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溪山 山行記

曹溪山 特徵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예로부터 小江南이라 불렸으며, 松廣山이라고도 한다. 피아골·홍골 등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쪽의 계곡 물은 伊沙川, 서쪽의 계곡 물은 송광천으로 흘러드는데, 특히 비룡폭포가 유명하다. 서쪽 기슭에는 삼보사찰 가운데 僧寶寺刹인 松廣寺가 자리한다. 이 곳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 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국보 56) 등의 국보와 12점의 보물, 8점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동쪽 기슭에는 仙巖寺가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今回山行路圖 

▣ 산의  높이 : 884.3m [道立公園] 인기명산 63위

▣ 位      置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주암면

▣ 日      時 : 2005. 11. 16(수)

▣ 日      氣 :  맑음

▣ 山  行  者 : 3명( 본인, 산선배, 산후배 )

▣ 찾아간 길 : 온양온천출발 → 호남고속국도 → 승주IC → 선암사 주차장

▣ 山行距離 : 약 13Km

▣ 山行時間(區間別) - 총 7시간(휴식 및 중식시간 포함)

     09 : 00 - 선암사 매표소 출발 - 산행시작

   09 : 30 - 선암사

   09 : 50 - 대각암

   10 : 30 - 절  터

   11 : 30 - 장군봉(884m)

   12 : 00 - 작은굴목재

   12 : 15 - 선암사굴목재

   12 : 30 - 보리밥집(중식 및 휴식 13 : 20 출발)

   13 : 30 - 대피소

   13 : 40 - 송광굴목재

   14 : 20 - 천자암(쌍향수)

   15 : 00 - 송광사 운구재

   15 : 40 - 송광사

   16 : 00 - 송광사 매표소 도착     산행 마침

 

◈ 산행하기 까지는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입니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고기압이 되므로 가시거리가 먼 곳까지 가능 할 것 같은 아주 좋은 예감이 들어 순천에 있는 조계산을 향하여 새벽바람을 가르며 갔습니다.


◈ 산행을 하면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고 바람도 약간 불어대는 산행하기에 좋은데 가을이 지나간 뒤라서 그런지 산행인파는 별로 없고 쓸쓸함을 느끼면서 길을 갑니다.



선암사의 부도



선암사 오름길
계절은 흐르고 흘러 길가에 낙옆만이 쌓여있습니다.



승선교
 

昇仙橋 

  1963년 9월 2일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암사에 이르기 전 曹溪山 계류 건널목에 놓인 돌다리를 말합니다. 다리는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습니다.

기저부에는 架設이 없고 자연암반이 깔려 있어 용두가 달려있는 홍예(虹朗)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 냇가와의 사이에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윗면은 평평하게 정지하여 通式의 교량을 이루고 좌·우 측면의 석축에 약간 보수를 가한 흔적이 있을 뿐 홍예는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위의 석축도 亂石 쌓기로서 시멘트에 의한 보강이 전혀 없어 자연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어 자살을 하려 하자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했는데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우고 절 입구에 승선교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삼인당
 

三印塘

삼인당[三印塘]은 1980년 6월 2일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862년(경문왕 2) 도선(道詵:827~898)이 축조한 장타원형의 연못인데, 그 안에 섬이 조성되어 있어 연못 안에 있는 섬은 ‘자이이타(自利利他)’,밖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 (自覺覺他)’를 의미합니다.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연못의 명칭에서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사상을 나타낸다합니다.

 

산행중 삼인당 안내판에 의하면 8월 말쯤에는  꽃무릇(상사화)이 연못안에 있는 섬에 활짝 피어 장관이라하며, 연못을 만들게된 동기는 풍수지리상 비보(허한 곳을 보충하는 일련의 행위)로 조성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ꁼ  하마비


 관리나 모든이들은 이곳에서 내려 경내에 들어  갔다고 합니다.





  

  

  

하마비를 뒤로하면 800년이나 되었다는 차밭이 있으며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이 나타납니다.



선암사 일주문
 

仙巖寺

  선암사는 百濟 聖王 7년(529年)에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청량산 비로암이라 하였다.  신라 景文王 원년(861年)에 道詵國師가 이곳에 대가람을 일으켜 仙巖寺라 이름하고 호남의 3암사중 首刹을 삼아 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고려불교의 여러사상이 선과 교의 승풍으로 융합되어 많은 선승을 배출한 태고종 본산으로 이름나 있다. 지금부터 900년전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중국의 천태의 교법을 전수받아 천태종을 개창하였고, 당시 청량산을 조계산이라 개칭했으며 임제선풍의 대쪽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도장이자 천년고찰로써 우리나라 불교문화연구에 있어 송광사와 쌍벽을 이룬 사찰이다.


