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위봉 산행기/ 강원도 정선 신동읍
(2005. 5. 12/ 단곡천 입구 주차장- 안내판-박달나무군락지-아라리고개-능선갈림길-참나무군락지-철쭉군락지-두위봉철쭉비-헬기장-정상-갈림길-주목군락지-탄전기념탑-주차장/ 신도시산악회 따라)


*. 정선 아리랑을 들으며
신나는 정선 아리랑을 들으며 정선의 두위봉을 가고 있다. 정선을 다녀온 나의 벗 정순권 선생이 서울의 어느 여대생들이 정선역사 벽에다 가득이 써놓은 것을 베껴 온 것을 MP3에 녹음해 놓은 것이다.

앞 남산 딱따구리는 생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어진 구멍도 못 뚫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개구리라는 놈이 뛰는 뜻은 멀리 가자는 뜻이요,
이 내 몸이 웃는 뜻은 정들자는 뜻일세.  
(후렴)

울타리 밑에 저 닭은 모이나 주면 오잖나.
저 건너 큰 애기는 무엇을 주면  오나.
(후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몰려든다.
(후렴)



오늘은 비소식이 있고, 나는 요즈음 감기에 고생하고 있지만 벼르던 철쭉의 명산 두위봉(斗圍峰)이라서 모든 것 무릅쓰고 가고 있다.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이 산 이름처럼 현지인들은 이 산을 두리봉이라고 한다. 육산인 이 산의 산세가 사투리로 두리뭉실 하다 하여 ‘두리봉’이라 하다가 한자어로 ‘두위봉(斗圍峰)’으로 바뀐 것 같다. 지리산의  산세가 두루뭉실하다 하여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두류산(頭流山)이라 하였다고  하듯이.
그런데 높이가 1,465.9m나 되는 산이, 왜 산(山)이 아니고 봉(峰)이라 하였을까?  
‘봉’은 ‘산’의 하위 개념인데-.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는 함백산(1,572.9m)의 지맥이라서 그런가. 이 고장이 산보다 탄광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그 동안 이 산이 치지도외(置之度外)되어서 그러한가.
산이라 하지 않고 봉이라고 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을 보면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명산 측에는 끼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탄광이 폐광된 뒤로 요즈음 두위봉은 봄철에는 철쭉의 명소로 유명해졌다.
일찍이 나는 바래봉을 다녀와서 ‘바래봉 산행기’에다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봄소식은 남쪽에서부터 붉은 매화, 노란 산수유로 시작되어 목련, 진달래로 피고 지며 온다. 진달래 다음으로 철쭉꽃도 차츰 북상하면서 우리나라 온 산을 붉게 불태우다가 여름 꽃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다. 이렇게 봄을 보내는 우리나라 철쭉꽃의 찬란한 축제는 남도 끝자락인 전남 장흥군과 보성군 경계에 있는 바닷가 제암산(778m)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바위들이 이 산의 정상에 있는 '帝(제)' 자 모양의 바위를 향하여 절하듯이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어서 임금 '帝(제)', 바위 '岩(암)' 제왕산(帝王山) 또는 임금바위라 하였다는 곳이다. 밑통이 유난히 굵고 키가 커서 유난히 큰 꽃이 산허리를 활활 붉게 태운다는 곳이다. 이것이 바래봉과 세석의 철쭉으로 올라왔다가, 소백산(小白山) 능선에 가서는 주목과 어울려 흐드러지게 꽃잔치를 벌인다. 그것이 다시 정선과 영월에 걸쳐 있는 산 첩첩, 물 첩첩, 구름 첩첩하다는 두위봉(斗圍峰,1465.9m)의 주능 5km에 걸치는 수만 평에서 한바탕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다가 봄을 끝내는 것이다. 제암산에서 바래봉, 세석으로. 소백산에서 두위봉으로 이어지는 이 철쭉꽃의 향연을 꽃봉화(꽃烽火)라 하듯이 나도 꽃 봉화 따라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따라가고 싶구나.”

이렇게 두위봉은 철쭉으로 하여 봄에 반짝 빛나다가 잊혀지지만 겨울이 오면 강원도 특유의 유난히 많은 적설량으로 설화(雪花)가 특히 유명하여, 이 심심산천의 때 묻지 않은 겨울의 자연미를 찾아 뜻있는 등산객이 모여든다.

*. 철쭉꽃 찾아 두메 산길
일산에 있는 신도시산악회 따라 5시 40분에 출발하여 두위봉을 가고 있다. 출발점도 도착점도 같은 우리 동네 일산인 등산회를 나는 얼마나 찾았던가. 느린 나의 산행 속도로도 함께 할 수 있고, 오고가는 도중에 소란하지 않은 그런 산악회를 말이다.
두위봉 가는 길은 환상적인 기차여행으로도 할 수 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22시에 출발하는 통일호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두위봉 산행 기점인 함백역과 증산역 사이에 있는 자미역까지 약 4시간 20분에 가는 코스다.

