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토요일), 6시 20분에 집을 나서서 성북역에서 가평행 7시 17분발 경춘선 열차표를 끊는다. 요금은 3200원. 경춘선 열차의 차창에서 바라본 불암산과 수락산이 평소에 보는 모습과 반대편에서 보니 이채로운 느낌이 든다.

8시 30분에 가평역에 도착한다. 30분을 기다려서 9시 정각에 출발하는 용수동행 버스를 탄다. 요금은 용수동 종점까지 2700원.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버스는 만원이 되어 출발한다. 이 버스는 적목삼거리에서 소락개마을을 거쳐 논남기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서 적목삼거리로 돌아와 용수동으로 들어간다. 군데군데 명지산, 화악산, 석룡산으로 가는 산행객들을 하차시키고 용수동 종점에 닿으니 9시 50분이 조금 넘은 시각이다.

버스 종점 앞에는 민둥산, 개이빨산, 국망봉으로 가는 산행안내도와 함께 민둥산과 개이빨산의 들머리인 용수교가 있다. 용수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의 구암사 쪽으로 꺾어져 들어간다. 주택 같은 모습의 대웅전이 보이고 대웅전의 우측에 약수터가 있다. 두어 바가지 마시고 수통에 가득 담는다. 그리고 약수터 뒤의 들머리로 간다. 불상과 돌탑이 자리잡고 있는 들머리로 들어서니 초입부터 수풀이 무성하다. 조금 오르니 비포장의 넓은 임도가 나오고 리본이 보이는 등로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임도와 등로의 한복판에 인분(人糞)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 아무리 외진 곳이더라도 길 한복판에 실례를 해 놓다니 마음이 언짢아진다.

리본이 설치된 등로로 들어서니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잠시 오르니 키를 넘는 수풀을 헤치고 진행해야 하는데 한 걸음 앞의 땅바닥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산행객은 아무도 없고 나물을 캐러 숲을 뒤지는 노인네들의 말소리만 이따금 들릴 뿐이다. 독사라도 스르르 기어 나올 분위기다. 그리고 맑음에서 구름 조금, 구름 많음으로 일기예보가 바뀐 날씨는 두터운 구름이 해를 완전히 가려서 비가 오기 전처럼 우중충한 날씨다. 이런 길을 걸어야 되나 하고 생각하다가 다시 임도로 내려와서 임도의 우측으로 올라 본다. 화악산이 가까이 보인다.

임도에서 되내려와 구암사 못미처의 삼거리에서 직진하니 시원한 계곡이 펼쳐진다.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그니 얼마나 차가운지 발이 시려워서 금방 발을 물에서 떼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계류 속에는 벗어 놓은 양말과 면장갑, 포장지 등이 보인다. 청정지역인 가평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다시 용수동 버스종점으로 되돌아가서 12시에 가평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 가평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13시 30분에 청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십여분 만에 청평 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경춘선 열차 차창에서 바라본 불암산과 수락산.


가평 버스터미널의 가평 관내버스시간표.


가평 버스터미널의 1330번 버스시간표.


가평버스터미널의 직행버스시간표.


용수동 버스종점의 개이빨산 들머리인 용수교.


구암사의 약수터.


구암사의 대웅전.


구암사 우측의 개이빨산 들머리.


계곡의 정경.

 

개이빨산, 민둥산, 강씨봉, 한나무봉을 종주하려고 했었는데 이는 나중에 포천 쪽에서 오르기로 하고 오늘은 깃대봉, 운두산(은두봉)을 거쳐 오독산까지 종주하려고 한다. 그런데 산행기만 몇 번 읽었을 뿐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근처의 PC방에 들러 30분간 산행기를 몇 편 읽어 보고 주요사항을 간단히 메모한 후에 PC방을 나선다.

