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종주(육십령-삼공리) 아! 차라리 이자리에서 돌이 되고 싶어라.


 

산행지 : 덕유산종주(육십령-향적봉-칠봉-삼공리)

일   시 : 2005. 6. 19(일)맑음

산행자 : 산사랑방 홀로산행

교   통 : 자가운전

 

차량이동경로

01:00 대구출발

02:30 함양나들목

02:45 서상I.C

02:55 육십령휴게소

  

차량회수(시외버스 및 택시)

18:00 구천동 출발-18:45 무주 도착 (무주-동대전 직행) 3.000원 소요시간 45분

      구천동에서 무주행 막차는 20:00(완행)

19:30 무주 출발-20:30 장계도착(안성-장계-광주행) 3.400원 1시간 소요

      무주-장계 막차는 19:50

20:45 육십령도착(장계에서 택시로 이동, 소요시간 15분 10.000원)


 

산행경로

 

03:00 육십령 산행시작

03:45 할미봉

05:00 교육원(1.6km)갈림길

06:20-06:30 서봉(장수덕유산)

07:05-07:15 남덕유산

07:30 월성재

09:00 삿갓봉

09:20-09:55 삿갓대피소 식수보충 및 식사

11:10 무룡산

12:50-13:00 동엽령

14:00 백암봉(송계삼거리)

14:30 중봉

15:05 향적봉

15:15 설천봉

16:00 칠봉

16:20 칠봉약수

17:00-17:10 인월담

17:30 삼공리 매표소 
 

총 산행거리 : 31.15km (현지 이정표기준)

총 산행시간 : 14시간 30분 ( 식사 및 휴식 포함) 
 

육십령→2.3←할미봉→2.92←교육원갈림길→ 2.13←서봉→1.5←남덕유산→1.42←월성재

→2.94←삿갓봉(대피소)→2.14←무룡산→4.2←동엽령→2.3←송계삼거리→1.0←중봉

→1.1←향적봉→3.5←칠봉→2.2←인월담→1.5←삼공리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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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당신 - 육십령 -

◆ 덕유의 서자, 스릴과 공포가 교차하는 - 할미봉 -

◆ 하늘 바람에 넋을 잃어 - 남덕유산 -

◆ 지루하고 외로운 길 - 동엽령 구간 -

◆ 아! 차라리 여기서 돌이 되고 싶어라 - 중봉에서 -

◆ 첫 경험 같은 신비함으로 - 칠봉구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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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당신 - 육십령 - 
 

청소년 대표팀 축구중계가 끝나는 새벽 1시

꼭지(아내)의 걱정스런 눈빛을 뒤로한 채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선다.

24시 김밥집에 들러 김밥 몇 줄을 사고는 마의 88고속도로로 육십령을 향해 어둠속을 질주한다. 
 

덕유산종주를 위해 자가운전으로 육십령에 가는 길은 무척 쉽다.

하지만 종주 후 삼공리에서 육십령까지 뒤돌아오는 일이 엄청 힘들다.

한마디로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그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매주 덕유산으로 달려갈 지도 모르니....

 


 

                                                 ▲육십령에 세워진 이정표 
 

육십령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벌써 관광버스가 한대 정차되어있고 한 무리의 산꾼들이 몸을 풀고 있다.

오늘은 꼭지도 없고 해병대도 없어 무척 외로우리라 생각했는데 동지(?)들이 있어

반갑기는 하지만 저 많은 인원이 할미봉을 넘으려면? 
 

후미에서 어정어정하다간 엉뚱하게 시간을 소비할 것 같아 선두그룹에 따라붙기로 한다.

맨 마지막에 출발을 한터라 선두와의 불빛은 좀처럼 좁혀들지 않는다.

10분여 지나고 서서히 오름이 시작될 즈음 선두가 잠간 휴식하는 틈을 이용해 추월한다. 
 

