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산(앵무봉 622M)

언제 : 2005년 10월 23일

어디로: 보광사 --헬기장--도솔암 --정상 --보광사(3시간)

누구랑 : 나와 그림자


 

가을이 한창 익어 간다.

나무들은 형형색색 옷을 갈아 입으며, 산꾼들을 부르다 못해 유흥객들까지 자기 품으로 불러들이고 있으니 어디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을 즐기려는 산꾼에게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주말 산행을 놓고 서울 근교산을 찾다 파주군 벽제에 있는 고령산(앵무봉)을 알게 되었다.

서울근교에 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그산이 품고 있는 보광사는 꾀나 큰 사찰로 사하촌에는 유흥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했다.

 

9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내리던 비가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내렸고 토요 산행을 계획한 나의 마음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다행이 금요일 저녁에 비가 그친 덕에 나와 그림자가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 과일 몇 개와 물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김포가도를 지나 행주대교를 지나고 장흥가는 국도 39번에는 이른 아침부터 나들이객들로 길이 혼잡 할 정도였다.

다행이 우리 애마는 그틈 바구니 속을 나와 그림자를 태우고 잘도 달렸다.

예전에는 묵묵히 따라만 다니던 그림자가 요즈음 서로 호흡을 맞추며 동반자가 되었고, 그림자와 걷는 산길은 늘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늘은 처음 가는 산길이라 혹시나 헤매지 않을까 내심 걱정 까지 되었다.

벽제를 지나 도로 표지판에 서을CC라는 팻말을 보고 들어가니 보광사 안내판이 덩그러이 우리를 맞이 해주었다. 표지판을 따라 약 5KM전진하면 울창한 수풀림 속으로 보광사 일주문이 보이고 그 뒤로 고령산이 고즈녁히 자리 잡고 있다.

가을 고령산이라 했던가 주차장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텅빈 주차장 한켯에 차를 세우고 그림자와 같이 보광사를 향해 걸었다.

 

일주문을 들어서며 반배를 올리고 오늘 산행의 무사를 위해 부처님 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웅전에 들러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니 들뜬 마음이 차분히 정리가 되었다.

삼배를 올리는데 그림자도 따라 절을 한다.

귀의 불, 귀의 법, 귀의 승.......

삼배를 마치고 나와 경내를 둘러 본뒤 바로 산행길로 접어들었다.

보광2교를 우측으로 지나 보광사 콘크리트 주차장에 이르면 왼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보였다.

옳지 저기가 바로 입구.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앞서 간 산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한적한 산길

 

발끝에 밟히는 낙엽과 빨갛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외에는 누구도 산속의 적막을 깨트리지 않았다.

간간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고마울 정도로  오솔길위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며 긴장된 다리를 풀었다.

쭉쭉뻗은 전나무 숲을 지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드니 정말 고요의 숲속에 명상을 하는 기분으로 길을 걸었다. 다소 가파른 길이지만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나와 그림자는 행복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도솔암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솔암 입구에는 동자승 인형이 밤새 암자를 지키고 있다 지쳤는지 여기저기 누워 있었다.

 

간밤에는 암자에 경 읽는 소리마져 그쳤는지 적막에 휩싸인 도솔암은 퇴색 될 대로 퇴색되어 중창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름한 나무판에 씌여진 정상 가는 길

건너편 산능성에 군부대인듯한 건물이 흉물처럼 따라 오기 시작했다.

도솔암에서 헬기장 까지는 경사도가 심했지만 가을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었다.

간간이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햇살이 비치면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행복하고, 그림자도 행복한지 가끔씩 손을 잡으며 따스한 체온을 나누기도 했다.

헬기장을 지나니 정상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정상까지 단숨에 올라서니 주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조망은 높은 산 못지않다.

올라오던 길을 보니 단풍으로 비단을 깔아놓은 듯 하고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사패산이 보이고 기산저수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다만 무슨용도 인지모르지만 거대한 철조 구조믈 하나가 덩그러이 정상을 지키고 서 있다. 수도권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물들.....

짐을 풀고 과일을 깍아 먹으며 정상의 기분을 만끽하다 우측으로 난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정상에서 기산저수지 쪽과 보광사쪽  말머리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아직은 정확한 길표시가 없어 안전한 길로 접어들었다.

하산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낭만적이었다.

수북히 쌓인 낙엽길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 가을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나니겠는가?

10여분 내려오다 건너편 능선이 보이는 바위아래 앉아 가을햇살의 따스함음 맘껏 즐겼다.

정오가 가까워오면서 한두팀씩 산꾼들이 지나갔다.

 

희미하게 난 길을 따라오다 보광사 뒤편에서 길을 잃는 실수를 하였다.(길이 잘 안보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자는 이리저리 나무를 헤집고 말없이 따라 와주니 고맙기만 할 뿐이다.

그 덕에 아무도 밟지 않는 낙엽 길을 밟는 행운은 얻었지만 깊은 산 같았으면 무척이나 헤메었을 것 같아 미안할  뿐이었다.

그래도 산에 가면 나를 믿고 같이 행동해주는 그림자.

 

짧지만은 길게만 느껴졌던 하산길...

아마도 보광사 대웅전 부처님께서 오늘은 나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 같다.

길도 없는 산기슭 밭뚝을 건너 원점으로 돌아온 나와 그림자.

보리밥 집에서 ‘나두야 ’ 술 한잔 기울이며 고령산 산행을 되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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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 기산 저수지 쪽으로의 드라이브는 산행의 피로를 말끔이 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