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띄우는 지리산 이야기

 

◈날짜:05년 10월 28~30일 2박3일

 

◈날씨:28일 -많이 흐림,  29일- 대체로 맑음, 30일- 대체로 맑음

 

◈산행코스: 28일 금요일 04:40분 성삼재출발-노고단-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산장(중식) --형제봉-벽소령산장(일박)

 

29일 토요일 벽소령출발-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산장(중식)-촛대봉-삼신봉-연하봉-장터목산장(이박)

 

30일 장터목-제석봉-천왕봉-제석봉-장터목(조식)-백무동으로 하산

 

◈ 친구야! 거북이도 드디어 훈장(?) 하나를 달았구나
오래전 너와 같이 꿈 꿔 보던 지리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 살아 돌아왔어^^*
초라한 패잔병의 몰골로 백무동 5.8KM를 다리를 절며 절며 무려 4시간이나 걸려 내려 왔지만...

 

언젠가 그랬었지  이쁜 봄 날, 우리에게 맞는 작은 배낭 하나 갖고 훌쩍 떠나보자고...
넉넉한 지리산엔 이름도 고운 산장들이 많이 있으니 쉬엄쉬엄 걷다가 만나지는 산장에서 하룻밤씩 묵으며...

별이 쏟아지는 산장 마루에서 따뜻한 차한잔을 마시면 너무 좋아 눈물이 날 것 같다며 꿈 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잖니?

내게 지리종주산행은 우리들의 허허롭던 이야기처럼 물건너 갔구나 생각했고 아쉽지만 이젠 접어야 하는 꿈이려니 했었단다
너는 산을 잊은듯 그렇게 살고, 나는 산이 어려워 점점 주저앉고 있으니...

 

한분이 이번 산행을 강하게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난 못했을거야
남들 갈 때 묻어가야지 마음먹고 간다고 했긴 했지만 영등포역에서 구례구행 밤기차를 기다리면서도 걱정은 가시지를 않더라
지난 늦여름 대야산행을 끝으로 산을 잊은듯 살다 남들이 이끈다고 불쑥 떠나면 지리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건 미련한 나도 알았으니까....
나때문에 1박2일 일정을 2박3일로 늘려 잡았다는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단다 참 민망하드라

 

별반 준비도없이 불쑥 찾아온 나를 힐책이나 하듯 성삼재 바람은 날이 섰드라만 노고단을 향하며 그래도 염치없이 마음속으로 빌었어
"지리산 산신 할머니 그저 이쁘게 봐주셔서 일행 모두 무탈한 산행되게 도와주세요" 라고...^^*
노고단산장 즈음에선 걱정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해 더더욱 심란해졌지만 이미 들어선 길 가는수밖에...

 

임걸령샘터 쯤인가부터 어둠이 가시더구나
빗방울은 간간히 뿌리고 전혀 뵈는게 없으니 진행은 빨랐고...
만산홍엽 붉게타는 단풍을 기대했지만 능선 주변 나무는 이미 나목으로 변해가고 운무로 인해 오리무중이니 힘들게 찾은길 많이 아쉬웠어

 

그때부터였어 무릎에 이상이 온게...화개재 나무계단 내림길
정말 굉장한 길이더구나 어찌 올라가나 싶으리만치말야
그래도 토끼봉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으로 가는길은 산행시 의례 힘든만큼 힘들뿐 걸을만했는데...


연하천 산장은 직등코스가없어 다른산장에 비해 더더욱 오지로 느껴지는 곳이라더구나
낡은 건물이 작고 초라해보였지만 좋은 샘터가 있었어
남자분들이 해주는 따뜻한 점심을 먹는데도 어찌나 춥던지...

중식후엔 오늘밤을 보낼 벽소령으로 향하는거니 너무 이르다며 쉬엄 쉬엄 가자길래 좋았지만 조망이 트였다면 금상첨화 였을텐데 말이다 그나마 비가 안내리니 다행이지만..