드디어 혼자가 되고

예전에 희미하게 들리던 발전기소리도 들리지 않아

더욱 적막감이 감도는 칠흑 같은 밤 
 

밝은 달빛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보이지 않고 우거진 녹음사이로

희미한 하늘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고 육산의 낙엽 깔린 포근한(?)길이 갑자기

험해지고 바윗길이 이어지니 드디어 할미봉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 덕유의 서자, 스릴과 공포가 교차하는 - 할미봉 -

 

덕유의 주 능선에서 벗어나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할미봉, 서자취급을 받아서 그런지

할미봉은 질투가 많다. 늘 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대간꾼들이나 종주꾼들이 지나가면

“너 혼 좀 나봐라”며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겨울철에 할미봉을 내려간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라 생명과도 직결된다.

북사면의 로프구간은 겨울 내내 빙판으로 이어져 있어 상당히 위험하고 또한

한사람씩밖에는 통과할 수 없어 상당한 주의와 인내가 요구되지만 스릴은 만점이다. 
 

제 작년 겨울에 애리한 허경숙님도 이 구간을 통과했는데 우리가 못 가겠냐며

꼭지와 할미봉을 내려가다가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빙판에 시껍한 구간이기도 하다.

그때 할미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까지의 막힘없는 조망은 참으로 좋았는데.. 
 


 

                                   ▲스릴과 공포가 교차하는 할미봉 로프구간 
 

작년 해병대와 함께했던 기백-황석산 종주길

능선내내 눈길을 마주하던 할미봉.. 야간에 이렇게 조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랜턴불빛에 비치는 할미봉안내판으로 조망을 대신하며 로프구간을 내려선다.

교육원갈림길에 도착하니 서서히 동이 트고 덕유의 아침이 열리기 시작한다. 
 


 

                        ▲할미봉을 지나 조망이 좋은 바위에서 서봉을 바라보며.. 
 

가장 일찍 일어나 재잘대는 산새들과 가슴깊이 스며드는 산뜻한 새벽공기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봉으로 오르니 남쪽을 향한 경사면에는

7월에 꽃피울 원추리들의 꽃봉오리가 탐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고지(서봉)가 저기인데..

 


 

                                              ▲서봉에서의 산꾼 부부 
 

서봉(장수덕유산)에 올라 아침햇살을 마주하며 가야할 주능선을 가늠하니

칼날 같은 능선으로 뾰족이 솟아오른 삿갓봉, 그 너머 무룡산을 거쳐 향적봉까지

오늘 걸어가야 할 전 구간이 날개 짓을 하듯 시야에 들어온다.

 

 

서봉에서 잠간의 휴식을 취하고

범의꼬리가 지천에 피어있는 군락지를 지나 남덕유산을 향해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서니

짙은 녹음사이를 비집고 햇살은 안개비를 뿌리듯 쏟아져 내린다.

 

  

 

◆ 하늘 바람에 넋을 잃어 - 남덕유산 -

 

태고의 원시림속으로

40여분 땀방울을 흘리며 자연의 향기, 초록의 신선함속으로 빠져드니

남덕유산.. 그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애무하듯이 파고든다.

겨울에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칼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는데..

 

오늘은 골골이 타고 오르는 시원한 하늘 바람이 좋아 느긋하게 앉아서 조망을 즐긴다.

희뿌연 안개같은 가스로 멀리의 조망은 좋지 않지만 남쪽 능선 따라 큰목재 위로

뾰족하게 솟은 칼바위와 월봉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작년여름 종주 때 해병대와 죽을 고생한 그 기백산과 금원산도 희미한 모습으로

또 오라며 유혹의 시선을 보내오건만 지리산 천왕의 모습은

하늘너머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남덕유산에서 뒤돌아본 서봉(장수덕유산) 
 


 

                      ▲큰목재 지나 칼바위와 월봉산, 멀리 희미한 마루금의 금원산과 기백산 
 


 

                            ▲삿갓봉과 무룡산 그 너머 하늘금을 긋고 있는 향적봉 
 

가야할 향적봉은 멀리 가물가물 하늘에 닿아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지만

시원한 하늘 바람에 떨어질 줄 모르는 엉덩이를 살살 달래며

삿갓봉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삿갓봉을 향해.. 
 

