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년 5월 15일(일요일&초파일)

 

날씨 : 안개 후 쾌청

 

산행구간 : 이화령에서 은티마을

 

산행경로 및 산높이 :

이화령 (529) ->  황악산(910) ->  백화산(1063.5) -> 981봉(981) -> 이만봉(989) ->

시루봉갈림길(???) -> 성터(???) -> 희양산(998) -> 성터 -> 은티마을(산행종료점)

  

주요지점 도착시각 :

이화령(06:00) - 777봉(07:05) - 황악산(08:00) - 백화산(09:02) - 평전치(09:45) -

981봉(10:01) - 곰틀봉(11:08) - 이만봉(11:28) - 희양산(14:50) - 은티마을(16:25)

  

산행인원 : 2명

  

이동경로 :  

북대구나들목 -> 중부내륙고속도로 -> 연풍나들목 -> 이화령 ->

은티에서 택시로 이화령(10,000원 / 괴산개인택시 안준철 / 011-663-0456) ->

문경새재나들목 -> 중부내륙고속도로 -> 북대구나들목 -> 집으로......

  

경비 : 기름값 약 30,000원 택시비 10,000원 도로비 갈 때 6,200원 올 때 5,600원

  

산행기에 앞서서...

오늘은 사월 초파일 성자가 태어난 날이다.

사찰탐방객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밀리는 도로사정을 감안하여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겨울 같으면 꼭두새벽이라 하겠지만

하지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별로 일찍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같은 날은 최고권력자의 의하여 사면이라는 미명하에

또 다른 범죄가 저질러지는 날이라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둑놈 거들고 나서면 그 또한 더한 도둑놈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어떤사람이 책도 쓰고 그랬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공자가 죽는다고 이 나라가 얼마나 잘 될지 무척 의문스럽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거리를 지나 가다가 청년 셋이 남의 집 담벼락에다가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공자는 가쪽 두사람은 그냥 두고

중간에서 오줌을 눈 사람만 불러 훈계한 뒤 제자들과 가던길을 갔다고 한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겨졌다.

똑 같이 같은 장소에서 오줌을 누었는데

왜 한 사람만 나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제자는 공자에게 그 중 한 사람만 나무라시는 연유를 물었는데

공자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중간에서 오줌을 눈 놈은 거기서 오줌을 누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오줌을 누었으니 야단맞아 마땅하다.

왜 그놈이 거기서 오줌을 누면 안되는 것을 아느냐 하면

중간에 숨어서 볼일을 보지 않더냐?

  

이 일화는 후세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은 초파일이고 어쨋거나 다들 좋은 날이라고 하니

그냥 좋다고 치고 이꼴 저꼴 안보고 산에나 가는 것이다.

  

산행기

이화령에 도착하니 몇대의 승용차가 주차장에 서 있었는데

차가 온통 밤이슬에 젖은 걸 보니 아마 여기서 밤을 새운 것이라 생각된다.

경계석이 있는(문경쪽) 곳에 어느 산악회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입산준비를 하는데 초장부터 막걸리통 뚜겅이 열려 있었다.

  

집을 나설때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아 가방에 물이 없었던 터라

그 차에 혹시 여분의 물이 있으면 좀 얻을까 하는,

좀 염치 없는 생각으로 갔다가 얼른 되돌아 왔다.

막걸리 한 사발을 냅다 안기면 이 어찌 거절할 것인가?

 

오늘은 산에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니

일단 가면서 물 구걸을 좀 하기로 하고 산들머리로 접어 들었다.

이 이화령 들머리 첫 봉우리에는 군시설이 있어서

대간 마루금을 조금 우회하여야 한다.

실제로 이 이화령도 대간길이 끊어졌다.

 

오래 전에 나는 무하산 종주를 했었기 때문에 별 아쉬움은 없지만

지금 대간길을 가시는 분들이 좀 서운하게 느끼실 것 같기도하다.

지금의 대간길은 온통 끊어지고 뚫어져서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그래도 더 망가지기 전에 한 번 가볼 수 것도 행운(?)일 것이다.

대간이 있었던 길을 가는 것이지 대간을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숨가쁘게 오르니 첫 번째 헬기장이 나왔는데

건너편으로 오늘 걸어야 할 준령이 눈에 들어 왔다.

이 헬기장 주변으로 드릎나무가 많았다.

