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리  산

 

산행일시: 2005년 10월 22일- 10월 24일       날씨: 구름,안개. 맑음

 

 백오동과

 

산행구간 : 어천마을 -천왕봉- 정령치휴게소          

        

산행거리 :  65  KM

 

산행시간 : 10월 22일 02시 20분 - 19시 50분 (17시간 30분)

                      10월 23일 08시 30분 - 10월 24일 01시 (16시간 30분)

총 34시간


 
 
 

 

 

태극종주의 길을 따라


호화로운 도심 위락 시설보다
때 묻지 않은 산촌을 보고 싶어 했다.
지난 봄 지리에서 보았던 그 긴 여정
싸리나무와 철쭉 길과 산죽 길 숲의 향기를 찾아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거친 숨을 가다 듬는데
속을 달래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
산길을 걷는 일,
나 혼자만의 은밀한 기쁨이야 꾸준히 누려 왔지만
기쁨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 듯
하나 하나 돌이켜 보면 그동안 많은 기쁨을 만났지만
태극종주의 향기는 힘차게 살아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백오동과의 약속을
부랴부랴 준비한 배낭속은 무척 힘에 겨운 듯
어깨 쭉지가 축 늘어지는 안간힘 쓰며
남부터미널 긴 여정은 그리 버스 타기가 싶지가  않다.
이제 보니 오늘은 금요일 오밤중 11시
예비번호 기다려 간신히 어천마을로 향한다.

 


천왕봉을 꿈꾸며

 

캄캄한 오밤중 어천마을
"너희들이 있어 행복했노라" 꿈에라도 웃는 모습
얼굴이라도 보면 좀 나을까 싶어 엷은 미소 띠워본다.


그 옛날, 신화라는 형식으로 별의 운동을 기록하던
선현들에게 경외심을 품은 채 밤 하늘을 맴돌고 있다.

 

s자형 오르막 웅석봉 가는 길
계란형 달과 별들이 하늘금 맞닿아 잔치 벌이고
불어오는 바람은 아주 스산한 겨울 세찬 바람 못지 않고
겨울 장갑을 가져 오지 못함을 아쉬워하듯 손은 금새 냉동되어 가는데
온 천지는 어두움에 잠들어 있다.

그 속에 백오동과 나는 걷는다.

 

웅석봉 정상에서

 

넓적한 잎에 벌써 갈색으로 변해버린 갈참나무가 너울거리는 바람 소리에
봄에 만났던 그 흔적 그 그리움 그 3중주의 연보라색 이미 찾을 수 없고
적홍색의 철쭉나무 앙상한 가지의 외로움 지칠 줄 몰라 아직도 끝잎파리 바람에 간등거리고
지천으로 깔린 푹신한 길을 한층 더 부드럽게 열어주는 융단 길
온 천지가 갈색 세상속에 내가 있었다.

 

동왕등재 지나 산죽 길 여전히 직녹색 지칠 줄 모르나
은빛물결 찬란히 비추는 억새가 햇빛에 너무도 춤추는 모습 평화는 이곳에 있었다.
언제나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건만
동부능선의 오르막은 어느곳 보다도 유달리 힘든 산행 길
천왕봉의 모습 저 멀리 들어오지만
내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걷는 것,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백오동

 


너무도 멋진 하봉에서

 

천왕봉을 바라 보기에 너무도 멋진 곳이 보고 파
너무도 황홀하여 숨가쁘게 달려 갔던 곳
힘든 급경사 올라 땀이 온몸에 젖히며 올라 갔던 곳
그곳은 이미 한 겨울이었다.

 

우뚝솟은 구상나무의 얼음꽃
잎파리 하나 걸려있지 않은 쓸쓸함 속에 샤스레 나무의 얼음꽃
그 얼음꽃 견디기 힘들어 뚝뚝 떨어지는 환상의 조각품
미지의 세계는 여기에 있었다.

 

 

 

내리막 길 조심스레 밧줄 잡으려 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난다.
한참을 앉아서 주무르며 안간힘 쓰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추워서 온몸이 동태가 되어가고 어둠이 몰려온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천왕봉을 향해서 먼저 간 백오동을 향해서
어두움을 헤치며 한발짝 한발짝 힘 겨움에
앞에 나타난 모르는 산객님
"100미터 앞에 친구가 얼굴이 이상해져 빨리 가보란다"
"예 알았습니다" 난 더욱 급해진다.
나도 힘든데 어쩌랴 먼저 덜덜 떨던 생각이 스치는 순간
있는 힘을 다했다. 