삿갓봉을 향한 길 또한 험하고 힘이 든다.

그 옛날 아리랑 12고개가 생각날 정도로 수없이 고개를 넘어야 하고

“여기가 삿갓인가? 저기가 삿갓인가? 아니다. 그 다음이 삿갓이다.” 
 

작년 종주때는 해병대가 있어서 위안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냥 무념무상으로 비우며 걷기로 한다.

연속되는 돌너덜과 바윗길이 물기가 있어 미끄러워 뒤뚱거리는 몸을 위안이라도 하듯

때늦게 무리지어 피어난 큰앵초가 방긋방긋 웃음을 터뜨린다.

 

 
 


 


 

                                        ▲삿갓봉에서 뒤돌아본 남덕유산과 우측의 서봉

 


 

                                         ▲삿갓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무룡산 
 

힘들게 오른 삿갓봉,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여기저기 눈도장도 찍고 그것도 모자라 사진까지 박아대며 대피소로 내려선다.

작년 겨울에 꼭지(아내)와 엉덩이 썰매 타며 내려갔던 구간인 만큼 그 경사가 심하여

조심스레 내려서니 대피소에는 많은 산객들이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샘터로 내려가 수통에 식수도 가득 보충하고 지금부터 무룡산, 동엽령을 지나

백암봉까지는 4시간여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대피소에서 식사를 하며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보강하려고 하지만 엉덩이는 그렇게 한가하도록 내버려두질 않을 눈치다. 
 

등산화를 벗고 못난 사랑방만나 생고생하는 발을 스트레칭해주며 잠간이나마 휴식을 준다.

작년에는 5월이라 대피소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갔는데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별로 컵라면 생각이 없다. 간단히 김밥과 과일을 먹고는 무룡산을 향해 서두른다. 

 


 

◆ 지루하고 외로운 길 - 동엽령 구간 - 
 

무룡산에서 동엽령까지의 지루하고 외로운 길.. 자신의 인내를 시험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무룡산부터 동엽령을 거쳐 향적봉까지가 덕유의 향기가 가장 짙게 묻어나는 곳이다.

지천에 피어있는 야생화와 하늘을 다 덮으려는 듯 울창하게 뻗은 상수리나무터널 
 

그리고 노랗게 단풍이 든 키 작은 산죽이 등로 옆으로 도열하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능선 내내 막힘없는 조망.. 4계절 덕유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그것이 우리가 애타게 목말라 하는 덕유의 향기인지 모르겠다. 
 


 

                                                            ▲무룡산 
 


 

                                     ▲무룡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삿갓봉 
 


 

                                   ▲무룡산에서 바라본 지나온 고봉들.. 
 


 

                                                     ▲동엽령 가는 길(1) 
 


 

                                                 ▲동엽령 가는 길(2) 

  

동엽령까지는 그렇게 힘든 구간은 아니지만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

그냥 걷는 것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겨울에는 유난히도 푸르던 산죽이

여름이 되면서 노랗게 단풍드는 것이 이상하고 또 어떤 것은 꽃을 피우고 있다. 
 

3-4년, 30-40년, 또는 100년.. 일생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산죽

꽃을 피우고 나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죽이 모두 말라 죽고 그 씨앗이 떨어져

다시 살아난다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일생에 한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산죽의 꽃 
 

동엽령에서 시원한 바람의 언덕에 앉아 얼려간 맥주 한 캔 들이키고는

그 다음은 백암봉, 대간이 갈라지는 송계3거리(백암봉)로 향한다.

앞으로 백암봉까지는 1시간, 정신력으로 싸워야 하고 체력으로 버텨야한다. 
 


 

                                                ▲백암봉 가는 길 

 


 

◆ 아! 차라리 여기서 돌이 되고 싶어라 - 중봉에서 - 
 

백암봉을 오르는데 다행이도 체력이 떨어졌다가도 잠간씩 쉬고 나면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을 보니 종주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1시간여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백암봉에 오르니 지나온 능선이 파도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백암봉에서 뒤돌아본 멀리 무룡산과 삿갓봉 
 

이제 종주는 성공한 셈이다.

