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오년 오월 스무이튿날(넷째 일요일)

날씨는 맑다가 흐리져 비를 조금 뿌렸고 바람이 전혀 불지않아 많이 더웠음.

이화령으로 올라 하늘재로 내렸는데 10시간 걸렸음.

 

이화령과 하늘재는 길은 좋으나 대중교통이 없으므로

자차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택시를 타야한다.

물론 다른차를 얻어타면 되는데 그건 행운의 일종이다.

 

2005년 5월현재 : 

문경버스터미널 - 이화령 8,900(미터에 나온금액)

문경버스터미널 - 하늘재  15,000원 ~ 16,000원(택시기사분의 말씀.)

문경에서 이화령까지 이용한 택시 :

박윤구 / 경북16바 3184 / 011 - 523 - 9287, 택시사무실 054 - 571 - 7171 

 

주요지점 통과시각 :

이화령 - 6시 6분 , 조령샘 - 7시 7분, 조령산 - 7시 37분, 신선암봉 - 9시 37분

조령(3관문) - 11시 5분, 마폐봉(마역봉) - 12시 10분, 탄항산(월항삼봉) - 15시 27분

하늘재(하산종료점) - 16시 2분

  

여늬때 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요즈음은 낮이 길어서 좀 여유로운 산행이 가능하지만

버스시간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 한가지고 오늘은 버스를 타기로 했으므로

시골 막차를 타려면 좀 일찍 서둘러야하기 때문이다.

  

하늘재 아래 관음리에서 문경으로 나가는 막차는 원래 16시 15분인데

일찍가나 좀 있다가나 읍내 도착시간은 같으므로

기사분들이 한 5분 더 기다려서 16시 2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이화령의 아침은 고요했다.

문경쪽은 맑은데 연풍쪽으로는 연한 안개에 젖어

바로 아래 터널을 빠져나가는 차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날도 어디서 온 산객들인지 아침부터 술이다.

저번엔 막걸리더니만 이번엔 맥주로 시작하는걸 보아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며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이화령에서 조령산쪽으로는 헬기장들이 연이어 나타나는데

아래 있는 세 개는 거리가 그져 10여미터 남짓하다.

  

어떤이는 이 구간을 일컬어 백두대간 중 명품구간이라고 하기도하고

또 어떤이는 백두대간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한다.

이처럼 이 문경땅에는 풍치좋은 산과 계곡이 산재해 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휘적휘적 오르다보니 어느새 조령샘이다.

샘 뒤에 있는 갈대밭엔 새순이 무척 씩씩하다.

그 또한 가을이면 하~얀 홀씨를 날리며

하늘을 향해 허리를 곧추 세울 것이다.

  

아기자기 암릉길에 때론 적당히 긴장하며

신선암봉을 지나 어느새 조령(제3관문)에 이르렀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스카우트대원들이 왁자지껄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보니

내 큰아이가 스카우트활동하던 오래전 일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녀석이 별 것도 아닌 일에 얼마나 뻐기던지......

  

고대하던 조령약수는 공사로 인해 폐쇄되어 서운하기 그지없는데

때마침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니

가야되나 말아야되나하는 결정을 지을 일이 생겼다.

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문제 없지만

동영상기록종주를 하시는 삼토성님에게는 걱정거리이다.

장비가 비를 맞으면 고장을 일으키기도 하려니와

어차피 촬영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계속 가기로 의논을 마치고 마역봉(마폐봉)으로 오르는데

아시다시피 이 구간은 아래 이정표는 0.9키로 위의 이정표는 1.1키로의

매우 급한경사로 된 오름길이다.

이 오름길은 관문을 나가서 시작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떼지어 가길래 우리도 군막터 쪽 지름길로 올랐다.

 

웬지 좀 희미한 길이라 이상하다 여기며 길을 살피는데

삼토성님이 높다랗게 잘린 나무 긁거리에 정강이를 많이 긁히셨다.

무척 아파하시면서도

그대로 진행하시자고 하셔서 가기는 가는데 내심 걱정이 태산이다.

   

새벽에 일어나 조금 먹은 아침은 소화 끝 난 지 오래이고

비록 11시를 겨우 넘긴 시각이기는 하지만 시장기가 보통이 아니다.

  

마역봉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마폐봉에 오르니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는 모르나 일부는 올라왔고

일부는 뒤이어 올라오는 중인데 너무나 시끄러웠다.

( 마역봉, 마폐봉, 마패봉으로 곳곳마다 다르게 적혀있는데 어는 것이 맞는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또 하나의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지난 목요일(5월 19일)과 금요일(5월 20일) 연이틀동안

갓바위로 야등을 다녀왔다.

주변에 밤산행을 같이하시는 부부팀들이 많아서 늘 같이 다니는데

근간의 경기문제로 마음들이 편하지 않은지 남자들은 안나오고

어쩌다보니 여인네들 밤나들이에 무보수 가이드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연유하여 개인적으로 좀 서운 한 것은

이 남자들이 자기 마눌 보관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일이다.

