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봉암사 홈페이지 게재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겼으므로 읽기에 다소 불편한 점은 예견하였으나

원문보호라는 목적으로 읽기 좋도록 편집을 하지 않았습니다.  

 

경 고 (희양산 보호 대책)

1.사찰 경내지 한계는 사찰 소유림과 법당을 중심으로 반경4km이
.....로한다.
2.경내의 임야와 새,짐승,고기등 어패류,수목,수석등을 보호한다.
3.참배하러 온 신도 이외의 일반인,등산객,관광객,유흥객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4.경내지를 청정히 보호하며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지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
5.경내지 4km반경 안에서는 일체의 유흥,위락에 따른 시설물의 설치
...를 금지한다.

 

초파일 봉암사개방과 관련한 안내문입니다.

.....................................................................................................................

몇가지 주의하실 점들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1. 봉암사 경내에 오실 분들은 봉암사 내에 주차가 불가피합니다.

  상괴 다리부터 경찰들과 스님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차량 통제를 할 것입니다.

   차량은 가은중고등학교 운동장에 주차하셔야 하며,

   주차장에는 가능한 깨끗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매년, 학교 관계자들의 주차 거부로 어려움이 많답니다.

2. 봉암사 경내에서는 쓰레기 투석, 음주, 흡연을 할 수 없습니다.

3. 봉암사에는 연등이 아니라 모두 백등이며,

    등값을 정하지 않아서인지 너무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많은 어려움과 봉암사에서 공양을 대접하니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1년에 한번 개방하기에 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한 등당 30,000원을 받기로 했답니다.

4. 기독교인들이 오셔서 부흥회를 한다든지, 경내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행사에 방해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중요하면 남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시고, 철(정신)이 드시길 기원합니다.

5. 스님들이 정진하시는 선방이나 바쁘게 일하는 부엌(후원)을 기웃거리지 마십시요.

    열심히 수행하거나 일하시는 분들에게 잡념과 망상을 심어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6. 볼일(대변, 소변)은 가능한 오실때 머르시던 곳이나 휴계소 또는 주차장에서 볼 일등을 보시기 바랍니다.

   봉암사의 화장실(해우소)는 3-4명정도 밖에 일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화장지(휴지)는 지참하여 오시기 바랍니다.

7. 통제를 하시는 스님들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욕설을 하지 마십시요.

    열심히 정진하시다가 초파일 하루를 도와 주시는 분들입니다.

8. 봉암사 내에서 사진촬영 외 비디오 촬영이나 TV방송 촬영을 금합니다.

   지상소식으로 나가는 영상물촬영은 사전에 주지스님과 상의하셔서 하시기 바라며,

   무단 촬영하다가 망신을 당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9. 사진 촬영하신 분들에게 당부드리는 것은,

   스님들을 촬영하지 마시고, 희양산을 배경으로 촬영하지 마십시요.

    오직 초파일을 촬영하기 위해 오셨으니 그것에 맞게 촬영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스님들이 촬영을 저지할 것입니다.

0. 봉암사에서는

    경내 외에 마애불과 희양산 등산을 하기 위해 오신 분들은 거부합니다.

    이곳저곳에 쓰레기를 버려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수행은 못하고

    쓰레기 줍는 곳에 모든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자연을 깨끗이 하여 후손들에게 좋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합시다.

    지구상에서 계곡등지의 물을 정수 하지 않고 먹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가까운 대만이나 그 외 나라들의 물들은 석회질이 많이 섞여,

    그 물을 장기간 먹으면 몸에 담석을 만들게 됩니다.

    위의 내용을 지킬 수 있다면, 봉암사 법요식에 참석하셔도 무방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셔서 행복한 닙바나(열반)을 얻으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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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봉암사 출입통제에 대한 봉암사의 답변입니다.

 

불교신도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신도증이나 어떠한 증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증명보다 여러분들께서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삼보의 의미를 아신다면, 그 보다 더 확실한 증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님께서 진정으로 부처님을 따르시는 분이라면 부처님께 참배 하십시요.
진정한 의미를 가지신 분이라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나모 따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막 삼붓따사!!!!

 

??? !@#$%^&* .... 바로 위의 말은 절에 다니는 사람도 잘 모르는 말아랍니다. 

혹시 어느 남모르는 나라말로 된 욕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하

 

어느 분의 봉암사측의 희양산통제와 관련된 질의 응답입니다.

희양산과 佛法에 대한 질문입니다.