  

이럭저럭 조봉을 지나 넓은길에 접어드니 문경쪽으로는

오래된 낙엽송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아침 햇살을 향해 긴 목을 빼고 있었고

푹신한 육산 나무숲길을 한 참 더 가니 헬기장 두 개가 연이어 나타났다.

  

야트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황악산에 다다르니

늦봄 햇살이 준비 못한 물걱정을 거들고 나선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해 봤지만 뾰족하기는커녕 뭉툭한 수도 없었다.

  

오늘 다른 산악회를 따라 희양산으로 해서 봉암사로 가신다는

구자숙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보니

선선휴게소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다고 하신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잘 하면 산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고 부지런히 남은 길을 줄여나갔다.

  

이 길은 별로 경관이 좋다고는 할 수 없고

백화산 직전에 잠시 나타나는 바윗길이 짜릿한 맛을 느끼게 한다.

같이 가시는 삼토성님은 아래로 난 우회로로 가시고

나는 칼날 같은 바윗길을 지나왔는데 바위가 꽤 상그럽다.

  

백화산이다.

처음 맞이하는 정상석에서 두루 조망도 하고

지나온 길과 갈길을 가늠해 보면서 잠시 쉬는데

술냄새를 풍풍 풍기는 어느 산객이 헐레벌떡 산을 오르는데

6시 40분에 이화령을 출발하여 9시 8분에 백화산에 도착 했으니

주력이 남다르다. 우리보다 무려 40분이나 빨리 왔다.

전날 술만 안마셨어도 우리보다 족히 1시간은 빨리 올랐을 것이다.

  

1012봉을 지나 조금 내려가니 평전치다.

아까 그렇게 빨리 달아나던 그 산객을 또 만났는데

"빨리 따라 오시네요?" 하더니 금새 또 앞서서 길을 재촉하여 출발한다.

여기는 암말로 내려가는 탈출로가 있다.

  

981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울창한 숲길이어서 조망이 전혀 없다.

터널같은 숲길을 지나 사다리재에 이르니

아까 앞서 가던 그 산객이 곰틀봉에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휘적휘적 곰틀봉에 오르니

저 멀리 보이는 성골과 모래실이 갑갑하던 속을 뻥 뜷어준다.

  

이제 슬슬 물생각이 난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다.

같이 가시는 삼토성님도 물을 적게 가지고 오신터라

걱정하실까봐 목마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좀 힘들었다.

  

수십번 통화버튼을 눌러 구자숙씨와 통화가 이루어졌는데

지름티에서 중들이 지키는 바람에 후진하여 성터로 해서

희양산에 올라 점심을 먹고 다시 하산하는 길이라고 했다.

  

챤스!!!

  

" 아 그래요? 그러면 거 물 한병 좀 두고 내려가이소~" 하니

" 어치피 하산길이라 물이 좀 여유로우니 한 병 두고 가지요." 하신다.

그리고 성터 갈림길에 있는 구조표식 4번번호판 뒤 나무에다가

물을 걸어놓고 가시겠노라며 봉지 색깔까지 자세히 일러준다.

  

이만봉이다.

그 산객을 또 만났다.

이 이만봉에서는 곧잘 다른길로 가게 되는데

앞서 간  그 산객이 지도를 보더니 정남향으로 길을 잡는다.

나는 속으로 그 쪽으로 가면 성골에 이르니 봉암사로 가겠거니 했는데

잠시 후 "길이 없네요? 어디로 가야합니까?" 하면서 도로 돌아 온다.

  

마당바위..... 용바위.....

지도상에 표시된 963봉에 다다르니

누군가가 나뭇가지에다 "희양산사선봉"이라는 표지판을 달아놓았다.

푹신한 길 가 풀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핑계로 삼토성님의물을 좀 축내고

나뭇가지에 걸린 채 나를 기다릴 그 물병을 생각하며 열심히 걸었다.

  

배너미평전에서 시루봉 갈림길 사이는 길이 매우 어지럽다.

젊은이 셋이 앉아 우리가 희양산쪽으로 길을 잡으니

"백두대간 뛰시는가 보지요?" 한다.

나는 오로지 물생각밖에 없어서 대충 그렇다고 하고 열심히 성터로 진행하는데

거의 산행말미에 다다랐고 무급수로 와서 그런지 도무지 길이 줄지 않는다.

  

888봉 직전에서 어느 단체산행팀을 만난는데

그 중 리더격인 사람을 만나 희양산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한 참 했다.

