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팔방으로 조망이 터지는 백두대간 마패봉


 

             마패봉에서 바라본 부봉(6개의 봉우리)과 그 뒤로 보이는주흘산 능선

 

                   

  태초에 길이 열린 하늘재(계립령)

 

  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오전, 39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G산악회 주관)가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신북천을 따라 조성된 901번 지방도로를 달려 산행들머리인 경북 문경시와 충북 충주시의 경계에 위치한 하늘재에 도착합니다(09:47). 오늘 산행은 백두대간 제14구간(이화령∼하늘재) 제28 소구간(조령3관문∼마패봉∼탄항산∼하늘재)입니다. 


  하늘재는 신라 때 한양과 부산을 연결하는 가장 큰 길이 지나는 해발 525m의 고개로 계립령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버스를 내리자마자 문경시장이 세운 하늘재의 유래가 적힌『계립령 유허비』가 서 있어 내용이 다소 길지만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그 전문을 한번 살펴본 후 산행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청아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들꽃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한 세월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산,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 3년(156년) 4월에 죽령과 조령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을 열었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 바로 충주에 이르고, 이곳에서부터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아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및 백제가 함께 중요시 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연개소문과 온달장군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 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용했을 가능성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불교의 성지로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사지(寺址)만이 전한다.


  조선조 태종 14년(1414년)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고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이 영을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향취를 전하고자 이 곳에 유허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자 한다.』


 

         하늘재의 계립령 유허비


  하늘재∼탄항산

 

  계립령휴허비 앞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또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7-8분간 지체하다가 왼쪽으로 조성된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바로 오르막으로 이어집니다. 등산로 왼편에 있는 바위에 살짝 올라서 뒤돌아보니 하늘재 건너편에 위치한 포함산(布岩山)이 흰 베(布)를 짜서 펼쳐놓은 것 같이 거대한 바위를 드러낸 채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나뭇가지사이로 보이는 월악산과 왼쪽으로 보이는 주흘산의 주봉(1,075m) 및 영봉(1,106m)을 카메라에 담고는 흐뭇해합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45분만에 조그마한 봉우리에 도착했는데 전혀 예상치도 않게 '백두대간 탄항산'이라는 표석이 반겨줍니다(10:40). 탄항산(炭項山, 857m)은 제법 우뚝 솟은 봉우리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다지도 초라하다니 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탄항산이라는 이름도 매우 특이합니다. 탄항산의 탄항은 아마도 변방·국경 등을 지킨다는 의미의 수자리 수(戍)와 지키기에 알맞은 목이라는 의미의 항(項)자가 합성되어 '수항'이라 일컫던 것이 숫항→숯항으로 전음되어 숯 탄(炭)자의 훈을 빌려 뜻옮김하여 불리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자료 : 월간 산, 2005년 10월호, p.220).


  ☞ 탄항산을 '월항삼봉'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이름이라고 합니다(자료 : 문경의 명산 홈페이지).

 

             탄항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포암산

 

          탄항산 오르며 뒤돌아본 경관

 

             뒤돌아본 월악산 영봉과 중봉 


 

             주흘산의 주봉(왼쪽)과 영봉(오른쪽)


 

               탄항산 정상표석


  탄항산∼959봉∼부봉제1봉

 

  탄항산을 지나자 등산로는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급기야 급경사 오르막으로 변합니다. 보조로프를 잡고 올라 뒤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탄항산 뒤로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한 만수봉과 월악산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안부에 내려서니 한 산악회에서 '평천재(755m)'라는 이정표를 만들어 나무에 걸어두었습니다. 이정표가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평천재에서부터는 다시금 경사가 급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벌써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줍니다. 벼랑에 걸려 있는 긴 로프를 잡고 오르니 959봉입니다(11:20). 여기서 좌측은 주흘산의 능선으로 연결되며, 백두대간은 오른쪽으로 90도를 돌아갑니다.

 

  이정표에는 주흘산 2.6km(1시간 30분), 부봉(제6봉) 1.3km, 제3관문 4.7km(3시간)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동안 백두대간을 거쳐간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달아 놓은 표시기가 옛날 당집에 걸린 색동천조각이나 고관대작의 장례식 때 나부끼던 만장을 연상케 합니다.


  여기서부터 부봉까지는 필자가 지난여름 주흘산∼부봉 종주산행을 하면서 한번 지나간 길이라 낯이 익습니다. 급경사 내리막을 지난 능선에는 큰 노송이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는데 고사목 두  그루가 쌍둥이 마냥 나란히 서 있어 죽어서도 무언의 대화를 하는 모습입니다. 


