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따라 길따라 : 남강 -1- (함안-의령 구간)

 

                   2005. 4. 3.

 

 

 

                        -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를 아는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남강댐을 거쳐 의령-함안의 낙동강 합수지점까지의

                   남강구간 중 최종지점(기강나루)에서 장박교까지 거슬러 오르는 연작의 여정 

 

 

                    제 1부 

 

 

 

1.<남강, 낙동강을 만나 그 이름을 다하다.>

 

 

 

 

 

 

     A-기강나루터,        B-창녕남지 창날 백사장,       C-보덕각과 쌍절각 있는 지점, 

     D-칠서면 병아들(병화들),                  E  F  G - 아래사진지점들

 

  

 

 

 

 

 

     거름강나리(기강나루, 岐江津) !


 


 

     그래도

     오래된 홰나무 그늘 아래서 부채바람으로 한낮의 노고를 달래던 시절까지

     회정말(회정마을) 사람들은 거름강나리에서 남지와 칠서를 오갔다.


 


 

     남재 건너 안땀, 들 가운데 아랫동네, 꼬까실.....

     성산(168.5 m) 아래 마을이라 성산리로 지역분류가 되었고

     낙동강과 남강변의 마을이 되었다.


 


 

     대대적인 방제 이전에야 홍수에 속절없이 당하기만한 동리였을 것이고,

     이 시절에는 오히려 텅 빈 마을이 되어

     인적 드문 하우스 단지와 함께 나루터의 흔적만 남기고 있다.


 


 

     기강나루..... 갈림강나루. (지도 A지점)

     박진나루의 드넓은 백사장을 이룬 낙동강이 남지의 창아지 절벽을 치고,

     측면에서 밀려오는 남강의 힘에 퇴적을 이룬 모래터.

 

  

     남강의 이름을 다하는 이곳 강나루터에서

     사라진 삶의 흔적을 새삼 안타까워한다.

 

  

     건너편 남지의 용산리 창날 마을.

     그 단무지 밭 아래 백사장(지도 B 지점)에 내려서서

     이곳 기강나루와 남강 맞은편 '병아들'(지도 D 지점)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난 겨울.(낙동강 탐사)

 

  

     이제 이곳에 서서 

     반대편을 응시하니 마주보기의 반가움과 즐거움 끝에

     왠지 서러움이 밀려온다.

 

  

     강의 외로움인가.

     옛나루터의 고독함인가.

     강과 들은 있으되,

     물흐름과 바람과 어김없는 봄기운은 있으되,

     사람이 없어진 허전함 때문인가.

 

 

  

    - 폐기된 목선과 뒤집혀진 선착장이 이곳이 나루터였음을 보여준다.- 

 

 

 

    - 강나루의 끝단 돌출부, 가까스로 내려서니 싱그러운 풀밭이다.-

 

 

 

      - 강나루 위의 집터, 그리고 경작지-

 

 

 

 

     - 보덕각과 쌍절각-

 

 

     나루터를 되돌아 나오면 임란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거룩한 충적을 기리는 충익공 곽재우 장군의 보덕각이 서 있다.


 


 

     유명조선국 (有名朝鮮國) 홍의장군 충익공 곽선생(紅衣將軍 忠翼公 郭先生)

     보덕불망비(報德不忘碑)가 사당처럼 모셔져 있다. 그 옆에는 역시 부자(夫子)

     가 나라를 위해서 순절하게 된 후지당(後知堂) 손인갑 장군과 손약허 공의 충

     절을 기리는 정려가 서 있으니 이름하여 쌍절각이다.


 

 

   

 

 

     함안 땅 칠서를 거쳐 대산면 벌판을 지나 송도다리를 건너......

     의령군 지정면으로 들어와 오천리 일반도로로 기강나루에 들어왔던 바다.

     길은 늦은 아침마냥 한가로웠고 이른 봄처럼 깨끗하였다.

 

 

 

     강나루를 떠나 보덕각 쌍절각 지나고

     마산리 도로로 강가에 바짝 붙어 병아들과 나란히 강따라 올랐다.

     돈지마을 도로는 둑길인데 포장이 깨끗하게 되어 있다.

