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만수봉(萬壽峰) 산행기
(2005년 6월 2일/덕주골 휴게소- 월악산장- 왕관바위-전망암-덕주봉-만수봉-용암봉-자연학습원- 만수교- 만수휴게소/ 고양시우정산악회 따라(회장: 조완 총무:전경숙 대장: 손남규)

한국의 최대 등산 사이트 ‘한국의 산하’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지리산, 설악산, 북한산, 덕유산, 소백산, 대둔산, 치악산, 한라산, 태백산, 관악산, 계룡산 다음으로 12번째가 충북에서 제일 높다는 월악산(月岳山)이다. 한국산하를 찾는 네티즌의 접속 통계로 본 순서다.
그 월악산을 간다는 소식에 고양시우정산악회 따라 가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가려던 월악산 주봉인 영봉(靈封)이 아니고 몇 년 전에 다녀와서 산행기를 쓴 만수봉(萬壽峰)이었다.
만수봉은 월악산 남쪽 4km에 위치한 포암산(961.7m) 사이에 있는 산이다.

*. 망설이던 월악산 만수봉 길

그러나 등산회에 전화로만 예약한 상태에서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산악회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서 따라 나섰다.
 일산신도시에서 아침 5시 25분에 떠나 덕주골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9시 45분. 비 소식  예보와는 달리 6월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그래서 우리들은 준비해온 비옷을 차에 두고 월악산장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산악회요, 사람들이라서 떠나오기 전에 혹시나 ‘벙가 벙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란하게 오가는 버스에서 춤추는 산악회는 아닐까. 올라간 곳으로 되돌아오는 멋없는 원점회귀 산악회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산악회 조(趙) 회장님은 회원들의 아기자기한 산행의 멋을 주려고 새로운 등산길을 찾아 코스 헌팅을 다녀올 정도로 적극적인 분이었고, 비 소식으로 24명으로만 떠나와서 오늘은 분명 적자 운행을 하게 되었건만 그걸 한 번도 내색하지 않는 너그러운 산꾼인데다가 산에 대하여서는 박학다식한 그런 분이어서 내가 찾던 산악회를 이제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우린서로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번의 만수봉 코스도 전에 다녀온 코스가 아니라 새로운 길이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한 가지 남아있는 걱정은 나에게 있었다. 나의 느린 산행 속도가 다른 분들께 방해가 되면 어쩐다지-.

*. 아기자기한 멋진 등산 길
 오늘도 맨 끝에서 카메라로 기록하며 산행을 하는데 다행히(?) 나와 같은 속도의 여인 둘이 있다.
산악회 등반에서 맨 끝에서 가게 되는 사람은 바로 앞선 사람을 놓치지 말거나, 아니면 수런수런 떠드는 소리만이라도 들으며 가야하는데 오늘은 뒷분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속도를 조정하면서 적당히 쉬면서 오르고 있다.
능선 북쪽으로는 난리가 나도 안전한 땅(兵禍不入之地)이라는 덕주계곡과 남쪽으론 고무서리골을 끼고 양쪽을 내려다보며 오르는 덕주봉 능선 길이다.
 등산입구는 풀밭을 거니는 듯하더니 무덤을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 길 중에는 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길이 있다. 성터였다.

 이곳이 옛날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였다더니 그때의 성 덕주산성(德周山城)인 모양이다.
 덕주((德周)란 신라의 마지막 비운의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덕주공주(德周公主)와 연관된다. 신라가 망하고 금강산으로 향할 제 누이동생 덕주공주는 금강산 행을 포기하고 오빠와 떨어져 월악산에 머물면서 망국의 슬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래서 덕주사, 덕주골은 그때 덕주공주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덕주봉 능선 길에서는 멀리서 월악산의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는 덕주산성 동문, 덕주사 전경, 월악을 휘감아 도는 송계리의 원경도 그렇지만
 
싱그러운 한여름 산 중턱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에 새긴 마애석불을 바라보는 것 또한 그러하다.  덕주공주가 자기의 형상을 조각하게 하였다는 보물제406호인 덕주사 마애불이었다.

