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조선개국 전설을 담고, 38경의 비경을 간직한 남해금산
             
△ 일 시 : 2005년5월 29일 (日) 날씨 맑음
△ 목적산: 남해금산(경남 남해군 상주면, 이동면,삼동면)- 해발-681m
△ 산행자: 산을 좋아하는 모임회원 8명
△ 산행코스 : 19번 국도변(상주면 두모마을위 속칭 선녀골) → 서불과차 →부소암→
             상사암→쌍홍문→흔들바위→보리암→봉수대(정상)→동쪽능선→금산입구
             (19번 국도변)

 

  산행거리는 -이정표가 없어 정확치는 않으나 약 9km정도

  산행시간은- 09:00 - 13:45(4시간정도면 충분함)

  만보계 - 9,886步

  

△ 산의 내력           
  금산의 원래 산 이름은 보광산이었다.원효스님이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

  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금산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 이전에 이성계 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보광산 에서 1백일간 기도를 올렸는데,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되자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것에서 유래한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금산은 아름다운 산이다.마치 고운 비단 치마를 입고 있는 것처럼   산이

 수 려 하고 눈부시게 하는 비경이 곳곳에 숨어있다.금산의 제1경인 쌍홍문을 비롯,무려 38경이

  해발 681m의 조그마한 산에 자리하고 있다.

  상주면에서 등산로를 이용하면 온갖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금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금산의 등산길은 사방으로 여러 개의 길이 있으나 그 정문은 쌍홍문(雙虹門)이다. 두 개 의  큰 굴이

  웅장한   바위에 뚫려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바로 바위 전시장이다. 굴속은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 

  이 분다.
 

△ 산행지도   

  

△ 산행기
  어제의 지리산 종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아침에 일으킬려니 전신이 뻐근하고
  아프다 아마도 하산 축하주가 과하였던 모양, 술김에 오늘 산행에 참여하겠다고
  약속을  한터라 불편한 몸을 추슬러서 모임 장소에 나가니 벌써 다들 나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평소의 다니던 등산로가 아닌 숨겨진 등산로를 이용 금산으로 등산계획을
  잡았다고 총무님께서 귀띰한다

  등산 초입을 지나 30여분 오를려니 다리가 당기고 몹시힘이들고 진땀이 흐른다
  다른 사람들 먼저가라하고 혼자서 천천히 컨디션 조절을 하고 30여분 지나니
  본래의 건강 상태가 회복이 되는 것 같다 .


 

 등산로 초입(선녀골)

  

  

  등산로는 평탄하고 그늘진  흙길로 오르기가 힘들지 않고 비교적 완만하다

 

완만하고 평탄한 그늘진 숲길을  30여분을 오르면 등산로 왼편 진시왕의 지시로 불로초를

구하려 남해금산을 다녀갔다는   서불의 흔적이  남아있는 석각을 발견하게된다.

  

남해 상주리 석각
지정번호 : 기념물 제 6호
지정일자 : 1974. 2. 16
소재지 :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산4-3
시대 : 시대미상


남해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상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두모마을 표지석과 함께 두모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두모마을 표지석에서 상주쪽으로 5백여m 가면 길 왼쪽에 금산 부소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2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상주리 석각'이라 부르는 글이 새겨진 거북바위에

닿는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시종 서불을 불렀다.
"서불아 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줄 터이니 불로초를 구해 오라"
서불은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다. 늙지 않게 해 주는 풀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 위에 글을 새기고 갔다. 이런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가 남해에 있다.


이 문자는 고대 역사를 밝히는데 귀중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유적이다. 바위가 거북 모양을 하고 있어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이곳 암각화는 관심있는 학자들의 현장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서불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왔다가 사냥을 즐기다가 갔다"라고 쓴 글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들도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문자라고 하는 사람, 고대 거란족의 문자라고 하는 사람, 훈민정음 이전의 한국 고대문자라는 사람, 산스크리트 계통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귀인의 사냥터'라는 그림 표지라고 주장하는 사람 등등 아주 많은 학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답은 '알 수 없다'가 정확하다.


서불 일행은 불로초를 구하려 온 것이 아니라 망명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진나라의 혹정을

피해 망명한 자들이 한반도에 건너와 일부는 일본으로, 일부는 남해안에 그대로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 중 일부가 서불 일행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산을 비롯해 경남·제주 일원에는 신선

사상이나 서불과 관련된 전설이 숱하다.
이처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거북바위 옆에는 거대한 바위벼랑이 있다. 그위로 올라가면 두모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편 두모마을 표지석 바로 앞집의 고구마 밭이랑에는 비늘 달린 짐승의 몸통 같이 희귀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비늘무늬 바위는 거북바위, 동이바위와 더불어 상주리 일대 바위 문화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

  

등산로  주변의 천남성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상주 두모마을과 해안의 풍경

  

좁은 석문도 통과하고

  

암벽으로 난 좁은 사나운 통로를 올라야 한다 몸이 좀 비대한 사람은 통과하기가

상당히 곤란할 정도 입니다.