농협을 끼고 꺾어져 들어가는 길에 청평 제 1 지하차도가 있다. 그 굴다리를 통과하니 두부집이 보이는데 두부집 골목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밖에 나와 있던 아주머니들이 산에 가려면 우측의 차량반사거울이 설치된 곳의 골목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한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니 밭을 낀 등로가 전개된다. 한참 진행하니 밀림 같은 수풀지대가 나오고 진행이 어려워진다. 오르기 편한 길을 찾아 보다가 그래도 길 같은 길을 향해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다보니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지릉길을 걷게 된다.

한 시간 쯤 진행하니 북한강 건너편의 뾰루봉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15시 35분에 방향표지판이 설치된 능선삼거리에 닿는다. 그런데 이 곳의 방향표지판을 보니 내가 올라온 길은 위험, 등산로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등로가 희미하고 밀림 같은 곳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우측의 가루개에서 올라오는 길에는 심오암 방향, 가루개까지 2.6 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는데 내려다보니 그 길이 더 길다워 보인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깃대봉까지 700 미터라고 적혀 있는데 누군가 매직으로 1 자를 덧붙여 놓았다. 그러니까 1700 미터라는 것이다. 이 곳에 앉아 뒤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15분 정도 쉰다.


청평 제 1 지하차도 입구.


이 골목으로 들어가서...


깃대봉 들머리.


낙엽이 수북한 길을 걷게 되고...


등로에서 바라본 뾰루봉.


능선삼거리의 방향표지판.

 

능선삼거리에서 십여분 만에 방향표지판이 설치된 헬리포트에 닿는다. 이 곳이 해발 623.6 미터의 진짜 깃대봉이라는 곳인가보다. 방향표지판에 깃대봉까지 1.3 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직진하여 깃대봉 쪽으로 가니 10분 만에 깃대봉까지 0.5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방향표지판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10분 만에 정상표시석과 방향표지판이 설치된 헬리포트인 해발 643 미터의 깃대봉에 닿는다. 이 곳의 방향표지판에는 임초리까지 2.8 킬로미터, 한얼산기도원까지 2.22 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나침반을 꺼내 보니 임초리 쪽은 북서쪽이고 한얼산기도원 쪽은 남서쪽이다. 방향으로 보면 남서쪽이 맞는데 한얼산기도원은 하산하는 지점에 위치한 곳이라서 어느 곳으로 진행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수풀에 가려 있지만 조망을 해 보니 임초리 쪽으로는 높은 봉우리가 없고 남서쪽으로는 봉우리가 보인다. 한얼산기도원 쪽으로 내려선다. 15분 만에 한얼산기도원까지 1.72 킬로미터라는 방향표지판이 나타나고 8분 만에 쌍무봉에 닿는다. 쌍무봉에는 직진하면 은두봉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한얼산기도원까지 1.26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제대로 온 것이다. 쉬지 않고 꾸준히 은두봉으로 진행한다.


진짜 깃대봉이라는 헬리포트 - 해발 623.6 미터.


진짜 깃대봉의 방향표지판.


깃대봉의 정상표시석 - 해발 643 미터.


깃대봉의 방향표지판 - 한얼산기도원 쪽으로 진행.


헬리포트인 깃대봉의 전경.


쌍무봉의 방향표지판.


쌍무봉의 전경.

 

쌍무봉에서 바위지대를 지나서 35분 만에 좌측길은 남쪽이고 우측길은 서쪽인 삼거리에 닿는다. 우측인 서쪽길로 진행하니 12분 만에 역시 좌측길은 남쪽이고 우측길은 서쪽인 삼거리에 닿는다. 역시 우측인 서쪽길로 진행한다.

휴식을 취한 지 두 시간 만에 한 무명봉 위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십분 정도 쉬다가 일어나서 걷는데 낙엽이 두텁게 깔린 길이 흔해져서 스패츠를 착용한다. 스패츠를 착용하니 낙엽길을 걷는 부담이 줄어든다.