1. 부처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유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세상에 종교가 많지만 저는 불교를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의 고통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스트레스 - 좌절된 욕구로부터 생기는데, 욕구를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신에 의지하려는 기독교나, 현실과는 맞지않는 이상적 방법(삼강오륜등으로 사회를 계층화하려는 것 - 개인적 견해입니다.)으로 욕구를 추구하려는 유교에 비해 욕구를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불교가 이상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승과 소승의 불교 중에서 단연 대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승이 "나무아래나 냇물가" 즉 사람들을 떠나(심지어 못오게 만들고) 호젓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수련에 열중하는데 비해, 대승은 모든 사람들의 해탈을 위해 민중과 함께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구화산에 갔을 때 "마지막 한 사람이 해탈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한 김교각 스님이 신라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대승의 여러 종파 중에서 선종(禪宗)을 좋아합니다. 선종불교는 무엇보다도 도그마를 배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교가 삼강오륜을 인륜도리라 주장하고, 기독교가 하나님을 따르고 사탄을 배격하라는데 비해 선종조사님들은 선악의 분별 위에 존재하는 참지혜를 얻으라고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쓰는 말은 제한된 의미를 다른 부분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하여, 참지혜를 전달하는데 이러한 언어의 사용을 경계하는 선문답을 보면 여타종교와는 달리 불교가 참으로 심오한 경지를 가지고 있구나 늘 감탄하게 됩니다.

  짧은 지식으로나마, 제자신과 국가나 인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삼강오륜을 비롯한 모든 도덕률들이 비록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교조화하면서 종종 사람들을 커다란 불행에 빠뜨렸다고 생각됩니다.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이나 종교재판, 조선시대의 사화(士禍)나 당파싸움이 그 예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사회에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선종불교의 정신이 보다 더 널리 고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평소 한국 스님들의 정진과 분발을 늘 기대하고 있던 바입니다.

2. 지름티재에서 생겨난 의문

  중국의 혜능 마조 백장 임제 운문 동산 무문 등 역대 조사님들과, 일본의 도원 관산 백은 양관 철주 등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성철 큰 스님같은 분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바라마지 않습니다. 따라서 봉암사가 전문 수도를 위한 도량으로 지정되었다고 하고, 수도를 끝내고 하산하는 스님들의 발걸음은 입산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풍문을 들으면서 '봉암사 스님 중에 대스님이 많이 나오겠구나!'하고 내심 많은 성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양산을 올라가다가 봉암사 스님과 부닥치고 나서 이전에 저 혼자 상상하던 스님들의 모습과 너무 달라 당혹스럽고 한편 분하기도 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은티마을에서 희양산 쪽으로 올라가던 중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곧 몇분의 스님들이 계신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돗자리 위에 길게 드러누운 세분의 스님과 비닐봉지에 넣어진 먹을 것들이 너저분하게 눈에 띄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자 '왜 스님들이 수도는 안하고 여기에 와서 드러누워 있는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건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희양산 쪽 통행을 막기 위해서 그러하신다는 말을 듣고는 '참 별일스런 일로 수고도 많다'고 개운친 않았지만 일단 거기와 계신 걸 납득하긴 했는데요.....이게 두고두고 생각나면서 불교 전반에 대한 의문이 점차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뒤로 희양산에 오르려던 여러 산악인이 남긴글에서 다른 분들도 같은 의문을 갖고 계신 것을 보고 한번 직접 여쭤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올립니다.

3. 산은 산이고 물은 물.

  성철스님의 일화를 소개한 책이름이 이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 말은 제가 이해하기론 사물을 어떤 주관적 선입견을 갖고 판단 - 분별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산을 볼 때 '저산은 내 땅, 이 산은 네 땅'하거나, '이 산은 땅값이 얼마' 하거나, '경치가 좋다' '나무가 많다'하는 등등....나라는 입장, 사람이라는 입장에 서서 분별을 하고 봅니다만, 성철스님은 중생상과 수자상을 버려야 하는 도인으로서는 마땅히 위와 같은 분별심 - 모든 2차적 사고를 버리고 오직 산의 모습 그대로 지각하여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봉암사 스님들은 희양산이 봉암사 산이라 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것 같은데, 이것은 성철스님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요? 희양산이 봉암사 소유고, 그래서 법적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을 수있는지는 몰라도 이건 우리 보통사람들의 행태에 불과하지 부처와 조사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의 모습에 합당할 수 있는가요? 아니 우리보통사람들이라 해도 설혹 사유지라 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관습도로'는 막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봉암사 스님은 보통사람보다도 더 권력이 센, 훨씬 더 세속적인 권력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보셨는지요?

