와 나무판 출렁다리는 조선의 땅임을 실감케 했고.


 

11:05 금강문: 구룡연(1750m)-주차장(2064m)


 

금강문을 지나기 전에 만나는 글발에는 계속 보아온 글발과는 달리 보기 드물게 서정적인 시구가 쓰여 있어 옮겨본다.

앞면에는 김형직(1972.3 조선국민회 55돌)을 기념하여 지은 글로


 

금수강산 삼천리에 푸르른 소나무가

그처럼 빛나고 그처럼 푸르러 설레이는 것은

- 뜻을 지니었기 때문이다. 後略


 

뒷면에는 강반석(62.4.21 탄생 70돌 기념)을 기념하여 지은 글로

 좁쌀 한 톨로 나라를 찾는 위업을 위한 헌신을 강조한 글이 새겨져 있는데, 도처에 새긴 글발보다 한결 나아 보인다.


 

외금강의 속살이 보인다는 금강문에 이르니 성벽암 가는 길 왼쪽 암봉에 토끼와 거북이가 합체된 모습이 나타나고 아들이 즐겨보는 외산 만화영화 주인공 ‘cat dog’과  비슷해 보인다.


 

11:10 금문교 출렁다리: 옥류동(440m)

다리를 건너자 앞에 기관차바위, 우측 관음연봉으로는 앵두라져 뒤돌아선 며느리 바위가 보이고 옥류동 계곡에 들어서니 무대바위가 앞으로 보이고 뒤쪽엔 뾰족한 꽃처럼 설악산 이름과 같은 天花臺가 피어있네.

계곡 가는 길에 새겨진 무수한 한자 記名중에 찾아보니 유일한 ‘민리백“이라는 한글이름도 보이니 자기 顯示慾은 언제 어디서나 드러나게 마련인가?


 

옥류라 이름지어 노닐던 춤터에서

바위에 이름들만 지겹도록 새기어도

아서라 하늘 꽃들이 하릴없이 웃고 있네


  

11:20 옥류동 표지 천연기념물 418호 : 구룡연(1104m)-주차장(2710m) 폭포길이 58m


 

관광객이 밀려 올라가는 옥류동에 이르러 면암 최익현의 한시를 생각하며 시조 한수 읊는다.


 

세존봉 드높아라 옥녀봉 비껴서고

맑은 물 푸른 솔이 예처럼 孤絶한데

연주담 지나는 길손 무에 그리 바쁘던고.


 

11:25 연주담 표지 천연기념물 417호: 구룡연(864m)-주차 종점(2950m)

연주담 구슬 2개가 연주폭포 낙하지점의 웅덩이와 합쳐져 사파이어처럼 큰 구슬처럼 보인다.


 

11:30 비봉폭포: 구룡연(750m)-주차 종점(3064m) 폭포길이 139m 천연기념물 222호

비봉폭포엔 여름날처럼 거세지는 않았지만 봄 물이 마르지 않고 봉화담으로 쏟아지고!

 

11:31 무봉폭포(벤치)20m

다시 길을 가니 바위 위의 연분홍 진달래가 고와보이고 殘雪이 바위처럼 흡사 동물모양같다. 무봉폭포는 폭포라기보다는 넓은 물줄기로 보였으니 폭포보다는 갖가지 물형바위 찾노라고 지나쳐버렸다.


 

무용교 출렁다리(원산제련소)를 건너니 銀絲流 갈림길이 나타나고,


 

관폭정 가는 길 오른 족 바위엔 92년 김일성 주석이 지은 한시와 더불어 한글로 뜻을 새긴 시가 기록되었는데


 

백두산 마루에 -- 봉긋 솟아있고

소백산 푸른 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後略


 

이 시를 보고 해강 김규진의 ‘彌勒佛’글씨 보존 유시를 보건대 인문적 교양을 갖춘 정치지도자였음을 짐작한다.


