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2일 (목요일)

◈ 산행일정

강남터미널
광주터미널(00:30-03:45)
성전(04:30-05:36)
제전마을(06:09)
암봉(06:48)
벌매산(07:13)
암봉(07:56)
암봉(08:18)
기도원안부(08:35)
가학산(09:11)
가래재(09:40)
흑석산(10:02)
휴양림안부(10:41)
가리재(11:17)
두억봉(12:00)
두억봉출발(13:30)
370봉(13:41)
산막B(14:13)
가학산자연휴양림(14:18)
여수리
독천
목포터미널
강남터미널(16:40-20:45)

◈ 산행시간
약 8시간 09분

◈ 산행기

- 제전마을
월출산을 지난 땅끝기맥은 벌매산에 이르러 남동쪽 제안고개로 이어지고, 벌매산에서 서쪽으로 꺽어지는 산줄기는 수려한 가학산과 흑석산을 지나고 두억봉에서 마치로 이어져 영산강의 남쪽경계를 이루다 영암호에 그 맥을 다한다.
땅끝기맥종주를 하며 흑석지맥으로 명명된, 또 혹자들은 거창하게 영산남기맥이라고도 하는 이 산줄기를 마음에 두고있다가 이왕이면 유명한 흑석산 철쭉이 필 때를 맞추어 산행계획을 잡는다.
광주의 나이트클럽이 있는 건물에서 콩나물해장국을 먹고, 밤새 몸을 비틀고나온 어린 여자애들과 나란히 터미널로 돌아오다 보니 약한 빗줄기가 떨어진다.
철쭉이 만개하기를 기다려 몇번을 연기했던 산행이고 암릉이 많아서 비가 오면 위험하다는 곳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내리니 참 난감해진다.
해남가는 첫버스를 타고 비구름이 잔뜩 깔려있는 성전에서 내려 택시를 탈까하다 점점 날이 갠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시간도 벌겸 걸어가기로 한다.
개천가에 널려있는 곰취닯은 아욱을 보며 30여분 텅 비어있는 시골길을 걸어 산행깃점이 되는 제전마을로 들어가니 집집마다 정원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비는 그쳤지만 산자락에는 운무가 짙게 깔려있다.


- 벌매산
과수원을 지나 무덤가를 올라가면 좁은 산길이 시작되고 키높은 산죽숲을 한번 통과하니 밤새 머금었던 빗방울로 이내 몸이 젖어버린다.
곧 암릉들이 시작되고, 곱게 피어있는 철쭉들을 바라보며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윗길을 조심스레 올라가면 사방은 비구름에 가려있고 찬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와 몸이 떨려온다.
울퉁불퉁하게 솟아있는 기암들을 바라보며 암벽을 길게 휘돌아 암봉의 정상부에 올라서니 앞에 벌매산만 희미하게 보이고 구름밑으로 밤재를 올라가는 차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거센 바람을 피해서 바위를 내려가면 암벽을 길게 횡단하는 곳에 가는 밧줄이 걸려있는데 밧줄이 느슨해서 불안하기도하고 비젖은 바위에 운무까지 덮고있으니 잔뜩 긴장이 된다.
조심스레 암릉을 통과하고 밤재에서 올라오는 땅끝기맥과 합류해서 산죽지대를 올라가면 벌매산(464.0m) 정상이 나오고 왼쪽 제안고개로 이어지는 기맥쪽에는 얼마 전에도 못 보았던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 비에 젖은 암봉