  다시 내리막길을 가다가 바위 전망대에서 조령산과 부봉을 감상하고 나니 안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는 안내판(부봉 1지점)이 세워져 있는데 지난여름에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보조로프를 잡고 내려와 부드러운 능선을 가는데 군데군데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에서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표석이 박혀 있습니다.

 

  주흘산과 조령산은 도립공원이기에 왜 이런 표석이 있는지 의아해 하다가 나중에 오늘 산행코스인 백두대간 길의 북쪽은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개를 끄떡입니다. 


  왼쪽의 바위허리에 걸려있는 로프를 잡고 건너다가 배낭 오른쪽 옆 주머니에 넣어둔 물병(1리터용)이 바위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져 뒷발에 걸립니다. 절벽의 좁은 공간에서 몸을 뒤로 돌려 물병을 집어 올리기도 쉽지 않은데 마침 뒤따라오던 여성회원이 이를 집어 주어 위기를 모면합니다.


  부봉제1봉 갈림길까지 가는 길목에는 미륵바위(부처바위)가 있다지만 이를 놓치고 말아 정말 아쉽습니다. 삼거리갈림길에 도착한 후(11:54) 비로소 배낭을 내려놓고 한 숨을 돌립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두 시간만에 처음으로 물을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날씨는 겨울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여기서 백두대간은 동문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므로 구태여 부봉(제1봉)을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의 조망이 매우 좋아 제1봉까지만 갔다가 올 사람을 확인해보니 6-7명 정도 됩니다.

 

  이정표에는 제1봉까지 15분이 걸린다고 적혀 있지만 지난번의 기억으로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아 용감하게 나섭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도 기꺼이 동참합니다. 급경사의 오르막 막바지에 두 번의 밧줄을 잡고 오르니 묘지가 있는 제1봉(916m)입니다(12:06). 


  정상에 서니 좌측으로는 포암산과 주흘산, 우측으로는 조령산의 능선이 잘 조망되며, 북쪽의 소나무 가지사이로 월악산이 선명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평천재 이정표


 

          주흘산과 백두대간 갈림길인 959봉 이정표


 

                            쌍둥이 같은 두 그루의 고사목


 

           구조요청 안내문


 

              대간 등산로 좌측으로 보이는 조령산(뒤쪽)


 

                        바위허리에 걸린 로프를 잡고 오면서 뒤돌아본 모습


 

               부봉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부봉제1봉 이정표
 

제1봉에서 바라본 조령산

제1봉에서 바라본 주흘산(중앙은 영봉, 오른족은 주봉)

흰바위가 보이는 포암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월악산


  부봉제1봉∼동문∼마패봉

 

  다시 삼거리 갈림길로 내려와(12:23) 부드러운 길을 따라 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제법 만납니다. 산성터가 남아있는 동문에 도착하니(12:30) S산악회장을 비롯한 선두가 식사를 하고 있어 이들과 합석합니다.


  아내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로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금 대간 길을 나섭니다. 가야할 마패봉이 빤히 바라보이지만 한 구비를 넘고 나면 다시 내리막으로 연결되는 등 시간이 상당히 소요됩니다.

 

  월악산을 조망하며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가고 있는데 뒤에서 빠른 발걸음이 들리는 듯 하더니 어느새 번개처럼 두 사람이 앞서 갑니다. 바로 G산악회의 프로 산꾼인 K선생과 L씨(68세)입니다. 이들은 부봉갈림길에서 제1봉을 거쳐 6봉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중입니다. 하산 후 확인해 보니 부봉 6봉까지 다녀온 건각들은 이들을 포함해 모두 9명입니다.


  다시금 상당한 오르막 길이 계속되는데 뒤돌아보면 노송사이로 부봉의 여섯 봉우리가 잘 조망됩니다. 이 봉우리만 오르면 마패봉일 것으로 짐작했지만 다시 하나의 고개를 더 넘은 후 능선을 타고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오르막길에서 하나의 뿌리에 세 개의 큰 줄기를 가진 노송을 발견하고는 입이 떡 벌어집니다. 다시 내리막안부에는 북문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아직도 정상인 마패봉까지는 0.7km를 더 가야 합니다.


  오르막의 700m는 상당히 멀게 느껴져 다리가 뻐근할 지경인데 앞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유행가 가락이 울려 퍼집니다. 옆으로 지나가는 몇 명의 등산객들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 중 한 사람의 어깨에 소형 라디오가 묶여져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살이를 잊으려 산을 찾은 사람이 산행을 하면서 속세의 유행가를 듣는 것은 이 세상과 끈질기고도 끈끈한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리는 휴대폰 소리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귀찮게 하는 족쇄이며 애물단지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면서 깔딱 오르막을 힘주어 오르니 드디어 마패봉입니다(14:13).