 

11:40 관폭정(주차장까지 3814m 상팔담까지 734m 세존봉까지 2660m)

이곳에서 안내원 아가씨의 설명을 듣는다. 구룡폭포는 유량의 변화로 74m에서 120m 까지 변화하며 미륵불 글씨 길이가 폭포 깊이와 같고(13m),여가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 12km이니 아직 갈순 없지만 올라간다면 5-6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세존봉에는 갈 수 있다. 세존봉 코스는  신계천-동석동-세존봉-구룡폭포-옥류동을 지나 다시 신계천으로 오는 것으로 도상거리가 15km에 달해 7시간 정도 걸리지만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심한 암벽을 올라야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산행하는 기분이 난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수많은 금강산의 봉우리와 외금강의 시원한 자태를 볼 수 있고, 가는 길엔 보라색 세잎종덩굴과 보라색 투구꽃,처녀치마,산벗나무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음 금강산길에는 산행의 맛을 만끽해보리라.

   


 

 11:50 상팔담 갈림길(오름길 20분)

은사류에서 시작되는 갈림길 밑에서 구룡대까지 고도는 약 200m 차이이며 급경사 오름길에는 처녀3명이 삽 들고 등산로 정비를 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름길 돌에는 미끄럼 방지 홈을 새겨놓고, 이렇게 등산로 정비까지 하니 그나마 그 많은 사람에 시달려야 하는 산길로서는 다행이 아니런가.


 

12:10 구룡대 (해발 880m)

상팔담에 올라서자 안내원 하는 말,우측 옥녀봉에 탱크바위 좌측 세존봉, 구정봉, 천화대라. 상팔담을 골짜기로부터 잘 세어보면 10개,아니 11개 담소가 보인다. 나중에 찾아보니 상팔담 같은 지형을 지리학 용어로는 자갈이 작은 구멍에 들어가 소용돌이치면서 침식을 가해서 나중에 연못처럼 크게 된 ‘포트홀’이라고 한단다.


 

구룡폭을 에둘러서 구룡대에 올라서니

 여덟개 담소마다 진초록 비취 물이

 한세월 외곬수 길로 깊이 쏟아 부었는가 

   

12:20 하산 시작(갈림길 까지 12분)

12:32 갈림길 하산

옥류동 계곡을 돌아서는데 책을 읽고 있는 처자가 문득 눈에 띄인다. 읽고 있는 책을 물어보았더니 “리규보작품집/김상훈, 류희정 공역 평양: 문예출판사,1990년”이었고 고성군립도서관에서 1주일간 대여해서 麴先生傳을 읽던 중이라고. 호기심으로 한자에 대한 지식과 학교에서 한자를 배우는지 물었더니 기본적인 한자는 배우고 있다하니, 뒤미처 북한의 국역본에 대한 칭찬을 거들게 되었다.


 

(고려 고종(高宗) 때 지헌(止軒)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지은 假傳體說話로서《(東文選)》 제100권에 실려 있는 설화이다. )

*국성(麴聖)의 할아버지 모(牟:보리)는 주천(酒泉)에서 살았는데, 아들 차(:흰 술)는 곡씨(穀氏)의 딸과 혼인하여 성(聖)을 낳았다. 성의 벼슬이 높아지고 임금의 총애를 받자 사람들은 그를 국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힘을 믿고 방자하여 비난을 받았으며, 이로 인하여 국성은 서민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다시 기용되어 공을 세우고 잘살았다는 이야기로 누룩[麴] 등을 의인화하여 당시의 문란한 정치·사회상을 비판하였다.