▲ 내려오는 암벽



- 가학산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산죽숲을 무작정 따라가면 몸은 완전히 젖어버리고, 험한 암릉을 왼쪽으로 길게 우회해서 건너니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체온을 금방 앗아가 버린다.
구름위에 뜬것처럼 사방에 운무가 깔려있는 암봉을 지나서 뒤늦게 얇은 방풍상의를 걸쳐보지만 잠시 보온이 되더니 비에 젖으며 역시 소용없어진다.
공포스러운 산죽지대들을 지나서 밧줄을 잡고 커다란 암봉을 올라가면 몸을 날릴듯한 찬바람이 불어와 잠시도 서있을 수가 없다.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지루하게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니 한기에 몸은 마구 떨려오고 저체온증으로 오뉴월에도 얼어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흑석산기도원 내려가는 안부를 지나고 비에 젖어 쭉쭉 미끄러지는 수직암벽을 긴 밧줄을 잡고 올라가면 이정표가 서있고 역시 기도원으로 하산로가 갈라져 나간다.
암릉을 휘돌며 올라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람이 뜸한 곳에서 젖은 상의들을 모두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두꺼운 사계절용 고어텍스자켓을 걸치니 살것 같지만 이마저도 젖어버리면 아마 산행을 중단해야할 것이다.
암릉지대를 따라 서너평 둥그런 가학산(577.0m) 정상에 오르니 정상석은 없고 한쪽의 너럭바위에서는 평소 조망이 좋을듯하지만 비구름으로 오리무중이라 금방 발걸음을 옮긴다.



▲ 비바람 몰아치는 암봉



▲ 가학산 정상



- 흑석산
가학산을 내려가며 긴 밧줄이 걸려있는 수직암릉이 나오지만 딛을 곳이 많아 그리 어렵지않게 통과한다.
철쭉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숲길을 바삐 내려가니 빽빽한 산죽지대가 연달아 나오고 비상자켓도 비에 젖을까 연신 물기를 털어내며 통과한다.
이정표가 서있는 가래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철쭉지대가 나타나고 천상의 화원을 이룬듯 비에 젖은 철쭉꽃들이 함초로히 산록을 수놓고있다.
잿빛 구름사이로 나타나는 거무티티한 암봉들을 바라보며 관목들을 양손으로 헤치고 화사한 철쭉정원을 지나간다.
비바람을 뚫고 흑석산(650.3m) 정상인 깃대봉에 오르니 국방연구소의 대원형삼각점과 정상석이 서있고 역시 사방으로 전망이 트이겠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볼 수없다.
이곳에 산다는 유명한 원숭이를 소리쳐 부르는데 며칠째 감기기운이 있더니만 새벽부터 찬비를 맞아서인지 으실으실 추워오며 전신이 아파온다.



▲ 철쭉



▲ 철쭉



▲ 흑석산 정상



- 가리재
정상에서 내려와 바람 뜸한 곳에서 소주한잔 마시고 선채로 도시락을 먹으니 모자에서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생마늘 한점에 속이 쓰라려온다.
약간씩 시야가 트이는 바위지대를 내려가면 갑자기 앞에 원숭이 한마리가 나타나고 참외를 던져주니 열심히 받아 먹는데 사진기를 들이대어도 도망가지 않는다.
원숭이와 어울려 10여분 노니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고 휴양림에서 올라온다는 단체산행객들은 후줄근하게 젖은 모습을 보고는 웬 비가 왔었냐며 모두들 놀라워한다.
뚝 떨어지는 산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언제 그랬나 싶게 맑아지고 바람한번 불더니만 거짓말같이 나뭇잎에 맺혀있던 빗방울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두터운 자켓을 벗어버린다.
지나온 가학산의 뾰족한 첨봉과 앞에 우뚝 솟아있는 두억봉의 암벽을 바라보며 휴양림과 학계리쪽으로 등로가 있는 가리재로 내려서니 양쪽으로 길이 뚜렸하고 이정표들이 서있다.



▲ 갑자기 나타난 원숭이



▲ 원숭이



▲ 참외를 먹는 원숭이



▲ 흑석산 내려가며 바라본 가학산



▲ 가학산에서 흑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 흑석산의 검은 암벽



▲ 흑석산 내려가며 바라본 두억봉



- 두억봉
잡목들이 꽉찬 산길로 들어가면 족적은 희미하지만 점차 뚜렸한 길이 나타나고, 거미줄을 걷어가며 산죽을 헤치다 누군가 흘린 붉은 스카프 한장을 줏어 나무가지에 걸어놓는다.
오른쪽으로 넓은 율치제를 바라보며 암릉들을 넘어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앞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들이 험준하게 나타나고, 가학산에서 흑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흑석산의 검은 암벽들이 잘 보인다.
철쭉들이 피어있는 가파른 암벽사이를 기어오르고 왼쪽으로 꺽어져 잡목들을 헤치며 바위지대를 따라 두억봉(527.8m) 정상에 오르면 억새군락에 나무 몇그루뿐 별다른 표식은 없다.
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정상에서는 날이 완전히 개어서 가리재를 사이로 마주하는 흑석산의 위용이 대단하고, 북서쪽으로 꺽어져서 마치로 이어지는 낮은 산줄기를 확인할 수 있으며, 남서쪽 지능선 아래로 가학산휴양림이 내려다보인다.



