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청파 선생님, 수영성님 ,형수님..."
"이게 누구야 진아우님 아니여..."

  

곁의 탈진으로 턱 떨어진 개 지리산 쳐다보듯 안타까운 맘만 동동 거리다
곁의 걸망까지 두러메고 사나운 인심에 쫓겨나는 비렁뱅이 형국으로 마악
구 벽소령 공터로 내려서니 청파 선생님과 이수영 성님 내외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삼도봉 산하 모임에서 뵌지가 불과 두어 장도막 내외인데도 수십년 별리한
이산가족의 상봉 만큼이나 반가워 남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공터에 주주물러
앉아 반가운 해후를 나눈다.
아침 햇살은 째지게 좋았고 이미 짙어진 신록의 이파리들을 은어떼의 뱃살같이
하얗게 뒤집어며 올라오는 선들바람은 기어이 청파 선생님의 걸망에서 약주를
꺼내게 한다.

  

별빛 총총한 반갱일 신새벽..
논둑길을 서둘러 걸으며 하늘을 보니 거대한 하늘꽃 은하수가 남으로 길게
눕고 시어미 등쌀에 소쩍새로 환생한 며느리의 슬픈 울음이 배나무골로
서럽게 퍼져간다.
워낙이 골안짝에 위치한 탓에 경지 정리의 혜택을 받지 못한 작은 논배미들이
끝나는 곳엔 이제는 거두는 사람이 없어 묵정밭이 되어버린 고추 두어이랑
부릴만한 따비밭의 밭둑을 따르는 길은 산자락 깊숙히 실뱀의 허물처럼
희미하게 이어지다 반딧불이 반짝이는 실개천으로 나선다.

  

갸날프게 돌돌거리는 조그만 개울엔 공깃돌처럼 둥글둥글한 돌틈 사이로
싸늘한 새벽 한기에 진저리치는 여치소리 한가롭고 인기척에 놀란 삵괭이
의 푸른 눈빛이 요기로운 기운을 뿜으며 잠시 흔들리다가 숲속으로 사라진다.
시퍼런 억새에 구르는 이슬로  짧은 베잠방이는 벌써 축축하고 바삐 길을
줄이느라 용을 쓴탓에 이마엔 제법 굵은땀이 배여난다.
개울을 건넌길은 다복솔이 점점이 선 억새밭을 두어마장이나 가서는 왼편
으로 급각히 꺽이며 옻나무가 두어그루 바위틈을 비집은 옻샘에 당도한다.

  

가져간 사발에 정화수 고이 길어 소반에 받치고 새물내가 물씬한 푸른비단
으로 혹시 모를 음험한 야기를 가리고는  조금 위쪽의 참나무가 울울창창한
무당바위에 정성스레 받치고는 하늘을 우러러 치성을 올린다.
'모년 모월 모일에 여기 불쌍한 중생 진모가 지리에 들려하니 천신은 강림하사
 향기로운 잔을 받으시고 우매한 발품을 도우소서..'
축원후에 소지에 부시를 댕겨 영험을 가늠하니 어째 시원히 하늘로 오르지 않고
관격에 걸린듯 쾌활치가 못하다.
대단 불안하나 도리가 없고 되짚어 오는 길또한 허공에 뜬듯 일매지지 못한
걸음이 또한 불만 이더라.

  

장거리 종주를 떠너는 날이면 언제라도 그렇듯 이젠 제법 머리가 굵어 사람꼴이
박힌 두예삐를 불러 곁은 꽤나 성가신 당부를 잔소리 쇰직하게 늘어놓는다.
곁의 체수가 워낙 잔망스런 탓도 있지만 키꼴이 벌써 지엄마를 능가하는 두예삐
는  듣는둥 마는둥 심드렁하다.
이젠 과자 몇낱과 용돈 몇푼에 넘어가지 않는 나이가 되고보니 이래저래 통활
하기가 쉽지 않다.

  

인월에 로시난테 고삐 던져주고 택시로 성삼재를 오르니 재엔 수많은 대형 차량과
미어 터지는 인파로 오늘 산행이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작년까진 매표소가 따로 없어 야간 산행이 수월했는데 언제 지었는지 화장실
건너편에 고린자비 돈통만큼이나 옹색한 건물에 매점까지 곁들여 구색을 갖추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통제하는 공단 직원 만큼은 청짓독 같은 얼굴에 서슬이 퍼런 일당백들로
객같이 간담 약한 촌보리 동지는 놀라서 입에 게거품 물까 두렵더라.

