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산-구봉대산 연결 종주

-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나를 비운다! -


 

☞ 문재-백덕산 갈림길-사자산-널목재-구봉대산-법흥사 


 


 

♣ 산행개요 ♣


 

■ 산행지 : 사자산-구봉대산[법흥사]

■ 일시 : 2005. 5. 8.(일)[당일산행]

■ 날씨 : 흐림


 

■ 산행경로 : ☞ 문재 → 1,125m(백덕산 갈림길) → 사자산(1,160m) → 1,089.4m → 삿갓봉갈림길 → 가해목 → 1,070m →  널목재 → 구봉대산(900.7m) 1~9봉 → 법흥사 삼거리 → [법흥사 적멸보궁 탐방] ◀


 

■ 산행코스/시간 :


 

☞ 문재(08:55) → 임도(09:08) → 능선합류점(09:25) → 925m(09:26) → 헬기장(1,005m)(09:43) → 능선갈림길(1,125m)(10:05) → 1,120m(10:20) → 무명봉(10:28) → 휴식후 출발(11:18) → 1,166.9m(11:25) → 사자산(1,160m)(11:42) → 3거리(12:10) → 1,070m/암봉전망대(12:17) → 1,089.4m(12:25) → 3거리(12:35) → 능선분기점/삿갓봉3거리(12:41) → 가해목 안부(12:50) → 헬기장(13:07) → 헬기장터(13:34) → 1,070m(13:45) → 지능선분기점(13:55) → 널목재(14:15) → 구봉대산 1봉, 2봉(14:21) → 3봉(14:23) → 헬기장(14:28) → 4봉(14:31) → 5봉(14:43) → 제6봉(14:47) → 전망대(15:05) → 7봉(15:17) → 8봉(15:20) → 9봉/헬기장(15:22) → 무명봉(15:37) → 3거리(15:50) → 법흥사 입구(16:30) → 법흥사(16:40) → 적멸보궁 탐방 후 복귀(17:00) ◀


 

■ 산행거리 : 약 13km(추정)

■ 산행시간 : 7시간 35분(휴식 포함)

■ 형태 : OK Sadary 특별산행[준치 회장, 산3+1, 장정, 술꾼+1, 주유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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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A poem lovely as a tree.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A tree that looks to God all day,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Upon whose bosom snow has lain;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 A. J. Kilmer, "Trees"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으랴.


 

단물 흐르는 대지의 젖가슴에

마른 입술을 대고 서 있는 나무


 

온종일 신(神)을 우러러보며

잎이 무성한 두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날 머리칼 위에

방울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나무


 

가슴에는 눈이 쌓이는 나무

비와 더불어 다정하게 살아가는 나무


 

나 같은 바보도 시는 쓰지만

신 아니면 나무는 만들지 못한다.


 

- 조이스 킬머,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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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자산과 구봉대산 연결 종주


 

나는 몇 년 전에 한국의 100대 명산 답파의 일환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 설경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백덕산(1,348.9m)을 다녀온 적이 있다. 백덕산은 겨울에 흰눈이 있어야 어울리는 산이다. 그 때 문재에서 사자산 능선분기점(1,125m)을 거쳐 당재를 지나 백덕산정상에 올랐다가 먹골재를 거쳐 운교리 먹골로 하산했었다.


 

그 때 백덕산을 오르면서 사자산 능선분기점에서 사자산-구봉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보고 언젠가는 그 산줄기를 타보고 싶었는데 마침 OK Sadary의 특별산행으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사자산이나 구봉대산 하면 법흥사 적멸보궁을 빼놓을 수 없는 노릇이고 이 기회에 구봉대산의 아홉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법흥사 적멸보궁에서 비움의 미학을 배워보고자 한다.


 

2005. 5. 8. 일요일 아침 6시 3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일행들을 만났으나 참석 회원들이 6명에 불과하다. 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높은 구름으로 비는 오지 않겠다고 하여 안도한다. 버스는 영동고속도로의 새말로 빠져 새말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42번 국도를 따라 안흥에서 평창 방면으로 진행하던 중 산행들머리인 문재터널 앞에 정차한다. 계절의 여왕답게 산하는 신록의 물결이다.