 

13시 00분 목란관 도착(목란관에서는 평양식 물냉면·비빔밥·추어탕을 10달러에 팔고 반찬으로 녹두지짐, 만두, 나물 등이 함께 나오는데 간간한 맛이 북한음식의 참맛을 느끼게 한단다. 된장이나 시래기 등을 넣는 남한식 추어탕과 달리 고추장을 많이 넣는 편이며 산행 전 온정각에서 점심메뉴를 예약해야 한다.) 북한측 접대원으로부터 봉사를 받으며 점심식사로 비빔밥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성수기엔 발 디딜 틈 없이 바쁜 목란관에서 막걸리를 팔았는데, 반응이 좋자 최근에는 목란관 앞 매점 입구 등산로 곁에 아예 숯불 석쇠구이판을 차리고 여성 봉사원들이 막걸리와 반건조 낙지 구이(막걸리 1병에 3달러, 낙지구이는 2마리에 3달러. 1마리씩은 팔지 않는다.)를 팔고 있다. 장전지역 음식은 낙지구이처럼 대체로 매콤한 편이라고 하지만 직접 맛보지 못해 내 구미에 맞을지는 미지수!


 

13:30 하산

13:35 문필봉(文筆峯)을 등지고 선 신계사 새 대웅전엔 해인사에서 파견된 승려가 별관심없어하는 관광객들에게  4대 신라 古刹인 신계사 내력을 들려준다.


 

삼일포 유람기

 


 

이제는 해금강이다. 코스만 있었으면 본격적인 해금강 총석정과 더불어 둘러보고 싶었지만 자투리시간 옵션으로는 이게 전부다.(10달러)


 

15:00 온정각 출발

15:15 삼일포 도착 내려가는 길 우측으로 작은 돌고래 형상의 바위가 있고

15:20 단풍관 도착 단풍관은 보잘 것 없는 작은 휴게소로 四仙亭의 정취와 비교해보면 足脫不及이었고.


 

15: 30 봉래대 도착 (명승지 46호 )

봉래대 바위에서 안내원으로부터 와우도와 관음정, 봉래 양사언의 사적을 전해들으니 삼일포는 민물호수요 깊이 9-13m, 둘레 8km인데 예전에는 얼음두께가 1m에 육박했다가 최근에는 3cm정도밖에 얼지 않는 이유가 남과 북의 통일 열기가 뜨거워 그런 걸 거라고 둘러대는 말솜씨에 쓴 웃음을 지었다.


 

동해의 푸르른 물 검붉은 민둥산과

四仙정 舞仙대에 춤추던 옛 흔적을

한 사흘 더듬고 싶은 헐벗은 나그네여

 

15:45 출발


 

15:50 장군대(1973년 건립) 에 도착하니 또 여성안내원이 나서

솔섬은 송이로 유명하며 四仙정,丹書암,舞仙대,夢泉에 얽힌 사적들을 줄줄 쏟아낸다. 호수 안에 떠있는 부표는 김정숙 사적이라고 하지만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다. 설명이 끝나자 안내원이 목이 마른지 내가 들고 있는 물병을 보고 물 한모금을 청한다. 기꺼이 건네주니 역시 사람인지라, 고맙다는 말 한마디!


 

16:00 종료


 

오는 길 차속에서 삼일포 가는 길에 심겨진 대나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말인즉슨 토종 대나무가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이쑤시개 용도로 재배되고, 평양에선 발육이 부진했으나 해양성 기후인 이곳에서만 정착했다고. 예전엔 남북관계에 암울했던 빙하기였지만 꼭 토종이 아닌 중국 대나무를 들여올 절실한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삼일포 오가는 길에서는 우체국(체신분소),트랙터 1대, 황소 3마리의 밭가는 모습 이 엿보였고, 붉은 깃발(작업장마다 숫자가 달랐지만)올려진 작업장 모습과 여인들이 자전거 타고 가는 모습, 개울가에서 아기를 업고 나물 캐는 여인, 옥수수 밭의 풀을 뽑고 있는 민간인들에게서는 삶의 풍취가 물씬 풍겨났다.

한편 어린이들의 모습으로는 낚싯대 매고 개울을 건너는 아이, 방과 후 집을 향해 가는지 산길을 오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정겹고, 학생들의 차림새는 원색의 유니폼으로 치장하여 왠지 생경해보였다.


