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일자 : 2005년 5월 28일(토요일)

2.산행경로 

3.산행거리 및 고도표: 약 9.5km

4. 산행시간 : 2시간 21분 (10:08-10:20-(미술관 관람)-10:55-13:16)

5. 산행인원 : 홀로

6. 날씨 : 구름이 거의 없는 맑은 날씨로 기온은 15 ℃ ~ 25 ℃정도

 

7. 遊山記

 

작년 이맘때 인터넷 카페‘삼가련’에서 활동하고 있을 즈음 기획했던 예술 산행 길에서 서울 성곽을 올라 계동 산길로 빠져 다시 청와대 삼청동길과 효자동 사랑방, 자하문 부암동길에서 부암동 백석동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거의 한 해 만에 다시 간송미술관에서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 대전을 한다기에 가족들과 함께 미술관 기행을 나서볼 까 하였으나, 머리 굵어진 요놈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다 빠져나가고, 아내마저 장모님의 부름을 받아 홀로 나선 길, 지난해에 가지 못했던 북악산 길을 찾아볼 작정을 하게 되었다.


한성대 입구역에 도착한 것이 10시 쯤, 부지런히 걸어 先蠶단지와, 정법사,길상사 초입을 지나 간송미술관 전시장에 들렀다. 벌써부터 학생과 아이들로 1,2층 전람실은 북적이고, 빈틈을 노려 산수화에 집중한다.


눈에 띄는 작품으로는 지난번 금강산에 갔을 때 실물로 구경한 金剛圖로서 대형 족자 그림 6점(환선정,구룡연,옹천,명경대,시중대,현중암), 17인치 모니터 만한 그림 6점(맥판,선담,묘길상,마하연,구룡연) 소품으로 5점(영원암,비봉폭,수미탑,피금정,묘길상)이 전시된 것을 보게 되었다. 특색있는 것으로는 묘길상 마애불의 저마다 다른 필치와, 구룡연의 대형 그림과 유홍준씨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었던 중형 그림의 차이점이 두드러져 보였다는 점이었다. 구룡연을 예롤 들면 작은 그림은 그저 아기자기한 느낌의 古拙함이 주된 느낌이었다면 대형 족자화는 雄渾한 구룡폭의 기상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그림의 배경은 단원이 44세 되던 해에 정조의 명을 받고 복헌 김웅황과 함께 금강산에 있는 4개군의 풍경을 그린 것(金剛山 四郡帖)으로 南宗畵風의 韻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산천의 抒情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謙齋 정선에서부터 비롯된 眞景山水와 南宗文人畵가 하나로 만나는 예술적 운치가 뚝뚝 돋는 듯 하였다.


이밖에 주목한 것은 산수화 畵題를 四言絶句로 삼은 그림들로서 이를 적당히 배치하면 그대로 풍경화가 되는 것이, 원래 붙여서 그린 그림을 분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792년 가을 정조의 명을 받아 그린 그림 위에 정조대의 문신인 홍석주가 각 그림마다 칠언절구를 지었다는데 畵題 그대로 멋드러진 한시가 되었다.


老松掛雲 

絶壑松瀑

水流花開 

觀山濯足

空山無人


약 40분간의 관람을 마치고 지난 해 갔던 길을 따라 서울 성곽길을 오르니 약간 땀이 날 정도에서 성곽길이 부대정문에 막혀있었다. 곧바로 우회전하여 성북공원 길을 따르다가 앞서가는 여인네와 노인장께 북악 팔각정 가는 길을 물으니, 부대 철망으로 가로막혀 길상사 쪽으로 내려가서 북악스카이웨이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고 斷言한다. 시원한 계곡 길을 걸으며 왼쪽 위로 올려다 뵈는 성곽을 주시하며 어디 샛길이 없는가 찾아보지만 등산로 폐쇄라는 표지판만 걸려있을 뿐 노인장은 등산을 말린다. 하릴없이 가르쳐 준대로 약수터를 지나 공원을 내려오니 우측으로는 무허가 주택이 있고 좌측으로는 아담한 주택이 있는 익청길을 지난다. 삼청각으로 가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다시 배밭길을 걷기 30분, 여긴 외국 대사관저들이 즐비하고 스카이웨이 오름 길로 향한다.