 

 

 

     비가 올듯한 흐린 날씨에 습기찬 봄기운이 어우러진데다

     어디선가 마른 풀을 태우는 연기까지 자욱하여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메케한 냄새가 사방에 번졌다. (아래사진 석장)

 

 

 

 

      -  굽이치는 강줄기-

 

 

 

     - 강도 외롭고, 길도 외롭고, 한그루 소나무조차 외롭건만, 부부 나그네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다.-

 

 

 

 

     - 돈지마을에서 강줄기가 잠시 멀어지고 우리는 길을 따라 송도나루로 향하게 된다.-

 

 

 

 

 

2.<송도나루 송도교에서>

 

 

 

     이미 송도구교를 건너왔던 지라

     별 감흥없이 다가서는데

     '지정중학교' 건물이 깜찍하다.

 

 

     구교에서 내려보니 반대편에서 보았을 때보다 풍경이 낫다.

     함안군 대산면과 의령군 지정면은

     남강을 경계삼고 송도나루와 신,구 송도교로 이어져 있다. 

 

 

 

      - 지정면 쪽 송도 구교에서 / 송도나루의 흔적인가 보다.-

 

 

 

 

     - 대산면 쪽, 송도 신교에서 바라본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지정 중학교 옆 교회-

 

 

 

  

     -송도다리에서 남강 상류쪽의 바위절벽-

  

 

 

 

3.<옥열리-함안천 양포교-새나루터-악양루>

 

 

 

     1041 지방도로를 타고 대산리를 거쳐 1021 지방도로로 급히 우측으로 꺾어들면 옥열 저수지

     가 붙게된다.  낚시꾼 서넛이 여유롭게 낚시대를 드리웠다. 오른쪽으로 가지런한 들판을 끼고

     한참을 가니 강을 건너게 된다.

 

 

 

     함안천이다.

     함안천은 남강에 이르게 되는 지류로, 부산-진주 고속도로가 함안IC 지나기 전에 가로지르게

     되는 하천이다. 양포교가 이 함안천을 가로질러 1011 번 지방도로에 이어진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양포교에서 함안천을 내려다보았다.

 

 

 

 

     -수 대의 경비행기, 처음에는 사설 경비행기 연습장인 줄 알았다.(실제 그런 측면도 있지만)-

 

    

 

 

     윤내리와 윤외리의 길은 자로 잰듯 길게 뻗은 직선도로다.

     도로의 끝에 새나루터가 있다하니 거기를 확인 한 다음,

     강 하류 쪽으로 악양루를 찾아가기로 하고 찾아든 길이다.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날씨가 결국 험한 모양새를 하고 말참인가보다.

 

 

 

     나루터를 찿기 위해 강둑으로 올라서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나라 땅에서 처음보는 강변의 경비행장과 나란한 격납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곁의 콘테이너 박스를 두개 이은 곳이 " 실버윙 항공-낙동강 비행 감시단"이다.

     낙동강과 남강의 감시라......

     모르는 사이에 섬세한 관리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 흡족하다.

 

 

 

     잠시 자료를 인용해보면,

 

     실버윙항공은 1994년 10월 15일 경남양산 물금에서 부산 및 경남북 최초로

     초경량비행기 조종자 양성과정을 개설하였고 1997년 5월 2일에 부산광역시

     일광해수욕장에 전국 최초로 수상전용 초경량비행기 조종 교육을 개설하였으

     며 진일보하여 현재의 경남 함안 비행장은 전국 20여개의 비행클럽 중 낙동강

     항공 환경 감시단으로 유일하게 지정되어 교육 및 환경보호 비행을 주관하고

     있는 환경부 지정 비행단이며 10여차례가 넘는 방송취재대상 비행장으로 선정

     되어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는 전문항공 스쿨이다.

 

  

 

     하늘 가운데 구름은 짙은 먹구름이고 바람은 비를 싣고 세차게 뿌려댄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남강변의 비행장 시설의 신기함도 찬바람의 위세에 눌려 사그라든다.

     둑을 내려와 악양루를 찾으러 간다.

 

 

 

     함안천을 다시 건너고 "처녀뱃사공 노래비"를 지났다.

     촌스럽고 작위적인 비석 같아서 그냥 지나치는데 곳곳에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악양마을에 악양루는 안보이고  식당 악양루와  처녀뱃사공비만 두드러졌다.

 

 

 

     산을 넘어 서촌리까지 진행했지만 강변에 악양루라는 양옥집 식당만 있고

     악양누각은 보이지 않았다.