 


 

2. 사자산(獅子山, 1,160m)의 오리무중


 

♠ [08:55] 문재 출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문재터널이 있는 곳의 해발이 720m이고, 사자산의 표고가 1,160m라 400여m만 고도차를 높이면 되기 때문에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2년 전 겨울에 이곳에서 백석산을 오를 때와 길은 같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겨울에 보는 산과 봄에 보는 산은 느낌이 다르다. 산은 계절에 따라, 진행방향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므로 한번 산에 올라보았다고 산에 갔다 왔다고 이야기할 것은 못된다. 


 

언제나 산행초입은 다리가 풀리지 아니하여 뻐근하고 힘이 든다. 10여 분간 천천히 사면을 치고 오르다 보니 임도가 나온다(09:08). 이 임도 좌측 방향으로 50여m 진행한 다음 우측의 사면을 치고 올라야 한다. 간벌과 가지치기를 하면서 표지기가 붙어있는 나뭇가지들을 잘라버렸기 때문에 초행자들은 길을 찾기 어렵게 되어 있다. 산3님이 오기를 기다려 다시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솔잎이 땅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잣나무 숲 오르막을 오르는데 잘라놓은 나무들을 치우지 아니하여 길을 막고 있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어떤 나무의 자른 자리에서 주황색 수액이 굳어진 것을 본다. 길을 막는 나무를 피해 오르막을 치고 올라서면 능선합류점에 이른다(09:25).


 

이 능선은 문재에서 사자산 갈림길까지 똑바로 이어진 마루금이다. 이 능선의 좌측으로는 평창군이고, 우측으로는 횡성군이다. 이 능선합류점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삼각점(평창 401)이 있는 925m이다(09:26). 영춘지맥(영월지맥)의 태기산에서 분기하여 양두구미재 - 청태산(1,194m) - 술이봉(896.5m) - 절고개 - 문재(문치) - 사자산 - 백덕산(1,384.9m) - 여림치를 지나 주천강에서 맥을 다하는 50여km의 산줄기를 백덕지맥으로 부르기도 한다(박성태).


 

925m 봉우리에서 내려선 다음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향하여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데 길가에는 청초하게 피어있는 노란색 야생화와 연록의 잎을 달고 있는 낙엽송의 운치가 봄의 속도를 느끼게 해준다. 날씨가 덥지 아니하여 15분쯤 편한 길을 유유자적 걷다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헬기장 봉우리가 나온다.


 

♠ [09:43] 헬기장(1,005m)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으로 백덕지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 멀리 치악산 줄기도 들어온다. 남동쪽에 백덕산의 M자형 봉우리가 하늘에 닿아있다. 오늘 구간 중에 최고로 확 트인 조망을 즐긴 곳이다. 이 이후에는 흐릿한 날씨로 시야가 확 트이지 아니하여 어딘지 모르게 가슴에 응어리가 진 느낌이었다. 


 

이곳에 세워진 표석에는 이곳에서 당재까지 2.2km, 정상(백덕산)까지 3.4km, 묵골까지 8.2km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 후 남쪽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가다 보면 능선갈림길에 이른다. 


 

♠ [10:05] 백덕산 능선갈림길


 

좌측으로는 백덕산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사자산으로 가는 길이다. 문재에서 이 지점까지는 전에 와봤던 길이다. 그런데 평창군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백덕산까지 3.4km로 되어 있고, 우측에 사자산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능선갈림길  바로 우측의 1,125m에는 어느 누가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현 위치가 사자산으로 되어 있고, 방향표시가 되어 있다.

 

               

                백덕산 능선갈림길 이정표

 

지도에는 이 1,125m를 사자산으로 표기하는 것도 있고, 이곳에서 백덕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당재 직전의 봉우리를 사자산으로 표기하는 것도 있다. 또 월간 산 등에서는 이곳에서 구봉대산으로 가는 길의 1,160m를 사자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어느 봉우리가 사자산인지 오리무중이다. 사자산을 4개의 보물이 있는 산이라고 하여 사재산(四財山)으로 부르고 그 봉우리의 위치를 달리 표기하는 것도 있다. 어떤 책에서는 사자산의 표고를 1,181m로 적고 있어 그 봉우리가 어느 것인지도 헷갈리게 되어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산봉우리 하나 갖고 중구난방이다. 술꾼님은 백덕산 가는 길에 있는 봉우리를 가보고 오겠다고 했으나 나는 백덕산 가는 길(500m지점)에 있는 봉우리에서 사자산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하자 단념한다. 일단 1,160m봉으로 가본 다음 사자산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한다.