 

16: 30 해금강호텔 체크인 -다음날 7시 30분 체크아웃


 

호텔은 싱가포르에서 도입한 해상호텔로서 시설은 현대 제공했으며 무궁화 3개 수준 정도였다. 저녁은 교예단 공연을 보지 않기로 한 관계로 온정각으로 가지 않고 호텔에 남아 라면으로 때우기로 했다. 호텔 프론트에 뜨거운 물 주문하자 비교적 친절하게 주전자에 담아주는 것을 보니 봉사 정신도 있어 보인다.

방에서는 남측의 공중파 방송과 ytn이 방영되었고 수신 상태 양호하니, 케이블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위성 수신이 아닌지?

방 배정은 부부들은 항구가 보이는 곳으로 배정하고 홀로 여행자들은  ciq 쪽으로 배정받아 풍경이 황량하기만 하여 보잘것없는 바깥 풍경 대신에, 국산 짚차(기아) 타고 다니는 인민군을 쳐다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2일 만물상 등산기


 

아침 일찍 일어나 장전항[북한에서는 고성항이라고 부름]과 외금강 연봉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테라스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식사를 했다. 장전항 건너편으로는 북한의 고성읍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고, 앞바다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작은 목선(노를 저어서 다니는 거룻배)들이 떠 있다.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이 손을 흔들어 주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군관은 손을 흔들어 주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뭘 물어보아도 퉁명스럽기만 하다. 북한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통하는 길 입구에는 어김없이 초병이 배치되어 있다. 천불산 줄기 줄기를 완상하다가


 

7시 30분에 해금강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온정각으로 이동하여 마지막 코스인 만물상행 버스를 탄다. 짐은 모두 버스에 남겨두고, 0.5리터 물 1병과‘금강예찬’ 책 1권을 손에 드니, 유람길에 나선 완연한 답사객의 모습으로.


 

한 손에 책을 들고 등에 배낭 걸머지고

홀로 떠난 금강산길 아침 햇살 눈부시니

두어라 찾아가보니 다같은 내 땅인걸


 

만물상 가는길은 도처에 기암괴석이 叢立하였고, 어제의 옥류동 코스와는 대조적으로 표지판등의 시설이 不備하였다. 하여, gps나 고도계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시간기록으로 대략의 산행거리를 짐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수정봉의 반대편에 있고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觀音連峰은 만물상으로 이동 도중에 만날 수 있다. 서관음봉 중관음봉 하관음봉이 줄곧 바위산으로 이어진 험준한 산줄기다. 관음봉이란 이름도 지형이 너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선조들이 날카로움을 달래려 인자하고 온화한 관음보살에서 따왔다고 한다.


 

관음폭포를 지난다. 물이 많이 흐를 때는 높이 37m, 폭 4m에 달한다고 한다. 상관음봉쪽에 있는 바위인 六花岩[눈꽃바위]도 보인다. 바위색이 희끗희끗하여 달빛이 비칠 때면 마치 눈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寒霞溪(깊은 계곡이 바람을 막아 생기는 온도차이로 인해 연중대부분이 안개가 끼는 데다 기온도 매우 낮아 붙여진 이름이다)를 거슬러 오르면 나타나는 관음봉은 해발 1,132미터이며 육화암에서 한하계는 끝이 나고 온정령으로 구비쳐 올라서는 길옆 개울을 萬相溪라 부른다. 육화암에서 온정령길을 따라 2KM쯤 가면 상관음봉을 볼 수 있으며 각각의 전설이 서려 있는 장군바위와 동자바위 촛대바위,말바위와 망아지바위 등을 만나고 중관음봉 쪽에 쏟아져 내릴 듯한 곰바위를 지난다. 곰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비로봉에서 살던 곰 한 마리가 봄을 맞아 먹이를 찾아서 양지쪽을 향해가고 있었다. 곰이 막 중관음봉을 넘어서는데 계곡물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문주담 맑은 물속에 도토리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허기가 진 곰은 물속의 조약돌들을 도토리로 착각했던 것이다. 곰은 도토리를 먹으려고 힘껏 내려뛰었다. 그런데 너무 굶주린 탓에 문주담에 이르지 못하고 절벽중턱에 떨어졌다. 이 때 그만 뒷발이 바위틈에 끼이고 말았다. 곰은 그래도 도토리를 먹으려는 생각으로 한눈을 팔지 않고 물속만 바라보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곰은 한 알의 도토리도 먹어보지 못한 채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萬相溪를 지나면 무려 106개의 구비가 있는 온정령(857m)에 접어든다. 북한에서는 이 고개를 차량이동이 가능하도록 포장하면서 영웅고개란 이름을 붙였다. 온정리에서 온정령까지의 거리는 총16km 정도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1시간가량의 차량 이동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구비마다  옛사람이 오르내린 샛길이 보이니 허락만 된다면 샛길로 오르고 싶은 마음 또한 어찌하랴!


