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와 함께한 영신대에서

 

-일시: 2005.06.01

-산행코스: 거림-세석-영신봉-대성골-의신.

-함께한 사람: 나 홀로.

 

함박꽃

대성폭포

산딸나무

지난 4월30일 19시45분 산악인 박영석씨와 그의 대원4명이 북극점에 도달 하므로 써 우리 산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특히 박영석 대장님은 북극점에 서므로 써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와 7대륙 최고봉 완등 및 지구 3극점에 도달하는 산악 그랜드 슬램의 주인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있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더니만 최근에는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나들며 등반 했던 동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시 에베레스트를 향했던 휴먼 원정대 염홍길씨의 기사가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돌무덤에 묻힌 박무택씨와 나머지 찾지 못한 두 분의 영혼이 편히 영면 하시기를 바라며 또한 휴먼 원정대의 의리와 수고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이 글을 씁니다.

세석의철쭉

대성폭포에서

대성폭포에서 바라 본 코끼리바위

심야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2일 날은 교육관계로 3일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산행을 할 수 없어 오늘 산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심야를 마치고 산행하는 날이 어디 오늘뿐이겠습니까만 한가지 불편한 점은 내가 직접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산행코스를 여유 있게 잡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에 으레 안내산악회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산행이 되어 왔었다. 집에 도착하자 말자 준비한 배낭을 챙기고 오늘의 안내 산악회인 H 산악회의 버스에 올랐다.

굿당에서 신내리는 모습을 슬쩍

거림골과 도장골

-산행 시작.

차 안에서 최대한 수면을 취하리라 맘 먹지만 워낙 예민한 스타일인지 10여분의 잠깐 수면으로 이어지다가 몇 번의 토막 잠으로 보충하는 사이 거림 주창에는 10시40분이 되어 도착하였다. 이 시간이면 산에서 내려와야 할 시간인데 이제야 산을 오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오늘 산행은 사실 세석의 철쭉과 영신대의 흔적 찾기와 큰새게골의 원시림을 보기 위한 산행의 뜻이리라. 세석까지 코스는 일반적인 코스지만 그 뒤로는 색다른 코스로써 영신대를 들러 지리산의 10대 중 하나인 제단과 김종직의 ‘유두류록’영신사의 흔적을 보기 위함이다.

천팔교에서

북해대교의 모습 

나무사이로 바라 본 남부능선 암봉

 

도장골 다리를 건너 매표소를 들르니 어느새 수 많은 인파의 산 객들 앞에 내 가야 할 자리를 놓치고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그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자신은 마음만 바빠지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 일행을

11시25분에 천팔교 근처에서 따 돌릴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산행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벌써 오늘이 6월 초하루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지리의 능선에는 새싹이 움터 오더니 벌써 짙푸른 신록이 세월의 시간을 거역 할 수 없게끔 하는 것 같다.

 

샘터 옆 전망대에서

 

오름길에서

 

내가 지리산을 알게 된 뒤 세석을 맨 처음 찾을 때 가장 최단코스인 거림골을 택해 올랐던 기억이 오늘 새삼 그 기분을 떠 올린다. 그때도 그랬지만 계곡 미가 다른 계곡에 비해 떨어지는 이 길은 북해대교부터 시작되는 오름길이 왜 그리도 힘이 들었던가 하는 생각에 힘들기도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세석교

 

 

세석교 근처에서

 

고광나무

 

 

어두운 하늘과 철쭉

 

중간중간에 쉬어있는 산 객들이 쉬었다 가자는 제의를 뿌리치고 갈 길 바쁜

나는 인사를 건네며 그들을 뒤로한다. 다만 등로는 그때와는 다르게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윽고 샘터 옆 전망대에 올랐을 때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운무를 감당 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바라보면 삼신봉과 내삼신봉 그리고 남부능선의 아름다운 곡선미가 운무에 가려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세석교 근처에서 야광나무를

 

 

이정표 삼거리

 

세석 가는 길

 

세석평전의 철쭉(날씨만 좋았다면)

 

갑자기 밀어 닥치는 운무로 인하여 세석 주위로는 전혀 시야를 바라 볼 수 없었다. 계곡의 철쭉과 야생화만이 나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차라리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석교를 지나서 우측으로 향하는 세석의 문이 열리는 길 주변에 만개한 연분홍 빛 철쭉이 나의 키 보다 높이 솟아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운무 속의 철쭉은 나의 손을 더듬게 만든다. 산장에 들러 쉬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자신이 쑥스러울 것 같아 이내 무시하고 영신봉으로 오른다.

 

영신봉 오름길에서

 

운무에 쌓인 영신대 제단

 

 5월17일 영신 제단의 모습

 

-나 홀로 영신대에서.