4. 멸각심두화자량

  쾌천대사님이 남기신 이말은 마음만 고쳐먹으면 불길 속이라도 태연히 도를 닦을 수있다고 해석되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설혹 객쩍은 등산객이 희양산 봉우리서 소리지르는 것이 듣기 싫다해도, 혹은 수많은 참배객이 경내를 소란스럽게 한다고 하더라도, 어디 불길 속만 같겠습니까?

  중국의 쾌천대사님은 불길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돌아가셨는데, 우리 봉암사 스님들은 경내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 것도 모자라, 희양산 출입까지 막아야 하는지요? 도대체 스님들은 얼마나 큰 땅을 깔고 앉아야 도를 닦으실 수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쾌천대사님 말씀을 상기한다면 시끄러운 저자거리에서도 방석하나면 도량이지 않겠습니까? 봉암사 부근과 희양산 일대를 합하면 얼추 백만평을 넘어설 텐데, 이 큰 땅을 막아 놓아야 도가 닦입니까? 그렇게 큰 땅이 필요하다면 아예 더 넓은 외국으로 가셔서 도를 닦지 그러십니까?

5. 입전수수

  곽암스님은 수행의 마지막은 저자거리에 내려와 가르침을 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 수행의 목적은 결국 민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말씀하신 거라 이해합니다. 그런데, 봉암사에서는 희양산을 독차지하고 산을 좋아하는 뭇사람들의 마음을 거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비록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라 해도 민중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닦는 도는 도대체 무슨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릇,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 어느 종교든 민중의 삶에서 유리되면 쇠퇴하거나 소멸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논쟁도 신학자들의 교리분석에 있지 않고, 결국은 한 사회가 그 종파를 받아들이느냐 아닌가로 결판이 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은 모름지기 민중의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심오하고, 아무리 기막힌 교리라도 민중이 믿어주고 따라주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스님들도 민중 속으로 좀더 파고들도록 노력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봉암사 홈페이지를 보면 봉암사 스님들이 아주 높은 곳에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데(저만 그런진 몰라도), 자세를 낮추고 민중속으로 들어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을 낮추어 보고, 출입을 통제하고, 가르치려 들려고만 한다면 불교의 장래는 없습니다. 이건 제가 바라는 불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불교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지혜중에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만, 혜능대사 이래 500여년이 흐른뒤 쇠퇴하고 만 것은 바로 이 문제 때문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부터 조선까지 간단없이 척불운동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 아닙니까? 희양산 출입을 막는 봉암사 스님의 모습에서 척불운동과 선종의 쇠퇴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요?

6. 시장에서 아이들과 놀았던 포대화상

  저는 문외한이라 봉암사 내의 실정을 알리 없고, 그래서 희양산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일이 수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까닭 - 여나믄 스님이 줄창 지름티재에 나와 계신 것 - 을 이해할 리 없어 이상과 같은 질문을 드렸습니다만, 이런 의문이 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부디 먹장구름을 일거에 날려보낼 듯한 해답을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희양산 출입을 막아야 한다면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 일을 하는 동안 희양산 산행이 좌절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점차 스님들에 대한 회의가 늘어간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구요, 지름티재에 나와계신 스님들 참 딱해 보여서 말씀드립니다. 방석하나 들고 오셔서 단정하게 앉아 수도하는 모습으로 계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무슨 무슨 기관장이나 무슨 무슨 법...등이 적힌 현수막, 이거 예전 관존민비시절 높으신 관리들이 하던 작태가 아닙니까? 이거 치울 수 없을까요? 그리고 비닐끈과 나뭇가지로 너저분하게 길을 막은 것 이것도 참, 같잖아 보이던데요.... 어울리지 않는 이런 고압적 태도를 보면 슬퍼집니다. 차라리 '수도에 협조해달라'는 안내문을 세워놓으시면 대부분 양해할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요....아무튼 포대화상같이 민중에 친근한 스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효진 (2005-04-18 17:17:06)  
질문에 간략하게 답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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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는 100여명의 대중들이 수행을 합니다. 은티제나 지름티제로 일반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와 즐기곤 하십니다. 진정으로 부처님의 뜻을 인고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일부 타종교 또는 술취객들이 올라와 수행에 많은 방해를 하기 때문에 5~10명정도 소임을 정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수행정도에 따라서 말하는 언행 차이가 있습니다. 좀더 길게 말씀을 드려야 하지만, 이 나라 통신 사정이 좋지 않아 이만 줄입니다.

미얀마 마하시 센터 옆 PC방에서

http://cafe.daum.net/mahasi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센터
석효진(U JANINDA) 드림

 

답변에 대한 재질의 내용.