▲ 두억봉 정상



▲ 두억봉에서 바라본 마치로 이어지는 산줄기



- 마치
되돌아 내려가며 정상 50여미터 전에서 마치쪽으로 꺽어지는 북서릉갈림길을 주의깊게 찾아봐도 온통 철쭉나무뿐 들머리는 보이지않는다.
대강 어림짐작으로 관목들을 뚫고 들어가면 빽빽한 산죽지대들이 앞을 막고 잡목과 명감넝쿨들이 너무나 빽빽해 되돌아나온다.
정병훈님의 표지기가 걸려있는 바위봉에서 숲으로 들어갔다가 빽빽한 산죽에 막혀 돌아오고, 그 옆으로 약간 성긴듯한 억새지대로 들어갔다가 역시 속수무책으로 쫒겨나온다.
다시 두억봉 정상으로 올라가 능선을 바라보며 트레버스하다가 잡목과 덤불들도 심하지만 발밑에 마구 밟히고 부러지는 철쭉들이 마음에 걸려 돌아나온다.
1시간 30분동안 길을 뚫으려 고생을 하고 두억봉에서 마냥 하늘을 바라보다가 기운도 빠지지만 열이 오르고 몸상태가 좋지않아 아쉽지만 하산하기로 한다.


- 남서릉
온길을 되돌아 가리재로 하산하는게 싫어 이어지는 남서능으로 들어가니 잡목들도 그리 심하지않고 족적도 희미하게 나타난다.
시야가 훤히 트이는 바위지대에서 흑석산의 전면을 바라보고 372봉으로 내려가면 절편처럼 부숴지는 바위들이 많이 있고 산불흔적이 남아있다.
흐릿한 길따라 잠시 내려가니 왼쪽사면으로 하산로가 갈라지고 post건건, 정아, 정병훈등 기맥산행에서 자주 보았던 표지기들이 모두 걸려있어 순간 혼돈스러워진다.
영산강의 남쪽경계를 짓는 산줄기는 당연히 두억봉에서 마치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마 이분들도 마치쪽으로 진행할려다 뜻을 못이루고 나처럼 하산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289.5봉을 지나 만년저수지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능선을 버리고 표지기들이 있는 왼쪽으로 꺽어지면 급하게 떨어지는 음침한 너덜길이 이어진다.
작은 폭포를 지나고 아주 희미하게 계곡너덜로 이어지는 족적을 한동안 따라가니 산책객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시멘트도로와 만나며 휴양림의 산막B가 보인다.



▲ 두억봉 내려가며 바라본 흑석산


- 가학산휴양림
도로를 따라가다 화장실에서 졸졸 나오는 물로 얼굴만 딱고 내려가면 가학산자연휴양림이 나오고 오래된 보호수 한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심신이 지친 산객을 맞아준다.
소주한잔 마시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버스가 다니는 도로까지 3km나 되는 한적한 길을 힘없이 걸어가니 흑석산의 검은 바위들이 멋지게 보이고 산정제의 푸른 수면은 바람에 일렁거린다.
마침 휴양림안에 사는 주민의 차를 얻어타며 물어보면 마치쪽으로는 이제 사람이 다니지않아 길이 없다고 하니 언제 시간내어 잠두리쪽에서 마치로 거꾸로 오르는 수밖에 없겠다.
여수리 청량사입구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몸을 추스르고 독천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햇빛은 따갑지만 몸에는 열이 부쩍 오르고 목과 가슴에 통증이 온다.



▲ 가학산 자연휴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