내가 부지런히도 이곳에 올라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472년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신 김종직이 지리산 기행 하면서 영신사에서의 기록을 한두 개 만이라도 흔적을 찾고 싶었는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무의 방해로 결국 영신사의 모습은 마음으로 담으면서 제단을 거닐어 본다. 그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정말 왜구들은 참으로 잔인한 도적들이다. 숯불로 돌부처의 살을 지져 소망을 바랬던 일과 천왕봉에서 짙은 물감으로 성모석상을 농염하게 화장 시켰다는 사실들이 모두 생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듯이 이렇게까지 이곳 돌부처에도 똑똑하게 흔적을 남겼으니……

 

 

선인 김종직이 말한 창불대의 모습

 

영계인가 옥천인가?

 

돌부처의 한 부분을 조금씩 태우면 미륵세상을 만날 것이라 하여 이렇게 상처를 남겼으니 황 당무개함이 이와 같다 할 것이다. 북쪽의 두 바위가 높이 솟았는데 소위 창불대다. 동쪽 벼랑에는 영계가 흐르고 서쪽 바위틈에는 샘이 솟는데 이 샘을 옥천이라 불렀단다. 그러나 영신대의 실제모습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주위의 불에 탄 흔적들과 가끔씩 찾아 드는 무속신앙인들의 소란스러움과 일부 몰지각한 산 객들의 취사행동으로 영신사의 자연경관마저 크게 훼손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상하게 적어놓은 기행문의 숙제는 또 다시 찾아 풀어야 할 숙제로 남기고 운무를 밀쳐내며 이곳을 떠난다.

 

 

 

 

큰새게골의 상부의 모습

 

-큰새게골을 향하여

풀지 못한 숙제를 가득 떠 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가는데 몇 번의 알바가 시작되고 있었다. 분명히 그 길이 맞을 것 같은데 아니고, 그러다가 손에 잡히는 통신수단이 못마땅하게 여겨지지만 ……

결국 의지하는 나의 산행 스타일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곡과 이어지는 영신대 구간의 혼란을 해결하니 길은 쉽게 연계되고 있었다. 비경의 자연세계를 뚫고 내려오는 이 코스가 독특한 산행의 묘미를 더 하고 있구나.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셀프사진을

 

 

 

대성폭포의 모습

 

-대성폭포에서.

잠시 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성폭포의 장대함이랄까 아마도 지리산의 폭포 중에 가장 큰 규모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그재그 4단으로 이뤄진 폭포 중간의 암반은 많은 풍류객들을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며 위쪽으로는 사람이 오를 수 없는 암봉 위에 소나무의 청정한 절개가 논개의 정조 보다 더 굳게 뻗어 있구나. 며칠 전에 다녀간 S님과 그의 일행들은 과연 여기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쪽에서 한 폭으로 디카에 담으려고 하였으나 그 길이가 얼마나 길던지 아래쪽이 보이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모두를 담으려 하였으나 이제 위쪽이 보이지 않으니…

 

 

 

큰새개골의 협곡들과 어우러진 수중의 모습

 

폭포 우측으로 어렵사리 내려와 아직 시들지 않은 철쭉과 이따금씩 반기는 함박꽃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깨끗한 반석 사이로 흐르는 물은 금강산의 옥류계곡을 능가하며 마치 수중궁전으로 들어 온 기분이다. 계곡 양쪽에 암벽이 내리 꽂히면서 협곡을 이룬 형상은 설악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베껴 놓은 형상이로다. 정말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무릉도원이라 칭하면 과장된 나의 표현이라고 할까. 이윽고 너덜지대가 끝나는가 싶더니 임시가옥의 흔적인 샘터에 와서야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고로쇠를 채취 할 때 이용하는 임시가옥으로 추정된다. 15여분 길은 이어지고 이내 대성골코스인 큰새게골 다리를 만나게 되면서 사람들의 흔적이 시야에 들어 온다.

 

큰새개골 다리에서

 

작은새개골 다리의 모습

 

원대성 마을에서

 

-산행을 마치면서

이곳에서 의신까지의 4.8km은 지루한 감은 있지만 길옆으로 피어난 야생화와 함께하면서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1952년 빨치산 최후 격전지인 이곳 대성골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이 이뤄졌고 불과 4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대성골엔 당시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무심한 대자연은 수천 년 변함없이 그대로 인간이 하는 일을 모른 듯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다. 오늘도 비운의 사연을 간직한 대성골은 도도히 흐르고 있으니……

 

야생화:붓꽃

-일정정리.

10:43 산행 시작(거림주차장).

11:10 첫 이정표(775) 거림 1.3/세석4.7

11:25 천팔교(940) 거림 2.4/ 세석3.6

11:40 북해대교(1060) 거림 3.2/ 세석2.8

11:56 샘터(1240) 거림 3.9/세석2.1

12:16 세석교(1395) 거림 4.7/세석1.3

12:40 세석산장

12:50 영신봉(1651)

13:00~13:20 영신대(1515)

14:05 대성폭포(1160): 암반의 4단 폭포.

14:48 샘터(855)

15:00 큰새게골 다리(810) 세석4.3/의신4.8

15:13 작은새게골 다리(680) 세석 5.2/ 의신3.9

15:35 원대성 마을(530) 세석6.6/의신2.5

16:10 산행종료(의신마을)

 

산행거리: 약15.1 KM

산행 시간: 5시간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