이 답글은 같은 내용의 글을 조계종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가 어느 분께서 대답하신 것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글입니다.


3. 답글 : 왜 그 스님들께 묻기를 '무슨 연유로 이렇게 길목을 지키십니까 ? ' 하고 묻지 않으셨습니까 ? 그렇다면 훨씬 좋은 대답을 들으실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봉암사 사중에 전화를 드리고 여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묻지 않으면 대부분 자신의 이해하는 관점에서 판단하지요. 그러나 그 것은 매우 나쁜 습관입니다. 자신의 성품이 왜곡되고 남을 왜곡시키니 불행시작 행복끝인 셈이 되지요.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 당사자분들에게 묻는 습관을 길들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질문======= 답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저는 제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은데요...그렇지만 이미 모든 입장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스님을 비롯해서)은 다 자신이 알고있는 것만 가지고 생각하기 나름이고, 이건 지극히 정상 아닙니까?

왜 묻지 않았나, 묻지 않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라고 하셨는데요. 이 말이 '객관적으론'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 이런 말 들으면 좀 억울합니다. 평소 스님들 - 봉암사 스님들 - 을 존경하고 있던터라 막상 만난자리에선, 의당 '내가 모르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리라....짐작하고 물러섰고, 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 첨 글에서 말씀 드렸듯 -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봉암사 홈피에도 글을 올렸는데, 답글을 아직 못봤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시라고 하는데 - 전화를 통해 이런 얘기를 다 물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앞뒤 조리를 세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답글 주신분은 그런 지 몰라도 저는 전화로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서 말하기가 참 어렵더군요. 아무튼 이 글을 당사자에게 묻는 걸로 생각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리고 답글 주신분은 '당사자'가 아닌가요?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으신 거지요? 봉암사 스님들에게 직접 물어보시고 대답해 주신건가요?

4. 답글 : 봉암사 스님들이 세력이나 부려 볼려고 길을 막겠습니까 ?  위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사실을 알아낼 때 자신의 생각 속에서 알아내지 말고 사실에서 사실을 알아내는 삶의 기법이 아쉬운 것 같네요. 그리고 그 스님들의 판단이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이지요. 그리고 성철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당신의 말씀을 가지고 남을 잣대질하며 시비하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질문 ===== 아, 이건 질문이 아니라 해명입니다. 성철스님 말씀을 인용한 것은 그것으로 잣대질하고 시비하려는 게 아니고, 성철스님의 가르침과 봉암사 스님들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 - 이것도 개인생각 - 의문이 들었을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학생이 수업을 듣다가 선생이 전에 말한 것과 뒤에 말한 것이 다를 때 "왜 그럽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봉암사 스님이 길을 막고 계신 것을 제가 하지말라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못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선생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듯 물어볼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에서 사실을 알아내라고 했는데, 어차피 사실은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인지되는 과정에(지각정보와 기억정보를 비교해서 인지하니까) '개인화'될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의 인지능력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실에서 사실을 안다는 게 얼마나 가능한 일인지.....답글 주신 분은 초능력자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개인개인의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암사 스님들이 길을 막는 '입장'이 중요할 테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의 충돌이 빚어내는 '결과'가 중요하고요.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말도 들은 것 같구요. 예술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운 것 같습니다. 불교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람들이 봉암사를 좋게 볼 때 봉암사가 좋은 거지, 봉암사 스스로 '우리는 옳다'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입니다. 끝에 좋은 가르침 있으면 배워보시겠다고 했는데, 제가 감히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만, 혹시라도 너무 '사실'만 중시하고 '사람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있다면 이걸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한 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세계입니다. 종교는 주관이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즉 '생각'과 '해석'이 중요하다는 말인데요, 봉암사 스님의 '생각'이야 나름대로 도리가 있고, 합당하고, 훌륭하고, 고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를 좀더 중시할 수 없는가라는 말입니다.

