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慾의 가을 만복대에서.

  

-언제: 2005.10.19.

-누구와: 나 홀로.

-어디를: 만복대.

 

     <만복대>

  

<만복대 돌탑과 반야의 모습>

가을빛을 잔뜩 머금은 화려한 단풍 산이 유혹한다.

그러한 단풍 산의 유혹도 좋지만 능선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무채색의 향연을 가슴에 안고 싶었다.

  

단풍과 함께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싶은 억새.

쨍 한 가을빛 햇살이 바람을 타고 엷게 퍼질 때

서걱서걱 울어대는 억새는 가을 산행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산 속에 일렁이는 은빛 파도에 묻혀

구름보다 하얀 억새가 한줌 바람에 하늘거리 때

흔들림은 속삭이는 밀어처럼 감미롭다.

  

<고리봉>

  

  

<가야 할 만복대>

-산행시작.

마음의 부담을 안고 떠나는 산행이었다.

18:00까지 도착해야 하는 아쉬운 산행이 잘 이뤄질지,

항상 그랬듯이 오늘도 내 계획대로 산행은 이뤄질 것 같지않았다.

홀로 산행하는 날은 더 그랬으니까.

구례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굳이 성삼재 버스를 고집 할 필요가 없었다.

  

섬진강의 물안개가 이곳 당동마을을 거쳐 만복대의 허리를 차고

빠져 나갈 줄 모르고 있었으며 왠 낯선 이방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犬公(견공)들이 심하게 울어댄다.

아직도 나락을 거둬 들이지 않은 일손이 그립던가?

산동벌판에 현대식 온천탕이 즐비한 그곳 사이에 누렇게 익어버린

나락들은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무채색의 향연>

 

  

<바람이 휩쓸리는 우유빛의 억새풍경>

숨 가쁘게 앞으로만 치닫는 현실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워 하는가?

젊어서 가졌던 미래에 대한 꿈 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급급했던 자신의 뒤를 되 짚어본다.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를

생각 할 여유조차 없는 각박한 현실이 때로는 서글퍼 진다.

모두가 앞으로만 내닫는 현실 속에서

내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생각 할

여유조차 없으니 서글퍼지는 마음 억누르며 만복대로 향한다.

  

  

  

<만복대와 하늘 그리고 만복샘의 가을>

자신과의 독백 속에 어느덧 四圍(사위)에 안개는 걷히고

힘든 줄 모르고 서북능 주능선에 올라오고 말았다.

아쉬운 풍광들을 놓치고 말았구나 하고 느끼면서

땀으로 범벅이 된 옷 매무새를 추수리며 디카를 꺼내 든다.

그리고 우선 만복대에 걸터앉은 구름 한 점 찍어내고

반야에 씌어 있는 구름모자 벗겨질까 노심초사 하건마는……

  

  

  

<내가 걸어 온 길과 만복대에서 바라 본 반야>

-만복대.

한번쯤 나뒹굴고 싶은 수 만평의 광활한 초생지대에

마른 바람이 이곳 산정에도 불어오고 있다.

억새들은 바람에 하늘거릴 때 우유 빛 살결로 내게 다가와

밀어를 속삭이고 능선 건너 형형색색의 단풍들은 초원의 누런 벌판과

시샘하는 양 이 가을을 더욱더 재촉하고 있구나.

이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사나운 바람에 휩쓸리며 삶을 견뎌내는

억새의 미덕이 이 땅에 살아온 우리 민초들의 삶의 내력과 같지 않을까

  

이곳 만복대에서 어디로 향할까 하고 한참을 생각해 본다.

서울의 다람님과 통화를 마치고 만복대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동쪽 사면에 조그마한 암봉 밑 동판에 새겨진 글귀에 눈이 멈춘다.

인철이라는 20세의 젊은이가 부모님 보다 먼저 간 아쉬운 글귀를 보고

갑자기 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 만약 죽어 사라지거든

내 이름만을 기억 해 다오.

  

내 만약 죽어 사라지거든

내 모습만을 기억 해다오.

  

내 만약 죽어 사라지거든

나의 진실만을 알아주오.

  

이제 여기 어머니 품 지리산에서 편히 잠들거라’ 는

  

퇴색된 사진은 보이지 않지만 선명한 글귀는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산 객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구나.

부디 좋은 곳에서 永眠(영면)하시기를 빌어본다.

  

<쾌 넓은 초원지대에서 반야를 바라 보지만.....>

  

<만복대골 가는 길>

  

  

<만복골에서>

  

  

-만복대골.

이곳에서 남쪽 사면을 따라 내려 가기로 한다.

길이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람님과 통화 내용을 보면

아마 십중팔구는 맞을 걸로 생각된다. 능선 길을 따라 가면서도

무슨 만복대골이 이럴까 생각 하였지만 무명묘지 못 미쳐서

결국 임우식님의 표식기를 확인하고 안심하기에 이르렀다.