17시 50분에 정상표시석이 설치된 헬리포트인 해발 678.4 미터의 운두산(雲頭山) 정상에 닿는다. 은두봉(銀頭峰)이라고도 불리우는 곳이다. 원래의 계획은 운두산에서 파위고개를 거쳐 오독산에 올랐다가 수레넘이고개와 불당골을 거쳐 축령산 입구인 외방리로 하산하는 것인데 거의 휴식도 없이 왔는 데도 18시가 다 됐으니 파위고개에서 하산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북서쪽으로 길이 있어야 하는데 남쪽으로 난 등로 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길은 얼마든지 중간에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붉은 리본이 설치된 남쪽길로 진행한다. 이 길을 파위고개로 가는 길이라고 판단했으나 산행 후에 운두산 남릉을 타는 길로 확인된다.

운두산 남릉은 깃대봉에 비해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산이다.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등로가 많고 위험해 보이는 바위지대도 두 군데나 있다. 우회해야 하는 곳이다. 시간에 쫓겨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 하고 진행하다보니 능선삼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는 오르막의 주능선길을 버리고 좌측의 내리막인 지능선길로 내려선다. 산 속에 지은, 기도원으로 보이는 푸른 지붕의 건물이 바라보인다. 등로는 어느덧 콘크리이트 포장의 임도로 바뀌고 다시 비포장의 임도가 이어진다.


좌측길은 남쪽이고 우측길은 서쪽인 삼거리 - 우측인 서쪽길로 진행 1.


좌측길은 남쪽이고 우측길은 서쪽인 삼거리 - 우측인 서쪽길로 진행 2.


운두산(은두봉)의 전경.



운두산(은두봉)의 정상표시석 - 해발 678.4 미터.


운두산 남릉의 삼거리 - 직진하는 오르막길을 버리고 좌측의 내리막길로 진행.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기도원.

 

비포장의 임도를 잠시 걷다 보니 계곡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니 승리기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잠시 계곡에서 얼굴과 목을 씻는다. 계곡을 따라 임도를 걷다가 몇 차례 징검다리를 건넌다. 무명계곡이지만 꽤 수려한 풍광이다. 계곡을 낀 임도를 걷다가 멋진 꽃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카메라에 담는다.

시원하고 멋진 계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내려가다보니 운두산 날머리에 닿는다. 계곡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차량 통행을 막는 굳게 닫힌 철문 옆의 쪽문으로 나간다.

십여분을 더 걸어서 주민들에게 교통편을 물으니 국도에서 1330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국도를 건너니 마침 국도 밑의 철로에서 경춘선 하행 열차가 달려오고 있다. 5분 정도 기다려서 1330번 버스를 타고 청평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청평역까지 걸어가서 18시 54분발 성북행 기차표를 끊어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경춘선을 타고 귀가한다.

오늘은 한북정맥의 한 부분을 종주하려고 하다가 계획에 없던 깃대봉과 운두산을 종주하게 됐다. 깃대봉과 운두산은 인구밀집지역 근처에 위치한 산 답지 않게 찾는 사람이 드물고 등로도 밀림처럼 거치른 곳이 흔하고 조망도 무성한 수풀에 가리워져 기대하기 힘든 산이다. 그러나 인구밀집지역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깊은 산 속에서도 스피커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오며 그런 가운데에 휘파람새의 규칙적인 네 박자의 울음 소리는 산중의 호젓함을 더해주는, 잊지 못 할 소리였다. 비록 그 새를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작년에 유명산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배너미고개로 가는 고지대의 임도에서 듣던 그 새 소리를 벗하며 촉박한 시간 때문에 숨가쁘게 다녀온 산행길이었다. 비록 조망도 가려져 있고 밀림 같이 거칠고 햇볕이라고는 거의 들지 않는 그늘지고 축축한 등로를 끊임없이 걷는 산행길이었지만 온 몸이 땀에 젖어 이룬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도의 정경.


계곡의 정경 1.


승리기도원 입구.


계곡의 정경 2.


계곡의 정경 3.


계곡의 정경 4.


계곡의 정경 5.


계곡의 정경 6.


계곡의 정경 7.


임도와 꽃나무.


계곡의 정경 8.


임도와 계곡.


계곡의 정경 9.


계곡의 정경 10.


계곡의 정경 11.


운두산 날머리.


오늘의 산행로 1.


오늘의 산행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