답글 ; 좋은 분이 말씀을 주셨으면 그 말씀을 빛으로 삼아 자신의 수행시 회광반조하여 향상하라는 당부일 터인데 돌아다니며 스님들을 잣대질 하는 것으로 쓰시니 등불로 남을 비춘답시고 걸으며 자신의 앞에는 무엇이 있는 줄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당파 싸움을 많이 했음에 아직도 성현의 말씀을 들어 남을 닦아 세우는 일에는 익숙하나 성현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는 데는 서투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질문 ===== 좋은 말씀을 주시는 큰 스님을 가진 사회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답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스님이 좋은 말씀을 하시고, 아무리 좋은 말이 불경에 널렸어도 이걸 받아 먹고 소화시킬 수 없으면 그게 똥이나 가래춤에 불과할 뿐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받아들여 소화하는 것 - 제것으로 만드는 것인데, 소화를 할려면 잘근잘근 씹어서 입안에서 잘 돌려 침과 섞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앞서 말씀 드렸듯이 잣대질이라 생각하시면 섭섭하구요, 내가 들은 이것과, 스님들의 행동이 합치되지 않는 듯하니 이건 어쩐일이냐? 잘 소화가 안된다....소화되게 도와달라...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글 ;  길을 막는 일은 성철 스님의 말도 부처님의 말씀도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스님들이 전체적인 상황과 예상되는 재앙을 막을 목적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산을 올라가고 싶고 길을 지나가고 싶은 사람의 심정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길을 트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그래 스님들을 딱아 세워보기도 하고 원망해 보기도 하는 법이지요.  막는 길이라면 더우기 사람의 호기심이 더욱 생기는 법이지요. 그렇다고 그런 분들을 일일이 만나 해명할 수 없는 것이니 시각을 곤두 세우는 것은 산에서 수행하는 분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로 수행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수행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국민들의 처신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

답글 ;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산을 좋게만 이해하고 있는가 ?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도 불을 놓지도 않는가 ?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쓰레기를 함부로 투척하지 않는가 ?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되먹지도 않게 이해한 수행관을 들어 함부로 도리상을 지으며 잣대질하고 저울질 하지 않는가 ? 그래 해서는 안될 돼지 멱 따는 소리를 질러 대며 수행자가 어찌 이런 정도를 부드럽게 이해하지 못하여 신경을 곤두세울 수 있겠는가 하며 돌이겨 봐야 할 자신의 왜곡된 성품을 돌이키지 못하고 남을 해치지 않고 있는가 ?

재질문 ======= 성철스님 말씀이나 부처님의 말씀과 길을 막는 것이 아무 관련이 없다.....어떤 재앙이 예상된다.....  이거 봉암사 스님께 확인하신 말인가요? 그렇다면 한가지만 더 여쭙고 싶은데요, 그 예상되는 재앙이 어떤 건지요?

글에서 말씀하신 산불입니까? 그렇다면 산림청에 할 일같은데요, 환경오염입니까? 이건 환경청 소관같구요.... 봉암사 스님이 수행은 안하고 나설만한 재앙이 무엇인가요?

산에서 소리지르는 것 저도 참 싫어합니다만, 이 것 때문에 산행을 막는다는 건 빈대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원 질문 멸각심두 화자량에서 말씀드렸듯이 소리지른다고 수행에 방해받는 다는 건, 왠지 스님들이 참 딱해 보이고....저도 집에서 좌선합니다만, 시끄럽다고 사람들 내쫓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라면 봉암사 스님의 행동이 횡포로만 여겨집니다. 그리고...이런 느낌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희양산'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셔서 글을 좀 읽어보시지요.

답글 ;   등등 모두 다 열거하면 책으로도 몇권이나 되는 문제들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 중에 있지 않는가 ? 그러는 사람이 백 사람 가운데 천 사람 가운데 하나라도 있다면 이를 먼저 돌이켜 반성할 바이지 스님들의 도리상을 지어 저울질하고 잣대질 하는 되바라진 생각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좋은 국민이 지녀야 할 소양을 가져야 할 것으로 압니다.

  모든 것을 산에 오르는 사람의 이기적이고 덜 돼먹은 소양을 중심으로 판단을 하는 것은 스님들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성철 스님 어록 운운하며 고답적인 말을 한들 어디 칠칠한 자신의 성품이 닦아져 밝아지겠습니까 ?

재질문 ===== 이 부분에선 저도 '기가 막히는 심정이라' 막말을 조금 하겠습니다. 우선 글을 쓰신 분은 스님들은 옳고, 산악인들은 덜돼먹었다....라고 하시는데, 이게 제가 제일 싫어하는 '선입견' '고정관념' '도그마' '교조주의' '선악의 분별' '찰찰한 속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글쓰신 분은 불교를 공부하신 분인가요? 불이(不二)가 마땅하거늘 어찌 산에 오르는 사람이 문제투성이라고 말하십니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환경을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며, 조국과 산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십니까? 언제고 시간내 주시면 저와 함께 아무산이나 좋으니 한번 산행하시지요.

그리고 스님이라고 어디 모두 훌륭합니까? 못돼먹은 중놈도 얼마나 많습니까? 위에 말씀하신 것처럼 중놈들 욕한번 해볼까요?.......