 

1,125m에서 내려섰다가 1,120m봉을 우회하여(10:20) 내림길에서 바로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간다. 키 작은 산죽들이 산길 주위를 점령하고 있다. 진달래가 소담스럽게 피어있고 안흥면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전망봉에 오른다(10:28). 이곳에서 각자 안주거리를 푸짐하게 꺼내놓고 얼려있는 막걸리를 녹여가며 마시다 보니 산3님이 올라와 더 좋은 안주거리를 꺼내놓는다.

 

           

            웰빙팀들이 먹고 마시는 술과 안주

 

이곳에서 무려 50분간의 널널 웰빙 휴식을 취하고 산3님과는 법흥사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어선다(11:18). 막걸리 2병과 캔맥주 1개를 덜어내니 배낭의 무게가 훨씬 가볍다. 날씨가 덥지 아니하여 3ℓ 가까이 준비한 식수는 별로 소비되지 않는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옛 헬기장 터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고 바로 길 한가운데에 삼각점(448)이 박혀있는 1,166.9m이다(11:25).


 

다시 이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어떤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 후 산죽과 산철쭉나무가 어우러진 능선을 오른다. 역시 튀어 오르는 듯한 봄의 생기를 느끼며 호젓한 산길을 걷는 맛이 괜찮다. 사람들이 백덕산 방향으로는 많이 다녀도 사자산 쪽으로는 많이 다니지 않는 것 같다. 오르막 능선 3거리에서 좌측 방향에 있는 암봉이 지도상의 1,160m이다.


 

♠ [11:42] 1,160m(사자산?)


 

그런데 이 봉우리가 지도상의 1,160m임은 틀림없으나 이 봉우리에도 사자산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표지석은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백덕산-신선바위봉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구봉대산, 구룡산 등의 산줄기가 포근히 감싸고 있는 법흥리 일대를 한껏 조망할 수 있다. 서쪽에는 삿갓형태로 펑퍼짐하게 솟아있는 삿갓봉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연녹색 숲의 바다, 이 숲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봉우리에서 바로 연화봉을 경유하여 법흥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사자산 조망 : 가운데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구룡산

 

여기에 와 봐도 사자산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다. 나로서는 일단 백덕산 능선갈림길에 있는 1,125m보다는 법흥사 일대가 잘 조망되는 이곳을 사자산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도를 따르고자 한다. 어쩌면 1,125m에서 이 지점을 지나 삿갓봉갈림길로 이어지는 산줄기 전부가 사자산인지도 모른다.


 

다시 능선3거리로 복귀하여(11:48)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 다음 참나무와 산죽이 늘어선 오르막을 오른다. 어떤 층층바위(처음에는 이게 사자바위로 알았으나 아니다)를 우회하여 약간의 암릉지대를 지난다. 평탄한 길의 3거리에서 좌측 방향으로 직진한다(12:10). 다시 어떤 봉우리를 우회하여 기가 막힌 전망바위에 오른다.


 

♠ [12:17] 1,070m/암봉전망대


 

처음에는 이 바위전망대를 1,089.4m로 알았으나 술꾼님의 개념도에는 1,089m 전에 1,070m가 더 나와 있다. 사자산 이상으로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지나온 사자산과 사자산 뒤로 백덕산의 모습도 드러난다. 백덕산-신신바위봉 능선 뒤쪽으로 아스라이 드러나는 불뚝 솟은 봉우리가 무슨 봉우리인지 모르지만 예사 봉우리는 아니다.

 

 

  1,070m에서 보는 조망 : 하늘금에 아스라이 맞닿아 있는 산은 무슨 산인지?

                                   중간에 있는 봉우리는 연화봉

 

이 봉우리에서 내려선 후 1,089.4m로 추정되는 전망바위에서 다시 조망을 즐긴다(12:25). 날씨만 더 환했더라도 모든 것을 시원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흐릿한 날씨 탓에 멀리 아스라이 실루엣처럼 다가오는 산줄기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 전망대로 내려선 지점에 있는 바위덩어리가 무엇인가 했더니 지도상에 나와 있는 사자바위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바위의 모습이 사자라기보다는 두꺼비 모양이다. 아마도 사자산이라 사자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른다.

 

                        

                        사자바위 아니 두꺼비바위?

