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기맥 5. 부곡산-공성산, 결국은 멧돼지에게...

 

Mt.0529   부곡산(424.6m) * 공성산(367m) - 전남 장흥군

 

산 행 일 : 2005년 5월 19일 목요일
산의날씨 : 맑음
산행횟수 : 富谷山 * 孔聖山 - 각각 초행
동 행 인 : <단독종주>
산행시간 : 5시간 27분 (식사 휴식 1시간 17분포함)

 

기잿재 <0:20> ×293봉 <0:25> 쉼터바위 <0:13> ▲부곡산 <0:31> 약 390봉 <0:27> 양하 ↔ 분
토 안부 <0:23> △공성산 <0:44> ×316봉 <0:21> 조망바위 <0:28> 23·77번 국도 = 2차선 = 신
리 삼거리 <0:18> 이신 ↔ 신리방조제 안부 <?> 오성산 직전

 

산행(도상)거리 : 약 8.0km ⇒ 기잿재 <1.9> 부곡산 <2.4> 공성산 <3.7> 오성산

 

* 참고 :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장흥(2003년 수정본) * 신지(2002년 수정본)지형도

 

             

 

                                                    오늘 산행 구간도

 

산행 후 며칠이 지난 뒤에야 산행기를 작성하여 보관하다 이 것을 몇몇 사람들이라도 보게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두어야할지 생각을 해 보았다.
이유는 격려해주고 '내게도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라는 경각심을 갖는 분도 있겠으나 '내 그
럴 줄 알았다'라고 힐책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산행 중 산길에 쓸쓸히 서 있는 불망비, 동판이나 비석 또는 비목이라고 부르기 어설픈 판때기를
여럿 보았는데 누구 던지 불의의 사고를 입을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더욱이 신산경표를 지으신 박성태 님이 보잘 것 없는 기록을 당신의 홈에 실어주시고 마지막 구
간 답사기를 올릴 준비까지 해놓았으며, 119 구조대원들은 가시밭길을 마다 않고 불평 한 마디

없이 병원으로 후송하여 치료받게 해 주었으며 며칠 지난 후에도 전화로 상태를 물어보는 등 너무

고마워 그 분들의 얘기를 모른 체 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비단 탐진기맥 뿐만 아니라 여타 산줄기를 답사하는 분들께도 '스스로 도망가지 않고 느닷
없이 공격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

 

오성산 약 200여m도 남겨 놓지 않은 곳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어설픈 완주로 간주해도 되겠으나
너무 아쉽고 산줄기가 남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옹암 마을 갯바위까지는 5km가 채 안 남았으나
상처가 아문다해도 용기가 나지 않을 듯 싶다.

 

도상거리 50km도 안 되는 탐진기맥,-박성태 님은 사자지맥으로 명명하고 있다- 처음엔 4회에 걸
쳐 완주하려했으나 비바람 속에서 링반데룽에 빠지질 않나 멧돼지 공격을 받질 않나 적어도 내게
있어서 탐진기맥은 억세게 운이 없는 답사 길인 모양이다.
하지만 꼭 마무리는 짓고 말 것이다.

 

잠시 집을 떠나 있어야할 사정에 차질이 생겨 한 구간 남은 탐진기맥을 끝마치려고 지형도를 펼
쳐놓고 고도, 거리등을 미리 살펴보았다.

 

박성태 님의 신산경표에는 장흥군 대덕읍 오성산(216m)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 답사
한 따라가기 님의 산행기는 장흥군 최남단인 옹성마을 갯바위로부터 거슬러 온 것으로 돼 있다.
지형도를 펼쳐보니 오성산에서 동쪽의 170.5봉 사이에 내저 마을로 가는 도로가 종단하고 있지만
맥이 끊기지 않고 옹암 마을 뒷산을 거쳐 남해바다로 가라앉는다.
확실한 것은 현지 답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일찍 산행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가하려고 오늘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
대덕 버스터미널 한 귀퉁이에 차를 세우고 아침부터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두 대의 택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지난 번 무료로 합승시켜 준 기사 분이 반갑게 맞아준다.

