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 이 오(부산일요산악회)
⊙언☆제 : 2005년 6월 12일(일) 많음
⊙어디로 : 팔각산(영덕)
⊙누구랑 : 부산일요산악회

 

오랜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행복한 꿈에  젖어 들며 곤하게 잔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시 반이면 시계처럼 정확하게 눈을 뜨는데
달콤한 잠에서 깨어 나기 싫어 늦잠을 잤다.

덕분에 충분히 빠빴고
그런 대가를 치루는 것에 또한 충분히 감사했다.

아이들 세 끼 식사 준비며 간식 준비는
일상이 되어 번거롭지도 않다.

아침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는 내가 시간에 좇겨
사워 하는 것과 겨루기를 해 지고 말았다.

단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푸석하기만하다.
언젠가 컴맹님이 올렸던가 시가 생각난다.

아내도 여자이고 싶단가..
샤워를 하고 난 아내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아름답다고 했던가.

.찾아보고 다시 쓰야겠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몸도 아직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ㅋㅋ 아직은...

푸석한 얼굴을 하고 선 거울에 성에가 덮이면서
산에서의 즐거움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 오늘은 선두에서 가야지

그동안 어김없는 시간에 뒷산을 돌아
운동장에서 두어시간 단련을 했었다.

목적은 뱃살을  빼는 것이라지만 실은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공기와 아침을 여는
숲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그 소리들은 내가 찾는 산에도 있다.
날 행복하게 하는 산 .
날 침착하게 만드는 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정지 시키는 마술 같은 산.

언젠가 남편에게 말했다.
나 사랑에 빠졌다고
그랬다.

산을 사랑하게 되었고 
산을 찾는 사람들을 나는 언젠가부터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운 사람들이 나를 반기고 우리를 반기고 
달빛에 핀 박꽃 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내 한 주간의 애닳고 서글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은
여기서부터 해소 되어진다.

얼마 전부터 이름이 알려져
산님들을 머물게 한다는 팔각산.

우리 일행는 팔각산장에서 부터 7봉을 지나
독립문 바위를 지나 하산하는 코스다.

나는 큰 마음을 먹고 멋진 선두대장 옆에 착 달라 붙어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두로 오를 거라 다짐은 했지만 자신은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좁게 다져 내어진 길은 
사람들의  발길을 서둘지않게 했다.

용틀림같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아직은 더없이 가야할 나의 인생길을 비추어 보았다.

각기 다른 색깔의 옷차림,
나의 삶도 그렇게 각가지 색들처럼 울고 웃을 것이고

늘 변함없이 버티고 지켜주는 나무며 바위며 잔 풀들처럼
날 지켜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는 삶의동반자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그렇게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철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며 산 속으로 들어간다.
내 속에 산을 넣고 산에서 나를 찾으러.

1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하지 않지만
가파르다고 할까?  내 수준에서.. .

선대장은 잘도 오른다.
좀 따라 붙이는가 하면 약이라도 올려는 것처럼 횡하니
날쌘돌이 다람쥐처럼 저만치 가고 없다.

헉헉 숨이 차고 머리가 돌지만 오기가 생긴다.
나무와 풀들과 말동무를 하기도 하고  함께 간 정다운 이들과도
조곤조곤 이야길 나누는 재미를 포기했다면
생각을 정지하고 내안의 또다른 나와 싸워 이겨보고 싶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
7봉까지 봉글봉글 늘어 선 봉우리들을 보여지는 것만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되었다.

작은 암벽 등산이라면 잘 어울릴만 표현일까?
산을 잘 타시는 분들이야 등짐지고도 오르겠지만
초보이자 뼈마디가 연약한 여성들에겐
그다지 쉬운 오름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행렬은 길어만 가고
나는 선 대장과 나란히 설 수가 있었다.
푸하하하.

아직 웃을 때는 아니지만 자신감이
내 튼튼한 다리에 힘을 실어준다.
1봉을 지나 2,3봉을 오를 때는 때양볕이다.

몸 속 찌꺼기를 쏙쏙 뽑아낸다.
거머리처럼 닥지닥지 붙어서.
마른 입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짜다. 살아 있는 것 같아 좋다.

가끔 산들바람이 불어와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바람도 잠잠하다.
봉을 오를 때마다 유격훈련을 한다.
줄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재미있다.

전생이 있다고 믿는다면 나는 황진이였으면 하고 소망했었는데
오늘 보니 남자였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실은 열심히 오를 수 있게 멋진 아저씨께서
많은 응원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몇 봉을 오르고 나서 돌아보니 우리가 앞서고 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묵묵히 땅만 보며 올랐다.
봉우리에 올라 서 늘어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다.

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산을 오를까
요즘은 사람들의 속을 알고 싶어질 때가 많다.

저마다의 행복들은 얼마만큼이고 불행은
또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가는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당혹하게 만든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이 나이에 나는 철학자가 되려고 한다.
그래 역주행.
다시 돌아 무언가 찾을 수 있다면  그래도 좋을 듯 싶다.

팔각산이 눈에 보여진다.
조금씩 꾀가 생긴다.
하지만 꾀를 부릴만큼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조금씩 쉬어가며 여유를 찾는 것도 좋지만
내는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끝을,
답을 내야 직성이 풀리니..
타고난 본질이라면
나도 어쩔 수 가 없다.