여기서부터 삼공리까지는 충분히 걸을 수 있으리라. 서둘러 중봉을 오른다.

백암봉에서 중봉은 30여분 지척이지만 엄청 힘들게 느껴진다. 
 


 

                                                          ▲중봉가는 길 
 

끙끙거리며 중봉을 허리까지 올랐을까. 꼭지(아내)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힘들 제? 욕심내지 말고 곤돌라타고 내려 온나. 거창까지 마중 갈까?”

힘들면 무리하게 종주하지 말고 곤돌라타고 하산하라는 꼭지의 고마움이다. 
 

잠도 못 잤는데 종주까지 하고 어떻게 운전해 오겠냐며 거창까지 마중 오겠다는

꼭지의 마음에 지금까지의 힘듦도 산들바람 스쳐가듯 사라진다.

꼭지의 고마움을 가슴깊이 새겨 넣으며 답장을 보낸다. 
 

“걱정마라 예상외로 컨디션도 좋고 종주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거창에서 대구까지는 1시간거리이니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호언 아닌

호언장담을 하고 드디어 중봉에 선다. 
 


 

                                                          ▲중봉에서의 일망무제.. 
 

일망무제..

거침없는 중봉의 하늘.. 지나온 백암봉과 무룡산..

뾰족이 쏫은 삿갓봉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고봉준령의 위용 
 

아! 차라리 이 자리에서 돌이 되고 싶다.

덕유평전에 피어난 야생화.. 낮이면 그 꽃향기에 취하고 
 

밤이면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온몸으로 받는 덕유의 하늘아래 돌이 되고 싶다.

때로는 안개비에 젖으며 온몸으로 울더라도..

............................. 
 

힘들었던 만큼 발바닥에 묻어나는 덕유의 진한 향기에 취하며

향적봉을 향한 걸음을 계속한다. 
 


 

                         ▲덕유산에서 유난히 노란빛을 발하는 미나리아재비 
 


 

                                       ▲덕유산의 이름이 아리송한 야생화 
  


 

                      ▲백암봉사면과 덕유평전 전체에 골고루 퍼져있는 쥐손이풀 
  


 

                                          ▲덕유평전의 야생화와 향적봉 
 

 
 

향적봉에 올라

잠시 갈등을 한다. 백련사를 거쳐 삼공리로 하산하느냐.

아니면 칠봉구간을 답사하며 인월담을 거쳐 삼공리로 하산하느냐. 

 


 

◆ 첫 경험 같은 신비함으로 - 칠봉구간 - 
 

칠봉구간은 리조트가 생기면서 폐쇄된 구간이라 한다.

비지정등산로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답사할 구간

오늘은 혼자이고 시간도 널널하니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하기로 한다. 
 

향적봉에 오를 때 마다 빤히 뵈는 칠봉, 그 들머리가 어딘지 궁금했는데

작년인가 어느 산님의 산행기를 보고 우측으로 스키장 슬로프 따라 내려가다

철조망이 능선에서 끝나는 지점에 등산로입구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향적봉에서 칠봉과 눈 맞춤하고 조금만 기라리라며 설천봉으로 내려선다.

슬리퍼를 끌고 어린아이를 앞에 업고 곤돌라 타고 올라온 나들이객들이 많다.

그들의 발걸음으로 얼마만큼의 덕유의 향기를 가슴에 담고 갈까? 
 

저렇게들 편하게 향적봉으로 올라오는데 객은 무엇이 좋아서 육십령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가?

그렇게 물어온다면 “그래 이건 미친 짓이다.” 두 말없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종주의 그 엄청난 감동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 심정으로도 두 번 다시 이러한 종주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내일이면 그 마음이 또 변한 다는 것을 안다. 그건, 진하게 스며드는 덕유의 향기

그 유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리라. 
 