  

단체 산행을 나온 무리의 모가비들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목청을 돋워 제식구들
머리를 맞추느라 진력하지만 그게 어디 곱사등에 삿갓 씌우기로 만만한 일인가?
끝내는 공단 직원과 셈평이 맞지않아 목자 불량해져서는 고성이 오가는 등 과히
볼만한 겄이 못되더라.
번다한 싸개통을 벗어나 노고단으로 걸음을 천천히 하여 오른다.
한참을 올라 뒤돌아 보니 수많은 불빛이 명멸하며 오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되려
산보다 더 장관이다.

  

노고단 산장 역시 장마철 웅덩이에 올챙이 꾀듯 사람들로 도배를 했고 지리종주
초입으로 마치 피난민 행렬같이 남부여대 밀려 오른다.
노고단 안부, 지리종주의 초입에서 곁의 손을 한번 꼭 잡고는 올해 첫 지리 종주의
거보를 내딛는다.
하늘의 맑은 별빛과 반야봉 중허리에 걸린 미인의 손톱 같이 요염한 초생달은
금가루 은가루를 이슬에 실어 두노주의 발길에 뿌려 걸음을 축복해 준다.
노고단 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은 젖은 물길에 번들거려 마치 콩기름을 먹인듯
미끄러워 여기저기서 에쿠지쿠하는 낭패한  경악성이 들려온다.

  

명의 김주부의 금침신공을 몇번 시전 받기는 했으나 아직은 회복 여부를 장담
할수가 없어 뒷덜미에 비수가 날아오는지 선불맞은 멧톧마냥 씩씩거리며
날듯이 달아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양보하며 걸음을 눅게 하여 곁의 안위를
염려한다.
단둘이 호젖 할때면 두에삐의 학교와 친구 얘기, 초보임신에 실패한 앞집새댁
이야기, 한량끼 다분한 객의 술투세, 그리고 누구네의 좀은 은밀한 카더라 귓속말
까지 아주 말풍년이 났다.

  

평소 많은 대중이 있는 곳에서는 응구첩대가 민첩하지 못한 곁이나 제멋에 겨워
조근조근 풀어놓는 곁의 고담준론(?)은 능선을 휘감는 바람소리에 이어졌다,
끊어졌다 원활하지만은 않지만 객은 건성 큰 고개짓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장단을
맞추어준다.
임걸령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맑고 차가우며 한바가지 길어 올리니 반야봉이
찰랑거려 거드모리로 쭈욱 소리나게 들이키니 여태 나를 보듬어 왔던 지리산이
순식간에 내 뱃속에 잠겨 좁은 객의 편협한 국량을 한없이 크고 넓게 키워준다.

  

임걸령을 지나며 시나부로 깨이기 시작하던 날은 마빡에 불관자(랜턴)떼어도
게으른 선비 단옷날 과부 목간통 분별할 정도는 되어 한결 걸음에 날이 선다.
반야 갈림길인 노루목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간다.
그러나 두노주는 이미 반야봉으로 배를 채웠으니 삼도봉으로 춘풍에 망아지
뛰듯 왕시리봉 능선 가득한 운해를 밟고 불무장등을 달려 단숨에 차오른다.
급한 발길에 채여 삼도봉이 왁달박달 하는데 갑자기 천왕봉 저너머에서 붉은
기운이 그윽히 감돌더니 티끌하나 없는 아침해가 욱일승천으로 힘차게 솟아
올라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지리가 주는 선물을 가슴 가득 쟁여 두고는 화개재에 내려서니 모두들 헛헛한
속을 달래느라 간단한 먹거리로 얼요기가 한창이다.
부부도 조금 위쪽의 취나물이 듬성듬성 널려있는 자그만 공터에 판판한 돌을
날라다 자리를 만들고 김밥과 떡을 내어 놓으니 어릴적 소꿉 장난처럼 동화적
이라 객이 벙긋 웃으니 곁도 염화미소로 답해준다.
어느정도 몸이 풀려서인지 토끼봉 오름길 부터는 여태의 굼벵이 걸음을 버리고
조금씩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앞서가는 꾼들의 뒤에 바짝 붙어 비맞은 개 몸서리 치듯 어깨를 털면 객의 걸망에
달린 조그만 풍경이 주인의 의중을 알아 채고는 해맑은 소리를 비벼내며 딸랑
거린다.
때론 산중 공해로 인식하시는 분들의 따가운 질책도 있으시고 어떤분들은 고놈
참 똑똑하다며 감싸 주시기도 하신다.
분명한건 유해 짐승 쫓기와 길 체증에 상당한 효과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연하천 또한 노고단과 별반 다를게 없이 인산인해로 복잡해 물만 조금 보충해서는
벽소령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형제암까지는 잘 따라오던 곁이 조금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쳐지기 시작한다.
별반 어려움이 없는 만만한 오름길조차 비지땀을 흘리며 힘들어 하는게 뭔 사단이
단단히 날듯한 조짐이 먹구름으로 다가서는데 벽소령을 반마장이나 남겼을까 ,
철쭉으로 만들어 객이 손때먹여 애끼던 지팽이가 별다른 일도 없었는데 뚝하고
두동강이로  부러진다.
곁에게 내색할수는 없지만 어쩐지 항거할수 없는 거대한 힘이 몰려 드는듯해 자연
착잡해 지는 맘 이길수가 없다.