방금 지난 배밭길 삼거리의 길상사에는 일제시대의 문인 백석과 시대의 자유인이었던 자야 김영한과의 사랑의 역사가 실려있다.


 시인 白石이 고향 함흥에서 스물여섯에 김영한을 만나 이룬 역사를 살펴보니, 진향(김영한의 예명)이 사들고 온 '당시선집'을 뒤적이다가 이백의 시 '子夜吳歌'에서 따서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을 예감했던 듯,'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준다. 김영한은 후에 성북2동에 요정 대원각(大苑閣)을 경영하다가 시주했다는 사연이 후일담으로 남았고.........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라는 시에서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


다시 그의 산에 관한 시를 한편 살펴보니


■ 적경(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아내는 첫아들을 낳었다


인가(人家) 멀은 산(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마침내 북악산길 초입에 다달아 초소의 초병에게 물으니 24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통행금지 일뿐 도보통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천천히 길을 오르니 우측으로 성북구에서 시설(2005.6.20 완공 예정, 성북구민회관에서 성북구 경계인 북악산 중턱까지 3.4km구간 도로에 산책로를 조성할 예정이다. 다만 안전상 필요한 부분인 2km 구간은 가드레일을 설치하게 된다)중인 산책로가 나타나고 길 따라 걸으니 아스팔트 팍팍한 길을 걷지 않아서 좋다. 그 길에서 白狗를 데리고 산책중인 노인장 한 분을 만나 이 길이 성북구청장의 선심성 공약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고, 내가 지나온 부근의 유래를 알게 된다. 성북공원부터 서울 성곽 안 그리고 정릉 국민대까지의 계곡이 서울 최초의 철거민촌이었으며 김형욱 정보부장 시절에 땅을 불하하여 호화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계곡은 원래 꿩의 천국으로서 ‘꿩 바다’로 불렸다는 이야기(서울 성북동은 캐나다, 독일, 일본, 핀란드, 호주 등 주요국가 대사관저가 모여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캐나다 대사관저는 북악스카이웨이를 타고 돈암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레스토랑 '곰의 집' 바로 못 미쳐 아래쪽에 있다. 캐나다 대사관저가 터잡은 주변 일대는 예부터 꿩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꿩 바다 마을'로 불린다. )도 곁들여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공무원들의 지명 짓기 탁상행정에 대한 나무람을 들어주는 것을 끝으로 아스팔트 길 옆으로 가는 산행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약 30분후 산책로는 끝이 나고 충정대 부대 앞을 지나 팔각정까지는 15분, 아스팔트길을 걷느라 피곤해진 다리를 팔각정에서 쉬어간다. 북쪽으로 수리봉부터 시작하는 삼각산 연봉이 문수봉,보현봉,형제봉 능선까지 뚜렷하고, 눈앞에 다가설 듯하다. 남쪽으로는 뿌연 구름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고 촬영도 금지인지라 눈요기만 할뿐이고.


또다시 길을 나서니 10분만에 오늘의 첫 산행표지판 (종로구청 부설)을 만나니 왼쪽으로 서울 예고쪽으로 1.2km 오른쪽으로 평창동으로는 2.3 km거리라고 알려준다. 스카이웨이를 계속 걸으면 예전에 가보았던 북악산 뒷골로 가는 길도 찾았을 법하지만 그곳은 포기하고 서울예고쪽의 오솔길을 따르니 사람 하난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길이어서 쉬어 가면 좋으련만, 혼자서는 孤寂해 보여 졸졸졸 흐르는 계류 따라 약 20분간 걸어간다.


이윽고 서울예고 뒷편이 나오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것이 마땅찮아 왼쪽으로 돌아갔더니 결국 정문으로 나오지 않고는 안되도록 막혀 있었다. 한창 봄 축제중인 예고 교정을 지나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고도를 보니 100여 m, 거리는 약 10km 정도였고, 유진상가에서 하차하여 귀가길을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