봉암사에서 대간길을 차단하는 것과

관련 자치단체장이 거기에 동조하는 원인 등 나름대로의 분석도 주고 받았다.

그 분은 "괴산35명산"이라는 등산코스를 발굴/정리 하신다며

괴산군청 관게자와 업무적 관계가 있다하여

봉암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으자는 약속을 한 후 헤어졌다.

 

드디어 생명수가 기다리는 성터에 도착했다.  

??? 어? 왜 안보이지?

분명히 여기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구자숙씨가 두고간 물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 저기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무에 걸어 두었다던 파란 봉지가 안보인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물병 걸어둔 곳을 확인하고 한 번 더 찾아봤지만

물병은 벌써 누군가가 가져가버린 후였다.

  

곧바로 은티마을로 내려가려다가

같이 가신 삼토성님은 희양산에 가보시지 않았고

지난번 지름티에서 절벽구간을 오른 후에도 일기가 좋지 않아서

그냥 다음으로 미루고 지나쳤던 희양산이라

동영상기록에서 이 말많은 희양산을 빠트리면 안되겠기에

성터에서 희양산 정상은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으므로

개인적으로 좀 힘든 것을 무릎쓰고 희양산으로 올랐다.

  

마침 지키던 중들이 근무시간(?)이 종료되어 철수하고 난 뒤라서

그 절벽구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젊은사람 하나가 실족하여 절벽중간에 걸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서 119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무사히, 안전하게 구조되기를 빌어볼 뿐

나역시 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산에 오는 것이 그 무슨 벼슬이라고 그렇게 떠드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단체 산행객들이 진짜 심하게 떠들었다.

온산이 진동하도록 죽을 힘을 다해 소리소리 지른다.

들고 다니는 무전기가 스스로는 자랑스럽겠지만

그 별 것 아닌 무전기의 볼륨을 최대로 올려놓고.....

이러니 봉암사 중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산꾼이란 게 좀 심한 말로 쪽팔리게 하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짜증스러운 희양산 정상에서 잠시 건너편의 지나온 봉우리와

주변경관을 잠시 둘러보고 사진은 달랑 한 장만 찍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희양산 거 진짜 볼 품 없는 곳이다.

희양산은 대간길에서 한 쪽으로 비켜나 앉아있으므로

우리 같은 대간꾼에게는 별 관심도 없지만

중들이 하도 못가게 말리는 바람에 사람들이 어거지로 더 가게 된다.

결론은 "별로..."이다.

 

별 것 아닌 이 희양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저 봉암용곡에는

천일기도를 하면 용이되어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중생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중들이 자기만 용이되어 좋은 곳으로 갈 욕심에

기를 쓰고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아마 천국에도 정원이 있어서 다른 사람은 못오게 하고

자기들만 가려는 욕심이며,

밖으로 내 보일 수 없는 무슨 구린구석이 있어보인다.

  

이럭저럭 은티마을이다.

마침 초파일이고, 1년에 단 하루만 개방한다는 그 호기심에

봉암사 탐방을 기대하는 산객들이 무척 많아서

은티마을 입구 주차장은 차와 사람들로 붐볐고

하산주 행사로 온통 시끌벅적했다.

  

큰일이다.

택시를 불러 이화령으로 가야하는데

연풍택시 모두가 멀리 가 있어서 올수 없단다.

"미안혀유~ 오늘은 그냥 알아서들 가셔유~" 이런다.

하는 수 없이 히치를 좀 해 볼 요량으로 터벅터벅 뜨끈뜨끈한 아스팔트에

힘 다 빠진 무거운 발길을 늘어 놓는데

택시 한 대가 올라오더니 우리더러 기다리란다.

다른 곳에서 은티로 오는 산객을 태워온 그 택시가 우리에겐 구세주였다.

  

이화령에 도착하니 여전히 한적하다.

멀리 보이는 풍광이 이 길을 오가는 나그네에겐 좋아 보이겠지만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에겐 좋은 경관만은 아닐 것이다.

그 전에 산 아래로 터널이 나기 전 그 시절이 무척 그리울 것이다.

  

그 택시 기사분의 친절한 길안내를 고마워하며

시원한 캔맥주 한통으로 오늘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다.

오늘 하루 10시간 무급수로 한 산행으로 좀 힘들었지만

무사히 귀환 할 수 있는 큰 기쁨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