절벽 길이 있었지만 그런 곳에는 어디나 안전한 밧줄이 매어 있었고 그 밧줄을 피해 그냥 올라도 아주 위험하지 않은 적당히 위험한 스릴 만점의 아기자기한 그런 암릉이었다.

왕관바위를 지나니 절벽이 있고 밧줄을 타고 오른 곳에 전망바위가 있다.

저 남쪽 멀리 좌측으로 구름에 쌓인 산이 문경새재를 감싸고 있는 1,106m의 주흘산(主屹山)이고 오른쪽의 톱니바퀴처럼 들쑥날쑥한 산이 그 산줄기인 925m 부봉(釜峰)이다.
신기하게도 정상이 가까워지면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첫 번째 허리정도의 산죽군락이 끝난 곳 위가 바로 893m의 덕주봉(德周峰)이었다.
그 정상은 나무들로 전망이 막혀 있는데 표지석 대신에 '823m 덕주봉'이라고 나무에 써 붙여 있고, 바로 그 앞에 성황당 같이 엉성한 세모형의  돌 더미가 쌓여있다.

*. 만수봉의 기송(奇松)

월악산에는 와송(臥松)이 있는가 하면 좌송(坐松)이 있더니

만수봉 하산길에서 천둥벼락과 함께 방금 내린 비에 흠뻑 젖어 가뜩이나 붉은 몸이 더욱 붉어진 알몸을 들어내고 있는 적송(積送)이 있어,  산길에서 비 맞아 착 달라붙은 여인의 육체를 훔쳐보는 것 같은 그런 황홀한 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이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향하여 디카가 가장 두려워하는  비속이지만 몇 번이고 사타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가던 조 회장이 나를 부른다.
“이리 와 보세요. 여기 멋진 사진 거리가 있어요.”
송추에서 본 여성봉‘, 삼막사의 여근석, 전등사의 젖통을 드러낸 벌거벗은 여인상의 나무를 보았더니, 여기 서 있는 소나무는 신기하게도 여성이 알몸으로 하늘을 향하여 두 다리를 벌리고 요가를 하는 모습니다.
오름길에서 보면 엄지손가락  몇 개가 들어갈 크기의 항문도 동그랗게 패여 있었고, 내림 길에서 보면 여인의 거시기도 보인다.
덕주 능선에서 만난 소나무이니 이 나무 이름을 덕주공주송(德周公主松)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결례일까. 사진을 찍다 보니 장난기가 감돈다.
.
만수봉의 저 소나무,

남세스럽게 무얼 하나.
하늘 향해 짝 벌리고  요가를 하시는가.
달린 게
하나도 없으니
암소나무가 분명한데.
              -여인송(女人松)



 

*. 덕주능선에서 바라보는 월악 영봉(靈峰)
 이 덕주봉 능선은 월악산에서 가장 늦게 개발된 코스여서인지, 아니면 비 소식의 일기예보 때문에서인지, 종일 한 사람의 다른 팀의 등산객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
오름길에 하나도 없는 이정표를 등산회의 리본이 대신하고 있었고, 오르기 어려운 릿지 구간에는 어김없이 설치한 지가 얼마 안 되는 하얀 밧줄이 매어있었다.  

길은 성벽 같은 암릉으로 한 두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많았다.
  드디어 신라 때는 월형산(月兄山)이라고 했고 지금은 한국의 마타호른(Materhorn)이라고도 하는 월악산의 영봉(1093m)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터호른(Materhorn)이란 빙하로 깎기운 스위스의 삼각형 모양의 바위 정상의 산 마터호른(Materhorn, 4,477m)을 닮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옛날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봉우리 모양이 둥그스름한 달[月)] 같이 생겼다 해서 달 ‘月(월)’ 큰 산 ‘岳(악)’ 月岳山(월악산)이라 한 것 같다.
그 영봉(靈峰) 좌측으로 보이는 호수가 육지의 바다라는 충주호이다.
북한강에 소양호가 있다면 남한강에는 충주호가 있다. 총저수량 27억 5,000만 톤, 둘레 약 130여km나 되는 바다와 같은 호수다. 금년 봄에 가보았더니 그 호수에 월악산의 그림자가 비추고 있었다.
마의태자가 누이 덕주공주를 월악산에 두고 떠나면서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월악산이 물에 비치고 항구골에 배가 닿으면 구국(求國)의 한이 풀릴 것이다."

