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피아골~뱀사골)

-언제: 2005.11.09.

-누구와: 천운님과 백야님.

-어디를: 피아골~반야봉~묘향대~삼도봉~뱀사골.

 

              <반야 오르는 길>


<피아골에서>

 

이번 3일간의 연계산행이 결국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태극종주와 지리종주 때도 그런 현상은 없었는데 산행 후 2일부터 입술이 불어 트고 갈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유구무언이로다. ‘산에 다니면서 맑은 공기 마시니 절대 그런 일이 없다던 나의 말들이 지금은 마누라의 비아냥거림에도 속수무책이다. 다만, 분명 이번 산행과는 무관하다고 핑계를 둘러 보지만……

 

<반야의 돌탑>

 

산행 후 제약된 시간에 3편의 산행기를 써야 된다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이미 2편의 산행기를 쓰고 나니 왠지 쓰기가 싫어 그만 둘까 하다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함께한 천운 백야님이 혹시 산행기가 올라 오지 않나 하는 기대감으로 늦게나마 산행기를 쓰기 위해 같이 했던 메모수첩을 꺼내 든다.

 

 

<피아골의 아침>

 

우리는 이번 산행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단풍이 만개한 피아골 산행을 하기 위한 사전 계획은 있었지만 우리네 생활이 어찌 생각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듯이 타이밍을 놓친 산행이라는 것을 알고 출발하였다. 피아골에서 뱀사골로 넘어 내려오는 널널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피아골 구계곡폭포에서>

 

이른 새벽 5 29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도착 하였다. 택시를 이용하여 터미널에 도착된 시간이 6시20이다. 최대한 빠른 시간을 이용하여 아침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 저곳을 기울일 시간도 없으며 우리의 입 맛대로 골라 먹는 식단의 메뉴도 필요 없다. 먹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식이다. 10여분도 안되어 곰탕 한 그릇을 쑤셔 넣고 소화가 될는지는 산행하면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6시40 피아골 첫 차를 타고 직전으로 향한다.

 

웬걸.

언제부터 이른 새벽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는지. 그것도 사찰 입장료까지 포함하여 3200원을. 순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입장료를 내고 산행하는 경우도 때로는 있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구계곡폭포의 늦은 단풍과 무착대쪽을 바라보며>

 

-산행시작-

7 30부터 직전마을에서 산행은 시작 되었다. 차에서 내려 산행하는 사람은 우리 셋과 서울에서 오신 어느 젊은 산 객이 모두였다. 만상홍엽의 단풍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하면서 은근히 기대를 하였지만 우리의 기대에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혹시 게으른 단풍이 있으면 디카에 담아 볼 요량으로 부지런히 발 품을 하여 보지만 그 놈들이 우리에게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하는 말 너희들이야 말로 진짜 게으른 놈이구나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모이를 찾는 새들의 지저귐과 다람쥐가 적막이 감도는 이곳 피아골을 바쁘게 한다. 등 뒤로 내리 뻗는 아침 태양 빛은 말라 삐 틀어진 裸木(나목)을 스스로 비참하게 만들며 철 다리의 삐걱거리는 여음은 청아한 계곡흐름의 소리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을 이곳 피아골이 의외의 정막감이 휩싸이고 있었다.

 

구계곡폭포 못 미처 심상찮은 여성 산 객을 맞는다. 잠시 대화가 이어집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질매재로 하여 왕시루봉을 갑니다

어떻게 홀로 어려운 길을 가십니다 몇 번 가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그것도 곰탱이가 살고 있는 곳을 혼자 갈 수 있다는 용기와 공단직원을 의식(?) 하지 않고 가려는 행동 또한 범상하지 않아서였다.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지도를 보면서 갈려고요

 혹시 인터넷 참고하는 사이트가 있나요

전혀 아는 곳도 찾아 보지도 않았습니다하는 말에 더 이상 高手(고수?)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제 갈 길로 향한다.