 

기잿재, 신리와 분토로 가는 갈림길에 내리자 "나도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하필 광주에 갈 일이
있어 아쉽다"며 "조심해서 다녀 오라"고 한다.

 

 

                                                         기잿재

 

07 : 55 좌측 전봇대가 선 곳으로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되고 몇 걸음 가면 무덤이 있으며 만리장
성 터라는 돌담 같은 것이 보이는 쪽으로 발을 들여놓으나 길다운 길이 없다.

 

 

                                                들머리. 성터가 보인다.

 

"신리 마을에서 마루금 긋기가 조금 애매할 뿐 대체로 걷기가 좋았다"라는 따라가기 님의 얘기를
들어 저으기 안심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아마 수풀이 없어 앞이 잘 보이는 한 겨울과 지금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되고 너덜 우측
으로 희미한 길 같은 것이 있으나 이제 이골이 났다.

 

 

                                                 지나온 양암봉과 천태산

 

08 : 06 두루뭉실한 첫 봉에 올라 조금 가자 임도가 나오는데 지지난 밤 폭우에 흙이 쓸려 걷기
가 편하고 능선에서는 주변이 잘 보여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니 청룡저수지 너머 청룡 마을이, 좌
측 뒤로는 천관산이 보인다.

 

 

                                                          천관산

 

08 : 11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 덕룡산 암봉도 뒤돌아보면서 진행하면 버섯 재배용 참나무 둥치는
가져가고 남겨둔 잔가지가 거추장스런 곳이 나옴과 동시에 임도는 슬며시 자취를 감춰버린다.

 

08 : 15 철사망 울타리가 길게 늘여진 293봉.
'앞에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부곡산인가 보다' 여기며 철망 좌측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좌측에서
뭔가 휙 스쳐간다.
덩치 작은 멧돼지다.

울타리 주변은 무성한 수풀이 없어 주변이 잘 보이고 걷기도 수월해서 주의를 게을리 하다 깜짝
놀라고 난 뒤 호루라기를 꺼내 든다.

 

 

                                    탐진기맥 길에서 유독 짖굳게 달라 붙는 벌레

 

08 : 27 길은 안 보이나 좌측 신월리로 이어지는 안부에서 줄곧 따라오던 철망은 우측으로 멀어
져 가고 둔덕을 지나면 산죽과 돌이 어울러진 오름 길이다.

 

08 : 40 주변 조망이 썩 좋은 쉼터 바위에 올랐지만 정상이 가까운 것 같아 금새 일어난다.
작은바위봉 주변 잡목 밑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통과하나 지독한 덤불에 비하면 호강하는 셈이다.


 

                                                        가야할 산줄기

 

08 : 56∼09 : 06 '신지21 1993재설' 삼각점이 박힌 부곡산.

 

 

                                                       부곡산 삼각점

 

나무가 주위를 막아 답답하나 천관산 쪽이 잘 보이는 옹색한 바위가 있고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편하게 쉬면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바위도 있다.
탐진 마지막 구간을 원 없이 즐기라는 듯 맑은 날씨를 선사해준 하늘에 감사드리며 그림 같이 펼
쳐지는 무수한 산줄기, 남해에 떠 있는 섬 그리고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농촌 풍경 등을 눈이 시
리도록 바라본다.

 

 

                                                 멀리 팔영산도 보인다

.

09 : 14 약 410봉 작은 바위, 약산도 -지형도에는 조약도라 표기되었으나 현지 주민들조차 생소하
게 느꼈다- 삼문산, 장룡산이 허리까지 자라 옷을 뚫고 침을 놔대던 엉겅퀴가 생각나게 한다.

 

 

                                                    약산도의 삼문산과 장룡산

 

좌측은 천관산 우측으로는 두륜산 이곳 또한 조망이 그만이나 내려갈 길이 마땅찮다.
바위를 조심스럽게 타고 이어 나타나는 바위 좌측으로 돌아 오른 후 마당바위 두 곳을 지나 바위
지대를 통과할 때까지 길이 없다.
맹감, 산딸기, 잡목이 간섭하는 희미한 길은 그래도 바위지대 보다는 낫다.