 

                  동문 이정표


 

               큰  줄기가 세개인 노송등걸

 

           세개의 노송 줄기


 

                            북문 이정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부봉

 


  마패봉의 환상적인 조망
              
  봉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리며 북쪽의 월악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돌무덤 옆에 길고 뾰족한 돌이 세워져 있는데 북쪽의 경치는 좋지만 봉우리는 초라하게 보입니다. 날씨가 좋아 지나온 탄항산과 그 너머 포함산(962m) 그리고 좌측의 만수봉(983m)과 그 뒤로 월악산의 영봉(1,094m) 및 중봉이 선명합니다.


  그러나 정상표석이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왼쪽으로 약 십여 미터 지점에 진짜 정상이 있습니다. 충청도 지방 특유의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석에는 마역봉(927m)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의 조망이 압권입니다.

 

  먼저 문경새재 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부봉의 여섯 봉우리가 일렬로 서 있는데, 부봉(釜峰)이라는 이름은 멀리서 보면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만 어디서 보아야 가마솥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는 주흘산의 영봉(1,106m)과 주봉(1,075m), 그 오른쪽에는 꼬깔봉(1,080m)의 능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문경새재 길의 오른쪽으로는 깃대봉(치마바위봉, 844m)을 지나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신선암봉(812m) 및 조령산(1,025m)이 굽이치며, 서쪽으로는 신선봉(967m)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흘산과 부봉 그리고 조령산을 두루 답사했기에 주변에 위치한 산 이름을 거의 알아 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며, 문경새재 주변의 어느 산보다도 마패봉에서의 조망이 사방팔방으로 훤하게 트이기에 힘들여 산에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마패봉의 월악산 전망대


 

             마패봉(마역봉) 정상표석


 

           마패봉에서 바라본 조령산 줄기(오른쪽은 깃대봉, 그 뒤 뾰족한 봉은 신선암봉,

           맨 뒤 높은 봉이 조령산)

 

          마패봉에서 바라본 부봉(6개의 봉우리), 그 뒤 좌측은 주흘영봉, 중앙은 주흘주봉,

          맨 오른족은 꼬깔봉) 


 

          마패봉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신선봉


 


 

  마패봉∼3관문∼고사리종점

 

  마패봉에서 서쪽 1.3km 지점에 위치한 신선봉(967m)이 자꾸만 오라고 손짓하고 또 항상 산행을 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L씨도 함께 가자고 유혹하지만, 마패봉에서 3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답사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백두대간을 종주 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또한 비록 밋밋한 산행이었지만 하루 전 강원도 정선 소재 민둥산(1,119m)에 올라 네 시간 정도 산행을 했기에 체력을 감안하더라도 신선봉을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되어 결국은 접고 맙니다.


  그 대신 마패봉에서의 환상적인 조망을 마음껏 즐기다가 3관문으로 하산합니다. 가느다란 로프가 설치된 바위를 내려오자 이번에는 제법 만만치 않은 바위구간의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됩니다. 겨울에는 상당히 위험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별로 특징이 없는 등산로가 3관문까지 이어집니다. 2주전 조령산 산행 시 3관문에서 읽어보았던 "새재를 지나는 길에"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는 조선시대의 문인인 김종직(金宗直)이 지은 것임을 확인합니다.


  벌써 세 번째 3관문을 방문하기에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어 곧장 고사리마을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만추의 계절에 서쪽의 태양을 받아 불타는 단풍을 카메라에 담은 후 부지런히 걸어갑니다. 고사리마을 주차장에는 "백두대간 굽이치는 신선봉"이라는 대형 표석이 있고 그 아래에는 수령이 370년이 되었다는 보호수인 소나무 한 그루가 우아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습니다(15:50).


  오늘 산행에 5시간 5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코스는 하늘재/
탄항산/평천재/959봉/삼거리/부봉제1봉/삼거리/동문/북문/마패봉/3관문/고사리마을 주차장입니다.

 

 

              조령3관문


 

               김종직의 한시


 

                태양에 빛나는 낙엽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본 신선봉

 

             보호수인 소나무


 

                소나무와 가을하늘

 


  에필로그

 

  문경지방은 명산의 고장입니다. 백두대간 길과 그 주변에 모두 34개의 산이 있는데 지금 헤아려 보니 필자는 그 동안 절반에 해당하는 17개의 산을 답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부지런히 문경의 나머지 산을 찾을 것임을 다짐하며, 버스 내에 설치된 위성TV에서 방송되는 '열린 음악회'에 귀를 기울입니다. 산행을 하며 유행가 소리를 비판했던 필자도 어느새 속세로 돌아와 음악에 정신을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랍니다. 차창 밖으로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는 일요일 저녁 버스는 서울을 향해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