온몸을 움추려 떨고 있었다.


조금만 앉아 있으면 너무도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은 요지경 세상을 지나
천왕봉에 올랐을 땐 시베리라 벌판 그 암흑일 뿐이다.

 

안개에  추위에 어두움에 환시에 장터목 가는 길조차
보이질 않는다.
비박을 하는 불빛이 보여
"장터목 어데로 가요? 장터목 어데로 가요?" 목이 터져라
외쳐본다.

 

 

장터목 산장에 왔을땐 이미 너무도 장사진을 친다.
토요일이라 이미 예약을 하지 못한 우리들은 겨우 담요 한장에
계단에서 자란다.


너무도 떨고 있는 우리들이 안쓰러웠던지
담요을 건네준 분, 메트리스를 빌려주신 분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주체할수 없는 몸인지라 저녁밥도 먹지 못한채
그렇게 하루밤을 보냈다.

 


아늑히 앉은 세석평전에서

 

가을 햇살이 비추는 회백색 하늘의 평지 너른 터
영신봉과 병풍바위 산자락과 검은색과 엷게는 고와지기 시작하는 단풍능선을
유회하고 있었다.
키 작은 오이풀, 이미 누런 갈잎으로 산님들에게 외면시 되었고
철쭉나무 키작은 샤스레나무 이미 처절한 겨울 싸움 시작되었다.


누런 갈색의 평화롭고 온화한 세상에 구상나무 초록빛과 어우려져 환상이다.
이 한적한 가을산이 더 마음에 든다.

 

나무나 숲은 사람과 떨어져 있을수록 순수함을 유지한다고 하는데
나의 마음도 그러길 바란다.
능선과 능선의 겹겹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초록, 노랑, 적황색, 갈색, 적색들이 조화로움
뒤엉켜 그림처럼 펼쳐지는 눈요기 시작되었다.

 

 

용담


걷고 또 걸어서

 

백오동이 보인다.
웬 산님과 얘길 나누고 있다.
"요물님이세요" "네" 내가 그리던 분들이다.
이미 태극종주 왕복에 나섰다는 그 분들!
신현철님, 원타이정님 너무도 반갑다.
이미 덕두봉에서 다시 되돌아오는 중이다.


그렇잖아도 궁금했는데 왕복중에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갑고 부러운가?
너무도 짧은 찰라의 만남은 제 갈 길이 달라 그렇게 헤어졌다.
부디 어천마을까지 갈 수있기 바라는 마음이다.


산 길을 혼자 걸을 때와 둘이 걸을 때 모두가 느낌이 다르다.
혼자 걷다가 지쳐서 백오동과 같이 걷자면서 때론 주문도 한다.
이미 난 백오동과 걷기를 희망하는 길들여진 여자인지 모른다.

 

 

지리10경중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휘황찬란한 황금빛 낙조를
어느 시인은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잔치"라 했다.


우린 반야봉을 바라보면서
떨어지는 황금하늘을 보면서


오늘 백오동이가  천왕봉 일출을 함께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다.

 

 

 

갈 수 있는 끝까지 가 보리라!

 

어두움속의 가는 능선 이곳만 해도 살맛나는 산행 길
바람이 닿지 않고 온기마져 느껴지면서
오로지 걸을 수 있는 희망만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안개가 그 기세를 더하더니 세찬 바람과
천지가 캄캄하여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다.

 

달도 별도 구름에 숨박꼭질 연이어 하늘보라 하고
산죽과 싸리나무 철쭉나무 앙상한 가지가 그래도 가는 길
지난 봄보다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힘겨운 만복대를 오르막으로 부딪치는 바람과 안개
얼굴내밀 용기가 나질 않는다.
바람막이 잠바를 수없이 입고 벗고를 되풀이 하면서
거대한 능선을 넘고 넘어서
걷는다.

 

 

갈 수 있는 끝이 여기 였는가?

 

헤드랜턴 불빛이 나가면서 부터 진행은 할 수가 없다.
새것으로 갈아 끼워 보았지만 불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새 것으로 다시 끼워 보아도 캄캄한 밤 길을 갈 수가 없다.


정령치를 앞에 두고 한시간 정도를 그렇게 힘겨웁게 랜턴과 씨름하면서 걸었다.
그랬다. 우린 여기서 그만 멈추라고 그랬나 보다.
랜턴이 그랬던 것이다.
"정령치 휴게소" 어두움과 추위와 랜턴 불빛만이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라고"
 정령치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