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이 불편한 데다가 평일에는 군부대의 사격관계로 명성산 처럼 출입이 통제되는 각흘산은 작년부터 가 보려고 벼르던 곳이었지만 여태까지 가 보지 못 했던 지라 맑은 날씨를 보이는 일요일인 5월 15일에 가 보기로 한다. 명성산과 함께 종주할까 생각해 보다가 각흘산의 능선과 계곡을 모두 자세히 보고 싶어서 종주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각흘산만 다녀 오기로 계획해 본다.

8시 35분에 집을 나와서 의정부역 앞의 도평리행 138-5번 버스정류장 앞에 9시 13분에 도착한다. 버스출발시각이 9시 15분이니 1분이라도 늦으면 이 차를 못 타게 되는데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췄다고 생각했지만 9시 50분이 넘도록 이 버스는 오지 않는다. 결국 9시 52분에 자주 오는 138-1번 버스를 타고 포천버스터미널에서 내리니 10시 45분. 이 곳에서 와수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자등리 표를 끊으려고 하니 자등리 표는 없고 학포리나 와수리 표 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등리에서 세워 주지 않는 차라고 판단해서 이동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요금은 2800원. 11시 5분에 포천에서 출발한 버스는 11시 50분에 이동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슈퍼마켓 겸 매표소에서 다음 와수리행 버스도착시각인 12시 10분을 확인하고 자등리 표를 끊는다. 요금은 1300원. 그러나 이 버스도 12시 32분에나 도착한다. 이 버스는 도평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져서 자등현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꺾어지면 백운계곡 입구를 거쳐서 광덕고개로 올라가는 길이다.

자등현이 가까워지자 운전기사에게 자등현에서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해 보는데 세워 달라는 데서 다 세워 줄 수는 없다며 자등현 밑의 검문소에서 세워 주겠다고 한다. 차를 탄 지 11분 만인 12시 43분에 검문소 앞에서 하차한다. 이 곳은 버스정류장이 아니지만 군부대의 검문소인 관계로 일단정지해야 하기 때문에 세워 주나보다. 그래도 자등리까지 가서 내리면 30분을 걸어서 올라와야 하는데 다행이다.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서 10분 만에 자등현에 닿는다. 자등현의 동쪽에는 광덕산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각흘산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각흘산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상에는 각흘봉이라고 표기돼 있는 곳이다.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든 각흘산의 들머리로 오른다. 계획대로라면 11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교통사정 때문에 두 시간 가까이 산행이 늦어진 것이다. 여러 군데에 갈림길이 있지만 표지기만 따라가면 될 정도로 표지기가 많이 설치돼 있다. 교통은 불편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즐겨 찾는 산인 듯하다.

무성한 수풀로 인해 반 쯤 그늘진 등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오른쪽에 공터가 있어서 올라보니 헬리포트다. 그리고 내가 오르던 등로의 반대쪽으로도 등로가 나 있다. 다시 등로를 진행하니 단단한 바위를 쪼개고 자라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위 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스럽다.


이동버스정류장 매표소의 버스시간표.


버스에서 내린 검문소.


자등현.


자등현의 각흘산 들머리.


첫 번째 헬리포트.


바위를 쪼개고 자란 소나무.

 

소나무를 보고 3분을 더 오르니 두 번째 헬리포트가 나오고 이 곳부터 조망이 시원하게 탁 트이기 시작한다. 북서쪽으로는 용화저수지와 철원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상해봉과 광덕산이 보인다.

좀 더 오르니 철원군청에서 설치한 삼각점이 있고 큰 바위 위에 쌓은 작은 돌탑 속에 초라한 정상표시목이 끼워져 있는, 해발 838.2 미터의 각흘산(角屹山) 정상이다.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머물다가 각흘봉을 향해 내려선다. 이 곳에서 명성산의 등줄기가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그리고 나무가 모두 제거된 방화선길인 각흘산의 서남릉과 그 좌측의 끝부분에 수풀이 무성한 뾰족한 765봉이 잘 보인다.


두 번째 헬리포트에서 줌으로 당겨 찍은 용화저수지와 철원평야.


두 번째 헬리포트.


올려다 본 각흘산 정상.

 

 삼각점과 초라한 정상표시목이 있는 각흘산 정상 - 해발 838.2 미터.

 


각흘산 정상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명성산.

 


각흘산 서남릉과 명성산 - 좌측의 수풀이 무성한 뾰족한 봉우리가 765봉임.