드디어 정선군 신동읍 단곡천이 흐르는 두위봉 입구 아스팔트가 끝나는 주차장에 이르러 11시에 산행이 시작되었다. 함께 간 이도 오르는 곳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요, 산이다. 점심 식사는 미리 차속에서 먹었다. 남들의 식사 시간에 나는 그만큼 더 걸어서 느린 나의 속도를 맞추어 주기 위해서였다.

드위봉 산행 코스는 위 그림과 같이 넷이 있다. 우리는 제1코스 단곡에서 올라가서 제2코스를 거꾸로 해서 도사곡에 5시까지 내려오면 된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내를 건너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오름길로 들어선다. 갑자기 우리는 안개 속에 원시림 같은 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 들어섰다. 얼마를 더 가니 차도가다시 나오는데 거기가 박달나무 군락지였다.
박달나무는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무겁고 단단한 나무로 홍두깨, 방망이, 곤봉, 조각재로 이용되는 나무다. 우리의 조상들이 신성시 하는 나무에 소나무도 있지만 박달나무도 있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박달나무 아래서 나라를 열었다는 곳이 신시(神市)요, 그래서 단군(檀君)의  ‘단(檀)’이 박달나무 ‘단(檀)’ 자였다.
그 임도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니 거기가 바로 해발 1,130m라는 ‘아라리고개’다.
거기서부터 밧줄이 매여 있고 땅을 기듯이 산죽이 깔려 있는 고개를 정선 아리랑 가파른 아라리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정선 사람들은 ‘정선아리랑’을 ‘아라리’라고 한다.
정선은 한이 많은 고장이다. 고려가 망하자 속세를 피하여 숨어 든 고려 충신들과 그의 후손이 머물던 고장이요, 한 많은 높은 사람들이 유배를 오던 곳이 정선이다. 게다가 정선 사람들은 두메산골이라서 가난함과 외로움에 대한 한이 깊다. 그래서 가슴과 마음이 ‘아리다’, ‘쓰리다’ 해서 아리랑 쓰리랑 노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래 그런지 그 원망은 여인네 마음을 통하여 우선 가까이 있는 남정네에 대한 원망부터 해학적으로 시작된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오름길에서 산꾼이 당장에 바라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능선을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능선이 안개 속 보인다. 거기가 산마루길 갈림길로 정상이 630m 남았다는 반가운 이정표가 있다. 거기서 남면 쪽으로 내려가면 산죽군락지가 있고 능선에 천연샘물 연못이 있다는 그 갈림길이다.

두리 뭉실한 봉우리를 따라 능선의 푹신한 육산 길을 얼마를 오르니 두위봉이 54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작달막한 나무들이 빽빽하다.
여기가 철쭉군락지인가 했더니 참나무군락지였다.  오이 중에 참 오이가 참외이듯이, 나무 중에 참 나무가 참나무란 말인가.
원래 참나무란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가시나무, 너도밤나무, 밤나무를 포괄하는 이름이다. 여기는 참나무 중 갈참나무가 많은지 그 안내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다.
“10월에 익는 갈참나무 열매를 가지고 도토리묵과 도토리가루를 만들어 겨울에 별미로 먹는데 가을에 적색으로 드는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꽃이 없는 모습이 안 되어서일까. 고산지대라서 작달막한 갈참나무가 썰렁한데 그 밑둥에보랏빛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엘레지 꽃이었다. 이 놈이 활짝 피면 나리처럼 화려하련만  이슬에 젖어 고개를 숙인 모습이 두메산골 아낙네가 수줍은 듯이 내외하는 모습과 같이 머리를 숙이는 것도 부족했던지 머리를 돌리고 있다.

 

 

 

 

 

 

*. 개꽃 철쭉군락와 참꽃 진달래
드디어 철쭉군락지가 뿌연 안개 속에 우리를 반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철쭉꽃이 열병식 하듯 좌우에 늘어선 사잇길로 바래봉을 향하다보니 미당 선생의 시가 생각난다. 선운사 동백꽃 구경을 갔다가 너무 일러서 꽃구경을 못하는 서운한 마음을 노래한 시다. 그러나 미당이 노래한 것은 피지 않은 동백꽃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벚꽃, 진달래꽃, 철쭉꽃이나 단풍을 찾아갔다가 나와 같이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을 노래한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선운사 동구 / 서정주



두위봉 철쭉은 5월 말에 시작해서 6월 초순에 만발한다는 것을 뻔연히 알면서도, 두위봉 간다는 말에 귀가 번쩍 뛰어서 혹시나 하고 온 그 혹시라는 기대를 저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솝 우화에 깡총 깡총 포도 따려던 여우처럼 한 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푸르스트가 말하지 않던가. 욕망은 꽃 피우나 소유는 시들게 한다고.'
그러나 철쭉 만발한 두위산이 보고 싶어 '한국의 산하' 싸이트를 다시 찾아 철쭉의 나라 두위산을 욕심내는 만용을 부려 보았다. 이해하여 주시라.



