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에 본가 어머님의 칠순 잔치를 모셨다.
마침 오늘 그때 찍은 사진이 나왔노라고 해 곁과 같이 사진관에 잠깐
들러 사진을 대하매 범강장달같은 자식들에 둘러쌓여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님의 흰머리 성성한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알게 모르게 세월의 무상함에  많이도 이지러 지셔서 이래저래 동안의
불효에 장마철 맹꽁이의 때늦은 후회가 절로인다.


일찌기  5공화국의 전두환 전대통령의 고향으로 더 잘알려진 율곡 내천에서
겨우 30리 상거인 질밭골(영전)로 부친의 얼굴도 한번 못보고 마파람에
배꽃 이파리 날리는 못재를 넘었더라 .
후일담이지만 외할머니께서 질밭골로 떠꺼머리 상노놈을 은밀히 휘동해
사윗감을 보고쟈 하였는데 부친이 아닌 엉뚱한 사람을 잘못 짐작해 희짜를
뽑으며 회향 하셨으나 결혼식날 신랑으로 짚은 사람은 친구 자리에 서있고
신랑 친구가 사모관대를 쓰고 있어 대명천지에 무신 귀신의 조화인가 싶어
우두망찰 넋을 잃었댄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객역시 핀치히터(대타)로 나온 곁과 인연이 이어졌으니
월하노인의 청실홍실은 용혹무괴인가 부다.
어쨋거나 질밭골로 시집오신 어머님은 먹성좋은 사내눔 넷을 먹이고 입히
시느라 평생을 손바닥 만한 두어평 땅뙤기에 가수 태진아씨의 사모곡처럼
봄이면 두견화와 뻐꾸기, 여름이면 뿔당골 서늘한 여울물 소리,가을이면
대암산 자락을 휘감는 단풍을 그림자 삼아 질밭골의 편린으로 더불어 오신
겄이다.


때마침 어버이날을 맞이해 기껏 꽃한송이에 용돈이랍시고 봉투 하나 덜렁
던지고 가는 상투적인 연례행사를 피하고 뭔가 특별한게 없나 고심하던차
가끔씩  객의 집에 들리던 날이면 손녀인 두예삐가 산행 사진첩을 꺼내놓고
것도 자랑 이랍시고 조잘거리면 유난히 황매 철쭉에 관심을 보이셨는데
마침 가는날이 장날이고 오는 날이 김서방 제삿날이더라고 어버이 날과
황매산 철쭉제가 맞물려 상추쌈에 된장 궁합으로 절묘하게  떨어진다.


급급히 황매산 꽃놀이단을 급조하여 회원을 모집하니 역시 질밭골에 나셔서
환갑이 넘도록 질밭골을 떠나본적이 없는 재종 형님과 한창땐 읍네 노래자랑
에서 상위권(?)입상을 도맡아 하셨던 숙부님이 함게 하시기로 중지가 모아져
장도에 오르게 되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극심한 인파가 몰려드는 정체를 염려해 일찌거니 나서노라
하였건만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걸 보면 명불허전의 위세를 실감
케 하더라.


주차장엔 차량들로 발디딜틈이 없고 각종 먹거리 좌판이 본때 있게 늘어 섰으며
키꼴이 껑충한 각설이 엿장수에 싸구려 모자와 스틱을  그럴싸하게 벌려놓은
점방축에 버금가는 치도 있다.
두예삐는 초장부터 코끝을 벌렁 거리며 지들 할머니 곁에 꼭붙어 먹거리 좌판
여리꾼 역할에 공을 들이며 야살을 떤다.
마침 행사 차량에 빈자리가 있어 철쭉제단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님은 먼저 올라가신다.


철쭉제단길과 모산재 안부 갈림길에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우편의
제단길로 길을 잡아 나간다.
참고로 철쭉 제단 직등 루트는 경사가 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붐벼 꽃놀이 시기에는
앞사람의 엉덩이만 바라 걷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길이나 모산재 안부의 길은
울창한 숲과 부드러운 골을 타는 완만한 길이 걸려있어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의 편안한 길이다.