중요한 건 스님이든 일반사람이든 좀더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 아닙니까?

스님과 일반인을 구분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알만큼 알고, 공부할 만큼 공부하고 있으며, 면벽하고 용맹정진하는 스님들 못지않게 삶의 의문을 풀기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답글 :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지식을 뽐내고 조금 알면 도인이 되어 남을 훈계하는 바에 익숙하고 남의 좋은 말을 들으려 함에는 익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면 자신이 그런 경지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지요. 사실 저같은 경우도 돌이켜 보면 그런 경향이 많은 것 같고요. 하나 일의 시비와 차서와 태도는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면에서 예법으로 서게 되는 법이지요.  중국의 쾌천대사가 말씀하신 것은 중국의 쾌천대사가 말씀하신 것이지요.  수행하는 사람 가운데는 쾌천 대사의 말에 부합한 사람이 있으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검술로 비유하면 검술에 완숙의 경지를 보인 사람은 외부적인 상황에 혼란이 오지 않지요. 근기로 말하면 그 것은 상근기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봉암사에서는 상근기만 수행한다고 들으셨습니까 ? 제가 듣기로는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재질문 ===== 희양산 등산로를 막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상근기가 아니라서 백만평 넘는 토지를 확보해야만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답글 주신 분이 부디 스님이 아니시길 바랍니다. 스님이 이렇게 말한다면....아아....정말 한국불교가 창피스럽습니다. 우리가 비록 진정으로 '멸각심두 화자량'이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백척간두 진일보'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그 정신만은 가지고, 그렇게 되도록 애를 써야하거늘...아아...정말 창피합니다.... 이 글은 한국 불교에 똥칠하는 말입니다....

답글 ; 조사께서 견해를 세울 때는 그에 맞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그에 맞는 상황인지는 판단하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왜 다리 긴 어른 처럼 보폭을 떼어놓지 않느냐고 다그친다면 옳겠습니까 ? 공자님은 말씀하셨지요. '충분히 배워 익히지도 못하였으면서 그 것으로 남을 가르치지 아니하였는가 ?' 하고 반성해 보라고 하셨지요. 비단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에도 그런 말은 있습니다. 자죄를 미탈하면 타죄를 불속이라고 자신의 죄업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남의 죄를 대속할 수 없노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상구보리 먼저 하는 것 아닙니까 ? 이런 점을 조리있게 생각할 수 있다면 성철스님이나 쾌천 대사를  뻣뻣한 잣대로 만들어 남을 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 문을 통과할 때는 굽히고 폄이 그 문의 높이에 맞게 해야하는 법이지요. 문을 뜯어 고치려 하면 되겠습니까 ? 그렇다면 맨날 문만 고쳐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는 나의 생각으로 처신하는 분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현재 현실을 살펴서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하는 판단이 서면 그렇게 하는 법입니다. 그런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판단을 대하는 분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양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먼저 그렇게 하는 연유를 묻고 나중에 더 좋은 지혜가 있으면 그를 보완하여 드리는 차원에서 한 말씀 드린다면 능히 취할만하면 취해 쓸 것입니다. 먼저 잣대질 하고 임의로 판단하는 것은 길을 막아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재질문 ======== 길을 막아야할 상황이라 길을 막는다 대답하십니까? 원질문에서 말씀 드렸듯이 막는다면 제가 못하게 할 능력도 없으니까 막으십시오. 쾌천대사나 성철스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굽혀서 마음대로 문을 통과시키십시오.

하지만 말씀의 본질을 잃어버릴 때 - 마구 구부려 편한대로 해석할 때 - 불교는 이미 불교가 아니게 된다는 것 - 종교가 아니라 세속적 권력단체가 된다는 것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대로 굽히고 펼 때 민중의 마음은 점차 불교를 떠난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답글 : 곽암스님이 저자거리에 나와서 수행의 마지막을 닦으라고 했다고 해서 봉암사 스님들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까 ? 견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저자거리에 나오면 어찌 되겠습니까 ?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저자거리에 나오면 어찌 되겠습니까 ? 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저자거리에 나와서 거래하게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 저자거리에 나오면 어찌 되겠습니까 ?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렇게 저자 거리에 나와야 된다는 말을 써서는 안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 거리에서 세상 사람과 섞이어 그들과 행을 섞고 말을섞으며 뜻을 석는 것이 먼저입니까 ? 수행자의 수행이 먼저입니까 ?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워서 섞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섞여서 좋게 영향을 줄 수 없다면 섞이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먼저 수행을 하고 나중에 섞이려 하는 것입니다.  이 것 저 것 많이 아시는 데 옛 사람의 글은 수행하는 데 반추하고 반조하라는 글이지 남을 잣대질 하라는 글이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재질문 ====== 제 말은 봉암사 스님이 저자거리로 나서라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곽암 스님의 말씀대로 저자거리로 나서는 것이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면, 저자거리로 나설 때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볼 것인지 생각해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봉암사가 오만하고, 권력적이라고 비쳐지면 저자거리에서 할 일이 곤란하지 않습니까?