     서촌리 마을은 매우 단아했고 언덕에서 바라본 하가평야와 다안나루의 풍경은

     비를 뿌리는 중에도 연초록의 목가풍이었다.

 

 

 

     식당 악양루에 들어 비를 피하면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눈치로 보니 이 식당이 진짜 악양루의 길목을 막아선 듯하였다.

     미류나무 두그루만 아니었다면 투덜거림을 한바가지 퍼질렀을 것이다.^^

 

 

 

 

     -1) 함안천이 흘러드는 합수점의 악양루 식당, 악양루와는 관계없고 건물의 좌측벽을 따라 절벽

     으로 오르면 수분내에 악양루가 드러난다.-

 

 

 

     -2) 단애를 이룬 좁은 절벽 위에 들어선 악양루, 햇살드는 바위 위의 누각인가..... 남강이 저 멀

     리서부터 흘러내려오고 함안천이 좌측에서 합수하니 선비의 풍류가 절로 샘솟을 만 하다.-

 

 

 

     -3) 잠시 비를 피해 누각에 앉아본다. 광각렌즈가 아니라면 화면에 담을 수 없는 협소함인데

     비교적 넓게 담았다. 오름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거의 찾지 않은 듯하여 이런 강

     탐행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작업인지 새삼 보람을 느낀다.-

 

 

 

     -4) 함안천, 남강에 합류하다.

     문득 소설 토지의 함안댁이 연상되었다. 비에 젖는 머언 모래사장을 보니 자살로 마감한 함

     안댁의 삶의 색감이 연상된다.  애써 다림질한 광목같던 그 여인의  침묵. 저기  모래사장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4.<비 내리는 진등고개, 의령군 정곡면에서 용덕면으로 >

 

 

 

 

     의령은 충의의 고을이라 불리길 좋아한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본령이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기억에 없으신가? 성지곡 어린이 대공

     원의 동상을 떠올시면 아하! 할 것이다.)역시 이곳 출신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선린보다 역사의 험난한 고비를 강요했고, 국운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스러

     지지 않는 민족정기는 항일의 유전자로 피를 타고 흘러왔다. 앞으로도 일본은 지속적으로 억

     압적 대결을 계속하겠지만  언젠가 역사적 역전의 기회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1011번 국도를 따라 다시 남강을 건너 의령 땅으로 진입하여 정곡면으로 들어섰다.

     다시 20번 국도로 남진하여 비바람치는 진등고개로 넘어서니 남강이 휘돌아 감기는 법수면

     이 한눈에 들어온다. 

 

 

 

     -법수면은 오늘 오후 늦게 마지막으로 들럴 계획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조망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진등고개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5.<의령관문 정암리>

 

 

 

  

 

     이곳은 익숙한 곳이다.

     의령을 관통하는 20번 국도는 원거리 산행기 자주 이용하는 국도이므로 의령관문과 79번 국도 또한 익숙하다.

 

 

 

     그래도 다리를 걸으며 강을 살피는 일은 처음이다.

     솥바위도 처음 알았고, 새로 단장한 의령관문의 위용도 알았고 구 정암교가 수리 중인 것도

     알게 되었다. 

 

 

 

     강의 풍치도 뛰어나 상류 쪽과 하류 쪽이 각각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하류 쪽은 구름에 걸쳐진 방어산 산정으로 인해 신비함까지 곁들여졌고, 의령의 벽화산

     능선도 함께 어우러져 강의 곡선을 더욱 아름답게 하였다.

 

 

 

     마침 연초록 잎사귀를 섞은 개나리가 진노란색으로 의령 쪽 강변을 뒤덮으니, 비에 젖은 연녹

     황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인가 한다.

 

 

 

     이쪽 강변은 연록의 버들이 싱그러운 풀밭을 배경색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니 온통 봄색 천지

     다. 그런 가운데 모래톱의 부질없는 풀뿌리 조차 연푸른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으니 이 비 그

     치면 강나루 온통 봄색이 완연하리라!라는 노래는 허구가 아니었다.  