사랑 합니다’

존재가 무엇인지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일맥 상통하리라 본다.

지리산 곳곳에 우리들의 등대지기를 하고 계신 그 분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저 역시도 사랑 합니다.

  

  

  

<만복대골의 또 다른 모습>

1135고지 무명 묘지를 벗어나자 우측의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1080고지에서는 돌로 쌓아 올린 축대를 발견하고 그 밑으로

쾌 넓은 습지가 형성 되어 있었다. 길을 내려 가면서도 옆 길로 난

길이란 길은 모두 확인하고 여유 있게 내려 간다.

바로 옆 계곡으로 난 길을 찾아 만복골의 비경을 들여다 보며

잠시 여유를 부려 보고 이윽고 서울대학교 부속남부 연습임에 닿는다.

갑자기 계곡과 맞닿는 지점에 이르자 상당히 넓은 공간의 계곡이

형성 되어 있었다. 사실 만복대골의 산행은 계곡 산행이 아니라 차라리

능선 산행이라 할 만큼 계곡과 만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길은

너무도 뜻밖의 편안함과 오붓함 그리고 여유로운 길이라 생각된다.

  

<

<노고단의 단풍>

  

<종석대의 가을>

-히치하기.

855고지인 심원마을 입구 아래인 성삼재 도로에 닿는다.

5시간의 산행이 아쉬워 성삼재로 가기 위하여 히치 하기로 한다.

평일인데도 많은 차량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체어맨이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그래 너희가 우리 산 꾼의

마음을 알 리가 있겠는가) 두 번째 쏘나타도 지나치고 세 번째 마티스는

그냥 보냈다. 그래 類類相從(유유상종)이라 하였던가? 산 꾼의 마음은

산 꾼이 알아주지 네 번째 차량에 탑승하여 성삼재까지 오른다.

  

  

<화엄사 가는 길>

-또 다른 산행.

또 다른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노고단을 향하여 오르다가 화엄사로 빠지기로 이미 마음을 굳혔다.

언제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등한시 하던 산행코스인

화엄사 코스를 밟기로 한 것이다. 아마 그것은 성삼재까지 도로가

뚫려 편리함을 찾음도 있겠지만 이곳 화엄사 코스가 상당히 지구력을

요구하는 맘만한 코스가 아니기 때문일 거라 생각 해 본다.

나 역시도 3시 20분까지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면 화엄사에서 그 차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화엄사 계곡과 정진중인 스님>

  

무넹기와 눈썹바위를 지나 930고지인 집선대에서 휴식을 취해본다.

수량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 놓고 폭포라기 보다는 오히려 초라함으로

보이는 것은 찾아주는 이 없음이 더욱더 그렇게 보인다.

화엄사 길은 돌 포장길로 정비를 해 놨지만 수 없이 이어지는 이런

길들은 외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 된다.

조금 전까지 채색된 단풍잎들은 아래로 내려 갈수록 푸른 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중재와 국수등을 걸쳐 연기암에 닿는다.

  

화엄사의 부속 암자인 연기암은 보통의 산중의 고즈넉함의 분위기의

암자가 아닌 거창한 암자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곳까지

차량들이 들어 올 수 있는 편리함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서정적인 참

맛은 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화엄사 경내에서>

  

-산행을 마치면서(화엄사에서)

홀로 산행 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즉 자신과의 대화에서 과연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아름답게 즉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 하는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 가을

결실의 가을에 보잘것없는 초목들도 열매를 맺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열매를 맺지 않고서야 감히 말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無慾(무욕)한 존재들만이 친구가 되었으며

욕심으로 어두워지지 않았기에 마음 밖의 자연이 마음 속으로 들어와

주었으며 하는 無慾(무욕)의 가을에 나의 바램이기를 바란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5.10. 23.

청산 전 치 옥 씀.

  

  

<억새와 만복대 그리고 반야>

-일정정리.

08:00 산행시작(당동마을)

09:10 삼거리(1090) 성삼재 0.3/당동마을 3.0

09:15 고리봉.

10:12 헬기장(상위마을 가는 길) 성삼재3.0/만복대3.0

10:58~11:05 만복샘(1335)

11:10~11:45 만복대(1430)

12:05 무명동 묘지(1135)

12:30 1010고지 계곡.

12:40 49-12 서울대학교 부속 남부 연습림.

13:00 성삼재 도로(855) 심원마을 입구 아래.

13:40 성삼재.

14:10 눈썹 바위(1205)화엄사5.5/노고단2.0

14:24 집선대(930)화엄사4.5/노고단2.5

14:41 국수등(705) 화엄사3.5/노고단3.5

15:03 연기암(450) 화엄사2.0/노고단5.0

15:30 화엄사

15:42 산행종료(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