 

온정령 입구에는 만상천의 물을 맛볼 수 있는 萬相亭이 있다. 만물상은 특정한 봉우리 이름이 아니고 온정령 북쪽 오봉산 일대의 奇巖群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만상정 사거리에서부터 만물상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천선대까지의 거리는 불과 1.5km에 불과 하지만 가파른 길과 기암절벽 때문에 직선등정이 어려워 1시간이상의 우회로 등산이 불가피할 정도로 험하다. 개울을 건너면 대간 줄기인 상등봉(1227m)이라는데 쳐다만 보고 만다.


 

만물상 코스 산행 들머리 주차장에 자리잡은 ‘황금마차’는 금강산 구경을 왔던 남측의 노부부가 아이디어를 내 2002년 7월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간이 판매대로  입구에는 별도의 음식점이 없어서 막걸리와 떡볶이, 어묵, 컵라면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특히 겨울철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황금마차가 인기를 누리자 최근 북측 여성봉사원들도 이곳에 ‘노점상’을 차리고 영업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9시 01분 만물상 등산로입구에 도착했다.  해발 615m다. 주차장 바로 위에는 만상정이 있는데 시멘트로 만든 멋대가리 없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뒤에는 김일성 주석이 1947년 9월 27일 여기서 교시를 내렸다는 비석이 있다. 여기서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 회양으로 가는 길과 서북쪽으로는 고성읍으로 가는 길, 서남쪽으로는 구성동과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는 무병장수한다는 샘물이 있는 만상천이 있다. 안내원에게 물은 결과 만상정의 고도는 660m!


 

9시 08분 장수바위를 지난다. 그 생김새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지대는 문짝과 지붕이 없는 대문과 같아 만물상 대문이라고도 한다. 장수바위를 지나면 우측으로 ‘가는 폭포’라고 불리는 계절 폭포가 나타나고.

 

9시 15분 등산로 바로 왼쪽으로 삼선암이 나타난다. 나란히 선 세 개의 바위가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데 구름이 흐를 때 바위들이 움직이는 듯 한 모양이 꼭 하늘에서 신선들이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높이가 30~40m는 되어 보인다.


 

등산로 오름길은 시종 돌길이지만 유홍준씨의 답사기대로 정성이 깃든 길이라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9시 20분 거북이와 토끼바위를 지난다. 오봉산이 바로 위에 보이고 千峰萬壑 奇巖怪石과 層巖絶壁들이 수십길, 수백길 높이 치솟아 올라 千態萬象을 이루었다. 


 

9시 25분 7층암에 도착했다. 40여m나 되는 7층암 꼭대기에는 원앙새바위, 그것을 시샘하는 강아지바위가 있다.