 

이국적으로 잘 지어진 벽소령 산장은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어
지리십경에 든다는 벽소명월이야 때가 아니라지만 우리가 꿈꾸던 평상에서의 차한잔도 어림없었어

벽소령은 바람의 길목인지 밖에선 잠시 지체도 못하겠어서 쫒기듯 산장으로 들어갔지뭐니

배 부르고 등 따뜻해야 찾아지는게 낭만인게지 에휴~

 

집 떠나면 잠 못자는건 여전해서 자는둥 마는둥 산장에서의 첫 밤을 보냈어
아침의 창 밖 풍경은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저 바람속을 어찌 걸어가랴 싶어서...
바람이 나무들과 마른풀들을 어떻게나 거세게 흔들어대던지...그래도 햇살이 퍼지니 살만하드라
하늘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장터목에서 또 일박을 할테니 시간여유도 있었거니와 내가 제일 보고싶었던 세석으로 가는 길이잖니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좋으니 시야가 트이는곳에선 다리쉼을 하며 지리산을 눈에 담았단다

 

친구야 너도 틀림없이 한 눈에 반할거야
사진으론 숱하게 봐왔지만 내 발로 먼 길을 걸어와 바라보는 느낌하고야 비교할수없겠지
칠선봉에서 영신봉 그리고 세석에서 촛대봉을 지나 삼신봉,연하봉을 거쳐 장터목으로 가는 길이 지리주능선의 백미더구나 두고가는 풍경이 너무 아쉬울정도 였단다
무릎이 심상찮아 내림길에선 이미 발을 딛기가 힘들기 시작했는데도 그것도 깜빡 잊어가며...

 

장터목산장엔 사람들로 넘쳐나드라
천왕봉이 지척이니 종주객뿐만 아니란건 당연히 예상했지만...
끼니마다 남자분들이 다 챙겨주니 편안하게 밥먹고 배정맏은 자리에 누웠지만 산장 잠자리는 어쩌면 그렇게 좁게 그어놨는지...하긴 금이라도 그어놔야 산이 좋아 찾은 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쉬게 해줄테지
날이 안좋아 일출은 힘들테니 어둠속에서 천왕봉을 오르고 싶지않았는데 여론에(?) 밀려 어둠속에서 비몽사몽 천왕봉을 올랐지 사흘을 거의 잠을 못잔거니 머리도 아파오고...
지독한 운무와 그보다 더 무섭던 바람을 맞으며 참 많은 사람들이 오르더라
평소 쌓은 덕이 없으니 일출은 기대도 못하고 정상석만 보고 돌아서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발아래 풍경만은 정말 보고팠는데...대신 기막힌 상고대로 아쉬움을 달랬네
제석봉의 황량함도 전혀 볼 수 없었고...

 

와! 이젠 집으로 간다며 농담을 하시는 일행덕에 즐거웠던것도 잠시 오른쪽 무릎이 아파 왼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다녔더니 한쪽으로는 이 무게가 감당키 어려웠겠지
어마어마한(?) 배낭을 짊어진 남편이나 일행 남자분들이 탈이 나야지 그 분들은 멀쩡한데 쬐그만 평소배낭을 맨 내 무릎이 고장이 나는건지 민망하드라 백무동2.6km 가 적혀진 표지목을 지나고부턴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이 되었다네 휴~

그래도 나 해낸거 맞지? 성삼재부터 백무동까지 내 발로 걸었으니까말야
내게 지리종주란 말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저 거대한 지리의 품안에서 나도 잠시 작은 점 하나 풍경이 되어본거지 그만으로도 나는 되었고 그리하여 오래 오래 행복할꺼야

 

◈추진하느라 애쓰신 문선생님 내외분,총무맡아 보시느라 고생하신 권선생님 내외분,우리팀의 분위기 메이커 남선생님,저와 같은 증세로 고생하신 박선생님,그리고 나의 동반자께 고마운마음 전합니다 미안하고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서툰글 읽어주시는 많은분께도 같은 마음 전합니다

 

형제봉

 

 

 

 

 

세석산장

 

멀리 천왕봉이...

장터목산장

천왕봉 하산길

반야봉이 보이네

백무동쪽

일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