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일원에 대설경보가 발령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20여년 전에 가본 사자평을 떠올린다.
친구와 새벽 열차에 몸을 싣고 밀양으로 향한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지만 옛날의 추억이 배어있는 계곡길을 오르기로 한다.

계곡에 쌓인 눈과 표충사가 좋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오늘은 작은 개울을 건너는 것도 조심스럽다.

 

겨울속의 봄날이랄까....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걷는데 햇살이 너무 포근하다. 하나 둘 옷을 벗고 겨울속으로 들어간다.

누가 먼저 이길을 걸어갔을까? 앞선 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길을 찾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며 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천상의 화원을 전세낸것만 같다.

파란 하늘과 잠이 오리만치 따사로운 햇살만이 우리와 함께 한다.

서서히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수십길 절벽위 하늘에 걸려있는 신장폭포가 우리앞에 펼쳐진다.

흔히 홍룡폭포라 부르지만 다음에는 쌍금폭포라는 이름을 더하기로 한다.

 

오늘은 우리의 산하가 갖는 여유로움속에 흠뻑 빠져드나보다.

한국의 산하가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서 느릿느릿 봄 햇살을 즐기며 겨울속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쿠웅하는 소리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층층폭포다. 폭포에 걸려있는 얼음기둥이 봄을 못이기어 떨어지는 소리다.

 

다시 오름길이 이어진다.

눈길을 헤쳐오느라 힘이 드나보다. 친구의 뒷모습에서 나를 본다.

 

능선에 오르자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나무 벤치에는 임도로 올라왔다는 다정한 부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재약산을 바라보며 고사리분교가 있는 사자평으로 향한다.

 

사자교를 지나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사자평에는 더이상 고사리분교가 없다.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버린 하늘아래 첫학교 고사리분교는 이제 우리들의 희미한 기억속에서만 존재할 뿐.....

 

아내가 새벽4시에 일어나서 싸준 헛재삿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재약산너머 주막에 칡주가 익었다는 소리에

친구는 그냥 내려갈수 없다며 길을 떠난다. 이러다간 차시간에 늦을거란 소리는 허공으로 메아리치고...

 

이제는 길없는 길을 간다.

보이는 것이 멀리있다고 눈길을 헤치고, 가도 가도 수미봉은 저만치 멀어져 있다.

영남알프스라 했던가. 1000m의 고봉들이 우리앞에 펼쳐지며  그 위용을 자랑한다.

 

산정에 오른다.

바위에 붙은 얼음을 스틱으로 쳐서 얼음덩어리를 목으로 넘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얼음을 따서 먹기도 한다.

어떤 아이스크림도 이 맛을 따라가지는 못하리라....

 

이제는 술익는 주막으로 내려간다.

노부부가 올라오면서 길을 열어놓았다. 사자평으로 내려가는 그분들의 길은 우리가 열었으니 서로가 고마운 사람들이다.

천황산에서 내려오는 한무리의 산악인이 표충사로 내려가고 있다.

칡으로 빗은 술은 없고 걸죽한 더덕주가 나온다. 안주인이 파전을 부치고  훈훈한 인심속에 더덕주는 뱃속에서 익어간다.

 

이제는 내림길이다.

눈이 녹아 미끄러운 길을 친구는 잘도 간다.

표충사를 지나 주차장에 내려오니 이미 기차시간은 지나고...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가니 대구행 기차가 들어온다.

가버린 기차표를 들고 기차에 오른다.

무임승차는 아닌데 그래도 승무원과 마주치니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이제는 겨울산행이 끝이 났다는 아쉬움을 소주 한잔으로 달래며 다음 겨울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