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무박종주 산행기

ㅇ 일시 : 2005. 5. 21(토)
ㅇ 코스 : 성삼재-노고단 ∼ 천왕봉-중산리(실측거리 33.36km, 소요시간 14시간)
ㅇ 구간별 통과시간 : 성삼재(03:30)-삼도봉(05:40, 조식후 06:00 출발))-연하천산장(08:00)-
                벽소령산장(09:30)-세석산장(12:00, 중식후 12:40분 출발)-장터목산장(14:15)
                -천왕봉(15:05)-중산리(17:30)

ㅇ 구간별 소요시간 : 성삼재-삼도봉(2시간 10분)-총 2시간 10분
                    삼도봉-연하천(2시간20분)  -총 4시간 30분(20분 조식포함)
                    연하천-벽소령(1시간 30분) -총 6시간
                    벽소령-세석 (2시간 30분)  - 총 8시간 30분
                    세석-장터목(2시간 15분)    -총 10시간 45분(40분 중식포함)
                    장터목-천왕봉(50분)          -총 11시간 35분
                    천왕봉-중산리(2시간 25분) -총 14시간
ㅇ 함께 한 이 : 장비, 지리선녀, 제갈량, 조자룡(차량 안내산악회)


   실측거리 33.36km. 허용된 시간은 13시간 30분. 식사시간을 뺀다면 매시간 2.67km를 가야하는 산행.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과연 체력이 견뎌낼 수 있을까?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래도 한번 나의 모든 체력과 열정을 쏟아 붓는 산행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광고지에서 산행안내 광고를 보고 난 후, 몇 번의 망설임과 주저 끝에 몇몇 뜻이 맞는 산우들과 함께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다.

  

   출발 전 약간이라도 잠을 자 두려고 침대로 기어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괜시리 컴퓨터 바둑으로 시간을 소비하다 약속장소에 나간다. 약속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 또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23시 50분. 산우들과 함께 안내 산악회 차량에 몸을 싣는다. 산행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려고 잠을 청한다. 불편한 잠자리와 산행에 대한 긴장감. 잠이 올리 만무다. 약 3시간 여를 이리저리 뒤척이다보니 어느새 성삼재. 한숨도 자지 못하고 그 긴 산행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또 부담감이 가슴 한구석을 짓누른다.

  

   일출 2시간 전을 기다리느라 30여분을 성삼재매표소에서 서성이다가 03:30분. 드디어 산행을 시작한다. 어둠이 점령한 산길.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한 발길들. 하늘을 보니 은하수 자욱이 선명한데, 사람들은 정말 달리기를 하듯 산을 오른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들을 하는 것은 아닌지---지리선녀가 이런 빠른 산행에 약간 당황해하며, 뒤떨어지지 않으려 선두그룹에 빠짝 따라붙는다.

  

   30여분만에 노고단 산장을 통과하고 노고단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땀이 베어나기 시작한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하니 발길을 재촉하는 제갈량.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능선길로 들어선다.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산행길. 불빛에 의지한 채 일렬로 줄을 지어 나아간다. 들리는 것은 거친 숨소리와 빠른 발소리.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온 아주머니의 다들 미쳤어!! 미쳤어!! 이 어두운데 뭣들 하는 겨!! 하는 불평소리뿐.

  

   그렇게 진행하기를 1시간 30여분 임걸령 부근에 도착하자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해는 뜨지 않았으나 불빛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얇은 어둠. 그런데 그 순간. 지리선녀가 그만 발목을 삐끗하며 '악' 소리와 함께 옆으로 주저앉는다. 아! 사고다!. 일순간 어떻게 하여야 하나 여러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간다. 얼른 등산화를 벗기고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주었지만 회복이 되지 않는다. 아직 산행 초입이니 산행을 포기하자는 제갈량. 가장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지리선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 괜찮다며 약간 진정이 되자 다시 출발하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어찌 다친 몸이 의지대로 따라 줄 수 있겠는가? 몇 걸음 떼어놓다 길가에 다시 주저앉는다. 아! 이제는 어찌하여야 하나?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후미의 모습이 보인다. 사유를 물어오는 후미의 산악회 총무님. 다친 상황을 보고는 얼른 수지침으로 응급 사혈을 한다. 사혈을 하니 한결 상태가 좋아 보이는 지리선녀. 다시 출발을 종용한다.