철쭉과 진달래는 어떻게 다를까.
둘 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나무지만 서로 다른 꽃이다.
밀양지방에서는 철쭉을 '연진달래'라고 한다. 진달래꽃이 진 뒤에 연달아서 피는 꽃이 철쭉이기 때문이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먼저 핀다.
철쭉은 진달래보다 꽃이 크고, 화관의 윗부분에 진한 자주 반점이 뚜렷하다.
진달래는 삼월 삼짇날에 화전(花煎)으로 부쳐 먹거나, 잔달래 술로도 담가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하지만, 철쭉꽃은 먹으면 두통, 구통을 일으키는 먹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꽃이라서 '개꽃'이라  한다.

*. 사진을 찍는 이가 서글퍼 질 때

정상인 듯한 곳에 '두위산철쭉꽃 시비'가 있고 그 시비에 이 고장 출신인 듯한 시인이 ‘두리뭉실 두위봉에/ 연분홍 물결/ 짱짱한 몸짓이 된다’고 두위봉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신도시산악회 회원들의 단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메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섭할 때가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 받을 때다. 어떤 이는 돈을 줄 테니 찍어달라는 경우도 있다. 항상 당하는 일이지만이럴 땐 불쾌하다. 찍으면 그만이 아니라, 빼거나 메일로 부쳐야 하고 그러면 주소를 알아야 하는 등등-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단체 사진 같은 경우나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일이 아닌 경우 나는 그러한 때마다 퍽이나 서글퍼진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는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나이인데, 그래도 내 작품 자료수집을 위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가 원망스러워 질 때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나에게 욕으로 돌아올 경우가 많았지만 그걸 각오하고 사는 편이다.

직진하여 해발 1,450m라는 자뭇골하산로(5.5km, 1시간 30분)를 지나니 뿌연 안개 속 헬기장에서 우리 일행이 한창 식사를 하고 있다. 헬기 대신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산을 사랑하는 '신도시산악회' 회원들인데 신선들 같아 보인다.
식사 후 두 번째 만나는 헬기장 너머에 봉이 하나가 보인다. 무심코 올라갔더니 한 10여 명이 간신히 설 수 있는 좁은 곳 나무 표지에 '두위봉 1465.9m'라는 표기를 보니 여기가 진짜 정상인 모양이다. 여기가 장군바위인가, 아니면 장군바위가 따로 있는 것인가?
이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쪽에 억새풀로 유명한 민둥산과 그 뒤에 가리왕산이 있다 하는데, 그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이루는 함백산과 태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던데-. 한낮이지만 아직 안개가 시야를 막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있다.
천길 낭떠러지 위 능선 길에서 막 피기 시작하고 있는 양지쪽의 철쭉 너머로 구름이 막 걷히고 있다. 그 위에 찬란한 오월의 여름 햇살이  빛나고 있는 것은 안개 속을 헤쳐온 우리들에게는 찬란한 축복과도 같았다.
내리막길이지만 정상 다음은 1,465봉, 1,464봉로 내려가고 오르는 길이었다.  

또 산죽이 시작되더니 산죽 쉼터가 있고 거기서 얼마를 더 가니 1,344m 봉아래 안부가 이 두위봉에 와서는 지나칠 수 없는 주목군락으로 향하는 갈림길이었다.

*. 삼국시절이 생일인 8  그루의 주목(朱木) 군락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에 주목(朱木)이 있다.
가지가 적갈색인 것은 물론 줄기 속까지 붉어서 붉을 주(朱), 주목(朱木)이라 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이 나무의 붉은 빛이 악귀를 쫓는다고 믿어서 주목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하였다.
주목은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10년에 1m씩 자라기 때문에, 재질이 단단하고 탄력이 있는데다가 문지를수록 광택이 나고, 게다가 향기롭고 색깔이 좋아서 목재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주목 바둑판이 최고로 치는 고가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본 주목으로는 태백산, 설악산 주목도 있지만 소백산 산정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더욱 유명하였다.
그런 주목군락지를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주목이 두위봉 산록에 있다는 8구루의 나무란다. 나무 높이가 17m, 밑동 둘레가 4m나 되는데 그 수령이 자그만치 1,800년이라니, 그 연대는 중국에서는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초빙하던 때요, 우리나라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시기다.
그래서 삼림청에서는 이 두위산의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4,000만원을 들여 철책을 두르고, 나무종합병원 등에게 의뢰하여 외과수술을 하는 둥, 이 두위봉의 살아있는 역사, 수호자, 상징자인 주목의 활력 있는 옛 모습의 회복에 힘쓰고 있었다.

도사곡으로 향한 하산 길은 길고 긴 통나무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냇물 같은 시원한 샘이 있고 그 샘 옆에는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는 커다란 싹이 있다. 무얼까.
 고사리였다.

주차장 가는 길에는 탄전으로 빛나던 옛날의 두위봉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있다. 거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삶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광부와 그의 가족이 조각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마시기로 하고 하산주를 벼르고 왔는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온 전방 200m 지점을 그냥 통과해온 것이다. '이런 실수가.' 우리네 같은 술꾼에겐 불행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