성급하고 앞 뒤 재지 않는 내 성격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늣하게 기다릴 줄도 아는 ,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 볼 줄 도 아는
산 같은 사람이 되는 것도
사는데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악어등처럼 까칠한 바위들을 손가락에 몸을 맡기고
헉헉 숨을 몰아 팔각산 정상에 도달했다.

높은 산도 아니고 힘든 산도 아니지만 흐뭇하다.
사진이라도 찍어 기념하고 싶지만 나는 내 가슴 속에
찰칵찰칵 저장해 두기로 했다.

내 속의 것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 하는 나.
내 속에 들어온 하찮은 것이라도 좀 오래 담아 두고 싶어 한다.
그리곤, 길을 가다가, 일을 하다가, 부부 싸움을 하다가,
삶 속에서 산 공기가 필요할 때 기억저편에서
그런 것들을 꺼내어 들여다 보면 힘이 되어지는 까닭이다.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두고 잠시 쉬는데
한 둘 눈에 익은 얼굴이 보여진다.

꽁꽁 얼려 온 맥주를 따서 주신다.
시원하다. 산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몸 속의 삶의 때물을 빼내고 새 물로 채우기 위해
마시는 이런  행위들이 경이롭고 짜릿하기까지 하다.

몇 몇 식구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데 중간 후미가 땀을 이고 들이 닥친다.
내 목적을 위해 내팽겨치고 온 물망초가 녹초가 되어 있다.

몹시 힘든가보다. 동병상련이 아니고선 이해 할 수 없다.
겨우 야채 몇 젓가락을 먹고는 내려 가잰다.

선대장을 따라 완주를 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 했다.
때로 어떤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될 때가 있다.

어느 것 하나 가치 있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가치를 둔다면
나는 사랑에 가치를 두고 싶다.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활력소이자 
내 아픔이자, 내 삶의 목표다.

내 원초적 병인 원초적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기도 하다.

그 사랑의 뜻이 어떻게 어떤 그릇에 담겨져 있든 간에.

팔각산에서 조금 내려가자 평편한 곳에서
우리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정답다.
나누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물망초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정이 발걸음을 잡았지만
조용히 물망초랑 사랑을 나누며 걷고 싶어
앞어 내려왔다.

내려 가는 길은 내겐 좀 약한데 망초는 힘이 난단다.
다음 주엔 내게 뒤지지 않고 선두를 달릴 것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해 둔다.

귀여운 물망초.
내려 가는 길이 두어 시간 더 걸릴 거라는 것과는 달리
삼십여 분 만에 산장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지친 탓인지 반가움은 숨길 수가 없다.

얼른 내려가서 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땀을 씻어내고 싶었다.
물마저 데워져 뜨뜨므리해졌지만 씻고 나니 상쾌했다.
망초는 쓰러져 일어 날 기색이 없다.

가방을 둘러 메고 차를 향해 걸어 왔는데 차가 없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선대장에게 폰을 했지만 받질 않는다.
꽃미남 총각, 나의 유일한 갑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잘못 내려 왔단다.
기가 막혔다.

아스팔트를 따라 차를 향해 걸었다.
바람이 싱쾌하다. 피로를 풀어준다.
꽃미남 총각 걱정이 되는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오란다.

나의 미모를 들이대며 차를 세웠지만
나의 미모는 차를 세우기에는 아주 부족했나보다.

할 수 없이 바지를 살짝 걷어 보였지만 그건 더 치명적이다.
그래 유일한 무기 , 미소 작전.

빙고~!
아주 큰 차가 반갑게 고맙게도 서 주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와 내 아들이 좋아하는 얼음 과자 더위사냥을
쭉죽 빨아 먹고 바람을 쐬었다.
 
산행 종료의 여유속에
우린 아름다운 정원을 찾았다.

자갈이 깔린 정원에 오래 된 나무가
하늘을 에워싸고 볕을 막아주고 있다.
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어 베개로 삼아 반듯하게 누웠다.

좋다.
초록 나무잎파리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얀 구름이 살짝 비켜간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어쩜 저렇게 환상적인 구름이 될 수 있는지,
구름은 뜨거운 해의 기운을 막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니...
신기롭고 아름다운 자연.

나무야``나무야~~겨울 나무야~~

나무야 너는 몇살이니
우뚝 솟아 나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하니..
나무가 너보다 나이가 얼마나 더 많을 텐데 반말이니!

그런가
나무님 나무님 당신은 무엇인가요?
조잘조잘
우린 한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을 쌓았다.
참 오랫만에 가져보는 쉼인 것 같다.
늘 쉬고 싶다고  몸으로만 아우성 쳤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잔잔한 쉼을 갖고
싶단 생각이 물씬 울컥 들었다.
산을 다 타지 않아 아쉬웠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고 했다.

잃은 만큼의 버금가는 행복과 편안함을 얻어 더없이 행복했다.

예삐님의 넓은 정원에서의 만찬은 최고였다.
막걸리 두 잔에 머리가 깨어지는 듯 했지만 바람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 소리,

느껴지는 체온은 잔잔한 바람에 풀이끼 날리는 것처럼
나의 살갗을 세워 흔들었다.

사랑의 소리가 들린다.

산에
그가 있다.

산에
바닷 속 같은 깊은 눈이 있다.

산에
들판의 바람을 잠재울 미소가 있다.

산에
울어 지친  허전한 마음을 감쌀  온돌같은  품이 있다.

산에.
 . . .

 

 글: 부산일요산악회/ ♥ 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