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  어느 봉인들 가진덕이 적을까 마는 여기 무룡산만큼 어머님
의 따뜻한 품안을 연상케하는 봉은 없다 .
새벽 이슬에  고운몸 씻고, 신령스런 기운이 감도는 황토를 촘촘히
뿌려 놓은듯, 우리네 안채 마당처럼 정갈하고 사방 백여리에 거칠겄
없는 조망은, 장부의 원대한 기상을 대변하듯  파죽지세의 통쾌함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이선배의 강권으로 무룡산 정상비 옆에서 귀한 사진 한장을 얻는다.
돌탑봉으로 순하게 휘어 감기는 하늘길은 기복 고저가 거의 없어
그 편안함이 공산 명월을  벗 삼아 완월장취하는 적선자 이태백의
여유로 피어난다.
희미한 달빛이 스산하고 먼 골짜기 바위등걸에 여우 울음 처량할제         
소금을 뿌린듯 흐뭇이 핀 메밀꽃을 따라 산자락에 파묻혀 가는 허생원
처럼 동엽령까지의 길은 한낮 보다는 밤길이 미상불 개운하고 운치
낙낙한 길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소금말이나 됨직하게 비지땀을 흘리며 백암봉을 올라선다.
아직 향적봉을 담아보지 못한 곁인지라 중봉 오름길을 한참이나
쳐다보며 이것저것 마음에 거리끼는 궁금을 객에게, 똥마련 놈 측간
묻디끼 사설이 길어진다.
쉬어가는 한무리 산꾼들의 입정이 유난히 사납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치 찐고구마를 훑어 놓은듯 하관이 쭉 빠진 오십줄이 객의
껑충한   볼품없는 아랫도리를 섬돌아래 두꺼비 밥풀데기 노리듯
한참이나 요렇게  꼬나보더니 꼭 빠삐용 같다며 동의라도 구하듯
일행을 쳐다보며 너털웃음을  헐헐 거린다.

  

뭔 뜻인지 잘 몰라하는 곁에게 죄수복과 흡사하다는 뜻이라며 사족을
다니 모닥불을 담아 부은듯 금새 얼굴이 가을 능금처럼 붉어지더니
애써 어울리지 않은 미소로 외면한다.
우람한 중봉의 훤칠한 가슴팍에서 밀려오는 서기를 흠뻑 받고는
아직은 갈길이 먼 빼재로의 대간 여행을 떠나간다.

  

지봉까지 내닫는 역시  기복이 거의 없는 수려한 길은, 상제께 진상할
천도(복숭아)를 관장하는 귀한 신분이나 정작 자신은 청렴하여 기껏
궁안에 갖춰놓은 제반도구가 돌절구 하나에 불과하고  그나마 절구질
할  중노미(허드렛일 하는 남자) 짜리도 없어 남두육성에게 사정하여
손때먹여 부리던 옥토끼를 빌려 겨우 호구책으로 삼았다는 월궁항아의
후원처럼 단아하고 소담스럽다.

  

키큰 참나무 아래엔 제일로 흔한 원추리를 비롯해 날개 하늘나리,털쥐
손이, 솔나리 모싯대, 선백미꽃, 정령엉겅퀴, 하늘 말라리, 개쑥부쟁이,
자주솜대, 갈퀴현호색, 가야산은분취 , 한라부추, 산오이풀, 동의나물,
처녀동자꽃,등등등...
말루 다할수 없는 야생화들이 도포같은 교목과 중치막 같은 관목의
보비위를 받으며 아련한 숲속으로 이어진 두어자폭의 비단길을 따라
화려하게 수놓아져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이 허공에 뜬듯하여 천상화원
이 예 아닌지 의심케 하더라.

  

거대한 청룡이 용틀임 하듯 상여듬을 밟고 비스듬히 귀봉으로 여어잇
힘껏 소리치며 불끈 솟은 다음,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횡경재로 내려
앉는다 . 
귀봉에서 보는 못봉(지봉)은 사실 그리 가팔라 뵈지 않는데 안내 책자
에는  맹덕(조조)이 화룡도에서 운장을 만나는 만큼이나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 과장이 심하게 되었음을 알게 하더라 .
실제 객이 소금짐이 과한 짐방놈의 투세로 뭉기적 거렸건만 일각(15분)
넘지 않아 그리 힘든 길만은 아니더라.

  

횡경재는 재라고 하기에는  뜸이 조금 미진한게 안부가 아닌 능선 중허리
에 걸려있어 시비 찾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매라도 본때있게 걷어붙인
다면 한나절 소일거리로는 그만한 구경이 없겠더라.
보석을 뿌려 놓은듯 아름다운 길은 지봉안부 사거리 까지 이어지는데
연못을 뜻하는 못봉 주위 백련사 일원을 거대한 호수로 가정하고
송계사에서 횡경재와 못봉 안부로 오르는   양갈래 길을 그물로 형상화
하니 잔잔한 호수에 투망질 하는 한가로운 노옹의 연상되어 그럴듯하다.

