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승산 산행기 (051015)

  

   남편이 일 때문에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오전에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마곡사가 있는 철승산 활인봉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집에서 유성까지 가는 도로변의 가로수들은 벌써 단풍으로 곱게 치장을 하였다. 산 위에서 보는 단풍이 일품이라지만 거리의 가로수가 뿜어내는 단풍 빛깔은 가을마다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찬란하다. 어느새 공주시를 지나 마곡사 가는 길로 들어선다. 들판은 이미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한 느낌마저 들고,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감을 잔뜩 이고 힘겹게 가지를 휘 늘어뜨린 감나무들만이 우리를 스쳐간다. 어느덧 집에서 출발한지 1시간 20여분 만에 마곡사 입구 주차장이다. 


   마곡사는 대전에서 비교적 가까운 유명한 사찰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 온 것을 비롯하여 가족들과도 여러 번 마곡사를 다녀간 적이 있다. 또 5년 전에는 회사에서 봄에 단체로 마곡사 뒷산, 즉 우리가 오늘 오르려는 철승산 등반을 한 적도 있는데 남편은 오늘이 처음 산행이란다.


   주차장에서 마곡사까지는 잘 닦인 넓은 포장도로다. 길 왼편으로 계곡이 있어 평소에는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나 가을이 반쯤 지나간 오늘은 어쩐지 물소리가 서늘하다 못해 추운 기분까지 들게 한다. 주차장에 차가 제법 많더니 가족들끼리 함께 나온 사람들이 길에 가득하다. 매표소를 지나고 계곡 오른쪽으로 끼고 난 길을 50여m 정도 가니 바로 마곡사다. 커다랗고 길다란 돌에 ‘太和山 麻谷寺’란 글귀가 보인다.


   마곡사 대웅전 앞 은적암 입구를 기점으로 하여 해발 423m의 활인봉, 417m의 나발봉을 따라 마곡사 경내를 끼고 한 바퀴 도는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는 흔히들 경사가 완만하여 어린이와 노인 등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도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활인봉까지 가는 오르막길이 비록 그 길이가 짧다고는 하나 제법 경사가 있어 오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는 오르막길에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이다. 해탈문, 천왕문을 지나면 맑은 계류가 흘러드는 작은 계곡이 실개천처럼 사찰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시원스런 풍광을 하고 있다. 개천을 따라 남북으로 갈라진 가람은 극락교가 이어준다. 극락교를 지나면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모습과 달리 장쾌함이 느껴진다. 한 때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태조 왕건’의 일부분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대광보전 앞마당에는 의미 있는 향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일제시대에 백범 김구 선생은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일시 이곳 마곡사(정확하게는 마곡사 바로 위쪽에 있는 백련암이라는 암자)에 피신하여 지낸 적이 있는데, 해방 후 다시 찾아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심었다고 한다. 향나무는 키가 그리 크진 않고 옆으로 가지가 벌어져 있다.

  


 

(백범이 심은 향나무)

  

   또한 마곡사는 온통 명필들이 경연을 벌인 듯 대광보전 현판은 표암 강세황이, 대웅보전은 신라 명필 김생이, 영산전은 조선 세조가 쓴 글씨라고 한다. 그전에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붓글씨를 배우고 있기 때문인지 그 글씨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마곡사 대웅보전)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는 말이 있듯이 마곡사는 특히 봄이 화려하다. 사찰안의 각종 봄꽃은 물론 주변 개울과 산에 피는 개나리, 진달래, 산벚꽃 등이 어우러져 봄의 화사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늦은 가을 지금 보는 마곡사도 색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은적암 입구 안내판에 세가지 코스의 등산로가 안내되어 있는데, 제1코스는 활인봉과 나발봉을 모두 돌아 마곡사로 내려오는 2시간 30분 코스, 제2코스는 활인봉을 돌아 바로 마곡사로 내려오는 2시간 코스, 제3코스는 활인봉을 거치지 않는 1시간 30분 코스다. 오늘은 오후 잠깐 동안의 등반이고 적어도 아이들 저녁시간까지는 맞추어 집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제2코스로 산행하기로 한다.   


   왼쪽으로 난 등산로로 접어든다. 역시 오르막길은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 번 올라본 산을 다시 오를 경우의 단점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장점은 그러나 그 힘든 길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시작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산에는 주로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토종 소나무들(적송)이 우거져 있는데, 천연 소나무 숲으로 된 등산로로는 중부권 최대 규모라고 한다.


   수목은 해충이나 미생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공기중에 피톤치드라는 천연 항균물질을 발산한다. 피톤치드란 '식물'(Phyton)과 '죽이다'(Cide)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식물이 내뿜는 살균성 물질을 총칭하는데, 이것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곤충이나 미생물로부터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여 수목 자신을 보호하는 살충작용을 하나, 동물들에게는 이로움을 준다는 것이다. 피톤치드 중에 으뜸은 소나무라서 삼림욕 중에서도 소나무로 구성된 숲에서 하는 삼림욕이 제일 좋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산에 오르다가 쉴 때는 반드시 소나무 아래에서 쉬는 사람도 있단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곳은 최고의 삼림욕장이 아니겠는가.


   어느새 제3코스가 갈라지는 곳을 지나 활인봉(活人峰)에 도착한다. 활인봉 근처에는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생명수 샘터가 있다는데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5년 전에는 정자 하나와 나무에 매달아 놓은 이정표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 사이 정상 표지석이 하나 새로 생겼다. 잠시 표지석을 안고 번갈아 사진 한 장씩을 찍은 다음 하산한다.


   바람이 약간 불고 스산한 나뭇잎 스치는 소리뿐이다. 오가는 등산객도 한 사람 없다.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완만하면서도 한적하다. 순식간에 나발봉과 샘골이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순간 나발봉도 가볼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국 처음 생각처럼 그대로 하산하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한참을 내려가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시골길이 나오고 드문드문 집들이 있는 마을이 있다.


   5년 전에도 이 길을 걸었었다. 그 때는 봄이었고, 사방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무엇보다 밭에는 노란 무꽃이 한창이었다. 지금은 노랗게 익은 벼를 몇 사람의 농부들이 베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 고향에서는 추수할 때면 온 동네 어른들이 모두 나와 잔칫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떠들썩하게 벼베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 넓은 벌판에 벼를  베는 사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참으로 때늦은 쓸쓸한 추수 풍경이다.


   이윽고 김구 선생님이 피신하여 살았다는 백련암 앞을 지난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선생님도 오늘 우리가 걸었던 산길을 수없이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활인봉에 올라 앉아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사람을 살해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나라의 앞길에 대한 막연함과 독립에의 결의 같은 것을 다지곤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마시면 사람을 살린다는 그 샘물을 마시고 활인의 의지를 다잡아 만주로 떠나신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철승산 활인봉은 백범을 살린 활인봉이요, 결국 그로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끌어낸 활인봉은 아닐지.


   돌아오면서 내내 백범이 지하에서 지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시면서 얼마나 통탄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해방 직후 백범이 당면하였던 그 상태 그대로 자기 생각만 옳고 상대방의 생각은 그르다는 편협함에 사로잡힌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화합해 나갈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리라.


   마곡사 앞마당에 자리잡은 구부러진 향나무는 그 향만큼 아름다운 시대정신을 요구하는 백범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