 

 

 

<산장 앞 폭포(사진 위)/피아골 산장(중)/산행중 임걸령을 바라 보며(천운)>

 

-피아골 산장에서-

천운님과 백야님을 산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신은 잠시 계곡산행을 한다. 주위의 단풍은 담을 수 없어 폭포 사진이라도 몇 컷을 찍기 위함이다. 반대편 능선에 피어있는 무착대쪽의 단풍이 암 봉 주위로 펼쳐진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기만 하다. 산장에 도착하여 젊은 산지기님에게 혹시 함선생님이 계시냐고 물었다. 연로하신 나이 때문인지 인기척이 없으시다. 옆에서 우리 일행이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그 젊은 여성이 산장으로 가더니 무언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잠시 그쪽의 일그러진 모습을 확인하고 조용히 불렀다. 물론 그쪽의 답은 뻔한 내용이었으리라……

 

<피아골 산장에서:주위의 조망을>

 

 

<노루목에서 바라 본 성삼재 길과 고리봉(사진 위)/불무장등(사진 아래)>

 

-여성 산 객과 대화-

식탁에 앉아 지형도를 꺼내 보이면서 짧은 내 상식의 지리산의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질매재의 들머리와 서산대의 들머리 또는 용수암골의 들머리를 이야기 하였지만 알아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초자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감히 홀로 무모한 산행을 하려는지 지금도 이해 하지 못하겠다. 그러면서 한참 망설이는 것이었다. 비 지정이라는 끈을 잡고서……

 

대변보고 뒤처리를 하지 않은 양 자꾸 켕기고 있었다. 잠시 후 용수암골 들머리에 닿는다. 이곳에 두 번이나 왔으면서도 용수암을 보지 못함이 지금도 답답 하기만 하다. 언젠가 올 기회가 있으면 임걸령에서 용수암으로 코스 선택을 하고 싶다. 날씨가 춥다고 느꼈는데도 남쪽의 태양을 받고 산행해서인지 의외로 더웠다.

 

 

<반야에서 바라 본 서부능선과 하늘>

 

-임걸령에서.

10에 임걸령에 도착하였다. 북쪽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길가에는 서리발이 내려있었으며 나뭇가지가 완전히 옷을 벗어 겨울의 동면에 들어가기 시작한 모양이다. 시원한 샘물을 들이키며 오늘 산행코스를 점검하면서 반야봉과 묘향대를 갈 것인가 하고 물으니 이곳까지 왔으니 보고 가잖다. 그래 욕심은 있어가지고(하기야 본전은 빼야지 3200)

 

<반야봉에서: 함께한 천운님(사진 좌)과 백야님>


 

<반야의 정상석과 천왕을 바라보며>

 

-반야봉에서.

힘든 된비알을 맞으면서 노루목을 거쳐 반야에 올랐다. 사방 팔방으로 시야가 확보된 사면을 바라 본다. 천왕의 미소와 중봉의 산사태지역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여인의 곡선처럼 뻗어 내린 남부능선의 아름다움과 우리 누님의 가르마처럼 깊게 파인 성삼재의 길이 선명하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부족함이 없을 반야봉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암자를 찾아 나선다.

 

 

 

<묘향대의 현재의 모습과 묘향대 가는 길>


 

-묘향대에서.

반야의 중봉을 지나 묘향대의 길은 너무도 선명했다. 2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몇 번의 알바 기억을 생각하며 어이 없어 하던 일들이 지금은 虎林(호림)스님께서 확실한 이정표와 표시기로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12시12 묘향대에 닿는다. 땡그랑 거리는 풍경소리가 적막한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지만 가슴에 와 닿는 이 소리는 세속의 어느 소리에도 견줄 수가 있을까 싶었다. 어제 도착하여 이곳에서 하루를 묵으며 예불 했다는 신도 2명을 배웅하시는 호림스님도 계셨다. 자신도 불자는 아니지만 이곳까지 왔으니 부처님 앞에 제물을 바치며 무릎 끊고 수능에 임박한 우리 딸을 위한 예불을 마치고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조용히 묘향대를 나선다.