답글 ; 무릇 자신의 마음을 바로하면 세상에 그르게만 보이는 것들이 더 바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말을 인용하면서도 스스로는 깨우치지 못하고 그로 남을 비춘다고 하는 것은 꺼진 등불을 들고 남의 밤길을 안내하는 것과 같아 우수꽝 스러울 뿐이지요.

재질문 ===== 제가 만일 다 깨우치고 다 안다면 뭐하러 질문하겠습니까. 의문이 들었으니까 질문하는 것이고, 대답을 구해 깨우치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로 우스꽝스럽다고 하는 것은 마치 구걸하는 사람의 쪽박을 깨는 것처럼 잔인한 모습입니다. 의문을 풀어주시면 되지 비아냥거릴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저는 남의 밤길을 안내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 의문을 풀고자 할 뿐입니다.(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긴 했습니다만)

답글 : 많은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는 것은 세상 사람이 다 추구하는 바입니다. 연예인보다 많은 사람의 환심을 사는 사람이 없지요.  환심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연예인이 되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적어도 수행자에게 '말을 할 때는 마음을 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고 말할 것이 아니라 '중생을 바로 인도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해야하며 '훌륭한 수행자로 훌륭한 깨달음을 얻었으면 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저희들은 밝아집니다.' 하고 말씀해야 될 것 같군요. 사회가 바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어 있지요. 우선 먹기는 뭐가 좋다고 하여 세상 사람이 마음에 드는 것만을 찾다가는 사람들이 전혀 깊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 뭐하러 대학원 과정을 시설해 놓고 열심히 배우게 합니까 ? 쉽게 살지 ?  그렇게 보는 견해가 있어도 잘 회통하여 설명해서 그런 견해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기꾼들이 너무나 많이 횡횡하다보니 그들의 가치관이 표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답글 ; 인기를 말하며 수행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국 집단이 한 때는 클지 모르지만 결국 의미없는 집단을 만들어 버리고 말지요. 수행자가 저자 거리에서 친하기 위해 사기치기를 원하십니까 ? 아니잖습니다. 수행자가 사람들과 친하기 위해 알지 못한 것을 알았다고 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하기를 원하십니까 ?  결국 그 것은 장사꾼이 돈을 벌기 위해 물건다운 물건이 아님에도 높은 가격을 메겨 파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수행자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재질문 ==== 이부분에는 동감이고 찬성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바로 인도한다...는 것과 민중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과 뭐가 다르지요?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얻는 것이 곧 민중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제가 어디 연예인처럼 노래하고 춤추라고 했습니까? 스님은 스님할 일을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다만 등산로 막고 앉아 소일하는 것과 스님할 일 하는 것과 합치되는가가 궁금합니다.

답글 : 왜 민중과 함께 해야 한다면서 민중들을 모아서 수행도 원만하고 덕행도 있으며 중생의 마음을 가히 펼 수 있는 분을 초청하여 법문을 듣지 않으십니까 ?  법석을 만들어 초청을 해서 스님들을 모셔야지 수행환경을 가꾸느라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 모습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면 되겠습니까 ? 수행자들을 말하는 모든 분들이 바른 경우가 없이 스님들이 민중과 섞이기만을 바랍니다.  그럴 경우 겨우 머리깍고 승복만 입혀놓은 채의 스님을 원하는 것이 되지요. 얼마나 어리석고 차서를 모르는 시각입니까 ?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수행하는 스님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여기면 '내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 보수를 받지 않고 저 일을 대신해 주리라. 우리 스님이 어찌 도 닦는 일을 하지 않고 저렇게 할 수 있는가 ? 이 것은 바른 불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다'하고 마음을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도 하지 못하며 이 탓 저 탓 하는 것을 바람직 하지 못한 것입니다.  

책속에서 얻은 스님상을 머리 속에 잔 뜩 집어 넣어 놓고 스님이 내려 오기를 바랐다가 이리 저울질 저리 저울질과 잣대질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배울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입장 난처하게 하여 잘난채나 해보려고 하니 참 불쌍한 중생들이지요. 이 제도 하기 어렵다는 탄식만 나오게 할 뿐이지요.