  

지봉 직전의 넓은 공터로 자리한 봉의 이름은 정봉이라  불리는데  이
정자가 한자로 쇠못 정자이니 우리말로 풀어본다면 역시 못봉으로
불리게 되므로 결국 쌍둥이 못봉인 셈이며 대봉 왼편의 제법 한성질
할겄 같은 못봉(일명 투구봉)까지 합친다면 세쌍둥이로 삼태성을 한
탯줄에 거두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아니할수 없다.

  

송계사 스님의 훤한 이마 만큼이나 시원한 정봉은 햇볕이 따갑지 아니한
계절엔 중화참을 들고 뒹굴며 쉬거나 대간 종주시 따개비 같은 자그만
움막 엮어놓고  하늘의 별과 바람과  시덥찮은 우정과 사랑을 논하기엔
비할데 없는 천하 대길지로 그 이름값이 중히 쓰이겠다.
전망은 좋으나 정봉에 비해 조금 옹색시러바 뵈는 지봉에서 대봉쪽을
일별하니 달음령으로 아득히 떨어졌다 대봉으로 아둥바둥 기어 올라야
하는 엉치뼈 뻐근한 길이요, 우편의 갈미봉 대간길보다는 좌편의 투구봉
쪽  능선이 훨 근사해 시선이 주책없이 자꾸만 쏠려 얼려놓은 가자미눈
처럼 점잖치가 못하다.

  

산안개라도 자욱한 날이라면 하산로로 착각할만큼 길은 끝없이 아래로
떨어져 곤한 길손의 심기를 더욱 힘들게 한다.
달음재엔 송계사가 위치한 소정리에서 올라온 걸로 짐작이 되는 단체객
들이 중화를 드느라 부산하고 또한무리의 꾼들은 길이 아닌 숲속에서
보물찾기라도 하는겐지 콩밭 이랑에 들깨처럼 드문드문 섞여 한량없이
바쁜데 알고보니 산나물 채취 안내 산행을 나온 목자 불량한 사람들이
더라.

  

이선배가 발연대로하여 부당성을 일일이 지적하는데  그중 제일로 동에
닿는 말은 연로하신 시골 부모님들이 손주놈들 용돈이래두 쥐여 주겠노라
며 조금씩 가용에 보태는 걸 싹쓸이하는 행태가 밥술이나 뜨는 사람으로
할짓이 아닌 것이요, 둘째는 시골 어르신들이야 나물 몇가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여기 전문가를 대동한 싹쓸이 꾼들은 덕유의 희귀 식물까지 남획
자칫 생태계에 큰 손실을 가져올수도 있다는 진심어린 걱정을한다.
천번만번 지당한 말이다.

  

대봉 오름길부터는 곁이 많이 힘들어한다.
체력소진이 엔간했으니 만치 자꾸만 뒤로쳐져 보조를 맞추느라 기다림을
반복한다.
곧 죽어도 힘들어 못가겠다는소리는 않으니 그만 다행한 일은 없으나
곁보다야 속이 더 타는 쪽은 아무래도 싸개통에 밀어넣은   객인지라
소금 먹은놈이 물쓰는 겄이야 당연지사,애간장이 녹아나 식은땀이 등줄기
를  적시니 오호라  한출첨배로다.

  

대봉에서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아까워 아까워 만지작 거리다 바람
소리따라 우편으로 내려서니 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끌고간다.
완만한 오르막에도 땀부터 흘리는 곁이 내심 안쓰러웠으나 달리 방도가
없어 손만 부비고 섰는데 강파른 갈미봉 오르막이 마지막 관문인양
백련사 사천왕처럼 버티고 서서는 호락호락 길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라린다.
성황당인양 괴춤을 뒤져 동전 몇낱을 수습해 무사히 오르게 해달라 기원
을 하고서야 겨우 길이 열린다.

  

갈미봉으로 착각했던 암봉을 조금 더 지나 두어 걸음을 더하니 째보 엿가락
물디끼 비스듬한 정상비가 갈미봉임을 알려준다.
울창한 수림탓에 조망이 그리 쾌활 하지는 못하나 저아래 빼재를 오르는
차량들의 끙끙 거리는 신음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길이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짐작을 일게한다.
길은 크게 왼편으로 꺾이더니 아래로 떨어져 가는데 금방 따라주지 않는
곁을 기다리느라 객의 물미장은 화려한 봉술 대신 오봉산 타령 장단을
맞추느라 뚜르락 딱딱 거리니  늦은봄의 긴긴  햇길도  어깨춤을 들썩이며
시나부로 서편으로 주주물러 앉느다.
 


오봉산 꼭대기엔 에루화 돌배 나무는
가지가지 꺾어도 에루화 모양만 나누나.
에헤이이요 데헤에에야  명산홍록에 봄버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