 승선교를 비롯한 신라때 이중기단 양식의 "동.서 삼층석탑"과 화엄종 대가의 초상화인 "대각국사 진영" 10세기경 8각원당형 양식의 "동.북부도"등 보물 8점과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등 지방문화재 11점을 포함 총 19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만다라''아제아제 바라아제'등의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산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절은 우리나라 최고의 화장실인 뒷간(해우소)과 800년 전통의 야생차밭, 그리고 자연석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은 승선교(보물 400호)가 손꼽히는 볼거리다.



선암사 대웅전

                  
                      대웅전 뒤의 봉우리가 조계산 정상 장군봉입니다.


                                
                                                    홍매화 담장
                          봄이면 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담장길입니다.


              
                                                              선암사 뒷간
사진의 좌측이 남자용, 우측이 여자용인데 들어가 보니 남자용은 여덟분이 동시 사용 할 수 있으며 아래를 처다보니 무서웠으며, 톱밥 으로 발효를 하는것 같았습니다.

  

                                       선    암    사

                                                                             정 호 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딱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 경내를 보고 난뒤 대각암 가는길 왼쪽에 있습니다.
  

      

 ꁼ  마애불입상

 

 

 

 

 


                     

              
                                                           대각암
                     좌측의 우리가 장군봉이구요 큰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시누대와 몇그루의 단풍나무 숲길이 대각암의 뒤로 어우러진 등로입니다. 
















 

 

     

  ꁼ  시누대 길

 

 

 

 점심시간을 맞추어 보리밥집까지만 가면 되므로 쉼을 계속합니다.
자주 쉬면서 시간죽이기도 고역입니다.


              
                                                                       단  풍
                   저물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마지막 단풍의 모습입니다.
절터에 도착하니 조망이 그런대로 괜찬았으며 옆에 약수터가 있었습니다. 한바가지씩 단숨에 들이켜니 속까지 시원하였으며 물맛 또한 좋았습니다.
 


              
                                                                 남해조망
아래부분에 선암사가 있으며 위로는 순천만 갈대와 바다가 멀리까지 잘보였습니다.
 
                        
                                                              조계산 정상에서

               
                                                                    동북방향 조망
광양 백운산 상봉과 멀리 지리산의  능선이 맞는것 같기도 한데 .... 정확한지는 모르겠구요

               
                                                                       북향조망
이쪽이 곡성 방향 이므로  앞에 어느 산이 동악산일텐데 가보지를 못하여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죄송).


              
                                                           서쪽방향 조망
멀리 무등산도 보이는것 같기도 하구요
이제부터는 보리밥을 먹기 위하여 내리막길을 갑니다. 조금내려오니 배바위가 있구요 편안한 육산길을 따라 내려가 작은 굴목재 갈림길입니다.





이곳이 조계산 5거리 즉 산행의 요충지가 되는 셈입니다. 






        

 ꁼ 작은굴목재 이정표


              
                                                                    산중 낙옆
큰 굴목재에 서면 두갈레 길이 있는데 왼쪽으로는 아래 보리밥집이며, 오른쪽으로는 원 보리밥집이라  써 있습니다. 내려오다 목교를 지나니 정자가 있으며 이어서 보리밥집입니다. 

                   
                                                                조계산 보리밥집

















              가마솥의 숭늉                                                  보리밥 식단

날씨가 차서 하우스 안에 들어가 배낭을 벗어 놓고 손을 씻고  기다리는데 산님으로 좌대는 만원입니다. 입구 편에 여성산님 여섯분이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하시는데 그 자태가 정말 곱고 지성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시후 그중 한 여성산님이 내게로 오시더니 저희가 맛으로 동동주를 사서 맛만 보았는데 술을 권하고 싶다 하신다. 하여 거절도 못하고 받아 마시게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역시 그 여성분 광양에서 오셨다는데  안목이 대단하십니다ㅎㅎㅎㅎ.    

  

식사후 숭늉과 누룽밥을 먹고 출발을 하려는데 드럼통을 개조하여 만든 곳에 장작불을 지펴서 고구마를 굽고 있었습니다. 후식으로 하나씩 먹고가라하여 조그마한 것으로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구요 인심도 후하고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리밥을 먹으면서 내가 사는곳과 다른점 고추나 상추는 고추장을 찍어서 먹는데 이곳에서는 된장(쌈장)으로 있으며, 푸성귀등에서는 무우 줄기를 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 되었구요 특히 보리밥이 꽁당보리밥(보리로만된밥)이 아닌 쌀과 보리쌀의 비율이 잘 맞추어져 먹기가 좋았습니다. 


