재질문 ======= 법석을 만들고, 스님을 모시고.....도 닦을 땐 하시는 대로 두고.....아주 상하개념 - 유교관념 - 이 꽉 들어박히신 분이군요. 그렇게 높이높이 모셔야만 하는 스님이라면 저는 사양입니다. 불교역사를 봐도 전문 스님보다 뛰어난 재가 신자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저 스님을 높이높이 모시고 말씀을 듣고, 금과옥조로 여기고....이건 어느 시대 얘깁니까? 공자왈 맹자왈하다 망한 조선시대 얘기 비슷하군요.

말씀도 중요하지만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존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분의 삶이 한결 흐트러짐 없이 도의 길을 갈 때입니다. 말씀이야 어차피 다 책에 있는 것이고, 책을 보는 것은 스님과 재가신자가 뭐가 다릅니까? 뭐가 잘 난 부분이 있습니까? 뭘 들으라는 말씀이시지요?

스님이 보통사람과 다른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야 백번 천번 그럴듯하게 잘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요구하는 것은 번드르한 말이 아니라 수행자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답글 :  희양산이 얼마나 오르고 싶었으면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으로 멍들라면 희양산에 올라도 멍들지요. 그 멍듦은 자신의 소양이 부족해서 멍드는 것이지 소양산을 오르고 못오르고 때문에 멍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오를 수 있는 산이 희양산 뿐입니까 ?  그런 마음으로 희양산 올라 봤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며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지요. 그런 거머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개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는 스님들이 참으로 고생스럽겠어요. 경전을 익히고 배우바를 연마하기도 사실상 모자란 시간인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쪼개야 하니 수행자도 못해먹을 짓인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치사한 게 중생들이지요. 안그렇습니까 ? 매우 유식하신 것 같은데 도리상을 짓지 말라는 말은 어느 분의 말씀이지요. 한 수 가르쳐 주십지요 ? 좋은 가르침 있으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재질문 ===== 희양산에 못올라서 멍든 거 없습니다. 산은 거기 말고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희양산이나 구왕봉이나 시루봉이나 저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산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희양산을 구분하는 것은 봉암사 스님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질문은 배우는 학생으로서 앞서 배운 것과 다른 스님들의 행동에 대한 의문입니다. 시비를 논하자는 게 아니라 그 의문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끝에 하신 말씀....정말로 동감입니다. 사람들이 산을 오르든 말든 신경쓸 일이 뭐가 있습니까? 왜 바쁜 시간에 그렇게 산에 나와 스님들이 빈둥거리시지요? 정말로 궁금한 일입니다.

필명 봉암사의 "희양산과 구왕봉의 실태"라는 글입니다.

희양산과 구왕봉을 연결하여 먼곳에서 보면, 봉황이 하늘로 치솟기 위해 날개를 펼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산이 아름답지만,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는 사고가 많이 생긴답니다.

이 아름다운 산을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오염 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000산악 모임 등등 나뭇가지에 헝겊으로 또는 비닐로 만든 리본을 달고 다닌답니다. 이 산에는 충북 속리산 방향에서 불어 오는 거센 바람에 지쳐 주위가 리본들이 떨어져 결국 쓰레기로 변한답니다.

그래도 봉암사 쪽으로는 많은 스님들이 교대로 매일 지키기 때문에 오염이 되지 않았지만, 산 뒤에는 담배꽁초, 팻트병, 병마개, 캔, 나무 젓가락, 휴대용 도시락, 캔 입구 손잡이, 빈병 깨뜨린 것 등으로 오염되고 있고, 무당들이 굿을 하여 음식물, 돼지머리, 천조각 등들이 널려 있습니다.

진정 후손들에게 이 국토를 물려 줄려면 깨끗하게 물려줘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겨울에 추워서 비닐로 조그만 방카를 만들어 놓았더니 그 곳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더군요. 그들이 하고 간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이더군요.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해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곳에는 어디나 할것없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으로 라도 지정해서 그런 행위들을 막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탁드립니다.

희양산은 우리 스님네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지킬 것입니다.
우린 수행자이지 "깡패"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니까 결국 깡패로 몰리고 있답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진정한 불자라면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요. 여러분들이 다니시는 절에서도 스님 말을 따르지 않고 있는지요? 그런 분들이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있는지요?

저희도 조용이 수행에만 몰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부처님과 함께 하시길 합장합니다.       < 미얀마에서 JANINDA스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