 

허공다리폭포로 내려가는 3거리 지점에서 직진하여(12:35) 완만하고 순한 흙길을 오르내린다. 길 주위의 넝쿨에 얼굴이 걸리며 진행을 하다보면 봉우리 능선분기점에 이른다.


 

♠ [12:41] 능선분기점/삿갓봉3거리


 

오른쪽으로는 삿갓봉으로 가는 길이고, 구봉대산으로 가는 길은 좌측 길 내리막 능선을 타야 한다. 10여 분간 내리막으로 내려선 안부는 가해목이고(12:50), 이곳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3거리가 있는 봉우리이다(12:56). 이곳에서 다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 다음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다(13:07).


 

이곳은 사방이 나무로 가려있어 조망은 없다. 이 헬기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점심으로 김밥을 꺼내어 먹는다. 15분간의 휴식 후 좌측의 내리막길로 들어선다(13:25). 길가 곳곳에 각종 취나물이 쑥쑥 자라고 있다. 곰취, 미역취, 단풍취(병풍취) 등 장정님과 술꾼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보나 문외한인 나가 보기에는 비슷비슷하여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년이 그 년이다. 취나물이 자라는 지역에는 산죽이 없다. 산죽이 자라는 곳에 다른 식물은 생존하기 어렵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옛 헬기장 터를 지나고(13:34), 암릉 날등을 우회한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암릉군을 우회하다가 좌측으로 빙 둘러온다. 아마도 지도상의 1,070m로 화채봉 갈림길 같다(13:45). 화채봉-된불데기산-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언제 한번 타볼만한 산줄기이다.


 

이 분기점에서 좌측 길을 따라가다 안부에서 직진하여 암봉에 올라서니 내려오는 것이 만만치 아니하여 back하여 안부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다보니 이 암봉을 우회하는 길이다. 다시 나타나는 3거리 지점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마침 밑에서 사람소리가 나서 누군가 했더니 준치회장님이 나물포대기를 들고 올라오고 있다(13:55).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다. 오늘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산행 중에 우리 일행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준치회장님은 문재에서 법흥사입구로 와 버스를 주차시키고 구봉대산을 오르고 널목재에서 이쪽방향으로 나물을 뜯으러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준치회장님은 이 지점이 지도상의 화채봉 갈림길이라고 하면서 올라갔고, 술꾼님은 지형도가 아닌 자세한 개념도의 산줄기를 보면서 이곳은 단시 지능선 갈림길이지 화채봉 갈림길이 아니라고 하여 어리석은 나로서는 그런가보다 할 수밖에.


 

좌측 내리막을 따라 숲 속을 내려가다 보니 우측으로는 길이 막혀있어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낙엽송 숲을 지나고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밑으로 내려서면 반질반질하고 넓은 안부가 나오는데 바로 널목재이다.


 


 

3. 구봉대산(九峰臺山, 900.7m) 순례하기


 

♠ [14:15] 널목재


 

이곳에는 좌측으로 법흥사까지는 2km, 구봉대산까지 1km라는 이정표가 영월군민 이름으로 세워져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봉대산 산행이 시작된다. 구봉대산은 인간이 태어나 유년 - 청년 -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죽어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구봉대의 아홉 봉우리마다 그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서 유명한 산이고, 법흥사쪽에서 바라보면 구봉대산의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마치 크고 작은 염주알을 꿴 듯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구봉대산 아홉 봉우리 순례


 

널목재에서 오르막을 올라서니 바로 제1봉(양이봉)이다. 부모님 금슬로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된다고 하는 뜻으로 판때기에 적혀있는데 ‘양이’의 한자가 어떻게 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바로 제2봉(아이봉)이 이어지고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뜻이다. 처음생각에는 구봉대산의 구봉이 팔봉산의 팔봉이나 오봉산의 오봉처럼 울뚝불뚝한 암봉으로 기대했다가 평평한 자리에 그냥 봉우리 이름 표지판만 세워둔 것이라 어쩐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든다. 이럴 수가.


 

제3봉(장생봉)은 그나마 바위덩어리가 있는 암봉이다. 유년, 청년기를 거친다는 뜻이다. 비가 내릴 듯 흐릿한 날씨 때문에 조망을 즐기지 못하는 점이 못내 유감이다. 제3봉에서 5분쯤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서 3분 만에 제4봉(관대봉)이 나온다. 벼슬길에 오른다는 뜻이다. 위에서 보니 법흥사 쪽의 숲만 보이고 아홉 봉우리의 형세가 뚜렷하지 않다.