 

오른쪽으로 세지봉 능선과 절부암 위로는 두더지바위, 독사바위, 애기곰바위, 도마뱀바위, 부엉이바위, 물개바위, 꼬부랑 할머니바위 등 온갖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절부암은 옛날 어느 힘센 장수가 도끼로 바위중턱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9시 37분 망양대와 천선대 갈림길을 지난다. 오른쪽이 망양대로 가는 길이다. 돌계단길이 계속 이어진다.


 

9시 47분 쉼바위에서는 엄지와 집게 형상의 바위와 두 손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여기서 3분을 쉬며 물 한 모금을 들이킨다. 오늘 이곳 만물상에 몰린 사람은 무려 1000여명을 넘으며, 망양대 쪽으로 300명이 가는 중이라고 안내조장의 무전이 오간다.


 

10시 제2망양대[1040m]에 오르다. 비로봉이 바라보이고 수정봉, 문주봉, 집선봉, 채하봉, 세존봉, 옥녀봉, 관음연봉, 월출봉, 장군성까지 보인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제일 멀리 보이는 섬이 알섬, 뒤에 있는 섬이 솔섬, 가운데 섬이 간섬, 남쪽 섬이 개지섬, 가까이 있는 섬이 삼섬이다. 이곳 안내원에게 여러 섬과 동해쪽 전망에 대해 물어보다가 천불산 범의 귀처럼 생긴 봉우리에 대해 물었더니 잘 모른단다. 필시 이름이 있을 텐데 알지 못하는 것인지......


 

이 곳 안내원은 내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슬그머니 책을 달라고 하여 책 내용을 훑어보며, 책속에 나온 엄영실 동무를 아느냐고 물어보고 내가 사는 곳을 물어본다. 답변을 회피했더니 ‘왜, 남측 사람들은 물어보는 말에 답변을 잘 하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어본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망양대로 오르는 사람들이 적체되어 바윗길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려보지만 그들은 웃기만 할 뿐, 단속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오히려 남측 조장들이 빨리 내려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10시 05분 제3망양대[1045m]에 올라선다. 만상계와 한하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해금강 일대의 섬들과 남강, 까치봉, 멀리는 남한쪽 산들도 볼 수 있다. 연이틀 날씨는 그지없이 맑아 봄철 황사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비로봉을 향해서 장쾌한 기세로 치달려가는 외금강의 산 능선들과 장엄한 산봉우리들이 한 눈에 담아둔다.


 

10시 30분 돌아오는 길에 제1망양대로 오른다. 등대봉 너머로 형제섬이 보이고 영지반도가 보이고 천불동과 선창계,촛대바위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외금강군의 산들이 보이고, 앞으로는 상등봉, 관음연봉, 옥녀봉, 영랑봉, 비로봉을 조망할 수 있다.


 

10시 57분 천선대 갈림길


 

11시 07분 석굴문(하늘문)


 

산을 오르는 내내 담배꽁초 한 개, 버려진 휴지 한 조각도 볼 수 없다는데, 유일하게 천선대에서 금강문 오르는 길에 금강문 바로 아래 철사다리 으슥한 곳에 버려진 물병이 눈에 띄었다.


 

11시 12분 천선대   하늘문을 나서면 바로 천선대다.


 

