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10월 22일(토)
누구랑: 친구와 둘이서
산행코스: 지산마을 - 영축산 - 신불산 - 간월산 - 등억온천(간월산장)

뜨건 맘으로 애모하는 영남알프스를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 한번, 한번쯤은
동부능선의 한 축 나란히 이어지는
영축, 신불, 간월을 밟고 싶었었다.
언제나 시나브로 산행, 더딘 걸음이나
먼 길 마다않고 동행한 친구믿고
07시 지산마을 애마를 누인다음
여명속에 우뚝 솟은 영축산을 향하다.

어둠을 털어내는 교교한 산자락엔
길게 운무가 그림처럼 드리우고
호젓한 산길에 부지런한 산새소리
고요를 깨치며 새 날을 열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변덕스런 일기탓에
땀날새도 없이 편한 걸음 이어지고
다소의 자만과 지나친 느긋함에
경험만 밑천삼아 느낌으로 전진하다.

앞선 내 걸음이 左로左로 치우치니
어느 순간 친구가 右로右로 이끌었다.
엉뚱길로 휘어돌아 동행자를 고생시킨
똑같은 愚를 오늘도 범했던 것!
초행인 친구가 산길을 열었으니
오만과 방심의 결정체가 나였던 것!
다양한 산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 더 빛나는 법!

길을 잘못 든 탓에 조망도 없이
유격훈련하듯 오름을 잇는데
금새 비 뿌릴 듯 하늘이 수상하다.
비올 확률 40%, 5mm 내외
일기예보믿고 우의조차 넣지않은
무모한 초보는 은근히 근심늘고
우의, 랜턴, 지도는 선택아닌 필수라고
친구에게 단단히 다시금 교육받다.

정상이 가까운 곳, 암벽 이어지는데
갑자기 후두두둑 낯선 음이 감지되고
그것은 빗방울아닌 싸락눈이었다!
설악산에 적지않은 첫 눈이 내린 이 날
영축산에도 싸락눈이 흩뿌린 것!
비보다는 차라리 눈이 훨~~낫다
우의없는 초보의 자조섞인 넋두리에
친구는 어이없는 쓴웃음만 지었을 터......

영축산(靈鷲山 1,059m)!
매번 코발트빛 하늘이 눈부시던--
오늘은 심술궂게 산객을 맞이한다.
시위하듯 먹장구름 기세등등 세찬바람
신불, 간월산엔 안개가 넘나들고
가지, 운문, 재약에는 부드러운 햇살그득
부조화속의 조화, 조화속의 부조화에
정상오른 사람들이 덜덜덜 추워한다.

이제 다시 진군이다, 신불산으로!
퇴락한 억새는 서걱서걱 일렁이며
푸른 줄기에 은빛웃음 머금고서
현란한 사위로 뭇객들 찬사듣던
그 시절 꿈이런가, 침묵속에 고독하다.
다이어트에 실패한 듬직한 체구인양
살찐 신불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나
어쩌다 한 그루씩 운치있는 소나무.

제법 경사진 오름을 이어가며
右로 신불공룡 한 눈에 가득담고
左로 이어지는 올망졸망 산군들
신불산(神佛山 1,209.m)!
영남알프스중 두 번 째로 높으며
이름과는 판이하게 절(寺)을 품지않은--
산장엔 장터마냥 사람들이 와글바글
막걸리에, 술안주에 주인손길 분주하다.

언제 그랬냐며 푸른 하늘 열리고
우리는 기이한 일기에 고개를 갸우뚱
눈물많은 친구가 줄곧 비 만나나
발랄한 나에겐 비 만난 기억없다.
무더운 여름 날 병중 엄니 보냈는데
친구도 한 달여 뒤 엄니를 보냈으니
한 치 앞, 인생사를 우리 어찌 알리요?
알 수 없는 인연의 끈, 어찌 가늠하리요?

간월산 가는 길은 온통 돌투성이
많은 무리들이 능선길을 오고가며
사색의 계절, 짙어가는 가을 풍경
하뉘바람속에 소롯이 정담인데
발아래 간월재 훤히 보이는 지점
아~~아~~한숨이 절로 난다.
인간의 욕심으로 황폐화된 자연
몇 줄기 임도위로 차들이 빼곡하고!

간월재 벗어나 정상향해 나아가다.
투병끝 산행이나 컨디션이 꽤나 좋다.
씩씩히, 꿋꿋이, 쉬임없이--
신불공룡따라 하산제의하는 내게
친구가 겁없다며 또 교육을 시킨다.
산에서 욕심은 절대 금물이라며--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야!
호된 경험못한 설익은 초보의 변!

간월산(肝月山 1,083m)!
오늘 산행의 종착지.
짙은 녹음 일렁이던 여름
환상적인 그 실루엣 잊을수가 없다.
멋스런 소나무 그늘아래
배낭을 풀고 도시락을 펼치는데
역시나 오늘도 한 가지는 잊고 왔다.
미세스 깜빡이란 별명값 또 해냈다.

신불.간월공룡 차후로 미루고서
평탄한 임도따라 하산키로 하다.
형형색색 익어가는 단풍 함성속에
친구는 졸리운듯 눈을 감고 걷는다.
그래, 눈은 감되 두 발은 떼어야 해!
사람속에 사람으로 남고 싶단
소박한 그 꿈 빛바래질 않길 바래.
홍류폭포도 무심히 지나치다.

왜, 왜 산엘 또 오르는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봄, 여름, 가을, 겨울
소생과 충만, 결실과 쇠락
자연의 섭리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우리를 일깨우는 뵈지 않는 거대한 힘
그 속에서 겸손을 배운다.
침묵속에서도 님의 음성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