 

                          ▲설천봉에서 바라본 칠봉. 저 아래 슬로프가 끝나는 지점이 칠봉들머리 
 

설천봉에서 바라보는 스키장 슬로프

겨울에는 하얀 설경과 스키어들의 매끄러운 몸놀림으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이던데

오늘은 그저 무더운 햇살이 내리 쬐는 자갈밭의 비탈길이다. 
 

죄(?)를 자초한 까닥일까?

이글거리는 태양, 나무그늘하나 없는 지루한 길을 내려서니 아예 죽을 맛이다.

혼자서 그 넓은 비탈길을 털래털래 내려가는 모습 저 위에서 바라본다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질까. 
 

20여분을 헉헉대며 뙤약볕을 걸어 내려왔는데도 들머리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칠봉 들머리를 찾지 못하면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 백련사로 하산해야 할 터인데

이 일을 어찌한다? 이마의 땀방울이 더욱 굵게 얼굴을 타고 내린다. 
 

바로 그때, 정면 담벽으로 노란 리본이 철조망너머에는 희미하게 이정표가 보인다.

119구조표지목도 보이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 이곳이 칠봉들머리구나.”

혼자만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잠시 희열에 젖는다.

 


 

    ▲이곳이 철조망 안쪽으로 칠봉 들머리(구조번호10-07 향적봉2.5km,칠봉1km,인월담3.2km) 
  

칠봉구간은 전형적인 육산인데다 등산로는 한사람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져 있고 돌 하나 없는 낙엽이 소복히 쌓인 오솔길로 이어진다.

20여분 후 칠봉에 도착했으나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 너머 멀리 향적봉이 겨우 조망된다. 
 

칠봉은 잡목이 우거져 조망도 좋지 않고

두리뭉실한 봉우리로 멋없는 헬기장이 독차지 하고 있지만

등산로를 개방하여 이곳에 전망대라도 하나 세운다면.. 혼자만의 푸념일까. 
 


 

            ▲정상석을 대신하는 칠봉의 이정표, 녹음사이로 멀리 향적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칠봉에는 좌우측 두 갈래의 Y 자 길이 있는데 노란 표시기가 딱 하나 우측에 달려있다.

좌측은 능선으로 계속 이어지는 길인 것 같아 표시기가 달려있는 우측으로 내려선다.

곧 구조지점표지목과 인월담을 향한 이정표가 보이니 길을 제대로 내려선 것 같아 안심을 한다. 
 

죽은 나무와 산 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자연그대로의 원시림은 하늘마저 가리고

아름드리 적송은 그 고고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니

구천동 33비경의 태동 그 전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급경사 위험구간에는 좁지만 예쁜(?)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길이가 거의 200여m에 이르고 이 좋은 시설물은 지금도 옛날의 주인을 애타게 기다린다.

비록 녹슬어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잘 다듬어진 이정표는 여전히 객의 발걸음을 반갑게 맞아준다.

언젠가는 이 시설물들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리라.

그 날을 소원하며....... 
 

암벽 굴속에 자리 잡은 칠봉약수

예전부터 만병통치의 효염이 있으며 피부병에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이곳 약수는

간혹 지나는 산객들의 목을 축이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향적봉에서 철조망초입까지 2.5km구간

언젠가 없어진 등산로를 다시 정비하여 개방한다면 좋을텐데.. 그날이 오기를 염원하며..

인월담을 향한 된비알의 급경사 길, 힘듦도 잊은 채 내려간다. 
 

냉장고속 같은 시원한 얼음골, 작은 계류를 몇 개 건너니 두 갈래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길을 버리고 노란 표시기가 있는 우측 길을 선택한다.

하산하여 생각해 보니 좌측 길은 칠불암을 거쳐 인월담으로 향하는 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월담의 비경

 

그곳에서 20여분 내려왔을까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니 드디어 구천동 16경인 인월담이다.

그 맑은 물속에 자리한 또 하나의 덕유의 하늘과 드넓은 품.. 이 또한 선경이라

꽤째째한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그니 그제야 일상의 세속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