 

 

 

 

     - 신 정암교에서, 의령 쪽 개나리 핀 절벽. 저 길이 1040 국도이고 일부 공사구간을 포함하고

     있으나  장박교로 안전하게 이어진다.-

  

 

 

     - 신 정암교에서 바라본 군북면 모래동, 머귀나무골, 와룡정이 저 끝 돌아가면 있다. 구름을

     덮어 쓴 방어산도 이채롭다.-

 

  

 

 

     -1) 보수 공사 중인 구 정암교에서 본 의령관문-       

 

 

 

     -2) 솥바위와 남강 하류 쪽-

 

 

 

     -3) 강가의 봄빛은 이런 것이다.-

 

 

 

     -4) 하잘 것 없어보이지만 강가의  풀들에게서 연푸른 생명력의 신비를 본다. 일찌기 '오직 영원

          한 것은 저 푸른 소나무의 생명력이다' 라고 자조했던 레닌이 비에 젖은 강가의 풀들을 보고

          한줄의 시를 남기지 않았음이 유감이다.-   

 

 

 

 

 

 

7.<대산리에서 화양리 거쳐 장박교로 함안 땅에 들어서다.>

 

 

 

강건너 남해안 고속도로에 달리는 차도 뚜렷이 보이고 그 뒤로 솟은 방어산이 지척이다.

대산리에서 화양리로 넘어 가기 전에 강가에 내려 강구경을 즐겼다.

 

 

 

남강은 낙동강에 비해 어디에서나 접근하기가  편하고 모래사장도 마을과 떨어지지 않은 곳

이 많아  맘이 편하다.  그러한 대부분의 장소가  경제적 가치가 없다면 팽개쳐 지겠지만 이전

세대들에겐 정겨운 놀이터였음직하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깜직한 모래사장에서는 지금은 뉘가 와서 놀까. 하염없이 건너편 방어산을 바라보며 한

     나절을 강가의 돌을 줍고 모래성을 쌓으며  놀던 강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방어산-

 

 

  

     -강 끝에 장박교가 아련히 보이고......  남강은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장박교에서 찍은 하류 쪽 광경-

 

 

 

 

 

 

8.<함안 박물관, 입곡 군립공원 그리고 다시 법수의 대평늪>

 

 

 

     마침 함안 박물관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선사시대 특별전"을 열고 있었으니, 두 나그네의

     기쁨이 되었다.

 

 

 

     김해의 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령의 대가야, 상주 함창의 고령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야국들이다. 

 

 

     이들 가야국의 입체적 흔적을 시각적으로 파악하자면, 각 지역의 박물관을 찾는 것이 무척 효

     율적이다. 그 중 김해박물관은 박물관 건축 부터 예사롭지 않은 공간예술을 구현하고 있어서

     관람의 즐거움을 크게 더하였는데 함안의 아라가야를 재현하는 박물관 또한 참신하고 산뜻하

     였다. 창녕의 비화가야 박물관도 상당히 애쓴 흔적이 돋보였지만 둘다 김해 박물관에 미치지

     못한다.

   

 

  

     -특별전의 포스터를 찍어 보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입곡 군립공원'을 찾아 보았다.

     함안 지자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군민 위락지라고 한다.

     길을 잘못들어 여러가지 구경을 해 보는 수확을 얻었지만, 정작 입곡공원에서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컨셉인 즉, 언덕배기 공원에 산책로와 함께 위락시설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물이 마른 입곡군립공원-

 

 

 

     여유로운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 강 탐행으로 마무리를 하고자 다시 입곡에서 법수면으로 향

     했다. 제법 먼거리 이동이지만 오늘 탐행을 결산하는 의미라 즐거운 마음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도착해본 대평습지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실망하였고, 자랑으로 내세우는 꽃의 향

     연은 자취가 없었고 죽은 황소개구리만 둥둥 떠있다. 그렇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이 늪 또

     한 연중 어느 순간에 찬연히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시기가 맞지

     아니하여 그 모습을 못볼 뿐이리라.

 

 

 

 

 

     -법수면 대평 늪지, 법수면이 수년 전 대 홍수 때 큰 피해를 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강을 바라보면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차분하면서도

     우수에 젖어드는 이유가

     단지 시각적인 수평구도와 부드러운 곡선 때문일까.

 

 

 

     산에서 먼 산을 조망하면서 감격에 겨운 것은 왜일까.

     내 발길을 확인하고

     내 가쁜 호흡을 기약하는 것 외에

     아련한 단색조의 산그리메와 가없는 거리가 한눈에 다가오는 감격 때문일까.

 

 

 

     그 마음의 아래와

     그 감격의 끝에

 

 

 

     삶의 정곡을 파헤치는 뼈 아픈 진실의 진동이 있을 지 모른다.

 

 

 

     그것을 느끼는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