천선대[936m]에 오르다. 만물상의 경치가 너무나 좋아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천선대라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수백길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천선대는 만물상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만물상의 뛰어난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천선대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될 만큼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천선대를 중심으로 오봉산[1263m]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의봉, 무애봉, 천진봉과 하늘을 떠받들고 선 기둥 같은 天柱峯, 天女峰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까닭에 오봉산이라고 한다. 오봉산 오른쪽으로는 사람모양의 세지봉이 병풍처럼 솟아올랐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삼선암 너머로 보이는 상등봉과 영랑봉, 관음연봉, 세존봉, 멀리는 집선봉, 채하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옥녀봉을 거쳐 오봉산과 선창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와 집선봉 채하봉 세존봉 등 대표적인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윤수정 이라는 여성안내원을 만났다. 가는 곳마다 화제는 내가 들고간 유홍준 선생의 금강예찬이라는 책으로 시작하여, 이산가족인 내 개인사, 그리고 내가 쓴 글들, 통일에 대한 내 생각들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옆에 서있던 남자 안내원은 시종 금강예찬 책을 들여다보더니 내게 책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衆人環視리에 책을 선물하면 오해받을까 저어하여 거절한다. 다만 남들이 보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귀뜸해보지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12시 07분 하산길 天一문(하늘문)을 통과한다. 금강산의 여러 돌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사방이 막힌 벼랑에 석문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서쪽벽에는 '금강제일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2시 10분  忘丈泉[945m]이 나타난다. 망장천에는 산행에 지친 사람들이 물을 받느라고 줄을 서 있다.


 

안심대를 지난다. 안심대는 망양대와 천선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아래위가 다 절벽이지만 이 곳만은 말안장처럼 생겨 마음놓고 쉴만하다고 해서 안심대라고 한다. 안심대를 지나니 왼쪽으로 제1,2,3 망양대가 올려다 보인다.


 


 

12시 30분 그런데 하산 길에서 뒤따라오는 윤수정 안내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어찌 빨리 내려오느냐’고 물었더니 근무시간이 끝나 하산한 거라고 하며  칠층암에 얽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는 오름길에 지나쳤던 頂成臺에 다다라 잠깐 올라가보려 했더니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끝으로 안내원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들이 요구했던 대로 유홍준씨의 책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이 책 때문에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음에 금강산에 올 때 선물하리라고 마음먹고 하산길을 재촉했다.


 

12시 35분 정성정 전망대 귀면암 사진 촬영


 

삼선암의 바로 위에 우뚝 솟아있는 암봉이 귀면암이다. 머리에 둥그런 돌 하나를 이고 서있는 모습과 얼굴이 험상궂은 도깨비같다 해서 지어진 귀면암은 단층현상과 풍화과정을 연구하는데 좋은 대상으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귀면암 뒤로  독선암이 멀거니 서있고.

 

12시 43분 전망대 출발


 

오봉산 만물상에 허위허위 찾아드니

一望無際 망양대에 千峰萬壑 천선대라

옳거니 다 찾아보렴 세상만물 깃들었네


 

새로 난 철계단길 단정한 안내원이

이제야 오셨냐고 나눈 情談 끝이 없어

아쉬워 돌아선 길에 아로새긴 추억이여


 

12시 46분 만상정 도착


 

점심을 거르고 바로 쇼핑에 나서 남은 돈으로 추억이 될만한 물건을 고르다가 북에서 발행한 독도우표와 금강산 우표 세트를 구입하고, 장뇌삼 단묵과 조선 엿을 구입하여 맛보기로 한다. 가족들에겐 미안한 마음으로 극히 일부나마 북녘의 정취를 전달할 수 있을는지.


 

13시 55분 남은 오후 자투리 시간을 금강산 온천에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온정각 앞에 대기한 온천행 셔틀버스를 마다하고 7,8분 거리를 걸어가기로 한다. 온정각에서 오른편으로 꺽어가면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영생탑이 나온다. 영생탑은 뒤로 통바위산인 바리봉을 배경으로 서 있다. 길가에는 아름드리 금강송들이 듬직하고 영생탑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90도 돌아서 잠깐 걸어가면 온정각 휴게소갈림길이다. 온정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있는 건물이 북한의 3대 휴양소 중의 하나인 김정숙 휴양소다. 예전에는 고위 당간부들이 이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14시 2분 溫井里 매바위산 아래에 위치한 금강산온천에 도착했다. 마의태자와 세조가 이 곳의 온천수로 목욕을 한 뒤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무색무취의 라돈온천으로 신경통과 심장병 고혈압 척수질환 등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2불의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니 시설이야 별게 없지만 노천탕에서 옥돌을 밟으며 걷는 짧은 길과 야외에서 금강의 연봉을 바라보는 일광욕이 그럴 듯했다. 푸근한 마음으로 누워 금강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혜택에 12달러가 별로 아깝지 않았다.