 

먼저 가시겠다는 佛者(불자)를 붙들어 놓고 함께 가자니 쉽게 동승 하신다. 얘기를 하는 도중에 다행이 그 분도 여수에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묘향대에 관한 얘기며 할 수만 있다면 반야의 모든 정보를 얻고 싶은 욕심에서 일 게다. 생각 했던 것 보다 반야의 사면을 타고 삼도봉을 향하는 길은 의외로 편안한 길이었다. 그 동안 호림스님이 길 닦기를 많이 하셨다는 그 분의 말씀이고 보며 이제 이곳 반야의 성지도 은둔의 성지에서 벗어 나려는 의지를 엿 볼 수 있었다.

 


 


 

<탁용소 폭포와 551계단을 내려 오면서>

 

-뱀사골을 내려 오면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을까 싶다. 물론 지루함은 없었지만 이곳 사면을 타고 오는 시간은 생각보다 멀어 보였다. 삼도봉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551계단의 날라리봉을 내려 온다. 황량한 화개재에 도착하여 주위의 조망을 뒤집어 본다. 봄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제공 해주는 이곳이 겨울이면 목통골에서 또는 뱀사골에서 불어오는 북풍이 그렇게도 살을 애는 벌판으로 내게는 인식 되어 있는 화개재이다. 산장에는 몇몇의 산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늦가을의 낭만은 이제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의 담과 소에 눈길을 주면서 몇 개의 다리를 건넨다. 하기야 이곳 뱀사골처럼 다리가 많은 곳도 드물다. 재승교. 대응교. 옥류교. 금폭교. 면선교. 반야교 등등……아마 13개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운봉의 소금장수가 뱀사골에서 화개재로 향하여 하동으로 가다가 이곳에 빠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 간장소를 지나 스님이 산신에게 제사 지냈다는 제승대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잠시 80년대 이곳에 캠핑 온 우리 천운님의 뱀사골 경험담을 들으며 지루한 뱀사골의 산행은 마치고 있었다.


 

<마지막 단풍과 자연관찰로>

 

-지인과의 만남.

항상 이곳에 오면 바쁜 일정에 쫓긴다. 아침에는 산행해야 하는 나의 부담이 오후에는 퇴근 일정에 바쁜 그쪽 사정 때문에 그렇다고 근무하고 있는 사람을 불러 무작정 얘기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보니…… 오늘도 1620에 매표소에 도착한 우리는 여기까지 왔으니 공단에 근무하는 지인을 만나 보기 위해 천운과 백야를 일*식당에 있게 하고 나는 사무실로 향하였다. 마치 18 퇴근하는 그 분은 역시 바쁜 일정에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먹지 못한 술이라도 한잔 하자는 권유를 뿌리치면서 일행을 성삼재까지 데려주겠다는 호의를 베푸신다. 성삼재의 시간표를 맞추기 위해 먹고 있는 막걸리를 두고 왔다는 푸념을 멀리하고 성삼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함께한 천운님과 백야님 수고 하셨습니다.

 

                                                                 2005. 11. 18.

 

                                                                     청산 전 치 옥 씀.

  

 

 

-일정정리.

07:30 산행시작(직전마을)

07:37 표고막터(530) 임걸령5.5/피아골산장3.0/직전마을1.0

08:12 구계곡폭포(700)

08:40 피아골 산장(820)

09:33 이정표(직전마을5.4/피아골 산장1.4/피아골 삼거리0.6)

10:00 임걸령(1370)

10:40 노루목(1540)

11:25 반야봉

11:48 반야 중봉

12:12~12:30 묘향대.

13:00~13:35 삼도봉(1540)

13:50 화개재(1375)

14:40 간장소

15:00 제승대

16:00 요룡대.

16:20 산행종료(매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