*. 만수봉에서 맞은 우박과 장대비
 다시 또 산죽길이 시작되면서 유난히 휘파람새가 많았다. 휘파람으로 흉내를 내면 소리가 끝쳤다가 다시 들기기 시작되는데 ,이 호기심 많은 휘파람새는 따라와 누군가 살피고 가는 듯했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나는 기진맥진하였다. 모자를 주머니에 접어 넣고 대신 머리에 두른 등산용 스카프를 벗어 벌써 다섯 번째나 짰는데도 젖은 땀이 물을 짜내는 것 같았다. 아침 식사가 소홀해서인가. 점심을 들지 않아서 그러한가. 아니면 탈진 상태인가. 소금을 가지고 올껄 그랬구나.
이런 때는 소나기라도 한 줄 내렸으면 하는데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다.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하늘이 점점 컴컴해 지더니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와 지더며 번쩍 번쩍 벼락이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아 겁이 더럭 났다. 그러더니 후드득후드득 제법 굵은 비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급히 판초를 꺼내 입었지만 요번에는 가지고 다니던 스틱에 벼락이 내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난다. 그렇다고 맘먹고 준비한 고가의 스틱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등산 스틱 손잡이 부분이 고무나 나무인 것이 산에서 만난 벼락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만수봉 정상에서는 앞서간 조 회장과 일행이 점심을 하다가 갑자기 내리는 장대비에 깔개를 우산처럼 받쳐 비를 긋고 있다. 갑자기 우두둑 우두둑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뉴월에 웬 우박인가. 우리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하산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산길이 갑자기 흙탕물이 되어 시내를 이루어 흐른다. 잠깐 사이에 빗물에 신발 속까지 완전히 젖어버렸다.
“나무뿌리를 밟지 마세요. 미끄럽습니다.”, “핸드폰 같은 전자제품은 물에 약하니까 배터리를 빼시구요.”
급히 Mp3를 가방 깊숙이 넣고, 핸드폰 배터리를 빼어놓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상 모습을 찍지 않을 수 없어서 판초 사이로 조심스럽게 렌즈를 내놓고 대충 겨냥하여 사진을 찍었다.
정상석은 없이 나무에 써놓은 ‘만수봉 정상/해발 983m’ 표지를- 중심으로 해서.
조 회장님은 정상에 오기까지 맨 끝에 가는 우리들을 위해서 취나물을 캐는 것으로 그 속도를 맞추어 주며 우리들의 미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눈물겹게 고맙더니,  비를 만나니 오랜 동안의 산악대장의 경험에서 쌓인 노하우가 막 쏟아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김수미의 노래 ‘애모’의 첫귀절이 생각난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
 만수봉에서 만수교로의 하산길은 옛날에 없던 쇠 난간을 설치하여 놓아서 빗길이지만 안전하고 여유 있게 내려올 수 있었다. 용암봉(892m)을 지나서부터는 천둥은 물러가고 어서 어서 가라고 가랑비가 오고 있어서 다시 Mp3의 ‘애모’를 들으며 유유히 하산을 한다. 음악은 이렇게 한가한 시간과 짝하는 여유인가 보다.
 선두 구릅은 등산의 배테랑들이어서 용담봉를 거쳐 팔랑소로 향하지만 그것은 내게는 언감생심이라. 만수교로 향하는 1시간 30분 코스의 하산 길로 자연학습원을 향하고 있다.

또 다시 궂은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이 모인 멋진 우리 일산 우정산악회를 만나서  오늘은 종일 행복하였다.
비오는 날은 개인날의 나머지고, 오후는 오전의 나머지고, 하산은 등산의 나머지이니 내려가서 하산주를 기분 좋게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