  

   본인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담 주는 일은 죽음보다도 싫어하는 지리선녀. 힘들수록 표시를 내지 않으려 더욱더 앞장서서 나아가는 지리선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앞서 가는 지리선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리선녀의 마음씀이 한없이 고맙고,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게 다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10분. 삼도봉에 도착하니 선두그룹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새  아침 햇살은 지리산 능선을 물들이며 붉게 타오르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산줄기들이 하나 둘 날개를 펴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하는 조망. 그 커다란 능선들과 무엇보다도 눈이 부시게 출렁이는 초록의 물결이 가슴을 뒤집어 놓는다.

  

   역시 지리산이다!!

  

   삼도봉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 겸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연하천 산장으로 향한다. 조망도 별로 좋지 않고 이렇다 할 풍경도 없는 연하천산장까지의 길. 약간은 속도를 내어 두시간여 만에 도착하니 앞서간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맥주 캔 하나를 사서 두 모금씩 나누어 마신 후 또 서둘러 벽소령 길로 들어선다.  

  

   지리선녀는 발목이 무척 아프고 체력소모도 훨씬 많을 텐데,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는다. 이대로 산행을 마치고 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불현듯 인다. 참 대단한 산우라는 생각을 하며, 약간은 또 지루한 길을 얼마를 더 진행하였을까? 벽소령의 빨간 우체통이 우리를 맞는다. 서둘러 산행시간을 적고 오이 한 입을 베어 물으며, 그 빨간 우체통을 통해 드나들었을 사연들을 생각하려고 하니 제갈량이 또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어느 한 곳에서도 5분 이상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산행. 슬슬 힘이 부쳐옴을 느낀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의 길. 나의 무릎도 드디어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무릎보호대를 하였건만 초반에 워낙 무리를 하였고,  산행길이 길어서 무릎이 견디지를 못한다. 스프레이 파스를 연신 뿌려대며 슬슬 한계를 느껴오기 시작하는 체력을 감지하며 12시경 세석산장에 도착한다.

  

   세석산장에서 라면과 찬밥 한 덩어리 소주 한 잔으로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허기지었던 체력이 어느 정도 보충이 되는 느낌이다. 체력이 보충되고 나니 그제서야 세석평전의 철쭉이 아직 제철이 아님이 눈에 들어온다. 1주일은 더 있어야 만개가 될 것 같고, 철쭉의 색깔도 너무 옅어서 볼품이 없다. 약간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런 실망도 잠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곧바로 장터목 길로 들어선다. 체력은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지만, 계속하여 무릎이 아프다.

  

   이제부터는 그래도 보기 좋은 풍경들의 연속이라 힘이 덜 든다. 조망 좋은 촛대봉. 바위들이 보기 좋은 삼신봉. 그래도 그 봉우리들을 다 지나고 나니 체력이 이제 바닥에 다다른 느낌이다. 지리선녀에게 천왕봉까지의 길을 포기하고 장터목에서 탈출 할 것을 권하자 그래야 할 것 같다며 아쉬운 한숨을 내쉰다.

  

   드디어 장터목. 먼저 간 장비와 제갈량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우리를 맞는다. 시간상으로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기는 하였지만 가능할 것 같다며 천왕봉행을 권하는 장비. 불편함 몸을 이끌고 예까지 왔는데 여기서 멈추자니 내내 아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지리선녀. 욕심 같아서는 천왕봉행을 강행하고 싶지만 지리선녀에게 너무 무리일 것 같아 도저히 말을 못하고 있는데, 마침 후미대장이 도착한다. 후미대장에게 시간상으로 가능하겠냐고 물어보며 은근히 가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지리선녀. 도대체 그녀의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인지---약간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한번 해보자고 천왕봉행을 권하는 후미대장. 천왕봉행이 어려울 것 같다가 천왕봉행이 가능해지자 모두들 신이 나서 다시 제석봉 가파른 계단길을 치고 올라간다. 