 

조망을 감상하며 수십장의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히 걸음이 느려진다. 이렇게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은 그렇게 보기 쉬운 게 아니다.

로프가 설치된 통나무다리를 건넌다. 왼쪽은 낭떠러지고 오른쪽은 안전지대다. 그런데 통나무다리가 부실하게 설치돼 있어서 튼튼하고 안전한 철계단을 설치해야 할 듯하다.

방화선의 능선길을 잠시 걷다 보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의 내리막길은 각흘계곡의 최상류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하다가 여태껏 내려온 방화선길을 돌아본다. 우람하고 옹골차 보이는 능선이다. 능선삼거리가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여기서 각흘봉으로 가는 길과 약사령을 거쳐 명성산으로 가는 길은 왼쪽길이다.


통나무다리가 있는 로프지대.


소나무가 서 있는 바위벼랑.


각흘산 서남릉의 방화선길.


각흘계곡의 최상류로 내려가는 좌측길과 능선삼거리가 있는 봉우리.


각흘산에서 내려온 방화선길을 뒤돌아보며...


능선삼거리가 있는 봉우리에서 각흘봉과 명성산으로 가는 왼쪽길.

 

능선삼거리에서 왼쪽길로 2분 정도 진행하니 산사태지역이 나온다. 한 군데도 아니고 두 군데다. 장마철에 쓸려 내려간 산비탈은 백토(白土)의 토질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그 밑을 보니 아찔할 정도의 낭떠러지다. 산사태지역을 통과하여 5분 정도 더 진행하니 군부대의 경고판이 설치된 765봉이다. 이 곳에서 각흘봉으로 가는 길과 약사령을 거쳐 명성산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진다. 그런데 아까 능선삼거리가 있는 봉우리를 765봉이라고 착각해서 이 곳에서부터 무려 한시간 30분의 알바를 하게 된다.

각흘산은 방향표지판은커녕 소방서의 안내판도 단 한 개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평일에는 포탄 사격의 피격장소에 가깝고 38선 이북의 전방이라서 산행객들의 출입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765봉을 내려서면 곧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각흘봉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약사령을 거쳐 명성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더 뚜렷한 등로인 오른쪽으로 간다. 9분 쯤 더 가니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길이 나온다. 로프를 잡고 내려서서 수풀이 무성한 능선길을 오르내리다보니 삼거리에서 40분 만에 헬리포트에 닿는다. 우측으로 명성산 정상이 가깝게 보이고 정작 가까워져야 할 동남쪽의 각흘봉은 보이지 않는다. 잘못 왔음을 확신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산사태지역.


산사태지역에서 내려다 본 낭떠러지.


군부대의 경고판이 설치된 765봉 정상.


765봉의 삼거리 - 왼쪽은 각흘봉, 오른쪽은 약사령을 거쳐 명성산으로 가는 길.


약사령과 명성산으로 가는 길의 로프지대.


약사봉으로 추정되는 헬리포트.

 

이 곳에서 의문사를 당한 장 준하의 망령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끈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16시가 지나서 여유있는 산행이 될 줄 알았던 산행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면서 765봉과 그 좌측에 살짝 고개를 내민 각흘산 정상을 바라본다. 저 765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동남릉을 타야 했던 것이다. 765봉의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끝자락에는 각흘봉과 암봉이 솟아 있다.

765봉으로 가는 도중에 힘이 들어서 등로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며 십분 정도 쉰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산행 중에 가장 맛있는 게 차갑고 시원한 얼음물맛이다. 쉬면서 알바의 원인과 각흘봉으로 가는 길을 곰곰히 생각해 본다.

군부대의 경고판이 설치된 봉우리가 765봉이라고 생각되어 그 곳까지 되돌아와서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가 본다. 표지기가 설치돼 있고 뚜렷한 등로가 나 있다. 이 길이라고 확신하고 진행한다.

마침내 등로에서 폐막사가 있는 각흘봉이 바라보인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역시 폐막사가 있는 안부삼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각흘계곡이지만 각흘산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어 직진해서 각흘봉으로 오르니 각흘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헬리포트에 닿고 곧 폐막사가 있는 각흘봉 정상에 닿게 된다.


765봉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각흘산 정상과 765봉.



상해봉, 광덕산, 박달봉과 그 앞의 765봉에서 이어지는 각흘산 동남릉 - 능선 끝자락에 각흘봉과 암봉이 있음.

폐막사가 있는 각흘봉과 그 우측의 암봉, 각흘봉 뒤의 박달봉.


폐막사가 있는 안부삼거리.