 15시 5분 목욕과 금강산 노천욕을 끝내고 2층 전시실에서 북한 명인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했다. 우선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남한이나 기타 관광객의 씀씀이가 그리 풍족하지는 않은 이유로 공훈 예술가와 1급 예술가들의 그림을 20-25% 세일하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사정이 곤란하여 구입하지 못하고 눈요기만 하게 되었다. 아울러 2층의 복도 벽에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담은 사진과 사연이 적혀 있는 액자들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는 금강산에서 볼 수 있는 풀꽃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제시되어 있다. 어제 짐작했던 대로 옥류동 가는 길에 핀 노란 꽃들은 노랑제비꽃이었고, 노루오줌꽃은 연보랏빛, 돌단풍은 흰색으로 무리지어 핀 모습이었다. 옥류담에 피어있던 꽃들은 까실쑥부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고, 관폭정 가는 길엔 흰색 ‘고분’ 이라는 꽃과 연분홍 진달래와 개나리들이 무리지어 피어났었고.

  

                                                             

15시 20분 전시실을 나와 온정각 휴게소로 향한다. 이번에도 버스를 타지않고 걸어가기로 한다. 온정각까지 걸어서 7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북녘땅을 더 밟아보기 위해서다. 만물상과 관음연봉 사이에 있는 寒霞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온정천을 건넌다. 온정천에는 시멘트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계곡물이 참 맑아 물 한병 뜨고 싶었지만 감시병의 눈초리가 무서워 그냥 다리를 건너면 한하계곡으로 올라가는 길과 만난다. 하지만 이 곳에도 인민군 초병이 배치되어 있어 정해진 길 외에는 다닐 수 없다.


 

15시 30분 금강산 카드 환불을 완료하고 다시 북한측 출입국관리소로 향한다.

절차는 마찬가지였으나, 문제는 5시경 북한측 북방한계선 검문소에 이르러 발생했다. 한 아주머니가 군인 검문 도중 술이 취해서 소주팩을 다른 이에게 건네주다가 군 모욕죄로 사죄문을 써야하는 사태가 발생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아줌마는 전날에도 구룡연 코스에서 노상방뇨를 하다가 적발된 경험이 있는 악명 높은 아줌마란다. ‘술취한 개’라더니 인간이 인간됨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통제 할 수 없다면 이러한 행태가 통일이 되면 순식간에 온 금수강산을 물들여 버리지 않겠는가 하는 염려가 밀려들었다. 이 사건 덕분에 1시간이 넘는 동안 무려 관광버스 19대,800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꼼짝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는 동안 남쪽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한다. 6시가 넘어서야 남측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하고 나서 엄격한 통제에 눌려있던 관광객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남쪽으로 들어서자 고향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들고 우리 군인의 모습도 북측의 경직된 모습과 비교하여 너무나 멋있어 보인다고.


 

이제 1무 1박 3일의 금강산 여정은 끝이 났다. 다음에 다시 금강산에 올 때는 동해북부선을 타고 외금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세존봉을 오르고, 못 가본 온정령 고갯길을 올라 내금강 유람도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굴리며 늦어진 귀가 길에 오른다.


 


 

인간의 갖은 추태 동해에 씻어두고

半世紀 나눠 살던 형편을 물어보네

남북이 한 형제라면 어찌 이리 다른가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붙잡을 순 없더라도

走馬看山 돌아본 길  머무르고  싶건마는

이 봄에  찾아온 산하 사십 평생 回憶인저.


 

세존봉 내금강을 골골이 누벼보고

못이은 대간길은 백두까지 이어보세

또다시 돌아오리라 子負女戴 손목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