 

제4봉에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본격 암릉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제5봉(대왕봉)이다. 인간사의 절정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5봉의 안내 스테인레스 철판은 떨어져 나갔다. 제5봉에서 암릉을 따라 400여m 지나면 제6봉(관망봉)이다. 지친 몸을 쉬어 감을 의미한다. 소나무가 바위 사이로 줄기를 뻗어간 모습이 의연하다. 안개비가 내리는 듯 얼굴이 간지럽다. 술꾼님은 여자들이 안개비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구봉대산 제6봉(관망봉)에서

 

영월군에서 발간한 “아름다운 영월의 명산”에서는 구봉대산에서 1봉과 9봉사이 중에서 5봉과 6봉사이가 가장 긴 이유는 권세를 오래도록 누렸으면 하는 인간의 욕망과 바램이 내포된 것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 있다. 통상 조망이 제일 좋은 제6봉을 구봉대산의 정상으로 친다.


 

제6봉에서 내려와 암릉을 우회하다보면 널목재 방면의 법흥사까지 3km, 9봉 방향의 법흥사입구까지 3.6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20m 암릉 위로 올라서면 전망대이고, 이어서 소나무와 암릉이 어우러지는 봉우리가 있다. 이어서 또 전망대 바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리막을 내려서서 너덜길 오르막을 오른다. 이 두개의 봉우리를 제7봉, 제8봉으로 알고 다시 오른 봉우리를 제9봉으로 알았는데 이 봉우리가 제7봉(쇄봉)이다. 돌무더기(캐언) 위에는 ‘늙고 병들음’이라는 스테인레스 철판이 놓여져 있다.


 

제7봉에서 내려선 후 오른 봉우리가 제8봉(북망봉)으로 삶을 마감해 空手來空手去 된다는 뜻이다. 이어서 오른 봉우리가 제9봉(윤회봉)으로 헬기장이 있는 공터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과 선한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뜻이다. 이곳에는 삼각점도 있다(평창 449).


 

한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유년, 청년기를 거쳐 벼슬길에 오르고, 인간사의 절정을 이룬 후 지친 몸을 쉬어가다 늙고 병이 들어 삶을 마감했다가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과정을 구봉대산의 아홉 봉우리는 보여준다. 물론 이미지 메이킹에 다름 아니고 처음에 제1, 2봉을 지나면서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가 제4봉을 지나면서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나타나고 소나무와 암릉의 멋진 조화를 보면서 구봉대산이 제법 이름값을 하는 산이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러면 나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인간사의 절정이라는 기간은 애초부터 없었고, 제6봉(관망봉)이나 제7봉(쇄봉)의 단계에 와 있지 않을까? 몸은 그렇다 치고 마음만은 제3봉(장생봉)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싶다. 몸은 나이가 들어 쇄하더라도 마음만은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찾고 싶다.


 

♠ [15:25] 3거리


 

구봉대산 아홉 봉우리 순례를 마치고 9봉에서 내려서면 바로 3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 법흥사입구까지 3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앞으로 법흥사입구까지 1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산길은 소나무 숲 사이로 신작로같이 길이 잘 나 있다.


 

내려가던 길이 오르막 암봉으로 바뀌고 끝 지점에 돌을 세워놓은 지점이 지도상의 무명봉이다(15:37). 구봉대산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개스에 흐릿하지만 봉우리들이 제법 울뚝불둑 솟아있는 게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무명봉에서 좌측의 너덜 내리막을 내려선다. 참나무 숲이 완전히 연녹색으로 치장되어 있고 중간에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있는 느티나무 비슷한 거대한 나무도 본다.


 

구봉대산까지 2km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길로 내려서면 다시 길이 좋아진다. 음대래골 계곡을 만나고 이어서 계곡을 따라 돌길을 걸어간다. 눈부시게 시린 하얀 싸리꽃 군락이 봄의 정취를 더해준다. 법흥사 입구로 나오는 길이 꽤 길게 느껴진다.


 

♠ [16:30] 법흥사 입구


 

준치회장님께 전화로 도착을 알리고 드디어 법흥사 입구 도로에 들어서니 우리들의 버스와 준치회장님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시간은 7시간 35분, 1시간 이상 쉬고 마시고 하는 웰빙산행을 즐기다 보니 도상거리 13km에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었다. 회장님께 법흥사를 좀 볼 수 있도록 부탁하여 우리들의 버스는 법흥사로 향한다.