각흘봉 오름길의 헬리포트와 각흘산 정상의 모습.


폐막사가 있는 각흘봉 정상.

 

각흘봉을 내려서서 안부에 닿으니 군부대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벽운근린공원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암봉으로 오르는 줄사다리와 로프가 설치돼 있다. 로프를 잡고 줄사다리를 밟고 조심스럽게 오르니 조망이 탁 트이는 암봉의 정상부분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서 그런지 어느 산행기에는 이 암봉을 각흘봉이라고 써 놓았다. 참으로 호젓하면서도 전망이 좋은 곳이다.

암봉 위에서 북쪽을 보니 각흘산 정상과 자등현에서 오르는 능선길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맨 뒤의 응봉과 화악산, 촛대봉이 아스라이 멀리 보이고 그 앞으로는 한북정맥의 백운산, 삼각봉, 도마치봉, 신로봉, 국망봉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국망봉 밑으로는 가리산이 보이고 도평삼거리에서 자등현으로 오르는 47번 국도도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암봉은 낭떠러지쪽으로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주의환기의 의미가 강한 로프가 설치돼 있다. 이 곳에서 조망을 즐기며 무려 30분을 쉬다가 어디로 내려가야 할 지 주위를 돌아본다. 군부대가 있는 남쪽으로 로프가 설치돼 있어서 로프를 잡고 험한 암릉을 내려서니 그 밑은 로프도 없이 릿지로 내려가야 하는 험한 암릉지대가 이어진다. 위험을 느껴 다시 로프를 잡고 암봉으로 되올라간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남쪽의 암릉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쪽의 숲길에 각흘계곡과 만나는 등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암봉으로 오르는 로프와 줄사다리.


암봉의 정상부분.


암봉 위에서 바라본 각흘산 정상과 자등현에서 오르는 능선길.


암봉 위에서 바라본 맨 뒤의 응봉과 화악산, 촛대봉과 그 앞의 백운산, 삼각봉, 도마치봉, 신로봉, 국망봉이 이어져 있는 한북정맥.


촛대봉과 신로봉, 국망봉, 가리산, 흥룡봉과 도평삼거리에서 자등현으로 오르는 47번 국도.


암봉에서 내려가는 로프.

 

다시 줄사다리와 로프를 잡고 내려와서 각흘봉을 거쳐 폐막사가 있는 안부삼거리로 되돌아가서 우측의 계곡길로 내려선다. 등로를 잠시 진행하니 날머리로 가는 서남쪽이 아니라 반대쪽인 북동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닌가 불안했지만 계곡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안도한다. 계류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서서히 각흘계곡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느 산이든 다 그렇지만 계곡의 모습은 변화무쌍하다. 이 청정한 오지의 맑고 시원한 계곡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지만 일몰이 가까워지니 하산을 재촉해야 한다. 물이 고여 있는 얕은 소도 여러 군데 보인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계류에 얼굴과 목을 씻는다. 발도 담그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게 너무 아쉽다.

어느덧 와폭에 닿는다. 와폭을 건너서 다시 한번 얼굴과 목을 씻고 계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리고 수통에도 가득 담는다. 와폭에서 5분 정도 머물다가 일어선다.

각흘계곡은 와폭과 소, 계류와 바위가 그 비경을 수줍게 감추고 있는 곳이다. 위험할 정도로 깊지는 않은 소와 계류와 바위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며 계곡을 바로 옆에 끼고 걷게 되는 각흘계곡은 지역적인 특성만 없었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만한 곳인데 그 지역적인 특성이 이 계곡의 청정한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게 한 비결이기도 하다.

마침내 계곡을 벗어나서 일몰시각에 맞춰 각흘산 날머리에 닿는다. 날머리 옆에 대형천막을 쳐 놓은 음식점이 있고 두 사람이 서 있다. 47번 국도로 가는 길을 물으니 마침 차를 몰고 나갈 것인데 태워 줄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얻어 타고 도평리의 버스종점에서 내려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십여분을 기다려서 20시 정각에 출발하는 138-5번 버스를 타고 의정부역 앞에 도착해서 1018번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폐막사가 있는 안부삼거리에서 각흘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계곡의 정경 1.


계곡의 정경 2.



계곡의 정경 3.


 

와폭 1.


와폭 2.


 

와폭 3.


계곡의 정경 4.


와폭 4.


계곡의 정경 5.


계곡의 정경 6.


계곡의 정경 7.


계곡의 정경 8.


각흘산 날머리.


도평리 버스종점.


오늘의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