  

부소대와 암봉

  

부소암

  

부소암의 곤충

  

  

기암

  

암봉 군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건너편의 금산보리암을 비롯한 아름다운 풍경

  

상사바위에서 조망한 상주해수욕장과 바다 풍경

  

석문을 통과하고

  

아름답게 핀 붓꽃

  

일월봉

  

좌선대 (봉우리에 오르면 한사람이 좌선을 하고 앉으면 꼭 맞는 자리가 있다)

  

오늘 K 고문의 결혼 28주념 기념일이라 한다.

급히 매점에서 막걸리를 구입 산상 축하 막걸리  결혼 기념 축하주를 한잔씩 하고 쌍홍문 .

보리암.을 향하여 간다

  

흔들바위- 한사람이 흔드나 열사람이 흔드나 흔들리는 강도가 똑 같다는 흔들바위

  

상주면 금산입구 매표소에서 올라오는 금산의 관문 쌍홍문

  

쌍홍문 앞에 위치한 장군암 -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서 살아가는 송악이  인상적이다.

  

쌍홍문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쌍홍문 내부

  

보리암의 해수 관음보살상

  

  

   보리암전 삼층석탑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 74호
   지정일자 : 1974. 2. 16
   소재지 :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산2065
   시대 : 고려시대
 남해금산 상봉에 위치하고 있는 보리암 앞에 상주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서 있는 탑. 이 석탑은 여러

 가지 전설과 얘기를 남기고 있다.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 갔다가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오지를 못했다. 그런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인도에만 있는 석재)을 싣고 오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오게 된 것이다. 이 돌을

가지고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세웠다고 한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상륜부 이상은 파손이 약간 되었으나 후에 복원되었다. 석탑은 1층부터 3층 옥개석(탑의 맨 위쪽에 있는 덮게 돌)까지 높이는 1.8m이고 1층 한쪽의 길이는 1.2m이다. 3층 탑신에는 우주(隅住)가 새겨져 있고, 상륜부(相輪部)에는 귀한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 앞에 서면 남해 금산의 선경(仙境)과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의 미소도 함께 감상할 수 있고, 뒤로는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다도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불가사의한 일도 있다. 탑에 나침반을 놓으면 '자기 난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나침반을 놓는 곳에

따라 북쪽을 가리켜야 하는 나침반이 놓는 방향에 따라 동서남북이 모두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원리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일부 풍수학자들은 탑 아래로 우주의 지기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는 탑 안에 사리가 있기 때문에, 혹은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보리암에서 건너편에 있는 상사바위 조망

  

한국의 미- (하늘을 찌를듯한 기상 ,  보리암의 처마)

  

휴일을 맞아 전국의 유명 기도처 답게  많은 신도와 유산객 등산객 들로 참배를 드릴

장소가 부족한 보리암의 풍경

  

보리암을 돌아나오면서 본 풍경

  

보리암을 뒤돌아 나오면서

  

봉수대 정상아래 기암 , 기암에는 글씨도 새겨져 있다

  

한림학사 주세붕 이 지역 유지들과 놀다갔다는 내용인 듯

  

봉수대 정상의 모습

  

봉수대에서 바라본 오늘 하산  하여야할 등산로가 훤히 보인다

방송탑 못가서 첫번째 안부에서 넓은 광장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항상 즐거운 중식시간

  

하산 하면서 뒤돌아본 금산 대장봉

 

하산길 다시 경사진 길을 조금 올라 안부에서 우측으로

 

 

이곳에서 직진하지 말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면 하산하는 길이 뚜렷하다.

 

하산하면서 전망바위에서 올려다본 금산과 보리암 (줌 촬영)

  

계속 능선을 타고 가파른 계곡에 내려오면 하천을 건너고 조금 걸으면 바로 대로변(국도19호변)

금산입구로 나오게되고  등산을 종료한다.

  

등산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오늘 걸어온 금산 주능선 , 가운데 우뚝솥은 바위가 상사바위다.

  

평상시 다니던 정규 등산로를 타지않고 숨겨진 등산로를 한번 이용 하여 보았다.

역시 금산은 명성에 걸맞게 곳곳이 아름답고 전망도 좋고 이름값을 하는 산이다.

지리산의 여독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데다 10km  가까운 거리를 걸었더니 종아리가 뻐근하다

가고싶은 곳은 사우나 뿐이다 . 급히 귀가를 서둘러 사우나에가서 2일간의 피로를 달랜다

  

  

2005년5월 29일 아름다운 남해금산을 다녀와서

                                 이 향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