                      송광사 대피소                                           송광사 굴목재 이정표

보리밥집을 출발하여 송광사가는 길 옆에 대피소를 지나 홍골로 가지 않고 천자암으로 가는길로 접어듭니다.


                                 
                                                             천자암의 곱향나무 쌍향수

                                좌로부터 산후배, 산선배입니다.

곱향나무 쌍향수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0m, 가슴높이 둘레 4.10m, 3.30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極樂)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앞에서 설명한 전설과 기이한 모습을 가진 오래된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자암                                                             茶花

천자암에 다다르니   차밭이 있구요 모노레일을 설치하여  물품 등을 조달하는가 봅니다. 밭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요즈음 꽃이 피는게 맞는지요?
송광사 운구재를 지나 내려오다 보니 운동장도 있고 농부들의 겨울 채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대나무 숲길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서 송광사 경내 모습이 들어옵니다.

                           
                                            세월각과 척추당

 세월각과 척추당

죽은 영가가 천도재를 지내러 절에 들어오기 전 하룻밤 자면서 속세의 욕망과 허물을 벗는 곳으로 세월각은 여자 영가가 묵는 곳, 척주당은 남자영가가 묵는 곳이라하며,

 

우화각(羽化閣) 앞에 키가 6.7m인 말라죽은 나무가 있습니다. 고려 명종 30년(1200년) 송광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1158~1210) 스님이 향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살아서 잎과 가지가 무성하였답니다. 그런데 지눌 스님이 “너하고 나하고 생사를 같이하자. 내가 떠날 때 너 또한 마찬가지…”라는 시를 지어놓고 입적하니 이 향나무도 말라 죽었답니다. 현재에도 썩지 않고 남아있어 고향수(枯香樹)라고 부른다는 해설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송광사  대웅보전
 

松廣寺

송광사는 우리나라의 오랜 불교 역사 속에서 전통승맥을 계승한 僧寶寺刹로, 합천 해인사(法寶), 양산 통도사(佛寶)와 더불어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지금부터 800년전 보조국사 지눌이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고 우리 불교의 전통을 새롭게 하기 위해 定慧結社를 벌였던 道場이며 지눌, 진각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외국 승려가 수도하는 국제 선원으로 한국불교문화를 연구하는 道場이다.

 

신라말 혜린선사가 길상사로 창건 후 고려명종27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대찰을 이룩했고 희종4년 지금의 송광사로 개칭했으며 조선 헌종8년 큰 화재 후 철종7년 중창하였으나 1948년 여순사건, 1951년 공비만행으로 대웅전등 주요건물이 소실되어 1984∼1988년까지 제8차에 걸친 불사중창으로 대웅전등 33동이 복원되었다. 특히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16국사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고려고종제서"등 국보 3점,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대반열반경소, 16국사 진영, 경질, 경패, 묘법연화경찬술, 금동요령등 보물 16점, 천연기념물인 쌍향수등 국가 문화재 21점과 능견난사, 금강저, 팔사파문자, 우화각, 자정국사사리함등 지방문화재 12점을 포함 총 33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비사리구시
  

일명 나무밥통으로 1742년 전라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비사리구시 위 처마에 벌집입니다.



      

 

 

  ꁼ  벌  집


                 

      

                                                                               

                             홍교와 우화각
羽化閣

홍교위의 우화각(羽化閣)이 보입니다.

우화(羽化)란 우화등선(羽化登仙)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그런 다리 위의 집인데 여기서 신선이란 금선(金仙)이니, 모든 속박을 벗어나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는 해탈의 경지에 노니는 금빛 신선, 즉 부처님을 말합니다.

 

사랑도 훌훌, 미움도 훌훌, 모두다 벗어놓고 높이높이 저 무념과 무욕의 피안으로 날아 올라가는 건널목입니다. 이 피안의 건널목인 우화각이 바로 무지개 돌다리(虹橋)위에 얹혀 있는데 그 이름이 능허교(凌虛橋)입니다.


                                
                                                                         송광사 일주문


일주문을 나와 주차장에 도착하여 공중전화 부스옆에 있는 송광개인택시에 전화하여 택시를 타고 선암사로 오는데(25,000원 미터기요금이 아니고 부르는 요금임)  완전히 총알택시네요 온몸에 땀이 나게요 

  

 차를 회수하여 벌교로  가서 속살이 하얀  외서댁을 생각 하면서 쫄깃 쫄깃한 꼬막을 먹으러 차를 몰았습니다.
 

◈ 산행을 마치며
    그리 험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산행이였습니다.내년 철쭉이 만개하는 호시절에 온가족이 다시 한번 다녀 가기로 마음에 깊이 새겨 봅니다.