  

   그러나, 이미 바닥난 체력들이라 몇 발자국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속도가 늦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지금부터는 극기의 시간들이다. 지리선녀의 그 투혼이 없었다면 나도 포기하였을 지도 몰랐을 일이다. 몇 번이고 계속하여 자기체면을 걸으며 약해지려는 자신을 추스르고 추스른다. 그러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강하게 버티고 서 있는 자신을 만난다. 결코 쓰러지지 않으려는 그 어떤 힘과 결심을 만난다. 지리산이 지혜의 산이고 어머니의 산인 이유는 이런 자신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산이라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고 지친 자신을 추슬러 한 발 한 발. 드디어 통천문을 지나고 조금 더 진행하자 드디어 천왕봉. 드디어 천왕봉에 오른다. 천왕봉에 오르자 야!! 해냈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두들이며 드디어 해냈음에, 자신의 그 대견함에 서로서로 축하를 보낸다.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니 참으로 길고도 길다. 저 끝부분. 잘 보이지도 않는 노고단을 출발하여 이곳까지 아! 우리가 저 길을 어떻게 걸어 왔을까? 저 길을 걸어오며 우리 가슴에는 또 어떤 길이 새로 만들어 졌을까?

  

   정상에서 잠시 감상에 젖어들려 하니 또다시 하산을 종용한다. 기념 사진 몇 장만을 서둘러 찍고 중산리 쪽으로의 하산길로 바로 접어든다. 가파른 하산길. 발목을 다친 지리선녀와 무릎에 통증을 극도로 느끼기 시작하는 내가 뒤쳐지기 시작한다. 오름길의 그 긴 고통보다도 내림길의 고통이 훨씬 심하다. 당장 주저앉고 싶지만 내가 끝내 걸어가서 끝을 내야만 하는 길.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하는 길이다. 부상을 입은 지리선녀 보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약해지려는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고, 계속하여 자기 암시와 자기체면을 걸으며,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는 너덜머리 나는 너덜길을 2시간 30여분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하산을 마치자 미리 내려온 장비와 제갈량이 기다린다. 이제는 정말 모두다 무박종주 산행을 마친 그 뿌듯함에 다시 한번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특히 부상의 몸으로 그 긴 산행을 끝마친 지리선녀에게 갈채를 보낸다. 무한한 고통을 이기고 일궈낸 그 긴 땀과 열정의 발자국. 서로에게 무한한 정을 느낀다.

  

   산행을 마치고 다시 또 종주 산행을 할 것인지 물으니 막무가내로 손을 내젓는 산우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그리워지지 않을까? 자신 속으로의 끝없는 몰입의 길을 열어 주었던 저 지리산행길.

  

   뒤돌아본 천왕봉의 당당하고 당당한 자태가 가슴속 깊게 들어앉으며 시원한 물소리로 중산리 계곡을 흘러 내린다.

 

(삼도봉에서)

 

(삼도봉에서)

 

(연하천산장 가는길, 뱀사골계곡 풍경)

 

(벽소령 가는 길, 의신계곡 쪽 풍경)

 

(벽소령 가는 능선 길)

 

(벽소령 가는 길의 멋진 바위)

 

(벽소령대피소)

 

(세석 가는 길 풍경)

 

(세석 가는 길 풍경)

 

(칠선봉)

 

(세석가는 길에서 본 천왕봉)

 

(세석 가는 길 풍경)

 

(세석평전)

 

(세석의 철쭉)

 

(촛대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

 

(삼신봉 가는 길 바위)

 

(삼신봉에서 본 풍경)

 

(삼신봉)

 

(삼신봉을 지나며)

 

(제석봉 고사목)

 

(천왕봉 주변 풍경)

 

(천왕봉 주변 풍경)

 

(천왕봉)

 

(천왕봉에서 뒤돌아본 지리능선)

 

(중산리쪽 하산 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