  

뭘좀 먹고 가자는 곁의 간청에 붐비는 벽소령을 꺼려 선비샘에서 요기 하재며 팔을
이끄니 고개를 숙이거 묵묵히 타박타박 따라오는 곁의 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덕평봉 오름길이 시작되자 곁은 어지러워 걷기가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곁의 걸망을 받아 샌드위치맨처럼 앞뒤로 메고는 곁을 빈몸으로 따르게 하지만
덕평봉 마루턱을 지나 완만한 사면으로 휘어지는 길에 붙박힌 별로 어럽지 않은
바위턱을 오르지 못해 객이 손을 잡아 주어서야 겨우 올라선다.

  

울창한 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벽소령이 뵈는 사면을 지나 수절과부 치마끈 상거에
선비샘을 두고 결국 곁은 길가 고목을 잡고 무너지듯 주저 앉는다.
순간 서북능 종주때 세동치에서 탈진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일렁이고 오금이 저려와
도시 손쓸 방도를 모르겠더라.
편한곳에  자리를 잡아 물로 갈증을 풀고 밥 몇술과 김치 국물을 강권하니 겨우
기력을 조금 회복한다.
그때서야 산은 교만한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진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명의의 침 몇대에 완치를 보았노라며 허술히 자신했고 웅석봉 두어시간 연습한 걸음
을 작년에도 종주했다는 안일한 이유만으로 장도에 올라 객의 품새에 맞춰 곁을 혹사
시켰으니 산을 무시하고 곁을 속인 당연한 처사라 하겠다.

  

조금 쉬고나면 갈수 있다는 곁의 미안해 하는 여린 맘이 더욱 미어져 그길로 하산을
결정하고 미련없이 돌아선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청파 선생님과 수영성님 내외분을 만난것은 진기빠진 곁을 다리고
덕평봉을 나려선후의 일이다.
곁의 안위를 염려해 청파 선생님이 비장해 두신 원기 회복탕과 통영시의 도제조를
맡고 계시는 수영성님 형수께서 갈무리해둔 청심환까지 긴급 처방했으나 한번 흐트러진
몸은 수월히 각을 잡지 못하더라.

  

결국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는 한적한 광대골로 훠적훠적 하산을 서두른다.
지리산 전구간 중 가장 짧은 하산로로 통하는 광대골길은 그리 가파르거나 힘들지가
않은데도 곁은 몇번이나 쉬어가며 어려워한다.
지리산 자연 휴양림으로 나려서니 겨우 정오가 조금 지났을 뿐이고 곁은 종주를 하지
못한 아쉬움 보다는 거금의 택시비를 공다지로 버린듯한 미련에 손이 더 아픈지
그돈이면 애들 고깃근이래두 끊을수 있었는데 하며 한숨 섞인 사설이 길게 이어진다.
모처럼 일찍 돌아서는 88도로엔 차들이 드물고 중천의 해는 아직도 중화참임을 알리
는듯  강렬한데 누가 물어봤나 , 곁이 혼잣말을 중얼 거린다.


"그래두 선비샘까지는 갔다, 뭐..."

  

                           2005년 6월5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