사람들이 없는 모산재 길로 걸음을 놓으니 큰예삐 혜수는 선손을 걸어 제먼저
앞장서서 길을 열고 진주는 부대한 몸을 힘겨워하는 지엄마를 밀고 오른다.
신록의 터널위로 새소리가 장미수처럼 흩어지는 서늘하고 아름다운 길은 한참을
올라도 땀조차 맺히지 않을만큼 널널하고 살갑다.
두예삐는 이미 두어번 와본, 안면을 트고 지내는 길인지라 삼거리에 올라 여기서
쉬어가는 곳이라며 지들먼저 배낭 벗어 음료를 꺼내든다.


숨좀돌려 제단 능선길을 천천히 따르니 수많은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이
무너져라 몰려든다.
시야갸 트이면서 제단위의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고 황매철쭉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황매 산록산록엔 잘익은 수박을 으깨어 흩어 놓은듯, 만학천봉을 수놓던 황매신녀
의 아린 손끝에 핏방울이 점점이 뿌려진듯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색의
향연이 화선지에 먹물 배이듯 굼실굼실 번져있다.


특히 꽃이 단연 돋보이는 제단 주위에는 가훈 써주기와 뱃지 나누주기, 낙서장과
산상 음악회까지 열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황매에 번진 꽃불과 인파를 한참이나 구경하다 편편한 자리를 골라 김밥과 과일로
허기를 메우는데 떡보 혜수는 송기떡 장수의 꾐에 빠져 그여히 할머니 소매를 끌어
송기떡 두봉지를 받아낸다.
수백발은 족히 되여 보이는 연은 그 끝이 아물 가물해 줄을 잡고 섰는 총각놈에게
남대문 처음 본  촌놈처럼  어벙하게 그 끝을 물으니 객에게 가재미 눈으로 슬쩍
훑으며 1km 족히 된단다.


그러나 난체하며 어깨에 힘을 주며 주위의 시선을 압도하던 이 연은 두예삐의
"연떨어진다" 한마디에 급전직하 곤두박질쳐 낮은곳으로 임하라는 진리를 대변하는
데  한껏 고무됐던 가재미눈은 떨어진 연을 수습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더라.
식후 두예삐는 지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기들이 사진을 찍었던 곳을 일일이
답사하며 장황히 자랑을 늘어 놓는다.
정작 객 자신은 뭐하나 은혜에 보답한게 없는데 손녀인 두예삐의 효가 더욱 절절하다.


한때 무자식 상팔자를 꿈꾸었던 객의 허황이 두예삐의 할머니 사랑 앞에 그것이
얼마나 불효였나를 깨닫게 해  숙연한맘 금할길 없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아질 즈음에 이른 하산을 서두른다.
제단 직등 코스로 내려서니 아래로 부터 끊임없는 인파가 물밀듯 밀려든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어머님과 재종 형님의 걸음새가 눈에 띄게 부자연 스러워
은근히 걱정이 서려온다.


어머님은 올라오시는 비슷한 연배의 할머님들과 잠깐 사이에 친구가 되어 덧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서로를 격려 하시다 기약없는 만남을 언약한다.
무사히 내려서  마당에 바위가 좋은 식당에서 동동주로 입가심을 하고는 황게폭포로
발길을 돌린다.
폭포 역시 두예삐가 일찌기 와봤던 곳이라 할머니 손을 잡고 앞장서 길을 재촉해
간다. 
제법 그럴싸 하다는 재종 형님의 품평을 끝으로 황매 꽃놀이단의 일정은 끝이났다.


숙부님과 재종 형님은 길안내의 수고를 감당한 두예삐에게 과람한 용채를 내린다.
할머니가 받지 말라는 지엄마를 가볍게 나무라고 어른이 주시면 받아야 된다니
두놈은 번갯불에 대붕을 궈먹듯 황급히 품에 갈무리 해 한바탕 웃음이 인다.
모심기가 끝나면 대암산에 모시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진밭골로 돌아오는 길엔
아카시아 향기 드높고 지할머니께 기댄 두예삐는 어느새 잠이들어 한밤중이더라.


                         2005년 5월8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