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005. 11.1
누구랑: 홀로이
어디로: 금정거쳐 백양으로

시월의 마지막 날이 어찌 지난지도 모를
반복되는 번잡한 일상을 훌후ㅡㄹ 털고
문득 홀연히 떠난 길이었다.
절정의 윤기로 가을햇살 쏟아지는 오후
식물원옆 규림병원, 들머리에 도착하다.(13:20)
뭇사람들속 어울리기 좋아하나
혼자만의 여백 또한 무척이나 좋아한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라는
김 재진님의 싯귀처럼
모두다 내려놓고 떠나길 좋아한다.

너무도 자주찾은 지척의 산이기에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길로 올라본다.
찌푸린 얼굴로 나선 걸음이었는데
산에 들자마자 씨익~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산 특유의 알싸한 향내로
이내 코 끝이 행복해진다.
날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가을산은
또다른 바라보는 즐거움을 덤으로 선사하고---
오늘도 느낌 하나 의지한 채
뚜벅뚜벅 느린 걸음 옮겨 놓는다.
도열한 나무들 켜켜이 울긋불긋
계절은 정말이지 한 치 오차없고
외길아닌 여러 갈랫길을
이리로 저리로 부담없이 진행한다.
더러는 뒤돌아 다시 길을 찾으며
오가는 사람없이 철저히 혼자
고즈녘한 산길이 마냥 좋아 흡족하다.
매사가 순항일땐 여가선용으로
일상이 힘들적엔 재충전 방편으로
대자연속에서 자신을 추스린다.

드르륵~~
드르륵~~
폰의 진동음이 미웁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단절할 모진 맘은 없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
난 이렇듯 유유자적인데
저들은 이런 날 환자(?) 취급한다.
어차피 세상은 더불어 흘러가는 곳!
바스락~~
바스락~~
발바닥도 감미롭고
푸드득 날아가는 산비둘기 반갑고나.

1시간쯤 올랐을까?
너럭바위에서 처음 쉼을 가지는데
발아래 펼쳐지는 무채색 도시풍경
맞은 편 산자락엔 멋드러진 바위군상!
푸른 하늘과 아글자글 단풍속에
조각작품 경연을 펼치고 있었다!(14:10)

케이블카 종점이 가까운 지점
곳곳에 고성방가가 울려 퍼진다.
-청춘을 돌려다오- 라고도 하고
-울긴 왜 울어-라고 목청뽑는 아낙네.
이정표를 의지하지 않고
인적없는 길로 접어들어 걷는다.
오늘의 테마-
안걸어본 길로 가자!
따사로운 햇살이 숲 사이사이 노닐고
만발한 억새가 소롯이 탐스럽다.
지척에 상계봉의 웅장한 모습
골골마다 단풍이 채색물감 덧칠하듯!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15:00)
저멀리 사직주경기장이 큰 공룡알같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고
더러는 인삿말나누며
해맑은 미소 짓는다.
늘씬한 체격으로 쭉쭉뻗은 침엽수림
사시사철 변함없는 곧은 자태
생태보호구역 아모르개구리는
지금 쯤 몸 웅크리고 겨울잠 채비할까?
나무계단 층층이 내려서서
만남의 숲에서 잠시 고심하다.
백양산 정상으로 오를 것인가?
성지곡 수원지로 하산할 건가?
가을 날 짧은 해는 뉘엿뉘엿 져가는데
또 슬렁슬렁 산욕심이 발동한다.(17:00)

무리하지 말자.
다음에 다시 오자.
날 위하는 골수팬들(?)
걱정끼치지 말자!

백양산은 참으로 매력이 넘친다.
단풍도 더 운치가 있다.
전망대 팻말이 있는 곳
내려다 본 성지곡은 한 폭의 수채화!
멋드러진 편백나무 사이사이로
올망졸망 키작은 나무들이 아가마냥
앙증스레 샛노란 웃음짓는다.
이내 주변은 어둠속에 잦아들고
놀이공원 지날즈음 백양산자락에선
온 산에 까악까악 까마귀 우짖는 소리
머리위 빛 발하는 별 하나 떠있었다.(18:00)

--밤하늘같은 투명한 슬픔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넘어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 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