 

나역시 편한마음이 아니라서 잘 못 어울리면 쓸데없이 술만 축낼 것인즉,

혼자서라도 산을 올라 잠시나마 머물며 갑갑한 마음을 좀  달래본다.

  

금요일은 혼자 가리라고 몰래 길을 나섰는데

공항근처를 지날 무렵 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자기 마눌을 내차에 옮겨놓고  잘 부탁한다는 말도 없이 가 버린다.

남이 보면 좀 부럽겠지만 사실 밤에 여자데리고 산에 다니면

신경써야할 게 참 많다.

  

갓바위에 올랐는데 요즈음 갓바위는 매우 한산하다.

입시철에 돈봉투에 이름 적어주면

스님이 확성기에다 대고 하시는 말씀 "어디사는 누구누구 무슨대학 합격!"  

 

별 시답잖은 생각을하며 하산을 하는데

얼마 전 우연히 합류하여

몇 번 산행을 같이한 여자분이 길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분 역시 호젓하게 남자 한 분과 단 둘이었다.

  

때가 때이고 장소 역시 그러하였는지라 반가움을 억제하고

모르는 척 그냥 스쳐 내려오는데

나와 동행하는 아주머니가 아는사람이냐고 물어왔다.

모르는 사람인데 아마 잘 못보고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분은 몹시 서운했는지 금방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돌계단 어두운 밤길이라 답은 안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도 그 서운함을 담은 메시지를 또 받았었는데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지금 이 산꼭대기까지 또 왔다.

  

이번에 온 메시지는 "앞으로는 서로 모르는사이로.... "라는 거였고

산으로 인해 알게된 분이 산과 관련된 서운함으로 산에서 이별을 고해왔으니

일순간 착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어 스스로 좀 서글퍼졌으나

다시 배낭을 추스르며 마주치는 여러 사람과 나누는 인사속에 나를 감추었다.

  

이것이 산할아버지의 가르침이라면 따라야지 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으며 남은 길을 재촉하여 하늘재에 이르니

큰 차 한 대와 작은차 몇 대가 서 있고

윗옷을 훌렁 벗은 산객이 산장안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더운날씨라 이해는 해 주고 싶었지만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오늘 산행길엔 "국립공원/내무부"라는 시멘트 말뚝이

온 구간 내내 우리와 동행했는데

인상적인 것은 페인트가 거의 벗겨지지 않아 무척 깨끗했다는 것이다.

  

막차를 타려는 욕심에 좀 재촉한 하산이라 무릎이 저릿저릿하였지만

시계를 보니 잘 하면 시내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후끈거리는 아스팔트를 부지런히 걸었다.

  

종내에는 숫제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틈틈이 참가한 여러 마라톤대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쨔자잔~

출발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버스는  떠나지 않았다.

모자를 흔들면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데

버스기사가 나를 처다본다.

  

휴~

텅텅 빈 버스를 전세 내다시피 삼토성님과 버스에 올라 앉으니

내가 처음 풀코스 완주메달을 받던때 만큼 기분좋았다.

이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부르게 되겠지만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하고자 한 것을 했다는 그것이 기쁜 것이다.

훗날 이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면 아마 이보다는 더 기분이 좋을 것이다.

  

예전에 광업이 성하던 때의 문경은 많이 퇴락하여 그져 어느 면소재지와 같다.

산행 후 금방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많이 졸립던 경험이 있는 터라

어디서 좀 시간을 보내고 가기로 하고 두리번 거리는데

마침 문경장날이라 미쳐 거두지 못한 좌판들이 무척 정겹다.

"시장네거리"에 있는,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간이역"이라는 주점을 발견했다.

  

시원한 생맥주를 한 컵 들이마시니 웬 맥주가 이리도 맛있을꼬?

이른 시간이라 안주는 준비된 게 없어서 공짜안주(팝콘)로

한 잔 씩 더 하고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이 주인은 문경토박이라서 주변산에 대하여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공짜안주를 이것 저것 자꾸 갖다준다.

  

이 주점에 가면 오래된 큰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데

사진을 보고 연대를 알아맞히면 생맥주 한 잔씩 더 준다고 한다.

절반으로 뚝 부러진 삶의 길에서 우연히 오래된 사진을 만나니

금새 나이를 잊어버린다.

등교길에서 잠시 붙들린 사진 속 학생복이 참 새롭게 느껴진다.

단발머리 여학생의 하~얀 교복칼라....

남학생의 네모진 책가방하며 그 두텁고 시커먼 모자......

길 한복판에서

완장을 끼고 뭔가 손짓을 하던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디서 뭘하며 사는지....? 

 

사진 속 이곳 문경은 내고향 정선과 분위기가 흡사하였다.

삼토성님이 이 장면을 놓치실리 있겠는가

나와 주인이 나누는 대화내용을 캠코더에 몽땅 가두어 놓으셨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북대구나들목이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오천육백원입니다."

얼떨결에 슬쩍보니 그 아지매 참 이쁘다.

  

산행말미 대낮에 술마시기도 처음이고 산행 후 주취운전도 생전 처음이었다.

좀 서운(?)한 점은 빨대검사도 못해보고 그냥 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여러분 졸음운전은 참으로 위험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