 

 

                                             바다 건너 완도 상황봉과 백운봉


 

                                                            두륜산

 

09 : 40 바위들을 우회하여 오른 약 390봉은 수풀과 잡목으로 인하여 서쪽만 트이고 분토 마을이
가까운지 개 짖는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역시 길 없는 바위를 돌아 오르는 등 10분쯤 가자 이번에는 동쪽, 대덕이 내려다보이는 바위가
있으나 진행을 방해한다.

 

 

                                                  공성산과 바다 그리고 섬

 

10 : 07 양하 마을과 분토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 안 보이는 널찍한 안부.
길인 듯 아닌 듯한 나무 사이를 완만하게 오른 봉에서 볼펜을 찾으니 없다.
한 개도 아닌 두 개 모두 빠져버렸고 배낭 옆구리에 넣은 물병도 없다.

볼펜을 찾아보겠다고 오른 길을 다시 내려가다 조끼 주머니에 매직펜이 있음을 깨닫고 되돌아 올
랐지만 기록하기가 마땅찮다.
헐떡이며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가파르게 오른 봉에서 우측으로 꺾어든다.

 

10 : 32 멋대로 생긴 돌을 사용하여 축대를 쌓은 무덤이 비좁은 정상을 차지한 봉우리.
주변 형세를 보니 공성산이 분명하나 조망도 없으며 큰 벌 서너 마리가 윙윙 머리 위를 날고 멧
돼지 배설물까지 있는 손바닥만한 돌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삼문산이 한층 가깝게 다가온다.

 

 

                                                      분토제와 덕룡산


 

                                                  316봉과 올망졸망한 섬들

 

바위를 타는 등 길 없는 잡목 숲을 헤쳐나가는데 "크-윽! 크-윽!" 소리가 머리털이 쭈뼛 서게 만
들고 등골에 냉기가 흐른다.
제자리에 선체 꼼짝달싹 못하고 호루라기를 계속 불어댄다.
멧돼지란 녀석이 보이기라도 하면 두려움이 덜할텐데 무성한 수풀이 주위를 감싸고 있으니 어느
방향에서 공격을 취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섣불리 움직이기를 못하겠다.

 

그렇다고 마냥 서 있을 수만 없어 돌멩이를 주워 사방으로 던져 겁을 주고 호루라기를 세게 불다
보니 오히려 소리가 안 나 강도를 조절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가니 진땀이 난다.
안부에 내려서 맞은편 봉우리로 오르는 곳은 잡목지대여서 주위가 그런 대로 보인다.

 

 

                                                  멧돼지 소리에 긴장했던 구간

 

11 : 34∼46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힘들게 오른 316봉.
키 작은 싸리가 절전되었고 마치 선돌 같은 작은 바위 한 개가 덩그렇게 섰으며 조망은 없다.
모르긴 해도 장흥땅은 멧돼지 소굴인가 보다.

 

다리가 후들거려 적당한 장소에 털썩 주저앉아 놀랜 가슴을 진정 시킨다.
아직 시간이 이르나 밥을 먹으면서 푹 쉬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편히 쉴만한 장소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굵은 돌들이 산재한 둔덕을 넘어 간다.

 

 

                                                    그림 같은 풍경
 
12 : 07 신리를 비롯한 남쪽이 훤히 트이는 바위.
오늘 점심은 군만두다.
식어버리고 약간 굳었으나 먹을 만 하다.


오성산 좌측 내저 마을로 이르는 도로 부근 마루금을 가늠해보니 끄트머리는 안 보이나 장흥 최
남단 갯바위가 있을 능선이 가슴 설레게 한다.

 

 

                                                     신리 마을과 오성산


 

                                               하분 마을과 완도 상황봉 줄기


 

                                    길게 뻗은 도로를 건넌 좌측 능선 뒤가 종점이다.

 

12 : 29 기분 같아선 푹 쉬고 싶은데 시원한 캔 맥주가 생각나 일어선다.
마을 뒷산이어서 길이 있을 만도 하나 길은 없고 밑둥에서부터 멋대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더
힘들게 하며 때로는 편백 까지 합세하고 맹감나무가 얼키고설켜 왔다갔다 애쓰게 한다.