 


 

4. 법흥사 적멸보궁 : 비우고 또 비운다!


 

♠ [16:40] 법흥사


 

바로 법흥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그런데 일주문을 통과했는데 주택과 밭들이 나타나서 나로서는 생경한 분위기다. 통상 일주문은 세속과 구원의 경계를 나누는 문이다. 일주문을 통과함으로써 세속의 번뇌와 산만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제 청정지역으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문이다. 따라서 일단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세속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법흥사의 일주문을 들어서서도 세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흥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회장님과 다른 분들은 버스에서 대기하고 나만 혼자 배낭을 부려둔 채 카메라 하나만 들고 서둘러 경내로 들어간다. 적멸보궁을 보기 위해서이다. 법흥사는 신라시대(선덕여왕 12년, 643년)때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자 창건했던 옛 흥녕사이다.


 

흥녕사는 여러 차례 불에 타고 1,000여 년간 명맥만 유지되다가 1902년 비구니인 대원각이 중건해 법흥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1912년 다시 불에 탔고, 중건됐다가 산사태로 유실되는 등 수난을 겪다가 중창불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도 목하 불사를 벌이고 있고 한적한 산사의 모습이 아니다.


 

만다라전에서 500m 떨어진 적멸보궁으로 가기 위하여 잰 발걸음을 놓는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400여m 올라가면 좌측의 산신각과 우물이 있는 우측으로 흙길 오르막이 이어지면 적멸보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법흥사 적멸보궁

 

이 법흥사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 적멸이란 열반(Nirvana)의 다른 말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다. 자장율사는 7세기 중국(당)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직접 전수받아 가지고 와 나누어 봉안하면서 다섯 채의 적멸보궁을 지었다(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뜻하며 이곳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의 몸이 있으니 따로 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보통의 절간에 불상이 앉아있어야 할 자리인 수미단에는 빈 방석만이 놓여 있다.

 

      

       적멸보궁 내부 : 비우고 비울 뿐

 

그런데 이 적멸보궁은 새롭게 단장한 적멸보궁이라 가장 화려한 단청을 자랑하면서도 고색창연함도 없고 고즈넉한 분위기도 느낄 수 없다. 그렇지만 적멸보궁과 이를 받쳐주고 있는 산(연화봉)의 모습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 산의 모습이 사자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오리무중이었던 사자산을 바로 연화봉에서 찾은 것이다. 한 보살님께 여쭤보니 바로 뒷산의 모습이 사자가 누워있는 모습이고 사자의 귀 부분에 세 부처가 있는 것도 알려준다.

 

            

             자장율사가 수도했다는 토굴과 부도

 

적멸보궁 뒤로는 자장율사가 기도하던 토굴(석분)이 있고, 그 옆에 사리를 넣어왔다는 석함(사리탑=부도)이 남아있다. 적멸보궁 내부를 보니 과연 법당 안은 불상도 없고 수미단에 빈 방석만 놓여있다. 방석 뒤 열린 곳으로 적멸보궁의 뒤 언덕과 나무가 그대로 들어온다. 촛불만이 은은하게 법당 내를 밝힐 뿐 모든 게 비어 있다. 이곳에서 비움으로서 얻는 철리를 배운다. 채우거나 쌓아두는 것은 다 번뇌일 뿐, 비우고 버림으로써 가볍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시간이 없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발걸음을 돌린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와 극락전과 징효대사 보인탑비(보물 제612호), 장효국사부도, 200년 된 밤나무 등을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금강문을 빠져나온다.


 

♠ 적멸보궁 탐방 후 복귀(17:00)


 

간단하지만 알차게 법흥사 적멸보궁을 둘러보고 주차장에 오니 다른 분들이 기다리고 있다. 책망하지 않고 기다려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버스는 바로 술샘이라고 하는 주천(酒泉)으로 이동하여 정육점을 겸하는 식당에서 술꾼님의 지론에 따라 ‘각1병’으로 산행의 피로를 푼다. 시골식당이라 모든 것이 맛있고 먹을 만하다.


 

저녁 7시 비교적 빨리 버스가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휴일 도로의 정체로 인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못난 인간들이 술로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내색을 않으시고 지난 5월 1일, 5일, 8일 연속으로 좋은 산행지를 물색하고 안전운전까지 맡아주신 준치회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