 

12 : 45 안부에 이르자 희미한 길이 있고 3분쯤 가자 넓은 고추밭이다 
밭 가운데의 농로를 따라 참으로 편하게 겯는다.
농로가 마루금을 벗어나 우측으로 휘어 도는 지점에서 신리 삼거리를 겨냥하고 죽창처럼 날카롭
게 베어버린 예전 대밭을 거슬러 감나무 밭으로 내려서고 작은 물 고랑을 복개한 마을 안 길에
이르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12 : 57 23·77번 공용국도이자 장흥 땅에서 강진 마량으로 이어지는 2차선 신리 삼거리.
빨래터인지 네모난 우물 가운데에서 물기둥이 솟고 좌측에 가게가 있다.
볼펜과 캔 맥주를 한 개씩 사 평상에 앉아 갈증을 해소하며 옹암을 향해 길게 뻗은 도로 우측 둔
덕이 마루금으로 여겨져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리 마을

 

13 : 04 '216m인 오성산만 지나면 이른바 둔덕 같은 능선이다. 장담하기엔 시기상조이나 오늘도
이른 시각에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도로를 따른다.

 

신리교회 우측으로 길이 보여 마당으로 들어서자 사택 앞에 묶인 검고 작은 개가 짖고 난리다.
정학진 님의 표지기가 반갑고 가느다란 주름호스가 길을 따라 늘여져 용도가 궁금했는데 둔덕 마
루에 통신 탑이 서 있다.
그리고는 넓은 감자밭이다.

 

 

                                 감자밭. 멧돼지가 이 감자를 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감자 밭 좌측을 빙 돌아 산 속으로 들어가니 무덤 5기가 한 일자로 쓰였고 넓은 길이 나온다.
이어 엇비슷한 사거리에 이르자 일부 콘크리트 포장이 되었으며 좌우로 갈리는 길을 버리고 오성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는데 밭에서 일하는 노부부가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농로가 우측으로 돌아가기에 마주 보이는 감나무 밭을 거슬러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간다.

 

13 : 22 희미한 족적을 따라 낮은 둔덕을 넘으면 칡넝쿨 지대로 무덤들이 있고 갈아엎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풀이 없는 운동장처럼 넓은 밭이 나온다.

밭 윗 부분에는 역시 무덤이 있으며 쌍둥이처럼 보이는 오성산은 바로 이마 위에 있다.

좌측 이신 마을로 이어지는 듯한 농로를 질러 산으로 들어서니 가시덤불과 잡목 사이로 길 같기
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희미한 흔적이 보인다.

 

멧돼지 흔적이 전혀 없어 두 팔로 방해물을 헤치며 열심히 오르는데 뭔가 휙- 스쳐간다.
억! 그리고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로 오른쪽 무릎 안쪽 찢어진 등산바지 사이로 선혈이 솟는다.
순간적으로 허벅지를 감싸고 수건 두 개를 이용하여 칭칭 감고 소지하고 다니는 발목 보호용 밴
드를 꺼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다시 감고 핸드폰을 여니 안테나가 뜬다.
  
얼마후 신리 근방으로부터 119구조차량의 위급을 알리는 특유의 금속음이 들려온다.  
'아∼ 만일 옆구리나 배를 들이 받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아내와 애들 모습이 떠오른다.

 

* 보성소방서 관산출장소 119구조대원들이 길 없는 산에서 나를 찾느라 한 시간은 더 애를 먹었
고 장흥읍내 우리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약 20cm가량 찢어진 속살과 피부 봉합수술을 받았으며
X-RAY 결과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었다.

 

지금은 순천 한국병원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파상풍 주사까지 맞아선 지 덧나지 않고 예상외
로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아내는 물론 부상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바위에서 굴러 다쳤다"라고만
했지 멧돼지에게 당했다는 말은 꺼내지 않고 있다.     

아내가 알게되면 홀로 산행을 적극 만류할 것이다.

 

이 산행기를 백두대간(정맥. 기맥) 종주기에 올리지 않고 일반 산행기에 올림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